살인의 기억 314화
21. 40년 그리고 35년(14)
서울로 향하는 동안 장영훈 본부장님께 전화로 영장청구 요청을 드렸다.
상황을 들은 본부장님은 미리 강혁 아저씨에게 언질을 받았는지 두말없이 체포영장을 신청해 주었고, 오 선배와 연주가 형사 두 명을 더 데리고 미카엘 신부를 체포하기 위해 천주교 주교회의로 떠났다.
병원 앞에 내린 나는 차 문을 닫으며 운전대를 잡은 관우에게 말했다.
“미카엘 신부 신병 확보하면 문자로 알려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예, 과장님. 오실 때 택시 타실 겁니까?”
“어, 알아서 갈 테니 먼저 가라.”
“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관우를 보내고 병원으로 들어가 병실로 올라가자, 문을 지키고 있던 순경들이 경례를 한다. 수차례 방문해 이제 얼굴을 익힌 모양이다.
“수고 많습니다, 별일 없죠?”
“예, 없습니다.”
“의사는 뭐랍니까?”
“한 열흘 후에는 퇴원해도 될 거라고 합니다.”
“좋네요, 열흘만 더 고생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아닙니다, 이게 저희 일인데요. 들어가시죠. 좀 전에 저녁 식사 마쳤습니다.”
“예.”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워 있거나 앉아만 있던 장진수 녀석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 살 만한가 봐?”
녀석이 날 돌아본다. 어쩐지 반가운 기색인 건 착각일까? 꼭 기다렸던 친구의 방문을 맞이하는 듯한 녀석이 환자복 상의 주머니에 수갑을 차지 않은 다른 손을 넣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셨군요.”
“어, 반갑지는 않겠지만.”
“반갑습니다.”
“난 안 반가워, 새끼야. 앉아.”
“지난번에 치킨 잘 먹었습니다.”
침대에 걸터앉으며 묶인 한쪽 손의 수갑을 철렁거리며 말하는 장진수.
나는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과 달라졌다. 어두움밖에 없었던 녀석의 얼굴. 표정이 없었던 녀석의 얼굴에 감정이란 것이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나의 내면에서 상대가 무서운 연쇄살인마라는 선입견이 옅어지는 기분이다.
나는 손깍지를 끼고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카엘 신부가 자기 부모의 사망 사건 때 학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
“뭐 증언이라고 하기보단 당시 알리바이를 증명해 줬던 교수가 위증을 인정했다고 봐야지.”
“체포되는 겁니까?”
“살인사건에 공소시효는 없어. 살인범이 발 뻗고 자게 두는 형사는 없다. 체포해서 조사해야지.”
“증거가 나오겠습니까?”
“자백받는 방법도 있다.”
“…….”
장진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잠시 창문 쪽을 바라보던 녀석이 다시 날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뭡니까?”
“근데 게임. 그거 더 안 하냐? 언젠가부터 게임 타령이 없네.”
“다시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 절대 아니지.”
놈이 실소를 짓는다. 요즘 이놈이 웃는 걸 자주 보는구나.
“시작할 때부터 제가 질 거란 걸 알고 시작한 게임입니다. 이제 이기려고 발악할 힘도 없고.”
“그냥 질문해도 되냐, 그럼?”
“글쎄요. 들어보고요.”
나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지금 같은 팀 형사가 미카엘 신부를 체포하러 갔다.”
“……보육원에 말입니까?”
“아니, 천주교 주교회의.”
“거긴 왜 간 겁니까?”
“너 교도소에서 만난 요셉 신부님께 고해성사 했지?”
“…….”
“걱정 마라. 신부님이 발설하신 건 없으니까. 하지만 가톨릭 협회에는 고발하신 모양이다. 주교회의에서 미카엘 신부를 구금하고 있어. 파면될 거라고 들었다.”
녀석은 생각이 많아지는지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렇군요.”
“나는 곧 미카엘 신부를 만난다. 신부와 일반인이 아닌, 용의자와 형사의 관계로.”
“예, 그런데요?”
“이제부터 질문이다.”
장진수 녀석이 내 쪽을 바라본다.
“하세요.”
나는 녀석의 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특이한 녀석이었어. 내가 만나본 범죄자들 중에서도 넌 좀 다른 녀석이었지.”
“저도 제가 남과 다르다는 건 압니다.”
“아니, 네놈이 살인자라는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살인자는 많아. 한 해 살해되는 사람이 천 명이 넘는 것이 대한민국인데 내가 만나본 살인자가 너뿐일 리가 없지 않나?”
“그럼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이 녀석. 달라졌다. 원래 이 녀석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예술로 생각하던 놈이었고, 누구보다 그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았다.
언론에 자기 이름을 밝혀달라는 조건으로 자백을 할 정도로 미친놈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다른 살인자와 뭐가 다르냐 묻는다. 그것은 녀석의 내면에서 무언가 크게 변했다는 뜻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을 안 해, 넌.”
“…….”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다 그렇다고? 절대 아냐.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들이밀 거나 현행범으로 잡아야 깔끔하게 인정하지. 하지만 넌 말을 안 하는 건 있어도 거짓말은 안 한다. 그게 다른 놈과 다른 점이야.”
칭찬을 한 건 아니다. 이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니까. 장진수 녀석도 그 점을 아는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문다.
“그래서 말인데.”
“예.”
나는 창문을 바라보는 녀석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내밀었다.
“미카엘 신부는 어떨까?”
“…….”
“너와 같아? 그도 거짓말을 하지 않나?”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이것이다. 미카엘을 신문할 때 어떤 방식으로 파고들지를 정하기 위해서.
장진수는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냐? 골치 아프게 생겼네.”
장진수는 그런 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사람을 세뇌하는 자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야말로 거짓말이겠죠.”
“하, 그러네.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구나.”
“하지만 형사님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음?”
“날 잡았으니까.”
“널 잡은 게 뭐? 너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다?”
장진수가 슬쩍 미소를 짓는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녀석이 일어나 창가에 가서 선다.
“어디를 건드려야 실토하는지 아는 것. 그게 형사님의 장점입니다.”
너 따위가 왜 날 평가하고 있냐?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그런데 이 녀석. 방금 내가 어디를 건드려야 실토하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나는 가만히 녀석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이놈을 검거할 때 나는 녀석이 살인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접근했다.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렸고, 다른 이가 한 행위로 발표될 거란 협박으로 자백하게 만들었다.
‘이 녀석이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것. 내가 그걸 건드려서 자백을 받았다는 말이다.’
힌트를 주고 있는 거다. 상대가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건드리라고. 이 녀석은 지금 날 도와주고 있는 거다. 나는 한참 놈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진짜 후회하냐?”
창문 밖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냐?”
“…….”
“그건 또 아니냐?”
장진수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인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 같습니다. 문헌에서 보기를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선천적이라고 들었는데 어릴 때 전 이렇지 않았습니다. 동물을 보고 귀여워하고, 아프면 내 마음도 아팠는데. 이제 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틀렸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선천성과 후천성을 동시에 지닌다. 후천적으로 사이코패스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녀석은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결코 구원의 행위가 될 수 없음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후회 중에 미안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너는 살인자이니까. 장진수가 자기 손을 바라보다 주먹을 꽉 쥔다.
“그리고 내게 마지막까지 남은 감정은…… 아마도 분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부정당하고 나면 그것을 가르친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단순한 지식 전달의 미스가 아니라 사람의 가치관 자체가 부정당한 것이며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잘못을 야기시켰다.
놈의 내면에 남은 분노가 분출되어 미카엘 신부를 죽이려 탈옥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래, 계속 그렇게 살아라. 하지만 말이다, 진수야. 네가 짐승으로 죽지 않고 사람으로 죽으려면 하나만 알아라.”
“…….”
“넌 미안하다는 감정을 알아야 된다. 너와 미카엘 신부의 삐뚤어진 종교관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
“감옥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 미안하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 너는 비로소 사람이 되는 거다. 그렇다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짐승으로 늙어 죽지는 마라.”
나는 몸을 돌리며 손을 들었다.
“나 간다.”
바로 그때 품에서 전화가 울린다. 수신자는 오 선배. 미카엘 신부를 체포해 왔다는 보고 전화인 것 같다.
나는 병실을 나서기 위해 병실 문 방향으로 가며 전화를 받았다.
“예, 선배님. 저 지금 병원인데 금방 갑니다.”
-과, 과장님…… 으…….
나는 멈칫했다. 무슨 일이지?
“선배님?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사가정…… 근처 도로입니다, 크흑!
“무슨 일 있는 겁니까?”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장진수가 내 쪽을 바라본다.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신음을 간신히 참는 듯한 오 선배의 목소리가 날 불안하게 한다.
-미카엘 신부가…… 이송 중에 탈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수갑 찬 손으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차량이 전복됐습니다……. 이송 중인 형사 둘이 크게 다치고…… 연주는 의식 불명입니다.
나는 휘청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미, 미카엘이 탈주하고 여, 연주가 다쳐요? 얼마나 다쳤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119부터 부르고 바로 과장님께…… 크흑! 저, 전화드린 겁니다.
“선배님! 선배님도 다치신 겁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연주가…….
“바로 가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기다리세요!”
-과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미카엘 신부 추적부터…… 부탁드립니다.
수화기 너머로 구급차 소리가 들려온다.
“선배님! 연주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겁니까?”
-머리에서 피가…… 꽤 많이 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구급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지금 구조 작업이 시작된 모양이다.
“바로 가겠습니다!”
-과, 과장님 저는 신경…….
나는 오 선배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 살인자를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나, 그들을 잃은 후에 살인자를 잡는 건 내게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미카엘 이 개새끼가.”
태어나 처음으로 신부님을 향해 욕을 했다. 핸드폰을 부서질 듯 꽉 쥐고 병실을 박차고 나간 나는 전력으로 뛰었다. 제발 내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