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화 (11/216)

11화 사막의 제국 2

‘굳이 동물의 습성을 파악할 필요는 없어.’

천적 관계라면 모를까 동물의 습성까지 모두 파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펭귄과 북극곰은 같은 지역에 살지 않아.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해도 북극곰의 먹이가 될 뿐이야.’

한국에서 대통령보다 위대하다는 펭귄 대통령도 천적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바닷속 해면 이야기도, 벌레들의 하수구 모험도, 천적들이 나오지만 ’성격‘정도만 틀릴 뿐 서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잖아?’

천적이 오히려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동심을 유발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이 가장 재밌어하는 이야기야.’

나는 잠시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사막의 동물들을 확인해 보았다.

‘미어캣의 천적이 코브라, 독수리, 라텔, 자칼, 하이에나....’

그중에는 무리를 이루고 다니는 건 하이에나뿐이다.

‘미어캣 왕국을 압박하는 하이에나 왕국.’

큰 틀을 잡은 뒤 집필을 시작했다.

***

넓은 사막의 세계는 거칠고 험하다.

그런 사막의 세계를 양단하는 4개의 왕국은 항상 ‘물’이라는 생존요소를 두고 서로 다투어왔다.

사막에서 물은 그 무엇보다 귀하다.

금은보화보다도 값진 것이 물이다 보니, 왕국은 조금의 물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항상 서로를 물어뜯었다.

***

나는 일단 간단한 스토리 구성을 적은 뒤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전쟁.....”

어찌 보면 잔혹하고, 어찌 보면 동심 있는 장르가 바로 전쟁이다.

‘상관없겠지. 대신 무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전쟁으로 만든다.

잔혹할 수 있는 무기 사용 장면은 최대한 줄인다.

‘어쩌다 나오는 무기라고 해도, 모래 덩어리같이 기분이 더러워지는 걸 위주로 할까?’

나는 또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사막의 동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머지 두 개의 왕국은.... 흠. 독수리의 창공의 왕국 그리고 여우 왕국으로 하자.”

-뿌드득!

본격적인 스토리의 가닥이 잡히자 나는 손을 풀었다.

‘내용은 약간 어둡게, 하지만 그 어두움이 아이들한테 불쾌하지 않게.’

시작해볼까?

***

하늘을 지배하며 가장 빠르게 물을 찾아 나서는 독수리들의 왕국.

땅을 파 가장 안전하게 우물을 찾는 사막여우들의 왕국.

강인한 힘으로 물을 빼앗는 하이에나 왕국.

그에 반해 미어캣 왕국은 많은 인구 수를 이용한 농경이 가능하다는 장점밖에 없었다.

인구가 많기는 했지만 모두 겁이 많아,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나타나면 전부 숨기 바빴다.

미어캣 왕국의 왕은 그들이 나타나면 찍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물과 식량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어캣 왕국은 평화로웠다.

비록 물은 부족했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식량은 풍부했고, 독수리 왕국이나 사막여우 왕국에 식량과 물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나라가 운영되고 있었다.

어느 날 미어캣 왕은 하이에나 왕국과 설전을 벌였다.

‘이건 무리요! 이건 강도나 다름없지 않소!’

평소 무력을 사용하여 물을 거의 푼돈에 가져가던 하이에나 왕국이었다.

하지만 그 푼돈조차 내지 않겠다는 하이에나 사절단은 들을 가치도 없다며 미어캣 왕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왕자는 숨어서 무력하게 바라봤다.

이 현실이 싫었다.

이 왕국이 싫었다.

우리는 왜 항상 약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미어캣 왕자 툰툰은 이 빌어먹을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한텐 그럴 힘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형이 왕이 되겠지. 그렇다면 바뀌는 게 없어.’

12 남매 중에 마지막 왕자인 자신이 왕위에 오를 일은 없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도, 도와주는 이들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어.’

비록 약하고 겁이 많지만, 국민이 좋았다.

이 나라가 좋았고, 서 있는 모래가 좋았다.

‘동료를 모으자.’

툰툰은 조용히 편지만을 남겨둔 채 왕국을 떠났다.

***

“흐음..... 조금 조잡한가?”

스토리가 너무 평범했다.

“툰툰이 떠나고 1 왕자가 하이에나 왕국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시작하자.”

툰툰이 여행을 떠나고 1 왕자 둔깡이 하이에나 왕국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미어캣 왕은 충격을 받아 쇠약해져 쓰러지고, 동료를 찾으러 가던 툰툰은 서둘러 왕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둔깡이 자신들의 동생들을 전부 감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에 툰툰은 왕국을 되찾기 위해 발길을 돌려 다시 여행을 떠났다.

“우선 여기까지 하자. 너무 집중해서 썼네.”

창문 밖을 보니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벌써 저녁이네. 배고픈데.”

호텔이다 보니 룸서비스를 시킬까 하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을 부르라던 에밀라가 생각났다.

“음.... 품평이나 해달라고 할까?”

핸드폰을 들어 에밀라의 연락처를 찾았다.

***

제임스가 집중하고 있는 사이 시간이 벌써 9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제 동생도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이미 메디슨은 도착해서 계약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제임스 작가님의 사인만 받으면 되겠네요.”

“그보다 이 녀석 아직도 글 쓰고 있나요?”

“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신 것 같으시더라고요. 저도 무슨 장르로 쓰고 계신지는 모르겠어요.”

“흐음······.”

메디슨은 제임스가 이번에 계약한 작품 [몬스터 세계]를 적을 때가 생각났다.

‘이 녀석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적고 있는 거 아니야?’

저번처럼 또 자리에서 쓰러질 때까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됐다.

“가기 전에 제임스.....”

-띠리리리리리♪

제임스를 만나야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에밀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 잠시만요.”

에밀라는 양해를 구한 뒤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네. 작가님.”

-아..... 제가 정신없이 글 쓰느라 너무 늦었네요. 혹시 누나가 왔나요?

“네네. 계약서를 전부 읽으셨고 작가님 사인만 있으면 계약이 완료돼요.”

-그럼 지금 어디신가요?

“호텔 1층에 있는 카페에 있어요.”

-지금 내려갈게요.

뚝.

핸드폰이 끊기고 메디슨이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제임스인가요?”

“네. 집필이 끝나셨나 봐요. 지금 내려온다고 하시네요.”

‘이번에는 힘이 풀릴 정도로 쓰진 않았나 보네.’

잠시 후 저 멀리 노트북을 들고 있는 동양인 남자가 그녀들한테 다가왔다.

“계약서 읽어봤어?”

“응. 저번하고 똑같아.”

제임스는 피곤하다는 듯 웨이터를 불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작가님 여기요.”

에밀라가 준 계약서를 다시 꼼꼼히 읽으며 사인 칸에 이름을 적었다.

“지금까지 글 쓴 거야?”

서로 계약서를 나눠가지고 커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메디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이왕 온 김에 한번 읽어주실래요?”

“네! 물론이죠! 작가님!”

노트북을 다시 작동시켜 에밀라한테 내밀었다.

“[사막의 제국]?”

“어린아이들이 읽기 쉬운 글을 적어봤어요. 이런 장르는 처음이라서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네요.”

에밀라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파일에 적힌 글을 읽기 시작했다.

“커피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팁이에요.”

“감사합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글만 쓴 거야?”

“응.”

“.....에휴.”

메디슨은 뭐라 한마디 하려다 결국 주저했다.

‘재능이라면 재능인데..... 이건 내가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네.’

걱정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잔소리한다고 해도, 제임스가 과연 저 습관을 고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을 습관이니까.’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 에밀라는 [사막의 제국]을 전부 읽었다.

한 권 분량도 되지 않고 초기 구성만 읽었을 뿐이지만, 에밀라의 얼굴에는 만족이라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다만, 만족이라는 감정과는 별개로 어딘가 걱정스러운 느낌이 섞여 있었다.

“어떠세요?”

“굉장히 재밌었어요! 근데.....”

“근데?”

“으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희가 보통 계약을 하고 난 뒤 인쇄를 시작하고, 서점에 풀면 한 달 혹은 그 이상이 소요되거든요?”

“네.”

“저번처럼 작가님이 3일 내로 한 권 분량을 주신다고 하면 여름 이내에 [사막의 제국]을 출판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의 소설 같은 경우는 동심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몬스터 세계]만큼 글이 잘 써지는 편은 아니었다.

보통 한 권을 완성시키는데 한 달 정도 소요된다고 치면 [사막의 제국은]은 한 달이 아닌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었고, 그럼 겨울이 되고 나서야 출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겨울에 출판하면 계절에 맞지 않아서 살짝 주춤할 수 있거든요. 거기에 음....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아이들이 보기 원해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신 것 같은데요. 물론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러면 아이들만 볼 뿐 어른들은 보지 않을 것 같아서요.”

“상관있나요?”

“정말 아이들만 타겟이라면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현재 아동문학 1위가 뭔지 아시나요?”

“음.... 제가 알기론 번개 흉터 마법사였죠?”

“네. 맞아요. 본래 아동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으로 가려던 소설인데,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아동문학으로 간 소설이죠. 그 다음은 아세요?”

“글쎄요?”

“그다음은 구스버스라고 해서 초자연적 현상을 바탕으로 한 서적이에요. 92년부터 현재까지 연재 중이세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1위와 2위의 주인공이 ‘동물’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어반 판타지.”

“네. 맞아요. [몬스터 세계]처럼 어반 판타지라는 의미죠. 물론 곰돌이 FU처럼 동물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도 있으니,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만 참고해 주세요.”

“흠....”

어반 판타지는 어른들이든 아이들이든 읽기 쉽지만, 동물 이야기는 너무 아이들한테 치중되어 있다는 말인가?

‘상업적이라는 말이 생각나긴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야.’

어른과 아이가 재밌게 읽을 수 있어야 진정한 재밌는 소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차라리 [몬스터 세계]를 시리즈로 가시는 게 어떠실까요?”

“시리즈?”

“네. 주인공 에나는 몬스터의 힘을 받아들일수록 꼬리 개수가 늘어난다고 적혀있었는데, 한 권 분량에서는 전부 표현하기 힘드셨잖아요? 이런 복선들을 회수도 할 겸 차라리 다음 권을 집필하시는 건 어떠세요?”

즉, 에밀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여러 가지 작품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의 작품을 최정상으로 올려라.....’

[몬스터 세계]는 잔인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근본은 ‘공포’와 ‘동경’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도 있었고, 신체의 일부를 뺏어가는 몬스터들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읽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번개 흉터 마법사도 잔인한 요소가 있었지. 스토리 설정상 펑크가 좀 있긴 했지만.’

갓난아기를 죽이기 위해 최고의 마법을 쓰다 역풍을 맞아 역으로 죽는다든지.

다른 사람의 몸에 기생한다던가, 팔이 잘린다던가, 유니콘의 피를 먹는다던가, 생각해보면 [몬스터 세계]와 잔혹함 면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좀 아깝단 말이지.’

[사막의 제국]들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에밀라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막의 제국]의 간단한 초기 스토리만 봤을 때 이 소설이 여기까지만 나왔다는 점이 아쉽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이건 어떠세요. 무,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만 생각해주세요.”

나는 다음으로 들려온 에밀라의 말에 살짝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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