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2화
22. 악(惡)의 필름(2)
나를 본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마구 발을 굴러 뒤로 물러난다.
골목길의 어둠 속에서 드러난 내 모습을 본 남자는 귀신을 본 것처럼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골목길 끝에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성한 정화 의식을 보고 저리 도망가는 것을 보니 당신의 마음속에도 악마가 있군요.’
정화 대상이다. 나는 그것을 알아채자마자 빠르게 골목길에 둔 시신을 들고 근처 쓰레기장 안으로 던졌다.
좀 더러워지겠지만 괜찮다. 내가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태어나 살아온 중에 최고로 깨끗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나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남자가 도망간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를 쫓는 건 쉬웠다. 길가에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라이터가 떨어져 있기도 하고, 넘어질 때 까진 무릎에서 흘린 피가 떨어져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덕길을 내려온 뒤 주변을 보았다. 길의 우편에 슬리퍼 한 짝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까 그 남자의 슬리퍼다. 우측으로 갔구나.
나는 우측으로 달리며 슬리퍼를 집어 들었다. 삼선이 그려진 슬리퍼 옆면에 검정색 매직으로 쓰인 여인숙 이름이 보인다.
‘서문 금은 여인숙.’
여인숙에 묵고 있는 사람이거나, 거기 직원이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상대가 갈 곳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빠르게 쫓아가면 압박을 느낀 상대가 더 골치 아픈 곳으로 도망갈 수 있다. 차라리 추적을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게 하는 편이 잡기 수월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길을 걷다 만난 할머니가 내 옷을 보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신다.
그래, 나는 이렇게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제이다. 그런데 나의 신성한 의식을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그걸 스스로 모르는 것뿐이지.
나는 할머니에게 친절한 미소와 손 인사로 답례를 하고 물었다.
‘할머니, 죄송하지만 서문 금은 여인숙이 어디죠?’
‘아이고, 신부님이 왜 여인숙을 찾아요?’
‘아, 예. 제가 원래 대구 사람이 아닌데 일 때문에 잠깐 왔어요.’
‘신부님이 여인숙에 묵어요? 교구는 어쩌고?’
‘하하, 아뇨. 제가 묵는 게 아니고 우리 교구 신자님이 거기 계신데 뭐 좀 여쭤보려고요.’
‘아, 그렇구나. 요 아래로 쭉 내려가세요. 사거리 나오면 왼쪽, 좀 더 가면 금은방이라고 간판 많이 써 있는 곳 나오는데 거기 보면 있어요.’
‘고맙습니다, 자매님.’
‘아이고, 아닙니다. 그럼 어서 가 보세요, 신부님.’
나는 빙그레 웃으며 할머니 손을 잡고 잠시 기도를 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늙은 하느님의 종은 내 기도의 마지막을 따라 하며 황송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실거린다. 나는 늙은 양에게 손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그녀가 알려준 길을 따라 천천히 걷던 도중 나는 주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아, 하아, 나, 나은아!’
‘나, 나 이상한 걸 봐 버린 것 같아!’
‘보지 말아야 될 걸 본 것 같다고!’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고요? 내가 말했을 텐데요. 당신은 천국의 문을 본 것이라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전화하는 상대도 악마이겠군요.
나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오늘 밤은 피곤할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이게 신이 내게 주신 사명이니까.
나는 주머니를 뒤져보다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기절시킬 약품을 한 명분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런 어리석은 놈.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고 여유롭게 가져왔어야 했다. 나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구나.
나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 가방을 뒤졌다. 묵직한 십자가가 손에 잡힌다.
그래, 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셨던 십자가로 정화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영광된 것이다. 물론 주의 곁으로 갈 때 머리에 상처가 난 상태로 가겠지만 괜찮다, 내가 정성스럽게 정화해 최대한 가려줄 테니까.
나는 천천히 걸어 공중전화로 갔다. 공포에 질려 수화기를 붙잡고 있던 남자가 공중전화 속 유리 너머로 날 발견하고 수화기를 놓치며 뒷걸음질을 친다.
‘나, 나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오오,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당신이 본 건 이 세상에 볼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행위였단 말이야. 못 봤으면 다시 보여줄게.
나는 십자가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저, 정말입니다! 으! 으아! 안 돼!’
소리를 질렀지만 그뿐이다. 머리를 맞은 남자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엉덩이를 위로 쳐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고꾸라졌다.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모습이 저런 것을 주님이 보지 못해 다행이다. 저런 악마도 정화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나는 남자의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했다. 음, 아직 미약하지만 숨이 남아 있다. 들려 있던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내려준 후 등에 올라탔다. 목뼈를 끊기 위해서이다.
그때 조용한 골목길에 수화기 속 음성이 들려온다.
-여보! 여보 왜 그래? 거기 어디야!
-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사하면 말 좀 해봐!
나는 남자의 목을 잡으려다 공중전화 쪽으로 향했다. 가만히 수화기를 귀에 대니 잠시 말이 없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 목소리다.
-너 누구야.
-너 이 새끼. 나 경찰이다. 남편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인다.
음, 경찰이구나. 일이 조금 귀찮게 됐다. 본래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옳은 일은 그 일이 처음 발생했을 때 사람들의 부정을 받는 법이다. 그중에 법이 제일 귀찮다.
-너 누구냐고, 이 새끼야!
‘……어디까지 들었지?’
-뭐……?
‘아내인가?’
-그, 그래!
악마의 아내. 나는 고꾸라져 있는 남자를 힐끔 보았다. 남자의 바지 뒷주머니에 가죽 지갑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지갑을 여니 주민등록증이 보인다. 뒷면에 쓰여진 주소는 단 한 줄. 그런데 약간 문제가 생겼다. 여긴 대구인데 주소지가 서울이다.
또다시 수화기 너머 여인이 거친 말을 토해낸다.
-너, 너 또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역시 악마의 종자들은 입에 걸레를 물었구나. 나는 주민등록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북구 쌍문동 390-1589.’
-뭐……?
‘서울에 사시는군요, 자매님.’
-너, 너 이 새끼. 그거 어떻게 알았어!
‘기도하세요.’
-뭐라고?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처 돌았나, 빨리 내 남편 바꿔, 이 돌아이 새끼야!
나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에 귀에서 수화기를 떼고 인상을 썼다. 귀가 썩는 기분이 든다. 역시 악마 종자들은 입에도 악마가 산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바닥에 누운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은 힘든 하루가 되겠네요, 형제님. 하지만 괜찮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두 명의 형제, 자매님들이 합세하셨으니 어린 양이 홀로 걷는 길이 외롭지 않겠습니다.’
일단 목뼈를 끊고 주변 쓰레기 처리장이나 연탄 창고 같은 곳에 넣어둔 후에 서울에 다녀와서 십자가 언덕으로 이동해야 될 것 같다.
아쉽지만 서울에서 정화시킨 대상은 십자가 언덕까지 지고 오진 못할 거다.
나는 남자의 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때 머리에서 피를 흘리던 남자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은아…… 도, 도경아…….’
음? 누굴 찾는 걸까? 아, 아까 전화의 그 여자인가 보다. 도경이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들은 당신 손을 잡고 천국의 길로 같이 걸어가게 될 겁니다. 신의 이름으로 약속하죠.’
나는 남자의 뒷머리를 툭툭 쳐준 후 그대로 뒤로 잡아당겼다.
* * *
“과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나무 둥치를 붙잡고 굳어 있는 날 흔드는 울산서 형사가 보인다. 나는 내가 본 것들 때문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형사는 숨이 차는지 자기 무릎을 잡고 헐떡이며 말했다.
“이 근방을 쥐 잡듯이 뒤지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이 방향이 아닌 건 아닐까요? 지금 추가 지원 병력들이 건물 앞에 도착했다는데 일단 산 전체를 포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쪽이 아니라 저쪽 방향으로 가 보면 어떨까요?”
“…….”
“과장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내가 손을 대고 있는 나무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 방향이 맞습니다.”
“예?”
미카엘이 도주하며 이 나무를 만졌다. 이 나무는 사건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 미카엘이 만졌기 때문에 그의 기억의 잔재가 나무에 남은 것이다.
나는 나무 너머로 쭉 뻗은 산책로를 노려보다 말없이 몸을 날렸다. 홀로 남은 형사가 머리를 긁으며 인상을 쓴다.
“하, 나라도 다른 방향으로 가 봐야지.”
뒤에서 중얼거리는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지원 병력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기에 이 안에 있는 인력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대로 용의자가 있을 만한 곳을 유추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달려가며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놈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러 가는 장면을 직접 읽고 나니 온몸이 떨린다.
나는 달려가며 이를 악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된다. 나는 침착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읽었던 놈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 모습과 어머니 목소리를 지우고 놈이 했던 말과 생각만을 떠올렸다.
‘처음 죽인 게 고양이.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여든아홉 마리를 죽였다. 놈은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생명을 죽이며 얻은 호기심의 충족. 그것은 놀라우리만큼 단순한 이유였다. 죽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궁금해서.
나는 맨 처음 장진수 녀석을 수사할 때를 떠올렸다. 녀석도 멀쩡한 물고기를 죽여 단백질 표본 작업을 했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도 놈은 죽이는 행위를 정화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성격 장애 분류.
나는 지금껏 놈이 잘못된 종교관에 사로잡혀 살인을 하는 범죄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놈은 처음부터 인격적인 장애를 가진 놈이다. 종교를 가진 후 종교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해석해 살인 행위에 그럴싸한 이유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놈은 원래 살인마가 될 놈이었던 것이다.
나는 전력으로 달려나가며 계속 주변의 나무를 만졌다. 계속 읽히는 기억이 없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났을 때 우편에 있던 구부러진 나무에 팔을 걸고 원심력을 이용해 돌던 바로 그 순간 내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나무에 댄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나무 뒤쪽 야트막한 언덕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와, 구종식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