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16화 (316/328)

살인의 기억 316화

21. 40년 그리고 35년(16)

장진수가 입원했던 병원.

나는 일단 기자들에게 이 내용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빈 병실 앞에 경계 병력을 배치했다. 누가 와서 봐도 장진수 놈이 탈주한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함이다.

병실 안, 당시 경계를 서고 있던 네 명의 순경들이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순경 중 한 명이 얼른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순경은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장진수 놈이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며, 다른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변기를 보니 휴지가 꽉 막혀 있다. 순경이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간호사에게 말하니 관리실에 연락해서 고치는 데 한 시간가량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당장 쌀 것처럼 급하다고 하는 바람에…….”

“공용 화장실로 데려간 겁니까?”

“예…….”

“어딥니까?”

“4층 복도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화장실 안에 넣고 수갑 채웠을 텐데요.”

“예, 채웠습니다.”

순경이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보여준다. 열쇠 구멍 근처가 잔뜩 긁혀 있는 수갑이 보인다. 나는 수갑을 살펴보며 말했다.

“풀고 도주한 겁니까?”

“예.”

“시간은 얼마나 지났습니까?”

“한 3분 정도였습니다.”

“수칙상 화장실 안에 한 사람이 대기해야 했을 텐데요.”

“맞습니다. 제가 있었습니다.”

“화장실 안에 계셨는데 도주하는 걸 몰랐다는 겁니까?”

순경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건 죄송한 거고. 당시 왜 도주를 막지 못했는지 설명해 보세요.”

순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변기가 있는 칸에 놈을 데려다 놓은 뒤에 변기 옆 손잡이에 수갑을 채웠습니다. 여러 번 안전 확인을 한 뒤라 안심하고 밖에 나와 있다가 손을 좀 씻고 싶어서 세면대로 가서 물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물을 끄고 놈을 불렀습니다.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안심하고 다시 물을 틀었습니다. 손을 마저 씻고 물을 끈 뒤 녀석이 있는 화장실 변기 칸 앞에 서 있는데 하도 안 나와서 다시 불렀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안 하는 겁니다.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다 잠긴 문이 열리지 않아서 옆 칸으로 가 변기를 밟고 올라가 위에서 봤는데…… 창문은 열려 있고 놈은 도주한 뒤였습니다. 수갑은 열린 채로 손잡이에 걸려 있었고요.”

장진수 놈은 치밀하다. 내 통화를 듣고 바로 이런 일을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놈은 미리 이러한 탈출을 염두에 두었던 거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었다. 지금까지는 실행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카엘의 탈주를 들은 놈에게는 다시 이유가 생겼던 것이다.

“화장실로 가 봅시다.”

복도로 나와 공용 화장실로 가 보니 굳이 창문 옆에 있는 화장실 칸을 쓴 이유가 나왔다. 화장실이 두 칸뿐인 것이다.

한 곳은 장애인 화장실이고, 일반 화장실은 창문 옆의 단 한 칸이다. 화장실 창문 위치는 변기에 발을 올리고 섰을 때 얼굴 높이. 나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빼 보았다.

“보일러 파이프.”

창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보일러 파이프가 1층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놈은 감옥에서 탈옥을 했을 때도 파이프를 이용했었다. 놈은 이것을 이용해 항상 높은 건물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나는 혀를 차며 변기에서 내려왔다. 기다리던 순경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빨리 잡아야 합니다. 놈은 연쇄살인범입니다. 밖에서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놈이 있던 화장실을 노려보다 말했다.

“장진수 놈은 위험인물이 아닙니다, 더 이상.”

순경들이 놀란 눈으로 되묻는다.

“예?”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며 말했다.

“하지만 살인범이란 건 사실이죠. 그리고 나가서도 살인을 하려 할 겁니다.”

순경들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만약 장진수가 나가서 살인을 한다면 이들은 모두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힐끔 보며 화장실을 나섰다.

“하지만 일반인을 죽이진 않을 겁니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도 이미 알고 있고.”

순경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나는 병원 복도를 걸으며 복도 끝을 노려보았다.

‘장진수, 놈을 잡으려면 미카엘을 추적하면 된다.”

녀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안다. 탈주한 것은 둘이지만 하나만 찾으면 나머지 하나를 찾는 건 쉽다.

* * *

중대범죄 수사과.

사무실로 돌아오자 이미 CCTV 수거를 마치고 분석 중이던 관우가 햄버거를 입에 물고 손을 든다.

“몇 군데 찍혔습니다.”

당연하다. 그렇게 사람 많은 지하철역 사거리에서 차가 전복되었다. 인근 CCTV 수백 군데에 미카엘의 모습이 찍혔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느 방향으로 갔어?”

“면목동 방향 주택가로 들어갔습니다.”

“추적 가능해?”

“무조건 해야죠. 우리 팀 사람을 둘이나 박살 낸 놈인데. 나머지 형사 둘도 좀 전에 정신 차렸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고 한 달쯤 요양하면 복귀 가능하답니다.”

“다행이네, 화면 좀 보자.”

“예, 잠시만요.”

관우가 모니터를 돌려주며 영상을 재생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사거리. 형사들의 차를 뒤쪽에서 찍은 영상이 시작되고 좌회전 신호를 받자마자 출발한 검은색 승합차가 코너를 도는 도중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운전대가 이리저리 흔들려 구불구불 마구 휘청거리던 차는 횡단보도를 지난 직후 오른쪽으로 쓰러져 전복된다.

차가 전복되며 소화전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물이 온천수 터지듯이 하늘로 솟구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대피하는 것이 보인다.

용기 있는 일부 사람들이 차 쪽으로 접근하고 있던 바로 그때, 승합차 뒷문이 열리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기어 나오고 있다.

관우가 화면을 확대하며 말했다.

“미카엘입니다.”

확대된 화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미카엘이 수갑을 찬 채로 기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사제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 달려왔지만 그는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사거리 옆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로 뛰어간다.

관우가 화면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핸드폰으로 통화를 시도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아마 신고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렇게 급하게 도망간 것이고.”

평소 미카엘이라면 수갑 찬 손을 숨기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괜찮다고 말한 뒤 조용히 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119와 경찰에 신고하는 누군가의 통화 소리를 듣는 순간 급하게 도주한 것이다.

“면목동 쪽으로 도주했다고?”

“예, 여기.”

관우가 화면을 여덟 개로 분할해 보여주자, 골목길을 뛰어가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들이 잡혀 있다. 관우가 깍지 낀 손을 풀며 씩 웃는다.

“도심지에 한정된 거지만 이놈이 서울에 있다면 절대 내 눈 밖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좋아, 반드시 찾아내. 그리고 한 가지 더.”

“압니다, 장진수 말이죠?”

“그래, 미카엘의 이동 동선이 어디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장진수 놈은 알지도 모른다. 미카엘이 있는 곳에 장진수 녀석이 있을 확률이 높아. 함께 찾아봐.”

“알겠습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혁 아저씨가 들어온다. 관우가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하자,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친 아저씨가 날 보며 말했다.

“또 도망갔다며?”

“죄송합니다.”

“하하, 이 미친놈들이 내 옷을 벗기려고 아주 환장을 했네.”

“…….”

“나 이제 한 달 남았다? 군대 가서 제대 한 달 전에 의병 제대 당하면 기분 어떻겠냐?”

“잡겠습니다.”

아저씨는 내게 다가와 목을 조르며 꿀밤을 먹인다.

“내가 인마 여기까지 야단치러 왔겠냐? 그럴 거면 사무실로 호출했겠지.”

“…….”

할 말이 없다. 아저씨께는 너무 죄송한 일뿐이다. 아저씨는 내 목을 조르며 의자로 가 날 앉힌 후 다른 의자를 끌고 와 내 앞에 앉은 뒤 눈을 마주쳐 왔다.

“미카엘, 아니, 구종식. 그 새끼가 하 선배 죽인 놈이야?”

“…….”

“대답해.”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억. 읽은 거 더 없고?”

“단편적인 건 읽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유력합니다.”

“유력하다…….”

강혁 아저씨는 당장 욕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창밖을 노려본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명예로운 은퇴. 그딴 건 개나 줘버리라 그래. 하 선배 죽인 놈 반드시 잡아와. 내가 옷을 벗게 되든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든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서울 시내를 다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아서 데려와. 알았냐?”

“예, 아저씨.”

“믿는다?”

“예.”

아저씨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고 사무실을 벗어난다.

난 그런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솔직히 내가 아저씨 입장이라면 저리 나오지 못할 것 같다.

한 번 탈옥한 죄수가 또다시 병원에서 탈주했다. 체포 중인 용의자가 형사들의 압송 차량을 전복시키고 탈주했다.

언론이 이 사실을 아는 건 시간문제이다. 장진수 쪽은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하철역 앞에서 수많은 이가 목격한 차량 전복 사건은 벌써 기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당장 속보로 나가고 있을 것이다.

경찰청장 입장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응당 실수를 한 부하 직원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야 옳지만 아저씨는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모든 걸 다 막아줄 테니 서울 시내를 뒤집어엎어서라도 찾아오라며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나가신다.

말없이 아저씨가 나간 문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에 눈치를 보던 관우가 나직하게 말한다.

“정말…… 존경스러운 청장님이시죠?”

“…….”

“저도 나이 먹고 후배들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하하, 가능하려나 모르겠네요.”

나는 관우의 말에 빙긋 웃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우가 다시 추적을 시작하고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를 30분가량. 드디어 관우가 유의미한 추적 결과를 확인했다.

“상봉역에서 지하철 탑승,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사무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고속터미널로 지원 요청해!”

“예!”

고속터미널. 이 새끼 이거 지방으로 내뺄 생각이다. 설마 다시 단양으로 가는 건가?

내려가면 장진수 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미카엘의 행선지를 이미 알고 있는 거다. 거기서 기다렸다 미카엘을 습격할 생각인 거다.

놈이 죽이려는 이가 악마라고 하여도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할 순 없다. 반드시 미리 막아야 한다.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와 차에 올라탄 뒤 고속버스터미널로 차를 모는 도중 관우가 일을 잘 처리했는지 몇 대의 순찰차가 급히 유턴을 하며 내 차 뒤로 따라붙는 것이 보인다.

물론 내 차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고속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터미널 앞에 도착하자, 주변을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이미 터미널에 도착해 미카엘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남자들을 붙잡아 불심검문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터미널 안쪽으로 달려가며 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터미널 진입.”

-6번 게이트에서 찍혔습니다.

“시간은?”

-한 시간 전입니다. 이거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시간 전 영상 확인이 최선입니다.

“알았어, 넌 계속 추적해. 여긴 내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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