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출판사 2
숙취에 시달리던 메디슨은 동생의 연락을 받자마자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 휴가 중인데?”
휴가 중에는 상식적으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족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후우.... 내가 벌인 일이니까.”
이사벨의 강요 때문에 계약을 했지만, 그 책임은 자신한테 있었다.
특히 동생이 쓴 소설이 영화화 된다는데 이런 거라도 도와줘야지.
개인적으로 재미도 있었으니까.
영화가 잘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사벨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로 향했다.
****
메디슨 누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부터, 집에만 오면 술을 달고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이성을 잃는다고 해야 할까?
시골 사람들이다보니 하나같이 술고래들이었고, 메디슨 누나 또한 그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고래가 되었다.
그만큼 숙취에 시달리지만.
‘전화한지 5분도 안 됐는데?’
짧은 시간에 화장하고 정장까지 차려입고 나타났다.
“영화화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나 나름대로 알아본 게 있어.”
메디슨은 로건이 준비한 서류를 읽은 뒤 내려놓았다.
“작품을 영화화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듣긴 했어.”
“대부분의 경우 득을 보긴 하지만, 제작사의 차이, 당시의 상황, 이슈, 연예인의 사고 등으로 인해 작품 전체가 욕을 먹는 경우도 있어.”
연예인이 마약이나 아동성매매를 한다던가, 제작사가 오직 수익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던가, 당시 나라의 이슈나 상황이 영화에 맞지 않는다면 작품에도 피해가 온다.
“그렇기에 제작사를 고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 우선 이 제작사는 피하라고 말하고 싶어.”
메디슨은 월드 미션 컴퍼니를 가리켰다.
세계 문화 컨텐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제작사를 가리키자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일단은 그 명성 때문에 서류에 적어 놓은 것이지, 그리 추천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왜요?”
“최근 WMC(월드 미션 컴퍼니)의 소문이 그리 좋진 않습니다. 쉽게 말해 투자처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게 좋겠죠.”
“투자... 아.”
“중국입니다.”
군대에 있더라도 뉴스는 본다.
물론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저녁점호 시간 전에 30분 동안 뉴스를 강제로 틀게 한다.
선임들은 물론 여자아이돌이 나오는 음악방송을 보고 싶어 했지만, FM으로 하는 간부가 오면 무조건 뉴스를 틀어야만 했다.
“뮬안이었죠?”
“예. 유명 중국 연예인을 마케팅으로 활용했지만, 중국 연예인이 홍콩경찰을 옹호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마자 주가가 떨어지고 영화도 망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WMC는 계속해서 중국투자를 받고 있죠. 그 영향이 고스란히 작품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투자를 받는 건 나쁘지 않아. 다만, ‘재미’를 위한 투자라면 몰라도 작품에 영향이 되는 투자는 좋지 않아.”
“거기에 WMC는 작품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많으니까요. 요즘에는 블랙워싱논란도 있고요.”
쉽게 말해 창작물의 주인공이 백인인데, 2차 창작물에선 흑인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백설공주에 대한 컨텐츠의 주인공을 흑인 여자로 캐스팅해서 논란 중이었다.
여기에 대한 찬반여론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흑인 여자가 캐스팅 된 걸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자’라고 몰아간 것이다.
주인공이 SNS에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해명은 커녕 속편까지 제작한다고 하니 백설공주 작품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팬들은 어이가 없었다.
“또 하나 있지. 페미니즘.”
“아.”
“요즘 한국에서 떠들썩하지?”
“뭐... 군대에 있으면 느끼지 않고 싶어도 느끼게 되죠.”
뭐. 나하곤 상관없는 이야기라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선임들이나 동기들의 불평불만은 옆에서 많이 듣게 들었었다.
미국도 만만치 않다고는 하는데, 여기는 주마다 법이 달라서 역시 나하곤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재미로 관객을 끌지 못하니,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끄는 거야. 물론 WMC 비전은 그게 아니더라도 성공한 작품도 많고 대표하는 작품도 많아. 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추천하지 않는 거야.”
“맞습니다.”
“그럼 둘이 가장 추천하는 제작사는요?”
“나는 여기.”
“저는 여깁니다.”
메디슨은 드림 피쳐스를, 로건은 울프 스튜디오를 가리켰다.
그러자 서로의 눈빛에 스파크가 일었고 마찰이 일어났다.
“이봐요! 울프 스튜디오라면 최근에 거기 대표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걸 모르세요? 그런 곳에 제 동생의 작품을 맡긴다니요!”
“혐의 건은 무죄판정을 받지 않았습니까! SNS 사기로 말이죠! 애초에 드림 피쳐스는 [사막의 전쟁]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막의 전쟁]에는 스트립클럽도 나오고, 암살도 나오고, 사람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는 잔인한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까? 드림 피쳐스에서 진행하면 그런 부분이 재미없게 묘사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울프 스튜디오는 아니죠! 이번 혐의가 무죄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사건사고가 항상 일어나잖아요!”
“그만큼 실력은 있지 않습니까? 드림 피쳐스는 B급 영화만 만들지 않았습니까? 설마 동생분이 무난한 영화나 만드는 제작사로 선택하라곤 하지 않겠죠?”
“.....”
둘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자, 나는 존재감 없이 조용히 앉아있는 에밀라한테 말했다.
“에밀라라고 하셨죠?”
“네. 안녕하세요. 작가님 팬이에요.”
“전화상으로 들었어요. 근데 에밀라는 어느 제작사가 괜찮을 것 같으세요?”
“저야 뭐 대표님 의견에 따라 울프 스튜디오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곤 있어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요?”
“개인적.....이면 여기죠.”
에밀라는 서류에서 푸른색 별이 하나 덩그러니 찍혀있는 제작사를 가리켰다.
“블루스타게이트”
“여긴.....”
“일단 총이 나온다 하면 여기죠.”
영화는 기획하는 감독이나 각본가에 따라 같은 작품이더라도 분위기나 내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각 제작사마다 비전이 있다고 해도, 감독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계속 부딪치게 된다.
그러면 영화 안에 그 충돌의 자국이 고스란히 남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지만 블루스타게이트의 비전은 너무 명확해서 감독과의 충돌이 그리 많지 않은 편으로 유명했다.
“제작사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비전이 명확해서 그런지, 감독도 자신들의 비전에 맞는 감독들만 선임하죠.”
블루스타게이트의 간판 영화는 [리워그]로,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전설적인 킬러가 이혼한 아내가 선물한 고양이를 죽인 마피아들한테 복수하는 이야기다.
[리워그]는 최근에 5편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블루스타게이트 대표가 작가님의 팬이라서 그런지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냈거든요.”
“그런데 저 둘은 왜 추천하지 않은 걸까요?”
“장르가 너무 한 쪽에 치우쳐 있으니까요. 남성향이 너무 강해요.”
“음.”
이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막의 전갈]내용 자체가 선정적이고, 폭력성도 짙다보니 차라리 한쪽 성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게 좋으리라.
“그래서 말인데요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혹시 다른 습작들도 있을까요?”
“있기는.... 하죠. 근데 남한테 보여줄 정도로 잘 적은 것도 아니라서요.”
“호, 혹시 볼 수 있을까요?”
에밀라는 꼭 보고 싶다는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 아니, 노트북 가지고 올 동안 저 둘 좀 말려주세요.”
“네. 그거야 당연하죠! 아! 그럼 제작사는...”
“블루스타게이트와 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 알고 있어주세요.”
저 둘이 싸우는 것부터 말려야겠다.
*****
미국인들한텐 소설과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지금은 중국한테 밀리긴 했지만, 북미 영화 관람객들 순위는 항상 세계 1위였다.
그 때문인지 누나와 로건이 영화 제작사를 두고 싸우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했고, 둘 다 내 소설을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블루스타게이트... 음. 좋습니다. 북미시장 9위 제작사긴 하지만 확실히 작가님 작품에 어울릴 듯 싶군요.”
“남성향이 강한 느낌을 만드는 제작사긴 하지만, 뭐. 여기라면 납득하지.”
그럴 거면서 왜 싸웠는지 원.
아무튼 간에 나는 내가 지금까지 적어놓았던 습작들을 가지고 밑으로 내려와 그 둘한테 보여주었다.
“호오?”
“흐음.”
그 둘은 내가 적은 습작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정확히는 내가 적은 습작들을 확인하기 전에 시놉시스를 먼저 확인했고, 그 후에 작품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습작을 읽는 그들의 눈빛은 놀라움으로 커지기도 했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이기도 했으며 화가 난 듯 샐쭉한 눈빛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며 내 작품을 감상했다.
“어린시절부터 적어온 것들이라 별로.....”
“아뇨아뇨. 이렇게 훌륭한 글들을 내버려두고 별로라니요? 이 정도면 정말 재밌는데요?”
내 자존심이 상하지 말라는 빈말이겠지.
“전부 남들한테 보여주기 창피한 글들이에요.”
“충분히 재밌는데요? 저희한테 맡겨주시면.....”
“아뇨. 이 글들은 책으로 출판하지 않겠습니다.”
“네에? 아니 왜요?”
“부끄러우니까요.”
더 이상은 보여주기 싫었다.
내 어린시절 부끄러운 치부를 그들한테 보여주는 것 같았기에, 서둘러 노트북을 잡아 당겨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니..... 정말 아까운데....”
에밀라는 정말로 아깝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단호했다.
“그럼 하다못해 한 작품이라도 출판하시는 게 어떠세요? [몬스터 세계]라고 적힌 작품이요.”
“그건.....”
새벽에 적기 시작했기 때문에 책으로 낼 정도로 진도가 나간 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로건도 에밀라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몬스터 세계] 세계관이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요즘 히어로물이 인기인데 [몬스터 세계]에 나온 주인공을 히어로로 적는다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흐음......”
히어로물이라.
그거 괜찮은데?
“하프 몬스터. 일본 만화나 한국 웹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 반요? 그런 느낌인 것 같은데 재밌더군요. 반요들을 히어로로 하고 내용을 전개하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일단....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예. 작가님은 모르시는 것 같은데, 회사를 통해 계속해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요. 유명 감독님들도 연락이 오는 상황이라 요즘 상황이 난처합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바쁜데 우리집까지 온 건가.
뭔가 미안하네.
“아. 만일 영화화가 확정... 아니 이미 확정이죠. 영화화가 진행되면 SNS로 활동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SNS?”
“미국에서 작가들의 인지도는 연예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팬덤 또한 어마어마하죠. 특히 작가님은 지금까지 군대에 계시느라 그 정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 많은 독자분들이 궁금해 합니다. 뿐만 아니라 라울 데이비스님한테도 SNS로 감사를 표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라울 데이비스가 내 소설을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 수준까지 오진 않았겠지.
“라울 데이비스가 이번 영화에 출연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신경써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희 회사에 가장 많은 연락을 주시는 분이 라울이니까요. 하하하하하!”
로건과 에밀라는 웃으며 집을 떠났다.
‘SNS라.....’
해본 적은 있었다.
일자리를 찾기 편해서 과거에 몇 번 사용했었다.
‘삭제하고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나?’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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