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1화
22. 악(惡)의 필름(1)
열 명이 넘는 무장경찰들이 건물 뒤 산길로 달려간다. 가는 도중 매뉴얼에 따라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 수색 범위에 대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울주군 언양읍 감천길 11, 정체불명의 건물 뒤쪽 야산으로 용의자 도주! 추가 지원 요청한다. 용의자는 사제 복장을 한 70대 남성이다. 가용 가능한 전 병력 출동 바람!”
“그쪽 말고! 거긴 길도 없는데 갑자기 도주하느라 경황없는 새끼가 왜 그리로 가? 저쪽을 뒤져!”
“산 위로 올라가라고! 뛰어!”
“이거 중대범죄 수사과 일이야, 한 치라도 실수하면 우리 모가지 다 날아가는 거다. 정신 차리고 뛰어!”
나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눈에 보이는 도주 가능한 산책로로 뛰어 올라갔다.
야밤이라 발자국 따위의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조금 전에 도주한 용의자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무작정 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추가 병력 지원을 요청했으니 이 근방은 30분 내로 완전히 포위될 것이다.
미카엘이 포위망이 구축되는 30분이 지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골치 아파진다. 또다시 추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여기서 잡는다, 이 개새끼야.’
아직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내가 기대고 있던 원통 안에 아버지 시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눈이 돌아버렸다.
주변에서 고함을 치며 따르고 있던 형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숨이 차다 못해 시야가 하얗게 변해 버리는 순간까지 나는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범죄자 추적 행동 요령과 동떨어진 행위다.
나는 지금 범죄자가 흘린 단서를 찾으며 최적의 경로로 추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눈이 돌아 무작정 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어디인지도 모를 숲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지쳐서 그런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해 그런 것도 아니다.
만약 지금 내 모습을 강혁 아저씨가 봤다면 뭐라고 하실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무를 베는 데 여덟 시간을 준다면 도끼를 가는 데 여섯 시간을 쓰는 게 경찰이다, 어린 놈의 새끼야!’
나는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눈앞에 바윗돌 하나가 보인다. 이렇게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것보단 저기 앉아서 주변이라도 보며 에너지를 채우는 편이 건설적일 것 같다.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 뻐근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허리를 펴지 않고 굽힌 채로 바위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헉, 헉…… 후우…… 후우…….”
최대한 빠르게 호흡을 돌리기 위해 허리를 펴고 숨을 골라본다. 그러면서도 눈은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내가 있는 곳이 미카엘이 도주한 곳과 전혀 다른 방향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형사들이 흩어져 찾고 있긴 하지만 미카엘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후우…… 후우…… 후…….”
호흡이 돌아옴에 따라 새하얗게 변했던 내 시야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아직 가슴이 들썩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육체적 안정보다 정신적인 냉정함을 찾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문득 강혁 아저씨와 고시원 뒤 포장마차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경대 졸업 후에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한 번도 넘어진 적 없이 달려오셨죠? 비결이 뭐예요?’
내가 아는 아저씨에 대한 정보는 주변인의 평가가 전부다. 내가 경찰이 된 순간 이미 치안감을 넘어선 아저씨가 일선 수사를 지휘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할 수 없다.
KCSI 관계자, 국가수사본부 사람들이나 경찰청 내부의 평가.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보았을 때 아저씨는 능력과 인성 면에서 만인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를 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만큼 그에게 묻고 배우고자 하여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저씨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은 후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지랄, 누가 내가 한 번도 안 넘어졌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는 거야?’
아저씨의 반응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예? 아저씨 실수 없었지 않아요? 주변에서 그러던데.’
‘지랄, 내가 슈퍼맨이냐? 말이 돼? 나도 못 잡은 놈 있고, 심지어 잡았다 놓친 놈도 있다.’
아저씨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고?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아저씨는 다시 소주잔을 채우며 말했다.
‘내 생에 최대 자랑은 말이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섰다는 거다.’
그때 알았다. 아저씨가 주변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와 끈질김. 그것이 지금의 아저씨를 만들어낸 것이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해도, 결국에는 끝내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 바로 강혁 아저씨였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저씨 생각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듯 주먹을 가슴팍에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에게 질 순 없죠.”
호흡이 완전히 돌아왔다. 얼마나 쉬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어나 보니 허벅지 근육이 꽤 놀랐는지 여전히 뻐근하다.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좀 더 달릴 수 있을 거다.
나는 냉정한 시선으로 숲을 바라보았다. 길은 벌써 사라졌고 완전히 야산 한가운데 있는 나. 가장 쉽게 흔적이 남는 바닥을 살폈지만 가득 쌓인 낙엽은 내가 밟은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다.’
당연하다. 미친놈처럼 뛰기만 했는데 무슨 수로 미카엘의 흔적을 발견한다는 말인가?
나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약 30미터 거리에 산책로로 보이는 길이 보인다.
나는 빠르게 산책로로 내려가 흙길을 밟았다.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위치를 파악해 보니 왼편이 내가 올라온 길이고, 오른편이 진행 방향이다. 왼편에서 올라오는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미카엘이 다시 왼편의 건물 방향으로 내려갔을 리는 없을 거다. 놈이 뒷문을 열고 도주 시 이미 지원 병력이 가까이 왔었기 때문에 놈도 소리를 들었을 거다. 다시 내려가 봐야 건물 내 경찰이 득실거린다는 걸 알고도 내려갈 바보는 아니다.
나는 다시 우측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중에 뒤따라 올라오는 형사들을 한번 바라본 뒤, 급격히 다시 돌아서며 뛰어나가느라 우편에 있는 나무를 손으로 짚은 바로 그 순간. 나는 멈칫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이 흑백으로 물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필 이런 때? 빨리 미카엘을 잡아야 한다고! 일단 잡은 다음에 보여 달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하지만 기억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정체 모를 무심한 놈은 나의 외침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이 깨어지고 부서지며 내 영혼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 * *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할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할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할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할렐루야.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할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할렐루야.
나는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문을 외고 있다.
기도하는 내 마음속에 솟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나는 지금 매우 기쁘다.
오늘도 신의 곁으로 보낼 어린 양을 정화했기 때문에? 아니, 정화는 잠시 뒤에 일이다.
지금 내가 한 행위는 아직 정화의 행위가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마 국민학교 시절이 아닌가 싶다.
처음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죽인 후에 알게 된 희열. 그 희열을 느낀 후부터 나는 이 행위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아무도 없는 빌라 골목길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주 깔끔하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약물로 간단히 상대를 제압했다.
이 사람은 더럽다. 육신도 영혼도 매우 더러운 인간이다.
나는 한참이나 이 사람을 관찰했다. 이 사람은 포주이다. 승합차로 여자를 태워 노래방이나 룸살롱에 내려주고 여자들이 벌어다 준 돈 중 일부를 떼어먹고 사는 기생충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십자가 언덕에 이 사람을 데리고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깨끗하고 맑은 상태의 어린 양으로 하느님께 보내 드릴 생각이다.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 남자를 묶었다. 혹시 약물에서 깨어나 비명이라도 지르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붉은 천으로 다리와 팔을 뒤로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 작업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상대가 기절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콧노래로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그를 묶었다.
문득 처음 죽였던 고양이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도 천으로 고양이 발을 묶었었다. 녀석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간신히 코너로 몰아 잡았을 때도 여기저기 할퀴고 물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팔에 온통 상처가 생겼었다. 그 후부터 나는 꼭 상대를 묶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 발목이 묶이던 남자가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가만히 엎드려 있는 남자를 관찰했다.
아직 깨어날 수 있는 시간이 아닐 텐데. 한참 남자를 관찰했지만 남자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 정신이 든 것이 아니라 발목 쪽 근육을 잘못 만져 경련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나는 안심하고 다시 발목을 묶으며 중얼거렸다.
‘두려우십니까, 형제님? 저는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아, 좀 전에 고양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셨군요? 제가 고양이를 그렇게 만든 이유는 불쌍한 녀석을 죽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세요, 형제님. 곧 편안해질 겁니다.’
다리를 묶고 나니 엎드린 형제님이 내게 고양이에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 지금 설명하면 나중에 기억하실 수 있을까요? 좋아요, 설명드릴게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나는 언제나 성도들에게 친절하다. 그들은 신의 품으로 갈 어린 양들이니 당연히 그리 대해야 할 대상들이다. 이 사람도 조금 전까지 타락한 종자였지만 이제 곧 깨끗한 어린 양이 될 사람이니 친절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나는 기절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고양이를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형제님. 그저 나는 궁금했을 뿐입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양이는 죽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어요. 야옹? 니야옹? 아니면 개처럼 낑낑 소리를 낼까? 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어요. 그럼 직접 해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런 것뿐이랍니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정도면 질문에 답을 했다 생각하고 천천히 그의 위로 올라타 목을 잡았다.
‘자, 이제 주님 곁으로 갈 시간입니다, 형제님. 네? 아직도 질문이 남았다고요? 이번엔 또 뭔가요? 음, 그 이후로는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냐고요? 당연히 아니지요.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죽을 때 같은 사람이라 하여 모두 같은 소리를 내며 죽을까요? 아닙니다. 고양이도 그랬어요. 첫 번째 녀석과 여든아홉 번째 죽은 녀석은 전혀 다른 소리를 냈답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나는 남의 등 위에 앉아 그의 턱을 양손으로 잡고 뒤로 당기며 말했다.
‘자, 그럼 이만 깨끗해질 시간입니다, 형제님.’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나는 기도문을 외며 남자의 목을 뒤로 당긴 상태에서 옆으로 꺾었다. 목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물론 이런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다. 그대로 두면 죽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나의 십자가 언덕까지 가는 길에 생길 수 있는 혹시 모를 불상사가 없도록 대비하기 위함이다.
척추에 손상이 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그를 데리고 편안하게 언덕으로 향하면 될 일이다.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의 등 위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힉!!’
뭔가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난다. 아주 늦은 밤, 이런 후미진 골목길 부근에는 보통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데 누구일까?
고개를 돌려 보니 골목길 입구 부근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뒤로 자빠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나와 정화 대상으로 향해 있다.
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천국의 문을 보셨군요,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