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17화 (317/328)

살인의 기억 317화

21. 40년 그리고 35년(17)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무척 복잡하다. 지리상으로 강남에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옆에 대형 백화점이 있고, 터미널의 규모도 어마어마하기에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행인들 사이를 전력으로 뛰어가며 눈으로 안내판들을 훑었다.

‘6번 게이트, 6번 게이트.’

행인도 많고 무지하게 넓은 터미널. 나는 속력을 더해 뛰어다녔다.

결국 발견해 낸 6번 게이트로 뛰어드니, 야외로 이어진 터미널에 버스들이 늘어서 있고, 표를 쥔 승객들이 차에 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버스에 올라타 비어 있는 버스기사 좌석 옆 손잡이를 잡고 승객들을 살폈다.

뒤에서 짐을 들고 올라오던 아저씨가 서 있는 날 툭 치며 말했다.

“거, 앞으로 좀 갑시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한쪽으로 바짝 붙어 비켜섰다. 아저씨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몸만 비켜주는 날 위아래로 보며 지나간다. 아저씨의 등 뒤에서 승객들을 살핀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없다.’

이미 떠난 걸까? 다시 버스에서 내린 나는 품에서 울리는 전화를 꺼냈다. 관우 녀석이다.

“어.”

-이미 버스가 출발한 것 같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버스의 행선지를 바라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6번 게이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알아.”

나는 이를 갈며 버스 행선지를 노려보았다.

“울산이다. 미카엘의 본가가 있는 곳.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거기다. 울산 경찰서 지원 요청해서 미카엘 본가로 출동시켜. 난 여기서 바로 내려간다.”

-저도 출발할까요?

“아니, 넌 여기서 울산시외버스터미널 CCTV 따서 계속 추적해 줘. 울산이 작은 동네도 아니고 만약 본가로 가지 않았다면 혼자 추적하기 어려울 거야.”

-알겠습니다, 과장님.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 주차장 쪽으로 달렸다.

* * *

중대범죄 수사과.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관우가 연신 키보드를 두드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밥 먹으면서 집중이 되냐 말하겠지만 지금 관우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의 동체 시력처럼 미세하게 눈동자를 흔드는 관우는 현재 여덟 개의 분할 화면 전체를 확인 중이다.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를 놓고 인터넷 창을 켠 관우가 중얼거렸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4시간 10분.”

컴퓨터 시간을 확인한 관우가 영상 하나를 재생시킨다. 급하게 도주하느라 사제복을 갈아입지 못한 미카엘이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이 새끼 이거 수갑 풀었네? 뭔 신부님이 수갑 푸는 법을 알고 있냐, 넌 죽었어,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잡히는 거다, 알았냐?”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양손이 자유로운 미카엘.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눈인사까지 보낸다.

“지랄하고 있네, 언제까지 신부님 코스프레 할 거냐, 이 악마 같은 새끼야.”

병원에 누워 깁스를 하고 있는 연주 생각이 나자 부아가 치밀어 오른 관우가 마구 키보드를 두들긴다.

“이 개새끼, 내가 끝까지 추적한다.”

미카엘이 버스를 탄 건 지금부터 1시간 50분 전. 울산에 도착까지 2시간 20분 남았다.

울산 경찰서에 미리 지원을 요청해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 경찰 인력을 배치했지만 미카엘이 바보가 아니라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기사에게 요청해 조금 일찍 내린다면 터미널에서 잡을 수 없다. 일반인도 아니고 사제가 요청하면 대부분 들어주기 때문이다.

관우가 PC로 정보 몇 개를 검색 후 핸드폰을 든다.

“여보세요, 예, 개화 운행이죠? 여기 경찰서인데 중요 용의자가 그쪽 소속 버스를 탄 것 같습니다.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울산 방향 버스이고, 출발 시간은 오후 5시 40분입니다. 기사님 핸드폰 번호 수배될까요? 예, 영장은 팩스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먼저 전화번호부터 좀 부탁합니다. 아, 진짜 경찰서라고요.”

요즘 사람들은 의심이 많다. 워낙 이상한 사기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에게 경찰청 대표번호로 전화 후 중대범죄 수사과 연결해 달라고 한 뒤 재통화 후에야 기사의 전화번호를 받은 관우.

“젠장…… 벌써 미카엘이 출발한 지 3시간 50분이 지났잖아, 아 왜 경찰 사칭하는 새끼들이 이렇게 많아진 거야, 일하기 복잡하게, 씨X.”

관우는 전송된 기사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버스 내부 소음이 울리는 걸 보니 핸즈프리로 받는 모양이다.

“여보세요?”

-예, 누구십니까?

“울산행 고속버스 기사님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여기 서울경찰청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현재 기사님 차에 저희가 쫓는 중요 용의자가 탑승하고 있습니다.”

-…….예?

“침착하게 운전하시고, 절대 돌아보지 마세요.”

-룸 미러로 봐도 안 됩니까?

“그건 괜찮아요.”

-누, 누굽니까?

“승객 중에 사제 복장하고 탄 사람 있죠?”

-헉…….

있구나. 이 버스가 확실하다.

“있죠?”

-예…… 설마 그분이.

“맞습니다, 현재 위치 어디 십니까?”

-막 울산 IC 빠져나왔습니다.

“혹시 터미널 전에 정류장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제가 중간에 내려달라고 하시면 핑계 대시고 절대 내려주지 마세요, 아셨죠?”

-예…….

“자, 힘드시겠지만 침착하게 운전해서 터미널까지 안전하게 들어오시는 겁니다.”

-예…….

“룸 미러로 사제가 보이나요?”

-잠시만요…… 어?

“왜 그러세요?”

-자, 잠깐만요.

약간의 소음이 난다. 버스가 서는 듯한 가스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관우가 조바심에 소리를 질렀다.

“버스 그대로 달리라고요! 멈추면 안 됩니다!”

-…….

대답이 없다.

“이봐요! 기사님!”

하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운전기사. 하지만 여전히 소음이 들려오고 있고 말소리도 간혹 들린다. 너무 멀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잠시 기다리자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여보세요? 형사님.

“무슨 일입니까?”

-아니, 룸 미러로 신부님 앉아 있던 자리 봤는데 없어져서 잠깐 멈췄습니다.

“없어졌다고요?”

-예, 옆 좌석 승객분께 물어보니 신부님이 휴게소에서 내린 후에 다시 안 타셨다고 하는데.

“젠장! 그 마지막 휴게소 어디였습니까?”

-언양 휴게소입니다.

“하, 버스 안에 없는 거 확실하죠?”

-예, 제가 다 살펴봤습니다.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안전 운행 하세요.”

전화를 끊은 관우가 급히 PC로 언양 휴게소 위치를 검색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젠장, 먼 곳에서 내린 줄 알았더니 여기도 울산이네.”

다시 전화를 든 관우가 외쳤다.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울산고속터미널에 출동한 형사님들 절반은 언양 휴게소로 빨리 보내주세요! 용의자가 거기서 내렸습니다!”

전화를 끊은 관우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휴게소는 외진 곳에 있다. 만약 미카엘이 거기 내려 도보로 이동했다면 골치 아프다. 어느 산에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사제 복장을 하고 있다. 그 차림새로 일반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들어줄 사람이 꽤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 차량으로 이동했다면 더 골치 아파지는데.”

휴게소에 들어오는 일반 차량은 수백 대가 넘는다. 그중 어떤 차를 추적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관우는 혀를 차며 교통상황실에 전화해 언양 휴게소 주변 CCTV 정보를 확인 요청했다.

“일단 그거라도 봐야지, 할 수 있나.”

상황실 자료 접근 요청 후 승인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미카엘 신부의 탑승 영상을 바라보던 관우.

먹다 만 햄버거를 옆에 둔 관우가 영상을 보다 멈칫하고는 스페이스 바를 빠르게 누른 후 다시 영상을 돌린다.

미카엘이 버스에서 타는 장면,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그사이에 버스에 탄 승객들은 눈여겨보지 않고 오직 창문에 비치고 있는 미카엘이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연히 관우의 눈에 띈 것이 하나 있다.

검은 모자에 검은 바람막이 점퍼, 청바지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보인다.

바람막이 안에 하얀 옷을 입었는지 점퍼 아래로 티셔츠 밑단이 삐죽 나와 있다. 그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뚫어지게 보던 관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화면을 확대한다.

갑자기 확대된 화면이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처럼 다 깨졌다가 점점 복구되는 모습을 기다리던 관우가 입술을 핥으며 씩 웃었다.

“너였냐?”

관우가 확대하고 있는 화면. 바람막이 점퍼 아래로 삐죽 나와 있는 하얀 내피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세로 줄무늬와 파란색 글씨가 보인다.

‘쌍문 한성 종합병원.’

장진수다. 관우가 모니터를 노려보며 다시 전화를 들었다.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놈이 버스에 있는지 확인해야 된다. 물론 아주 높은 확률로 미카엘을 따라 휴게소에서 내렸겠지만 일단은 확인해야 된다.

문득 도경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카엘의 이동 동선이 어디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장진수 놈은 알지도 모른다. 미카엘이 있는 곳에 장진수 녀석이 있을 확률이 높아.’

잠깐 전화를 들고 멈칫한 관우의 눈에 교통관제센터에서 CCTV 접근 허가가 떨어졌다는 알림이 보인다. 기사에게 전화하는 것을 미룬 관우가 휴게소 인근 CCTV를 확인하며 시간을 맞췄다.

“언양 휴게소에 들어간 시간이 대충 이쯤일 테니까…….”

무서운 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모든 CCTV 화면을 분할해 한 화면에 띄우는 관우.

모니터가 모자라 트윈 모니터 화면까지 모두 작은 CCTV 영상으로 채운 관우가 눈알을 굴리며 모든 화면을 주시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우스로 한 화면을 크게 확대한 관우가 씩 웃었다.

“잡았다, 이 새끼야.”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휴게소 앞을 지나는 미카엘이 보인다.

급히 PC로 언양 휴게소 CCTV 설치 현황을 본 관우는 그의 진행 방향에 따른 다음 CCTV 번호를 확인했다.

CCTV 번호를 입력해 추적을 계속하려던 관우가 키보드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며 사라지고 있는 미카엘의 뒤를 따라붙고 있는 검은 옷의 사내 때문이다.

“장진수.”

놈은 일정 거리를 두고 미카엘을 따라가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본 관우는 괴리감이 든다.

“미카엘 죽이겠다고 탈옥까지 해서 성당을 덮친 놈이 눈앞에 미카엘이 있는데도 따라가기만 한다고?”

어차피 장진수는 사형수다.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집행 폐지를 했으니 놈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을 거다.

병원의 치료를 마치면 바로 재수감이 예정되어 있던 놈. 탈옥으로 인해 형량이 추가되는 일은 없을 거다. 어차피 가석방 없는 사형수이니까. 녀석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다는 건 사람 많은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여도 스스로에게 손해 될 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리 얌전하게 뒤를 따라다니기만 한다고?

관우는 다음 CCTV 영상을 재생 후 미카엘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뒤를 따르는 장진수를 보았다. 이번에는 뒷모습이 아니라 대각선 정면에서 찍은 화면이다.

미카엘은 CCTV를 의식하는지 고개를 숙였지만 장진수 녀석은 아니다. 미카엘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오히려 CCTV 앞에 오자 고개를 들고 화면을 바라본다.

앞서가는 미카엘을 힐끔 본 녀석은 화면 앞에 서더니 검은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낸다.

“이 새끼 이거 지금 뭘 하는 거야?”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린 장진수가 화면 방향으로 노트를 잠시 들었다가 다시 넣은 후 미카엘을 쫓는다.

관우가 화면을 확대해 보고는 눈을 크게 뜬다. 화면 속 장진수가 들고 있는 노트 속에 놈의 글씨가 보인다.

죽을 때만은 인간으로 죽어보렵니다.

눈을 크게 뜬 관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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