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5화
22. 악(惡)의 필름(5)
기다려 왔던 그리운 소식.
소리 없이 흩날리는 한밤의 눈처럼.
아버지가 내게 돌아왔다.
애처롭게 따사로운 지붕 끝 백열등에 여위어가며.
서글픈 눈빛으로 액체 속을 부유하는 내 아버지.
한겨울 하얀 입김에.
슬픈 마음이 얼어붙는다.
희미한 눈발이 날리고.
서울에서 급하게 내려온 목발 짚은 연주.
팔에 깁스를 하고 뛰어 들어오는 오진규.
장비를 잔뜩 등에 짊어진 관우는.
잃어진 기억의 조각 속 아버지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그저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내게.
아무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한다.
KCSI 대원들이 들이닥치고, 형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증거 훼손 방지에 대한 열변을 토하고 있는 건물 내부.
나는 아무도 없는 듯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이 그저 우두커니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 속 굵은 안경테도, 반듯한 공대생처럼 차려입었던 체크 무늬 셔츠와 면바지도 없는 벌거벗은 모습이었지만 나와 똑 닮은 눈매, 하얀 피부,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는 체형까지. 아버지는 나와 판박이였다.
어머니의 시신은 직접 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단순히 어머니가 죽어 백골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강혁 아저씨가 장례를 치러주어 예쁜 묘비 아래 묻혀 있는 무덤을 보았을 때도 나는 그리 슬프지 않았는데.
눈앞에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척 흔들린다.
“젠장! 시신들 눈꺼풀을 절개해 놨네. 그래서 눈을 못 감고 있는 거였어. 이 구역질 나는 새끼!”
조사를 진행 중인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아주 먼 곳에서 외치는 메아리같이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액체 속에 떠 있는 아버지에게 손을 뻗었다. 투명한 원통에 의해 내 손은 금세 막혀 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아버지 얼굴을 만지듯 원통을 만져본다.
연주가 절뚝거리며 다가와 말없이 뒤에서 날 안아준다.
나는 문득 참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안아보거나, 누군가에게 안겨본 적은 수녀님 외에 없다.
연주가 안아주고 나서야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강혁 아저씨도 한 번 안아드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가슴팍 앞에서 깍지를 낀 연주의 손을 만졌다.
“다리 불편한데 왜 왔어? 병원에서 쉬지.”
“…….”
나는 연주의 따뜻한 체온에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았다.
건물 입구에는 어느새 몰려든 기자들이 어떻게든 안쪽 상황을 찍으려 카메라를 높게 들어 올리고 초점도 맞지 않는 사진을 마구 찍어대며 폴리스 라인을 지키는 순경들과 실랑이 중이고, 워낙 많은 시신이 발견되어 그런지 KCSI 대원들이 백 명 가까이 출동했다.
나와 같이 구종식을 추적하던 울산 경찰서 형사들은 증거 훼손 방지를 위해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간 상황. 이곳에 있는 자 중에 KCSI 대원이 아닌 사람은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밖에 없다.
나는 깁스를 한 팔에 보호대를 차고 있는 오진규를 보며 슬프게 웃었다.
“인사하실래요?”
“…….”
“우리 아버지. 처음 보죠?”
“…….”
“나도 처음 봐요.”
“과장님…….”
오진규가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난 관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리 와. 인사드려.”
관우는 금세 울 것 같은 얼굴로 머뭇대며 다가온다. 난 관우 녀석의 목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제 동생 같은 녀석이에요.”
관우가 참혹한 아버지 시신을 보며 눈을 질끈 감은 후 허리를 깊숙하게 숙인다. 하지만 특별히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날 안고 있는 연주를 끌어와 말했다.
“여긴 제 여동생.”
연주는 여동생이란 말에 움찔하더니 날 놓고 아버지에게 허리를 숙인다. 남아 있던 오진규가 내 옆에 선 뒤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의 등을 만지며 아버지께 말했다.
“이쪽은 제 형님 같은 분이고.”
오진규 역시 몸을 살짝 떠는 것이 보인다. 나는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도 한 번 본 적 있을 텐데 강혁 아저씨라고. 그분이 엄마 시신 잘 찾아서 장례도 치러주고 묘비도 멋지게 만들어주셨어요.”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나만이 아무도 답하지 않는 독백을 이어나간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 것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목 과장님이 침중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소식을 듣고 바로 내려오신 모양이다.
“과장님.”
과장님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 내 옆에 서서 아버지께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잠시 묵념을 한 과장님이 날 지그시 바라보다 내 가슴팍을 주먹으로 강하게 때린다.
“자, 이제 경찰로 돌아올 시간이다.”
아프지 않았다. 살짝 뒤로 한 걸음 물러날 정도의 충격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기에 충분한 충격이다.
나는 한 걸음을 물러났다 다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에 목 과장님의 말 속에 숨은 수백 마디의 마음을 느꼈다.
과장님을 비롯한 내 팀원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한 뒤 다시 한번 슬픈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돌리며 내 본분으로 돌아왔다.
“증거 수집은 KCSI에 맡기고 우리는 신병을 확보한 구종식의 취조를 맡습니다. 목 과장님, 믿겠습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내리는 날 보며 씩 웃은 목 과장님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거냐? 잔말 말고 네 할 일 해.”
재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에 찬 말이지만 그 말을 한 이가 자격이 있는 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목 과장님은 충분히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분이다.
“믿겠습니다.”
나는 내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바로 청으로 복귀합니다. 울산 작전 종료.”
* * *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취조 모니터링 회의실.
장영훈 본부장과 강혁 청장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서 유리 너머에 있는 구종식을 노려보고 있다.
장영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가톨릭 신부라는 놈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강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신 몇 구 나왔어?”
“서른여덟 구입니다.”
“저 새끼 지금 몇 살이지?”
“70세입니다.”
“하 선배 시신까지 합치면 총 39명을 살해했다는 거네.”
“아니죠, 자기 부모 중 아버지와 여동생은 자살했고, 어머니는 본인이 죽인 것으로 보이니 마흔 명으로 봐야 됩니다.”
“후…… 마흔 명이라.”
“도경이 혼자 취조할 수 있을까요? 범죄심리학 교수님을 초빙하는 건 어떻습니까? 여죄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강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민하는 장영훈을 돌아보며 실소를 지었다.
“아직도 도경이가 어떤 놈인지 몰라서 하는 소린가?”
“…….”
“나보다 더 가까이에서 저 녀석을 지켜봤으면서 말이야.”
“음, 그렇군요.”
“믿고 맡겨. 그보다 기자들 쪽은 어떻게 됐어?”
“잠시 후에 기자회견 예정입니다.”
“잘 단도리 해, 괜히 확대해석하게 하지 말고. 도경이 말이 저놈이 가톨릭 신부인 것과 살인마인 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더군. 종교인이 되지 않았어도 원래 살인마가 되었을 놈이라 이거야. 괜히 기자들이 특정 종교에 혐오 여론을 만들어내지 않게 입조심해서 회견해, 알겠나?”
“예, 청장님.”
그때 유리문 너머로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도경의 모습이 보인다. 책상 위에 손을 지탱하고 몸을 앞으로 내민 강혁이 중얼거린다.
“증거 다 나왔고, 어차피 사형이다. 하지만 여죄를 남겨선 안 돼. 범죄 동기도 밝혀야 된다, 도경아.”
청장과 본부장 덕에 구석으로 밀려 있던 중대범죄 수사과 식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취조실을 주시한다.
같은 시각 취조실.
나는 문을 연 채로 가만히 서서 수갑을 차고 취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놈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싸대기를 한 대 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 자리에 앉아 있는 놈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제도 뭣도 아닌 그냥 살인마일 뿐이다.
나는 문을 닫은 후 서류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밥은 먹었나?”
“…….”
“여기 밥 시켜준다. 원하면 먹어.”
구종식이 날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경어를 써주시지요, 형제님.”
이놈을 체포할 때만 해도 저 형제님 소리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 않다. 아마도 내가 들고 온 저 서류 때문일 거다.
나는 빙긋 웃으며 서류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쳐서 놈에게 밀어 보냈다.
“읽어봐.”
구종식은 날 바라보다 수갑 찬 손을 내밀어 서류를 붙잡더니 눈살을 찌푸린다.
나는 씩 웃으며 몸을 내밀었다.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보낸 문서다. 넌 금일 부로 파면되었고, 세례명도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는 미카엘 신부가 아니라 그냥 구종식이다. 아직 내가 경어를 쓸 이유가 남아 있나?”
구종식은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눈을 감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나는 놈의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 나직하게 말했다.
“아직도 네가 저지른 일이 살인이 아닌 정화 작업이라고 생각하나?”
“…….”
“그럼 묻자,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네게 죽은 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
놈이 천천히 눈을 뜬다. 날 노려보던 놈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쓰레기였습니다. 창부, 포주, 건달 같은 것들이 거리에 넘쳐나길래 나는 그냥 거기를 조금 청소했을 뿐입니다.”
“청소를 하셨다? 누굴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하느님이 거길 청소하라고 하시던가?”
“…….”
“질문에 답해. 네 하느님이 거길 청소하라고 하셨나?”
“예.”
“확실히 말해, 청소하라고 시킨 게 하느님이 맞아?”
“…….”
“솔직히 말하자, 재미있었지?”
“뭐가 말입니까?”
“사냥하는 거 말이야.”
“…….”
나는 턱을 괴고 말했다.
“사람 사냥 재미없었어?”
놈이 날 노려보며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 유가족 입장에서 수사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자리에 앉아 나를 신문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 신경 쓰지 마. 네가 죽인 사람 중에 내 아버지가 있다는 점은 별 상관없어. 나 89년생이다. 네가 아버지를 죽일 때 나는 갓난아기였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어. 그러니 수사에 개인감정이 엮일 이유도 없다.”
“…….”
“그럼 아버지를 죽이고 난 뒤 서울에 올라간 이야기를 좀 해볼까?”
놈이 입을 닫는다. 이놈은 바보가 아니다. 그때 죽인 남자의 아내를 죽였다는 건 자신이 내 양 부모 모두를 죽였다는 뜻이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놈은 내 눈을 피하며 다른 곳을 바라본다.
나는 턱을 괸 채로 말했다.
“서울에 그 집을 찾아갔을 때, 전화를 받고 불안함을 느꼈던 여자는 미리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가 찾아오자 즉시 도주했고, 너는 그녀를 따라가며 사냥의 쾌감을 느꼈어, 그렇지?”
“…….”
“대구에서 남자를 살해할 때도 마찬가지야. 넌 도주한 그를 여인숙까지 추적하며 휘파람을 불었지. 여인숙 이름이 매직으로 쓰여진 슬리퍼를 발견한 후에 말이야.”
나의 말에 놈의 눈이 커지며 고개를 획 돌린다.
“지금 무슨…….”
나는 놈의 눈을 노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가? 너만 알고 있는 과거인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