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4화
22. 악(惡)의 필름(4)
우웅, 우웅…….
지잉, 지이이잉…….
하필 상의 왼쪽 가슴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은 미칠 듯이 뛰는 내 심장을 두드리고 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마치 누군가 내 심장에 노크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누구일까?
이름만 확인하자는 생각으로 놈의 입에 총구를 넣은 채 핸드폰을 꺼낸 나는 액정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강혁 아저씨의 전화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 전화하셨을까? 나는 여전히 총구를 놈의 아가리에 쑤셔 박은 채로 천천히 전화를 들었다.
“아저씨…….”
참아보려 했지만 마구 떨리는 목소리. 아저씨는 경찰청 내부 긴급 보고를 통해 이놈을 추적 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전화했을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잡았냐?’라고 물어올 줄 알았던 아저씨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아저씨…….”
다시 한번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저씨를 불렀다. 금세라도 방아쇠를 당겨 버릴 것 같은 내 손가락이 떨려온다.
-도경아.
“아저씨…… 나…… 나 어떻게 해야 돼요?”
-…….
아저씨는 지금 이 상황을 모른다. 하지만 왜일까? 아저씨라면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사람을 죽이고 싶어졌어요.”
죽이고 싶을 만큼 밉고, 죽도록 패주고 싶을 만큼 짜증 난 인간은 있었다. 나는 보통 사람과 달리 악인들을 마주하는 형사이니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평소에 느끼던 감정과 차원이 다른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놈을…… 잡았습니다.”
-…….
“청으로 데려가면 이 새끼는 징역을 살 겁니다. 감옥 안에서도 성경책은 볼 수 있으니 놈은 평생 고행하는 수도사 행세를 하며 당당하게 살 겁니다. 저 그거 못 봅니다.”
-…….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평소의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그만해라, 그럼 상황이 커진다 따위의 말은 없다. 아저씨는 그저 내 말을 들어주고 계신다.
나는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입에 총구를 박고 있는 구종식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1989년에 죽은 내 아버지 시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있던 구종식의 눈에 놀라움이 스친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건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놈의 놀라는 모습에 살의가 한층 더해졌다.
“너 같은 하찮은 버러지 새끼가. 내 어머니는 산속의 축축한 흙 속에 몇십 년을 묻혀 있게 만들었고, 내 아버지는 아직도 저따위 더러운 약물 속을 헤엄치게 만들었다. 이제 네가 죽어야 될 이유를 알겠지?”
구종식은 눈을 뒤룩뒤룩 굴린다. 나와 자신이 얽혀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오늘 이 새끼 여기서 죽이고 감옥에 가겠습니다. 적어도 전 감옥에 가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겠지만 이놈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거든요.”
나는 방아쇠에 건 검지에 힘을 주었다. 바로 그때, 지금껏 아무 말도 없었던 아저씨 목소리가 들린다.
-도경아.
“…….”
-네가 병원에 입원한 장진수 인터뷰를 가는 날. 입원한 놈 패서 잘리면 은퇴 후에 나랑 같이 뭐 하자고 했었는지 기억하니?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식점. 아저씨는 내게 경찰에서 해고를 당하면 같이 분식점을 하자고 했었다.
-쏴라. 그래서 마음이 풀리면 그 새끼 죽여. 내가 대한민국 경찰청장이라고 해도 죄는 못 막아준다. 그놈 죽이고 감옥 가서 속죄하고 나와. 쌍문동 어딘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언제가 됐든 내가 살아 있을 때 나오기만 하면 난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넌 내 아들이니까.
넌 내 아들이니까.
아저씨의 한마디가 날 무너뜨렸다. 나는 팔에 힘이 빠지며 총구를 놈의 입에서 빼 축 늘어뜨렸다.
“콜록! 콜록!”
입에 총구가 쑤셔 박혀 있던 구종식이 허리를 숙이며 죽어라 기침을 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놈을 내려 보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총을 거꾸로 들고 놈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커헉!”
바닥에 죽은 개구리처럼 엎드려 기절한 구종식.
나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엎드려 기절한 놈을 뒤집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한 대, 두 대. 마음이 풀릴 때까지 치고 싶었지만 딱 다섯 대만 쳤다.
아버지 몫, 어머니 몫, 두 분을 찾아 헤매느라 인생을 다 쓰고 죽은 삼촌의 몫, 그리고 강혁 아저씨와 내 몫이다.
“후.”
다섯 대를 치고 멱살을 놓자, 기절해 있던 놈이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냈다.
“하아, 하아…… 아저씨.”
-…….
“구종식 체포했습니다.”
-……야 이 새끼야! 진짜 죽인 줄 알고 오줌 쌀 뻔했잖아!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아저씨의 평소 목소리를 들으니 몸이 휘청거릴 만큼 힘이 빠진다.
“하하…….”
-그래서, 구종식 그 새끼 사지는 멀쩡하냐? 뭐 혀를 자르거나, 팔 하나 뽑아버리거나 하진 않았지? 눈깔은 잘 붙어 있냐?
“……아니 제가 무슨 살인범도 아니고. 질문이 왜 그래요?”
-죽인다며! 죽인다며!
“아나, 아까는 죽이라고 하더니! 그렇게 쫄리는 양반이 아까는 왜 그랬어요?”
-안 죽일 거 아니까, 이놈아!
“뭘 안 죽일 걸 알아요? 진짜 죽일 뻔했는데!”
-내가 아는 도경이는 그럴 놈이 아니야!
“…….”
민망한 마음과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이상한 느낌이 동시에 든다. 나는 평소처럼 아저씨와 실랑이를 하다 빙긋 웃었다.
“아저씨.”
-…….
자기가 말해놓고 민망했는지 말이 없는 아저씨.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식집 이름은 뭘로 지어요?”
-뭐, 새끼야.
“설마 도경이네 분식집 같은 유치한 이름은 아니죠?”
-…….
“네?”
-그거…… 이상해?
“헐, 진짜 그렇게 지으려고 한 겁니까?”
-흠, 우리 동네에 비슷한 이름으로 지은 분식집 많던데.
“촌스럽지 않아요?”
-뭘 촌스러워, 새끼야. 부모가 자식 사랑해서 이름 넣고 짓는 건데. 간판 볼 때마다 책임감도 생기고 얼마나 좋아 보이냐? 난 좋기만 하더라.
“…….”
나는 나도 모르게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이런 아저씨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는 걸레가 되어 기절해 있는 구종식을 힐끔 보았다. 내가 이놈을 죽이지 않은 건 아저씨 때문이다. 감옥에 간 아들을 기다리며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며 기다릴 아저씨가 너무 불쌍할 것 같아서.
나는 쓰러진 놈의 머리 부근으로 가 쪼그리고 앉아 싸대기를 갈겼다.
“일어나, 이 새끼야.”
짝, 짝 소리가 나자 전화기 너머 아저씨가 고함을 지른다.
-이놈아! 그만 때려! 너 인마. 주먹이 얼마나 매운데. 계속 때리다 진짜 죽는다고!
“그냥 싸대기 때려서 깨우려고 그러는 건데요.”
-뭐? 그놈 그거 기절시켰어?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답했다.
“아, 뭐…….”
-몇 대나 때렸는데?
“많이 안 때렸습니다. 딱 다섯 대 때렸는데.”
-지랄! 뭔 놈이 다섯 대 맞고 기절을 해?
“했는데요, 여기.”
-어디 상한 곳은?
“어…… 입술 쥐어 터진 거 말고는…… 아, 광대에 멍도 좀 들어 보이고.”
-그 새끼 말고 너 말이다, 너.
“아, 저야 뭐. 안 맞았는데 멀쩡하죠.”
-알았다, 울산 경찰서에 이미 지시해 놨다. 네 GPS 추적해서 출동하라고. 주변 형사들이 금방 갈 거니 대기해. 그리고 구종식 그놈 털끝도 건드리지 마.
“기절한 건 깨워야 데리고 내려가죠. 여기 산인데.”
-시끄러! 들것에 싣고 내려가는 편이 차라리 안전해. 분명히 말했어, 손끝도 대지 마!
“하하, 알았어요.”
-끊지 마, 새끼야. 전화 끊고 무슨 짓 하려고. 형사들 도착하기 전까지 전화통 딱 붙들고 있어.
“저 남자랑 십 분 넘게 통화한 적 없는데요.”
-왜?
“여자도 아니고 왜 남자랑 길게 통화를 해요? 재수 없게.”
-뭐 인마? 내가 재수가 없어?
“아뇨, 아저씨 말고 남자가.”
-지랄, 헛소리하지 말고 전화 끊지 마.
나는 주변에 바윗돌을 하나 찾아 거기로 가 앉았다.
“아, 뭐. 그렇게 하죠.”
저 멀리서 GPS 신호를 따라 형사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바위 위로 올라서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사 중 한 명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 고함을 지르며 이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보인다.
“형사들 오네요. 이 근방에 있었으니 금방 오나 봅니다.”
-확실해?
“하하, 진짜라니까 그러시네.”
-너 인마. 진짜 사람 죽일 생각이었냐?
“글쎄요? 진짜 죽이고 싶기는 했어요.”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진짜 죽였을 거예요 라는 말은 삼켰다.
-그래, 이해한다. 나 같아도 죽이고 싶었겠지. 하지만 우리는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하고 싶어도 참아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지.
“예, 예. 압니다.”
-잔소리하는 거 아냐, 이놈아.
“원래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잔소리 안 하는 편이라고 말해요.”
-이 새끼가.
“하하.”
나는 바윗돌 위에 앉아 멀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울산 경찰 전체가 출동했는지 시커먼 밤하늘이 경찰차 사이렌 불빛으로 번쩍거리고 있다.
“아저씨.”
-왜?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요.”
-싱거운 새끼. 불렀으니 됐냐?
“아뇨, 이 호칭 말고.”
-뭐가 또 있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지금 무척 긴장한 상태이다. 난생처음 이 말을 입에 담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
“옆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말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말을 꺼냈는데 말해놓고 보니 더 후회된다.
“끄, 끊겠습니다.”
-야, 인마.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는 와중에 아저씨가 날 부른다.
“……예?”
-아버지가 뭐냐, 아버지가. 정 없게. 아빠라고 불러, 인마.
“…….”
-알았지? 아빠라고 부르는 거다? 끊어, 인마. 아 씨X, 낯 간지러워.
전화가 끊긴다. 나는 멍하게 전화를 바라보다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아빠라고 부르는 건 좀 보류할게요. 아무리 그래도 다 커서 그렇게 부르는 건 좀 민망해서.”
이제 가까운 곳까지 형사들이 뛰어 올라오고 있다. 나는 아직 기절한 구종식을 돌아본 뒤 형사들에게 말했다.
“구종식 체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