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몬스터 세계
둘이 돌아간 뒤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핸드폰 좀 바꿔.”
“그래야지.”
21개월이라는 시간이면 새로운 핸드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옛날 스마트폰이라 그런지 전송 속도나 인터넷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렸다.
“일자리 찾아볼 때나 사용했던 SNS라 그런지 올린 게 하나도 없네.”
“내가 대신 관리해줄까?”
“누나가? 휴가 끝나면 바쁘잖아.”
“이 정도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요즘 SNS로 사고치는 연예인들이 많아서 변호사한테 관리를 맡기는 경우도 많거든.”
“음..... 아니, 일단은 내가 직접 관리할래.”
나는 스마트폰으로 내 책을 사진 찍은 다음 SNS에 올렸다.
“그게 끝?”
“뭘 또 적어야해?”
“아니, 뭐..... 드래곤 원이라던가, 아니면 영화화 확정이라던가..... 에이! 그냥 내놔봐!”
누나는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강제로 뺏어간 뒤 수정을 눌러 내용을 바꾸기 시작했다.
“뭐하게?”
“잘 봐! SNS는 이렇게 하는 거야!”
잠시 손가락을 꼼지락 움직이더니 나한테 수정된 내용을 보여주었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막의 전갈]로 인사드리는 Dragon one입니다.
영화화가 확정되었습니다!』
“끝?”
“그럼 뭘 더 바래?”
“아니, 뭐. 대단한 거라도 적나 했지.”
“유명인사가 되면 굳이 많은 걸 적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튼 하루에 한 번...은 무리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사진찍어서 올리도록 해.”
“근데 누나.”
“왜?”
“원래 이렇게 알람이 많이 와?”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
“뭐야 이거.... 무서워.”
****
-뿌드득! 뿌득!
손가락 관절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스트레칭을 한 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돈도 많이 생겼으니 일단 데스크탑도 하나 사볼까. 노트북으로 글 쓰려니 손가락이 아프네.”
일을 하러 갈 때 들고 다니기 편하라고 노트북을 사주신 거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으니 손가락 피로가 덜한 데스크탑으로 바꾸는 게 좋겠지.
“그나저나 [몬스터 세계]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는데?”
그냥 손 좀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적은 글이 그렇게나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의 세계관을 히어로 세계관으로라..... 흠.”
히어로물.
지금까지 글을 적으면서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히어로물에 관한 소설은 많았지만, 성공한 소설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였음에도 소설로는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뜨고 있는 영화들이 전부 히어로 소설이었지?’
아마 그 때문에 [몬스터 세계]를 적어달라고 한 것이겠지.
“제목은 나중에 다시 짓고, 우선 내용을 조금 더 수정해보자.”
내용을 수정하는 와중에 가장 걸리는 것이 있었다.
주인공인 에나의 인종이었다.
“구미호 하면 창백한 이미지가 있어서 백인이 좋기는 한데..... 아! 부작용으로 하자.”
인간의 몸으로 몬스터의 힘을 받아들인 대가로, 몸에 몬스터의 흔적이 만들어지는 걸로 하면 창백해진다는 설정도 납득시킬 수 있었다.
‘히어로는 성장하는 거니까. 허리에 꼬리 9개 나타났다는 부분도 수정하자.’
여우가 꼬리 하나를 생성할 때마다 힘이 강해지는 스토리로 가는 게 좋겠지.
“시작해볼까?”
*****
에나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남성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남성은 서서히 마을이 보이자 가방에서 모자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이거 써. 꼬리는 허리춤에 두르고.’
머리에 난 여우 귀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썼고, 꼬리는 허리춤에 감은 다음 폭이 넓은 옷을 입어 어색함이 없도록 했다.
‘내 조상 중에 몬스터가 있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이야?’
아까 들었던 말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남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단 말이야. 그 때문인지 이민해 오는 와중에 몬스터까지 데리고 왔어. 인간으로 변한 몬스터가 인간과 결혼하여 낳은 결과물이 바로 너희란 말이지.’
‘그럼 내 부모님 중에 몬스터가 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니?’
‘동양의 말로 격세유전, 영어론 atavism이라고 하지? 너희 부모 쪽이 몬스터일 수도 있고 혹은 너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몬스터일 수도 있다는 거야.’
‘할머니.....가?’
‘왜? 뭔가 걸리는 게 있어?’
‘.....내 몸에 있는 몬스터가 뭔지 알아?’
‘여우 꼬리와 귀니까 동양 쪽에서 온 요괴인 것만 알겠네. 모습 전체가 바뀌지 않고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구미호일려나?’
‘구미호?’
‘몰라?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몬스터잖아?’
도시로 들어온 나는 더욱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다행히 늦은 저녁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다지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남성은 [Monster Bar]라 적힌 곳으로 향했다.
‘내 손 잡아. 절대 손을 놓으면 안 돼.’
남성은 내 손을 꽉 붙잡고 문안으로 들어갔다.
‘윽’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이 저절로 감겼지만, 이내 눈을 뜨고 보니 그 앞엔 놀라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도저히 인류가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곳은 마치 SF영화에서나 볼법한 공간이었다.
‘여, 여긴......?’
‘너 같은 녀석들이 있는 곳 <브레이셔(veracious)>. 진실된 공간이야.’
*****
나는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내 방에는 오직 키보드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음에도 내 시선은 오직 노트북을 향해 있었다.
-밥 먹어!
키보드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네, 네?”
-밥 먹으라고!
나는 그 말에 창문을 바라봤다.
어두워진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네네! 갈게요!”
나는 서둘러 지금까지 적은 글을 저장했다.
‘방금 뭐지?’
하루 한 시간씩 글을 쓸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새벽과 오후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눈치채지 못할만큼 마치 기계처럼 손가락만 움직였다.
‘피곤하네.’
엄마가 깨워주지 않았더라면 글을 멈추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끄응.”
의자에서 일어나니 현기증이 돌았다.
눈앞이 뿌얘졌지만 이내 본래대로 돌아오며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운동 부족인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스트레칭을 한 뒤 주방으로 내려갔다.
***
그로부터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글만 썼다.
아빠와 엄마도 그런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서 대충 반찬을 꺼내 먹던가, 식빵으로 끼니를 때울 뿐이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거지, 밥을 먹는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내 뇌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노트북 앞으로 나를 자석처럼 이끌었다.
“얌마!”
내 방으로 메디슨이 문을 쾅 차고 들어올 때까지도 나는 정신이 멍한 상태로 글을 쓰고 있었다.
“어? 어?”
“이 미친놈아! 벌써 3일째야! 대체 뭐하는 거야!”
메디슨의 호통에 나는 노트북에 켜져 있는 날짜를 바라보았다.
후끈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노트북은 내가 3일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글만 썼음을 알려주었다.
“삼촌하고 이모가 걱정하시잖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끄응.”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는 말에 나는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
-풀썩.
“.....어?”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몸에 에너지를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근육이 내 몸을 잡아주지 못했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머리가 깨질 듯 어지러웠다.
“제, 제임슨?”
내가 갑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당황한 메디슨이 서둘러 다가왔다.
“뭐, 뭐야? 왜 그래?”
“아니 잠깐.... 배고파 죽을 것 같아.”
“......”
-빠악!
메디슨은 정신 차리라는 듯 뒤통수를 때렸다.
“으이그! 이 화상아! 난 내일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골든 문 게이트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해 있다 보니 메디슨은 내일 비행기로 출발하여야만 했다.
“으으.... 골 울린다. 소리 그만 질러.”
“으이그!”
잠깐 시간이 지나자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밥? 저녁부터?”
“점심이야! 커튼 좀 열고 살아!”
햇빛이 방해돼서 암막 커튼을 쳐놨더니 시간개념이 사라졌다.
“사주는 거야?”
“돈도 많은 놈이... 뭐 먹고 싶은데?”
“옛날 제임슨이 어디 가겠어? 프라이드치킨하고 바비큐 립하고 브리스킷하고.... 맥주!”
“.....에휴. 대충 씻고 내려와. 사줄 테니까.”
“아. 그전에 원고 좀 보내자.”
“벌써 다 적었어?”
“응. 한 권 분량은 나온 것 같아.”
보통 작가가 한 권 정도의 분량을 적으려면 한 달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1권 분량이 끝이 났다.
****
에밀라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띠링!
갑자기 모니터 우측 하단에 새 메일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드래곤 원?’
갑자기 왜 메일을 보낸 거지?
필요한 게 있다거나 질문이 있으면 전화나 문자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메일이라니?
“[몬스터 세계]?”
이거라면 작가님이 적었던 습작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아닌가?
에밀라는 일단 제임스가 보낸 문서를 열어 확인해봤다.
‘이걸.... 3일 만에?’
처음에 갔을 때는 기껏해야 몇 편 적혀있지도 않았다.
지금 보낸 양은 소설 한 권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숨겨두셨던 건 아닌 것 같고.....’
설마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글을 쓰신 건가?
에밀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이 흐를 때까지 에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에밀라?”
“......”
“에밀라?”
“네, 네? 아..... 팀장님?”
“뭘 보길래 부르는 것도 못 들어?”
팀장은 에밀라가 보고 있던 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몬스터 세계]인가. 제목이 유치하네.”
“그래도 내용은 재밌어요! 점심시간부터 읽었는데 시간 가는 줄..... 근데 다들 어디갔어요?”
“퇴근시간이니까 전부 퇴근했지.”
“.....네?”
다들 에밀라가 집중하는 모습에 말도 걸지 못하고 조용히 퇴근한 것이다.
“그렇게 재밌어?”
“재미도 재미지만.... 마치 영혼이 홀린 듯한 느낌이에요.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어요.”
“그 정도야?”
“네. 5시간 가까이 읽었다는 건데, 여운이 너무 강하네요. 아직도 몸이 으슬으슬해요.”
“흐음.”
팀장은 커피를 홀짝이며 [몬스터 세계]라는 작품을 바라보았다.
“대표님한테 바로 전달하자.”
“바로요? 수정이나 그런 건.....”
“아니, 드래곤 원 작가의 작품이 오면 바로 올려 보내라고 하셨거든, 거기에 내용은 뭐 에밀라가 확인했으니 문제없겠지. 그래서 어때? 팔릴 것 같아?”
“네. 미친 듯이요.”
“그럼 다행이고. 원고 대표님한테 보내고 너도 얼른 퇴근해.”
“팀장님은요?”
“나도 퇴근할 거야. 너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있던 거지.”
상사를 기다리게 했다는 사실에 뜨끔한 에밀라는 서둘러 퇴근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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