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팬카페 2
월리는 컴퓨터에 대해 나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편이라 덕분에 Best buy에서 금세 데스크탑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왕 구매하는 김에 마우스와 마음에 드는 키보드 그리고 모니터도 한 번에 구매했다.
“캐서린은 아직도 저러네.”
우리가 Best buy에 갔다 올 동안 캐서린은 픽업 트럭 뒷좌석에 실연에 빠진 듯 누워있었다.
“.....마음의 상처가 심한가봐. 동경하던 사람이 내 친구일 줄 알았겠냐?”
“그 정도야?”
“말했잖아? 너를 동경해서 전공까지 바꿨다고. 그것 때문에 가족하고 대판 싸웠는데 저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아니아니..... 에휴.”
나는 캐서린이 떨어트린 책을 들어 대충 Dragon two라고 휘갈겼다.
“드래곤 2? 뭔데 그거?”
“아니 그냥. 내가 드래곤 원이니까 팬들은 내 다음이라는 의미로 two라고 적은 거야.”
“그게 사인이냐?”
“응.”
“......존나 구려”
나는 아직까지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캐서린한테 책을 쥐여줬다.
“원래 부모님한테 1호 사인을 주려고 했는데.... 그냥 너 가져.”
“......”
그제야 캐서린은 반응을 보이며 누운 상태로 책을 꼬옥 품에 끌어안았다.
“.....아무래도 오늘 술 마시긴 글렀다.”
“그러게.”
내가 작가라는 게 그렇게까지 충격이었나?
****
고작 한 작품으로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아졌다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대체 어떻게 내 소설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월리가 말했던 팬카페를 찾아보았다.
“이름 수준 하고는.”
제목을 잘 못 짓는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나인 드래곤’이라 적힌 팬카페를 보자 오히려 내 작명실력에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감상문? 대화 속 의미? 팬 일러? 만화?”
팬카페에 들어가 보니 그곳엔 내 책을 배경으로 한 독후감이나, 주인공 묘사에 대한 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팬카페 회원 수는 그리 많지는 않네.’
내 예상보다 적은 것이지 그래도 상당히 많은 수준이었지만, 그걸 알리 없는 나는 카페 가입버튼을 눌렀다.
“......”
[1. 요원 에단이 아내의 비밀을 듣고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지 적으시오.]
[2. 에단이 요원직을 내려놓은 배경을 적으시오.]
[3. 테러조직이 납치한 아시아 여성들 중 에단을 도와주었던 여자의 심정을 적으시오.]
가입 조건이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거기에 심사가입이라서 가입하려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이나 걸렸다.
“가입이 없더라도 볼 수 있는 글이 있네.”
가입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글이 있었고, 가입이 필수인 글도 있었다.
등급이 높은 사람들이 적은 글은 가입한 사람들만 확인할 수 있는 구조인 듯 싶었다.
나는 가입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내용을 확인해봤다.
「<제목 : 여동생을 등장시킨 이유>
아내의 여동생이 찾아왔을 때 에단은 노래를 듣고 있었어요.
평소 심적으로 우울할 때 에단은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고 하는 걸 봐선, 당시 찾아온 깊은 고독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손끝을 스치며 떨어진 와인 잔이 피처럼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지만 미혹의 노래에 잠들어 있는 나는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 과연 복수가 정당한 방법일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에단은 아내를 죽인 원수를 죽이고 싶었지만, 정작 아내는 이 심연의 절망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에단을 구하고 싶었을 것 같았습니다.
고독한 늑대처럼 숨죽이고 있는 지친 전갈(에단)을 죽은 아내는 자신의 비밀을 밝히더라도 구출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게 뭔 소리지.”
그러니까.
아내의 복수로 인해 지친 에단한테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여동생이 찾아왔다는 내용으로 적었다는 건가?
밑에 댓글들을 살펴봤다.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네요. 저는 아내를 죽인 테러 집단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해서 더욱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미혹의 노래라는 부분에서 어째서 ‘미혹’이라는 말이 들어가는지 생각했습니다. 47p에 보면 에단은 요원으로서 완벽해지기 위해 노래조차도 듣지 않는다고 적혀있었거든요.
ㄴ아. 저도 이 글을 보고 47p를 보니 이해가 되네요.
ㄴ완벽한 작전 수행을 위해 항상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해서 감정의 변화가 심한 노래를 듣지 않는다고 적혀있네요.
ㄴ요원을 그만두고 심적으로 우울할 때마다 잔잔한 노래를 듣는데, 하필 그날만 자신의 감정을 심연으로 내려앉을 정도로 매혹적인 노래를 들어서 왜 그런가 했는데.... 너무 가슴 아파요.
-작가님이 이걸 의도적으로 숨겨둔 걸까요?
ㄴ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ㄴ저도요. 이 소설에 숨겨진 의미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더 재밌지만요.
ㄴ평범하게 읽어도 재밌는데 이렇게 숨겨진 의도를 찾은 다음 읽으니 또 다른 기분이 드네요.
“.....”
나는 그 다음 글을 확인하였다.
「<제목 : 2부 소식 없나요?>
카페 활동하면서 색다른 내용을 읽게 되서 좋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2부가 읽고 싶어졌습니다.
마지막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살아있다는 사람도 있는데 뭐든 상관없습니다.
죽었다면 아내의 외전 이야기라도....」
-작가님이 수입이 없어서 군대에 갔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라울님이 발견하기 전에는 서점 구석에도 끼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 파병갔다고 전사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ㄴ아닙니다. 분명 살아있습니다!
ㄴ님 마음 속에서?
ㄴ어디 사냐?
이건 내가 SNS에 내 소식을 올리기 전이었다.
“뭐라도 올려야 하나?”
우선 가입하는데 심사기간이 있다 보니 바로 내 소식을 올리진 못하리라.
“SNS에 감사하다고 올리자.”
카페 화면을 캡처하고 SNS에 캡처한 사진을 올려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여러분의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제 두 번째 작품이 현재 출판사에 있습니다.』
“이렇게만 올리면 되겠지.”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글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
*****
아침이 밝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어제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좋은아침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네. 남편이 베이컨하고 베이글을.... 아! 그보다요! 어제 보내주신 [몬스터 세계] 확인해서 연락드렸어요!
“아. 어떠셨나요?”
-최고였어요!
“휴우..... 다행이네요.”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바로 계약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 상관은 없는데.... 다시 이곳으로 오시기 힘드시지 않으시겠어요?”
-요즘은 전자계약서가 있어서 괜찮아요. 누나분께 보내드리면 될까요?
“네. 저하고 누나한테 똑같은 내용의 계약서를 보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아 참! 선인세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인세, 다른 말로 하자면 빚인생을 말한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지금은 굳이 받고 싶지 않았다.
-아! 그리고 작가님, 블루스타게이트 대표가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를요? 왜요?”
-감독님과 각본팀과 만나서 영화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디로 가야하는데요?”
-샌타모니카요. 물론 비행기편은 저희가 잡아드릴게요.
“샌타모니카가... 캘리포니아주였죠? 그럼 메이슨 누나도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니까 그때 약속 잡아서 계약도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러시면 되겠네요! 그럼 약속시간은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저야 남는 게 시간이니까 내일 당장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럼 내일로 비행기 예약 잡아드릴게요! 참! [몬스터 세계] 제목 말인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바꿔도 될까요?
“네. 바꿔주세요. 제발요.”
제목만 잘 지어도 주목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목이나 이름을 짓는 센스는 부족하다보니 이런 부분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 그때였다.
-참! 작가님! SNS에 혹시 글 올리셨나요?
“네. 게시글을 많이 올리진 않았지만요.”
-아 어쩐지. 갑자기 출판사 홈페이지가 마비됐거든요. 왜 그랬나 했는데 작가님이 SNS에 올린 게시글 때문이었구나.... 작가님, 그러면 혹시 Q&A.. 해보실 생각 있으세요?
“갑자기요?”
-네. 작가님도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작가님 팬덤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팬들도 작가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 간단한 Q&A로 팬들하고 소통하는 게 어떤가 해서요.
“Q&A?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SNS에서 라이브 방송하기가 있는데 거기서 질문을 받으셔서 해도 되고요. 아니면 저희가 따로 적절한 답변을 찾아드려도 되고요. 어떻게 할까요?
“방송이라...”
-방송이긴 하지만 얼굴은 비치지 않아도 되거든요? 저희가 찾은 적절한 답변보다는 방송에서 질문 받은 내용을 컴퓨터로 적어서 답변하시는 게 오히려 진정성이 있어서 좋을 것 같긴 해요.
“그게 좋긴 하겠네요. 진지하게 생각해볼게요.”
-어떻게 하시는지는 아시나요?
“동생한테 물어보면 되겠죠.”
방송이라고 얼굴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내가 적은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등록된 것도 아니고, 다음 작품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와중에 얼굴까지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넵!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네. 수고하세요.”
나는 에밀라와의 전화를 끊고 방송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한 번쯤 소통해보고 싶긴 한데...’
-똑똑!
-밥 먹어라!
“네에.”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야겠다.
****
-띵동!
밥을 다 먹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이른 아침이라 찾아 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빠는 일을 하러 가셨고, 엄마도 고모부 집에 가서 고모와 대화하신다고 했기 때문에 집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누구세요?”
-오빠! 나야!
“이사벨?”
마침 이사벨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다.
가서 문을 열어주니 문 앞엔 이사벨뿐만 아니라 어제 침울해 있었던 캐서린 또한 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캐서린? 학교 갈 시간 아니야?”
“입학도 안했어. GED로 대학갈 거야.”
“난 방학이야!”
GED는 미국의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둘 다 어쩐 일이야?”
“나는.....”
“오빠 집 앞에서 캐서린 언니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길래 내가 데려왔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안절부절....? 아.”
존경하던 작가가 나라는 걸 안 뒤부터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 하룻밤 사이에 정신 차린 것 같았다.
“일단 들어와.”
나는 그 둘을 집에 들어오게 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난 오빠가 적은 습작 읽으러 온 건데?”
“너 말고. 캐서린. 무슨 용건이 있어서 온 거잖아?”
소중한 듯 종이봉투를 끌어안고 있는 캐서린이 보였다.
캐서린은 잠시 망설이더니 끌어안고 있던 종이봉투를 나한테 내밀었다.
“내, 내 글 품평해줘!”
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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