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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3화 (13/216)

13화 블루스타게이트 2

캐스팅 배우들을 확인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 주역당 후보가 10명씩 있었는데 아직 확정된 이들은 아니었고, 내일 오디션을 봐서 그중에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했다.

“자네. 밥은 먹었나?”

내일 다시 뵙기로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마그누스 감독님은 떠나지 않고 나한테 다가왔다.

“아뇨.”

“그럼 단둘이서 이야기 좀 할 겸 밥 좀 먹겠나? 내가 사도록 하지.”

“둘이서요?”

“그래. 나 같은 늙은이랑 밥 먹는 건 싫은가?”

“그건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하네. 물론 싫다 해도 상관없네.”

나는 뒤쪽에 있던 메디슨 누나를 힐끔 쳐다봤다.

누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로 사주세요.”

“샌타모니카 왔으면 해산물을 먹어야지. 따라오게나.”

****

마그누스 감독님이 데려간 곳은 레스토랑이 아닌 뷔페였다.

굴이나 각종 바닷가재, 새우, 어패류 등을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보통의 뷔페와는 달리 해산물이 굉장히 신선해 보였다.

“내가 자주 찾는 곳이네. 신선한 해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지.”

명장에 오른 감독이라고 해서 미슐랭에 오른 레스토랑에 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도 이런 장소가 더 좋고.’

해산물도 딱히 싫어하지 않고, 어딘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자유로운 듯한 이런 분위기가 더 좋았다.

“마음껏 먹게나.”

“네. 감독님도 맛있게 드세요.”

나는 먹고 싶은 해산물을 접시에 듬뿍 얹어 가져왔다.

마그누스도 나와 딱히 다르진 않았지만, 내가 갑각류를 많이 가져왔다면 마그누스는 어패류를 많이 가지고 왔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밥까지 사주시는 건가요?”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되자 나는 왜 나와 단둘이 식사를 하자고 했는지 궁금했다.

“자네. 아까부터 무슨 고민 있지?”

“.....네?”

“끌끌. 숨기지 않아도 된다네. 얼굴에 다 적혀있으니까.”

“.....그런가요?”

“거짓말이네. 내가 자네를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

“으음.....”

“뭐.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에 아주 민감하다네. 나도 가끔 자네처럼 표정이 굳어질 때가 있고. 혹시나 해서 말한 거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나.”

“아뇨. 감독님 말씀대로 고민이 있긴 합니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작품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는 마그누스만이 제임스의 고민을 눈치챈 것 같았다.

“뭔가?”

“그게.....”

“쯧쯧. 숨기지 말고 말해보게. 이럴 때는 가끔 노인의 지혜를 빌리는 것도 좋은 거야.”

‘하긴. 시나리오를 직접 적으시는 분이시니까.’

나는 어제저녁에 있었던 [사막의 제국]이라는 작품에 대해 털어놨다.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할지, 아니면 의인화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몬스터 세계]라는 작품에 집중할지 말이다.

마그누스는 진지하게 제임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마그누스의 표정은 어딘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자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먼? 아시아인들은 정이 많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별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고 있군.”

“하하.... 그, 그런가요?”

“자네 말은 결국 그거 아닌가? 출판사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글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까? 아니면 안 해야 할까.”

“그렇죠.”

마그누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네가 계약한 출판사가 빌에이든미디어라고 했던가?”

“네.”

“그러면 거기 주력이 되는 글은 뭔가?”

“주력....이요?”

“그래.”

“장르 소설(Genre Fiction)이죠.”

판타지, 추리, 공포, 과학, 게임, 로맨스 등 장르에 관한 글을 주력으로 출판하는 빌 에이든 미디어였다.

“그럼 [사막의 제국]이라는 책을 품평한 에이전트는 어느 회사 사람인가.”

“당연히 빌 에이든..... 아!”

“깨달았나 보군.”

에밀라씨는 장르 소설만 생각해서 말한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순문학을 하는 사람한테 판타지 소설에 대해 품평해달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에밀라씨는 내 소설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장르소설 기준으로 품평해 준 것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을 적을 거면, 아동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에 투고해보게. 첫 계약? 기회를 준 출판사?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작가는 항상 도전해야 하네. 도전을 멈추고 퇴보하는 작가를 나는 수없이 봤네.”

이것 또한 마그누스가 원작 작품을 영화화하길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 돈과 명성이 생긴 작가들의 글에는 지방이라도 끼는 것 마냥 그 매력을 잃어간다.

도전이 멈춘 것이다.

간절함이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악평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매력을 잃은 작품은 곧 민심을 잃는다네. 냉정해지게나. 우리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 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예!”

마그누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담과 조언이 내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글을 쓰고 싶다.

영감을 받은 건 아니다.

그냥 지금 당장이라도 글이 쓰고 싶었다.

“허.”

마그누스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 지었다.

“글이 쓰고 싶은가 보군?”

“네. 그런 말을 들었는데 쓰기 싫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요?”

“얼른 쓰러 가게....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은 참게나.”

“네? 아니 왜요?”

“아까 자네 누나한테서 들었네. 자네 글을 쓰면 주체하지 못한다지?”

“그건..... 네. 정신을 차려보면 저녁이 될 때가 몇 번 있었네요.”

“쯧쯧. 젊은 나이에 요절하려고 그러나?”

마그누스는 어린 시절 누군가를 동경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소설 작가였지만 자신의 재능을 붙잡지 못하고 결국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쉬게나.”

“그래도.....”

“쉬게. 쉰 다음에 글을 쓰게. 더욱더 맑아진 머리로, 더욱 건강해진 몸으로, 더욱더 활기찬 기분으로 글을 쓰게나. 명심하게 망작과 명작의 차이는 ‘디테일’이라는 것을.”

“......”

나는 마그누스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명한 말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디자인 업계에서도, 연예계에서도 항상 나오는 말이다.

사소한 차이가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는 의미.

디테일을 만들기 위해 최상의 몸 상태로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쉴게요.”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밥 사게나.”

“사주신다면서요?”

“쯧. 노인의 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나?”

“하하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네! 오늘은 제가 살게요!”

머리가 상쾌해졌다.

****

마그누스 감독님과 헤어지고 제임스는 호텔 침대에 누워있었다.

‘디테일의 차이.’

할 게 없어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그누스의 말에 따라 오늘은 노트북 전원을 누르지도 않았다.

“너무 절약적으로 생활한 것 같네. 돈도 벌었는데 좀 쓸까?”

이 나이에 만지기 어려운 돈을 벌었는데도 너무 안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말했던 대로 노트북하고 핸드폰이나 바꾸러 가볼까?

“차도 하나 뽑아야 하나?”

내가 뭘 사고 뭘 하든 차고 넘칠 만한 액수였지만,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요란 떨 생각은 없었다.

그냥 평상시에 타고 다닐 벤츠 SUV나 하나 사는 게 좋겠지.

‘뭐. 우리 동네에서도 차를 살 순 있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취급하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차량을 주차장에 전부 세워두고 계약하는 형식으로 거래한다.

최근에는 매장에서 옵션을 추가하여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하니, 이왕 여기 온 거 주문하고 가는 게 좋으리라.

“그럼 가볼까?”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

길을 알 리가 없었다.

메디슨 누나도 계약이 끝나자마자 돌아갔고, 에밀라를 부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왠지 오늘은 혼자 길을 걸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맑은 하늘 밑으로 걸어가니 어딘지 모르게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성에서 살까?”

이제 한국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제품은 믿고 살만 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LJ도 좋을 것 같단 말이지.’

군대에 있을 때 서비스는 사성, 제품은 LJ라는 말을 들었었다.

“샌타모니카에 지점이 있으려나?”

나는 날씨를 만끽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솔직히 전자제품을 사는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화창한 하늘 아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보니 작품 생각으로 빡빡했던 생각이 리프레쉬되는 느낌이었다.

“뭐 좀 먹을까?”

뷔페에서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플레인 피자, 타코, 햄버거.....’

많은 음식점을 앞에 두고 내가 선택한 건 음식점이 아닌 길거리 음식이었다.

‘햄버거로 먹을까?’

그냥 간단하게 먹고 다시 길을 걷고 싶었기에 길거리 노점상에 있는 음식을 골랐다.

미국의 노점상은 그 자리에서 먹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많았고, 주변에 서서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공원 의자에 가 음식을 먹는다.

“뭘 드릴까?”

“베이컨 버거하고 음료는 다이어트 콜라로.”

“감자튀김은?”

“너겟 있어요?”

“너겟은 없고 피클 튀김은 있는데.”

“그럼 그걸로, 그리고 버거에는 패티 두 장 넣어주세요. 아. 너겟은 없어도 텐더는 있네요. 텐더도 추가로 주세요. 핫 칠리로.”

“조금만 기다려. 금방 해줄 테니까.”

노점상 아저씨는 무뚝뚝한 얼굴로 베이컨을 가득 넣은 햄버거에 패티를 두 장 넣은 다음, 텐더와 피클 튀김을 종이 포장지에 올려주었다.

“여기.”

돈을 건네고 음식을 받았다.

“여기 먹을 곳 있나요?”

그러자 노점상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어딘가 가리켰다.

“저쪽에 앉을 거리가 있어. 해변을 보면서 먹을 수 있으니까 거기로 가.”

겉모습은 무뚝뚝한 아저씨였지만 그래도 대답은 착실히 해주었다.

‘저쪽인가.’

아저씨가 말한 대로 길을 걷자 그곳엔 해변을 바라보며 먹을 수 있는 방파제 같은 곳이 있었다.

다만, 놓여있는 벤치에 가벼운 맥주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뭐랄까 음... 괜히 왔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걸 보니 그냥 서서 먹을 걸 후회했다.

‘아. 자리 나왔다.’

마침 다 먹었는지 비어있는 벤치가 비워졌고, 나는 서둘러 자리에 가서 앉았다.

‘경치가 확실히 좋긴 하네.’

따뜻한 햄버거를 입에 넣으려던 그때였다.

“헤이. 여기 자리 비었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비키니를 입고 음식을 들고 있는 여성 두 명이 서 있었다.

나처럼 음식을 사서 벤치에 앉아 먹으려는데 자리가 없던 것 같았다.

“앉으세요.”

3인용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것도 뻘쭘했기에 나는 조금 자리를 비켜 그녀들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땡큐.”

나는 대충 손을 흔들고 다시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오? 이 아저씨 생각보다 실력이 좋네?’

피클 튀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되었지만 몇 년 전부터 우리 마을에서도 피클 튀김을 팔기 시작했다.

피클을 좋아하다 보니 자주 먹었는데 이후 군대에 가느라 먹지 못했다.

‘오길 잘했네.’

그렇게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배가 차자 그제서야 옆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 줄 겁니다.”

“아니 그냥 너무 맛있게 먹어서 본 것뿐이에요.”

‘특이한 머리색이네.’

아까는 몰랐지만 한 명은 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염색인가?’

보통 저런 걸 플래티넘 블론드라고 하던가?

과거에 캐서린이 머리카락을 은색으로 물들이겠다고 지랄 발광을 해서 알고 있었다.

‘그보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아!’

오디션 서류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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