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8화 (8/216)

8화 품평

캐서린은 종이봉투를 내민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나한테 품평을 해달라고? 네 작품을?”

“응... 해줘.”

“흐음.”

일단은 캐서린이 내민 종이봉투를 받아 들었다.

‘나한테 품평이라.....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따라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항상 생각한다.

‘난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간이 아니니까.’

수많은 습작을 적었음에도 [사막의 전갈]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들한테 보여주기 부끄러운 치부나 다름없었다.

‘우연찮게 인기가 많아진 것뿐이야.’

내 두 번째 작품 [몬스터 세계]가 [사막의 전갈]에 필적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 달리 생각해 보겠지만, 아직은 내가 글에 재능이 있다고 과신하고 싶지 않았다.

“난 누구 글을 품평해줄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야.”

내 말에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이사벨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응.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 없어. 두 번째 작품이 성공한다면 모를까.”

두 번째 작품이라는 말에 부끄러워하던 캐서린과 어이없어 하던 이사벨 눈동자가 바뀌었다.

“두 번째 작품? 그러고 보니까 SNS에 올렸지? 나 보고 싶어!”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싫어. 정정당당하게 돈 내고 봐.”

“히잉.....”

“치사해.”

나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캐서린이 내민 종이봉투를 열었다.

“난 네가 동경하던 작가긴 하지만 신인이나 다름없어. 그런데도 내가 품평해줬으면 좋겠어?”

고수가 하는 말은 충고지만, 초보가 충고하면 꼰대가 된다.

작가지망생이라면 내가 비평하는 것보다 더 좋은 작가한테 쓴소리를 듣는 게 덜 충격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응. 해줘. 애초에 미국 내에서 300만부나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를 적은 작가가 글을 못 쓴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캐서린의 생각은 달랐다.

어린 시절 봐왔기에 더욱 잘 알고 있는 오빠 친구다.

평소에는 길가에 보이는 쓰레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오빠 친구였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린 명성도 없는 인간이, ‘운’도 있긴 했지만, 300만 부에 달하는 작품을 적었다는 건 실력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일 테니까.

“네 생각이 그렇다면 뭐..... 할 것도 없으니까.”

일단 [몬스터 세계]가 책으로 출판되기 전까지는 쉴 생각이다.

영화화 같이 복잡한 것들도 있으니까.

나는 종이봉투를 열어 캐서린이 적은 원고지를 꺼냈다.

“손으로 적었다라.....”

개인적으로 키보드로 적은 소설보단 손으로 적은 소설이 더 재밌다고 느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손으로 적은 글씨에는 노력이 보이기에 작가의 마음을 더욱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할까?

“흠.”

나는 우선 제목부터 살폈다.

[장미 가꾸기]라는 왠지 모르게 야릇한 느낌이 드는 제목이었다.

“장르는?”

“로맨스.”

“......너 남친한테 차였다고 하지 않았냐?”

“닥치고 얼른 품평해.”

싸늘한 시선에 나는 서둘러 원고지로 시선을 돌렸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듣긴 했지만 제목만으론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보통 시놉시스를 적은 다음에 소설을 쓰는데, 너는 없어?”

“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걸 좋아해서.....”

장단점이 있다.

나처럼 시놉시스를 적음 다음에 글을 쓰면 방향성이 생기다보니 무리 없이 글을 적을 수 있다.

다만, 내용을 수정해야 하면 시놉시스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캐서린처럼 시놉시스를 적지 않고 번뜩일 때마다 글을 적으면 그에 대한 세계관 확장이라던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다양한 재미를 줄 수도 있다.

다만, 마구 던져놓은 떡밥회수가 힘들 수 있고, 무리한 세계관 확장에 팬들이 질려할 수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뿐, 실제로 어떤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분량은 한 권도 안 되네? 반 권 정도인가?”

“으, 응! 그러니까..... 내, 내용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봐줬으면 해.”

‘내용이라......’

-펄럭.

캐서린의 말을 참고하며 원고지를 읽어 내려갔다.

“흠.”

-스륵.

내가 원고를 넘길 때마다 캐서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손에 들려있는 원고지를 바라봤다.

‘혹시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너무 소설을 과감하게 적었나?’

‘그, 그래도 친숙한 사람이니까 좋게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아니야! 작가지망생이니까 오히려 혹독한 비평이 더 좋아!’

‘그, 그래도 재밌다는 말을 듣고 싶어.’

머릿속에 마치 천사와 악마가 있는 것마냥 수십 가지의 생각이 맴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캐서린.”

“......”

“캐서린?”

“으, 응?”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니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제임스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눈치챘음에도 무시하는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원고지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부분.”

나는 원고지에 적혀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에라의 속가슴이 내 마음을 적시었다.]라는 부분 말이야. 너 이거 로멘스라고 하지 않았냐?”

“로, 로맨스는 맞잖아!”

“맞기는 한데, 이거..... 아니다.”

일단 로맨스 소설은 맞는 듯한데, 로맨스라고 보기에는 너무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다.

“너.... 이거 픽션이지? 그렇지?”

“시끄러! 얼른 읽어보라고!”

“.....알았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쭈글.

캐서린의 말에 나는 나머지 원고도 마저 읽었다.

30분 정도가 흐르자, 원고지를 거실테이블에 올려놓고 잠시 내용을 되새겼다.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마음을 확 끄는 내용도 없었다.

“소설이 아닌 야설....같은 느낌이네.”

무엇보다 너무 자극적이었다.

“아니, 야설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해.”

자극적인 장면을 살리는 것도 아니었다.

로맨스 소설과 야설의 중간이라고 해야 할까?

“너 이거 정말 픽션이지? 정말로 수필 아니지?”

“다, 닥치고 어떤지나 말해!”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진 캐서린을 보자 어제 월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 때문에 작가지망생이 됐다고 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야 현실을 알 수 있겠지.

“우선 완결이 나지 않아서 내가 느낀 대로만 말해줄게.”

꿀꺽.

캐서린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얼굴을 피하지 않고 마주봤다.

“말했듯이 로맨스 같기도 하면서 야설 같기도 해. 내용 자체는 볼 만 하다고 느꼈지만 한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아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야.”

나는 원고지를 다시 들어 몇 가지 내용을 보여주었다.

“[에나의 숨결이 목덜미를 타고 허리까지 내려온다.....] 하지만 여기서 내용을 더 진행하지 않았지? 여기도, 여기도.”

글 자체는 자극적이지만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적당한 선을 유지한 채 넘지 않았다.

김빠지는 느낌을 독자들도 느낄 게 분명했다.

“제목은 나보다 잘 지었네.”

[장미 가꾸기] 말 그대로 소설 속에 있는 에나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길들이는 내용이었다.

“어째서 에나가 주인공이 신경 쓰이는지, 어째서 주인공은 에나를 길들이고 싶은지도 명확하지 않아.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시점이라 추후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글이 따분해서 궁금증보다는 지겨움이 생길 거야.”

“......”

내 혹평에 캐서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애정하던 첫 작품이 혹평 당했으니 그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신선했어.”

빈말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봤을 때 캐서린의 소설은 판도라의 상자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학창시절의 넘지 못할 사랑이야기가 적혀있었으니 말이다.

‘보니까 영감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하고.....’

나라면 이렇게 적지 않을 텐데, 나라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을 텐데.

글을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으.....”

혹평을 듣고 난 뒤에 칭찬을 들었지만, 그 칭찬조차도 혹평을 상쇄시켜줄 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캐서린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훌쩍.

가려진 얼굴 사이로 작게 들려오는 울음을 참는 소리.

나는 그녀의 모습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고민하다가 이내 아까 떠올랐던 영감을 말했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써보는 게 어때?”

“.....우으?”

캐서린은 훌쩍이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주인공 에나와 주인공 로얀의 상황을 바꾸는 거야.”

“바.....꿔?”

“바꾼다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고, 에나는 애초부터 로얀한테 흥미가 없지만 클레스가 같아서 말을 주고받고 하다 보니 서서히 사랑이 빠지는 것처럼 말이야.”

“.....”

“로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하지만 로얀의 행동에 에나는 점점 몰입해서 스스로가 길들여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지. 즉, 로얀의 상황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에나의 상황으로 글을 쓰는 거야.”

“......어려워.”

“원래 사랑은 어려운 거야.”

“뭐래. 체리 주제에.”

“.....너 시발 그거 누구한테 들었냐?”

“오빠한테.”

“이 대머리 새끼가!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여동생한테 까발려!?”

“키키키키키키”

그제야 캐서린이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며 웃음을 보였다.

눈물을 팔로 대충 닦고나서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제목도 바꾸고 내용은....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네.”

“뭐. 내 일반적인 충고이니까, 하는 건 네 마음이지. 아니면 이후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적어보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너 이거 정말 수필 아니지? 그렇지?”

“뭐래. 내가 미쳤다고 에나가 되겠어?”

“.....하긴, 넌 한다면 로얀이지.”

그제야 캐서린은 방긋 웃으며 원고지를 다시 들어올렸다.

“나. 자주 찾아올 테니까 그때마다 품평 좀 해줘.”

“얼마?”

“소개팅 어때? 아는 언니들 많은데.”

“콜.”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 오빠.”

캐서린은 웃으며 집을 나섰다.

****

캐서린이 떠나고 나는 이사벨한테 용건을 말했다.

이사벨은 요즘 애들답게 Live Q&A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얼굴을 알리기 싫다고?”

“응. 두 번째 작품이 성공되면 모를까, 지금은 좀.....”

“자신감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신중한 거라고 말해줘. 애초에.... 음. 아니다.”

미국생활을 하다보면 짜증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이다.

백인, 흑인 그 다음이 동양인일 정도로, 동양인 취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인종차별은 지금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않은 채 일거리를 찾던 나는 유색인종들이 당하는 수모와 차별을 견뎌야 했다.

‘전부 변명이지.’

자신감이 없다. 신중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결국엔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을 알고 떠나갈 팬들이 있을까 두려운 것이다.

“얼굴을 가리고 화면으로만 Q&A하려고? 진정성이 너무 없지 않아?”

“에밀라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진정성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 내가 살아오면서 인터뷰를 해봤겠냐 아니면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냐?”

“그것도 그러네. 하긴, 오빠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인터뷰한다면 말도 안 될 것 같아.”

“.....이게 진짜.”

“아무튼 공지 올렸어. 20가지 질문만 답한다고 적어놨는데 이 정도면 충분해?”

“응. 20가지도 솔직히 너무 많다.”

나한테 궁금할 게 뭐가 있다고 20가지나 적어?

10가지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사벨 생각은 다른가보다.

“근데 오빠.”

“왜?”

“오빠가 적어놓은 습작들 많던데 왜 투고 안했어? 보든 안 보든 간에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돈은 꽤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빠는 돈 좋아하니까 전부 투고할 줄 알았어.”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럼 넌 왜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사막의 전갈]만 투고했어?”

“그야 그게 가장 재밌었으니까?”

“나도 그래. 돈도 좋지만 이왕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작품만 출판하고 싶은 것뿐이야.”

“아깝지 않아?”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후회는 없어.”

그러자 이사벨은 활짝 웃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자! 두 시간 있다가 Live 한다고 공지 올렸어!”

“오! 땡큐!”

핸드폰을 건네받자마자 갑자기 진동이 느껴졌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

.

.

.

-띠링!

나는 다시 이사벨한테 핸드폰을 내밀었다.

“알림 취소 어떻게 해?”

이사벨은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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