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Q&A
ABA 방송사 유명 기자 제이든은 몇 달 전부터 빠져든 소설이 있었다.
[사막의 전갈]
연예부 기자 중에서도 상당히 영향력 있는 제이든은 얼마 전 라울이 올린 SNS를 보고 혹해서 책을 구매하여 읽었다.
‘이건.....’
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많은 떡밥을 남겨놓지 않았음에도 다음 내용이 보고 싶다는 여운이 강하게 들었다.
‘이건 분명히 영화화된다!’
연예부 기자를 하며 쌓아온 짬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영화화가 안 된다면 그건 제작사 눈이 삐었다는 의미겠지.
제이든은 영화제작사에 연락을 취해 혹시 드래곤 원 작가를 아냐고 물어보았다.
‘모른다고? 아니 왜?’
이 정도의 글이 영화화 논의도 안 되고 있다는 것에 제이든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얼마 뒤 출판사를 통해 드래곤 원이 군대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 아니 왜?’
이렇게 수익을 창출했으면서 굳이 군대에 갔단 말인가?
‘조국에 대한 애국심 때문······. 은 아닌 것 같은데.’
1년 전 대통령이 바뀌면서 입대 비율이 줄어들었다.
‘대체 왜? 아니 왜?’
제이든은 팬카페에 가입할 정도로 드래곤 원의 팬이 되었고, 기자로서 드래곤 원의 작은 행보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사명으로 정보를 찾고 움직였다.
‘젠장!’
문제가 있다면 출판사 또한 드래곤 원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대리 계약한 사람이 유명 로펌의 변호사라는 점이었다.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얼른 2부 연재하라고! 젠장!’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제이든의 심장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뿐만 아니라 연예계 기자들과 문예부 기자들이 서서히 드래곤 원의 마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응?’
그러던 그때 SNS에 자신이 드래곤 원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막의 전갈]로 인사드리는 Dragon one입니다.
영화화가 확정되었습니다!』
고작 이것만 올린 상태라 아직 드래곤 원임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SNS가 올라오고 나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블루스타게이트에서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다.
‘드, 드래곤 원이 활동을 시작한 게 분명해!’
제이든은 서둘러 제임스 권이라는 사람한테 친구 요청을 했다.
그리고 동료인 영화부 기자를 찾아가 블루스타게이트에서 [사막의 전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알렸다.
“.....우리도 모르고 있는 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팬이니까! 얼른 인터뷰하러 가자고!”
“아놔.”
제이든은 그때부터 드래곤 원 아니 제임스 권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블루스타게이트 <사막의 전갈>을 차지하다!]
가장 먼저 기사를 내었을 때의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유명 가수의 불륜 현장을 찍었을 때처럼 카타르시스가 온몸을 지배했다.
-띠링!
그런 제이든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휴가라 오래간만에 여자친구와 데이트 약속을 잡았는데, 드래곤 원 작가가 갑자기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오후 2시에 20가지 질문을 선정하여 가벼운 Q&A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실물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글로 하여 답하는 형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제이든은 그날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깨버렸다.
****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Live 방송을 하는 것이라 그런지 딱히 긴장되진 않았다.
“오빠! 시작하자!”
“어. 근데 원래 이렇게 채팅이 많이 올라와?”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올라오는 채팅 속도를 보자 약간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얼굴은 나오지도 않잖아? 얼른 시작해!”
“근데 뭘 보고 말해야 하냐? 그냥 많이 올라오는 채팅에 답만 주면 되나?”
“응. 그거면 충분할 거야.”
채팅창이 너무 빠르게 올라와서 눈이 아플 정도였다.
[1) Q : 제임스 권은 실명이신가요?]
[A : Yes.]
“좀 성의 있게 답변하면 안 돼?”
“.....노력해볼게.”
[2) Q : 두 번째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요?]
[A : 자세히 얘기 드릴 순 없고 하프 몬스터와 히어로물이 섞인 작품입니다.]
“이 정도면 성의 있는 거지?”
“아까보다 괜찮네.”
[3) Q : [사막의 전갈] 외전이나 2부 연재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A : 영화 성공하면 2부 달립니다.]
그러자 채팅창이 아까보다도 심하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 진짜? 진짜야? 진짜로 2부 집필하는 거야?”
“영화 성공하면.”
[4) Q : 매출 수익이 어느 정도여야 성공인가요?]
[A : 깔끔하게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 $100,000,000 갑시다]
“1억 달러? 너무 높게 잡은 거 아니야? 거기다 북미오피스만이라니? 오빠 혹시 글쓰기 싫어?”
“응. 엄. 청. 싫. 어.”
[사막의 전갈]은 더이상 진행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었다.
흥행했다고 2편을 제작해서 망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다.
게임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간에 난 웬만하면 작품 한 권으로 완결을 내고 싶었다.
“미친 듯이 채팅 올라오는데? 바꿀 생각 없어?”
“없어.”
10억 달러를 부르려다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1억 달러로 부른 거다.
[5) Q : 다음 작품 제목은 뭔가요?]
[A : 제가 제목 짓는 센스가 없어서 [몬스터 세계]라고 일단 적어놨지만, 출판사가 바꿀 겁니다.]
[6) Q :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A : 97년생입니다.]
[7) Q : 군대에는 왜 입대하신 건가요?]
[A :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요.]
[8) Q :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
8번째 질문에서 타자를 치려던 손이 멈췄다.
권이라는 성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다 보니, 첫 번째 질문에서 내 실명을 보고 한국인인 걸 유추한 것 같았다.
“오빠?”
글을 쓰면서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그렇기에 [몬스터 세계]가 흥행할 때까지 조용히 있으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무덤을 내가 파버린 것이다.
SNS에 실명을 올렸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젠장. 괜히 실명으로 했네.’
나는 떨리는 손길로 타자를 눌렀다.
[A : 일단은 미국인입니다]
아직 시민권이 나오지 않았지만, 매디슨 누나가 도와주고 있으니 금방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살았으니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 할 리는 없었다.
‘채팅창이.....’
내가 교포임을 알아챘음에도 채팅창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 속에서 동양인 비하 글이나 이모티콘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팬······. 이라는 건가?’
그들은 내 인종이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사는 오직 하나. 내가 쓰는 글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쫙!
나는 볼을 강하게 때리며 정신 차렸다.
“뭐해 오빠?”
“아무것도 아니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졌지만, 나는 정신을 다잡고 다시 질문을 확인했다.
[9) Q : 세 번째 작품은 무슨 장르로 적으실 건가요?]
[A : 두 번째 작품이 아직 계약조차 하지 않았기에, 세 번째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10) Q : [사막의 전갈]을 어느 감독이 맡았으면 하나요?]
[A :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11) Q :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뭔가요?]
[A : 미국에 이민 왔을 때 사촌 누나들이 보여준 [드래곤 블러드]라는 영화를 보고 원작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드래곤 블러드]입니다.]
[12) Q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감독님이 있을까요?]
[A : 글쎄요. 원래 제 꿈은 영화각본가였지만 높은 현실과 재능에 좌절하여 포기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지 않고 일에 집중하느라 최근 유명한 감독님들은 모릅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존경하는 감독님은 로버트 존슨 감독님입니다.]
[13) Q :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요?]
[A : 할리 브레이드(필명).]
[14) Q : 아까 한국분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한국군에 입대하셨던 건가요?]
[A : 네. 당시엔 미래가 막막해서 미국에서 살지, 한국에서 살지 결정하지 못했었습니다.]
팬들은 이사벨이 멋대로 투고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15) Q : 라울 데이비스 님이 주인공을 맡고 싶다고 항상 이야기하던데 어떠신가요?]
[A : 저야 환영이죠.]
[16) Q : 앞으로 SNS 활동을 자주 하실 건가요?]
[A : 근황은 간간이 올릴까 생각 중입니다.]
[17) Q : 사인 가지고 싶어요]
[A : 얼마 전에 친구 여동생한테 충격을 준 적이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사인이 만들어졌습니다. 후회할지도 몰라요.]
[18) Q : Live 방송은 계속하실 건가요?]
[A :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번째 작품이 성공하면 얼굴 공개하겠습니다.]
[19) Q : 오늘 팬티 무슨 색이세요?]
[A : 너희들 한국인이지?]
[20) Q : 팬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아나요?]
[A : 친구 여동생이 알려줬습니다. 참고로 가입심사에서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휴우.....”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끝으로 Live 방송을 종료했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처음으로 팬과 소통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쾌했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한 건가.....?’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지금은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니었다.
베프인 월리조차도 처음에는 나보고 옐로우 몽키라고 놀렸었다.
양쪽 눈을 쫙 찢는 제스쳐를 취하며 돌을 던지는 녀석들도 있었고,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들이 놀린 적도 있었다.
[드래곤 블러드]를 본 후 내가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그들의 놀림에 대응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
하지만 마을에서 벗어나면 현실은 여전히 각박했다.
‘내가 군대에 입대한 이유 중 하나지.’
미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한국처럼 소규모가 아니라, 소도시만한 밭에 농사짓는다는 것이다.
헬기를 띄우고, 탱크 같은 트랙터를 움직였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농사일에서 벗어나고자 월리와 나는 미국 전역을 돌며 일했지만, 월리라면 몰라도 동양인인 나를 기꺼이 써주는 곳은 드물었다.
‘한국이라면 내가 일할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한국에서 일한다면 적어도 생김새 때문에 나를 거부하는 곳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군대에서 부조리를 겪으며 생각한 건, 농사일이 싫고 힘들더라도 그게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꽉 막혀 있던 건가?”
“뭐가?”
“그냥 지금까지 걱정했던 게 실은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에 허무해서 말이야.”
팬들은 인종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적는 글에만 흥미 있을 뿐이다.
‘뭐랄까.... 편안하네.’
딱히 슬럼프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생각을 마치자 모든 것이 한결 편안해졌다.
덩달아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져서 얼른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나 배고파.”
“응?”
“배고파. 오빠 때문에 점심까지 굶었는데, 지금 저녁이 다 돼 가잖아.”
“어..... 그러네? 그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진짜?”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으음..... 햄버거?”
“오케이. 얼른 집에서 옷 갈아입고 와. 먹으러 가자.”
“그냥 드라이브 스루로 오빠가 사 오면 안 돼?”
“맥플러리 먹고 싶은 만큼 사줄게.”
“얼른 가자!”
난 사촌 동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