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6화 (16/216)

16화 집으로

마그누스 감독님이 들어 올린 서류에 있는 적혀있는 남자는 상당히 왜소한 몸을 가진 남자였다.

그 남자는 배우가 아니었다.

코미디언.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주로 짙은 화장을 하고 올라와 관객한테 웃음을 선사해주는 사람이었다.

“.....논란이 많을 겁니다.”

“그 부분은 작가가 결정할 일이지. 안 그런가?”

마그누스 감독님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서류에 적힌 배우를 바라봤다.

“......어째서 이 분을 고르신 건진 알겠어요.”

마그누스는 색다른 연출법이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연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연출법을 노리는 거겠지.

특히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라면 요즘 나오는 히어로 영화처럼 극 중 간간이 애드립같은 부분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첫 영화부터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아요.”

마그누스는 내 말에 끌끌 웃음 지었다.

“이 자의 연기를 봤었는데, 실력이 상당하더군. 언젠간 이 자를 꼭 내 영화에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네만. 하지만 자네 생각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아쉽구먼.”

“첫 작품이 아니었다면 생각해 봤을 거예요. 하지만, 첫 작품인 만큼 웬만하면 호불호가 없었으면 해요. 다만..”

“다만?”

“이 분한테 다른 역할을 맡기시는 건 어떨까요?”

“다른 역? 누구로 말인가?”

“테러조직 수장의 오른팔로요.”

소설 속에서는 꽤나 비중이 있는 인물이지만, 마그누스 감독이 각색한 시나리오 상에서는 그닥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쉬웠던 부분이지만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른팔이라면... 그 고자 말인가?”

“고자라고 그렇게 입밖으로 내시니까 조금 그렇네요...”

소설 속 수장의 오른팔은 어떤 일을 계기로 고자가 되어버린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던 그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고, 수장의 오른팔로서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캐릭터였다.

무엇보다도 이 역할에 내가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죠.”

“뭐가 말이냐?”

“제가 약속 하나를 했거든요.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를 달성하면 2부 연재를 하겠다고 말이죠.”

“맞습니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한스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흥분한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반드시 드래곤 원 작가님이 2부 연재를 시작하시게끔 만들겠습니다!”

“......”

-짝짝짝짝!

감독님들이 한스를 따라 전부 공감어린 박수를 보내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 아무튼 만약에 달성한다면 2부에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 적어볼 생각이거든요. 조금 다채로운 캐릭터라서요.”

“그러니까..... 나중을 위해서 필요하다?”

“네. 그러니까 그 분한테 잘 설명해주셨으면 해요.”

“흐음.....”

마그누스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

회의를 마치고 나는 곧장 몬테나 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선물이라.’

내 손에는 한스가 준 최신형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들려있었다.

어제 깜빡하고 구매하지 못했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에밀라한테 들었는지 헤어지기 직전에 손에 쥐어주었다.

‘집에 박혀서 글이나 쓰라는 무언의 압박같지만... 딱 좋네.’

신형 노트북 성능이나 확인할 겸 지루한 비행기 안에서 글이나 써볼까?

‘어디보자.....’

현재 적어야 할 건 두 개다.

스토리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은 [사막의 제국]과 다음 스토리를 준비해야 하는 [몬스터 세계].

“음.”

결국에 고른 건 [사막의 제국]이었다.

‘일단 1권까지는 집필해보자.’

주인공이 동물이어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소설로 집필해보고 싶었다.

‘동료를 찾으며 왕실을 되찾는 여정부터 시작해볼까?’

-뿌드득!

손을 풀고 다음 이야기를 집필했다.

****

주인공 툰툰은 왕실을 되찾기 위해 동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참담했다.

왕실을 떠나 무일푼인 자신에게 대가없이 도움을 주는 자들은 없었고, 거기에 미어캣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는 이들도 있었다.

‘포기하지 않아. 아니, 절대 꺾이지 않아.’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현실이라는 벽은 툰툰의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소리쳐 봤자, 약체로 분류되는 한낱 미어캣 하나가 이 넓은 세상에서 동료를 찾기란 무리였다.

그러던 그때 툰툰의 귓가에 소문이 하나 들려왔다.

‘비를 부를 수 있는 유물?’

헛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 유물의 능력은 무려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막에서 가장 생존요소인 ‘물’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말에 혹한 수많은 동물들은 유물을 찾기 시작했다.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툰툰은 아니었다.

‘분명 있어! 분명 있다고!’

어린 시절 보았던 왕국 옛 문헌에서 분명히 보았다.

모래를 조종하는 종.

불을 뿜는 피리.

바람을 읽는 수정.

비를 내리게 하는 검.

툰툰은 확신했다.

문헌에서도 전설로 취급해 내려오는 이야기였지만, 툰툰은 왕국을 구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에 무너져 내렸던 정신을 다시 잡았다.

‘기억하자. 어린 시절 수십 번도 읽었잖아!’

영웅과도 같았던 선조의 이야기.

어린 시절 느꼈던 동경의 길을 툰툰은 다시 한 번 찾아 나섰다.

****

“저어.... 손님?”

“흐음.... 여길 조금 더 수정할까? 아니 애초에 4대 유물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단순한 것 같기도 하고.....”

“소, 손님?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자, 나는 집중하고 있던 노트북에서 시선을 돌렸다.

스튜어디스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아. 죄송합니다! 금방 내릴게요!”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렸다.

기내용 캐리어만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여!”

저 멀리 피부색과 대조되는 새하얀 이를 반짝거리고 있는 대머리 한 명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월리?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너희 부모님이 너 차도 없으니까 집까지 오기 힘들어 할 것 같다면서 마중가 달라고 부탁하셔서.”

“부모님도 참. 아무튼 고마워. 집까지 어떻게 갈까 고민했는데 잘됐네.”

“대신 저번에 못산 술 사라?”

“술고래가 씌였냐? 술도 못 마시는 놈이..... 그래 알았어.”

나는 월리의 픽업 트럭에 몸을 실었다.

“그나저나 넌 차 안 사?”

“사야지.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살까 했는데, 매장을 찾을 시간이 없었어.”

“뭐 얼마나 좋은 걸 사려고. 그냥 편하게 너가 타고 다닐 만한 차라도 사는 건 어때?”

“그러려고 했는데 아직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너가 이렇게 항상 오면 되잖냐.”

“너 공짜 좋아하다가 대머리된다.”

“너처럼?”

월리가 한 방 먹었다는 얼굴로 내 팔뚝을 세게 때렸다.

“난 내가 민 거라고 했잖아!”

“그게 그거지. 아무튼 술은 어디서 마실 건데?”

“펍으로 갈까?”

“좋지!”

어차피 집에 가져다 놓을 짐도 없어서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단은 월리 집으로 향했다.

술을 먹기 전에 월리 집에 차를 놓고 근처 펍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뭐래?”

“뭐가?”

“영화 재밌게 될 것 같냐고.”

“뭐어..... 모두 의기투합해서 열심히 하니까 잘 되지 않을까?”

“그럼 이제 쉴 거야?”

“아니, 다음 작품 집필 중이야. [사막의 제국]이라고 하는데 읽어볼래?”

“켁! 항상 말하지만 나한테 글이라는 걸 보여주지 말라고? 3초 안에 자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너는 예전부터 책을 싫어했지.”

“나한테 책 내용을 알려주고 싶으면 네가 읽어주던가”

“꺼져 친구 놈한테 낭독해주고 싶은 내용도 아니고, 애초에 해주기도 싫어”

미어캣이니 툰툰이니 그런 귀여운 이야기를 월리에게 읽어줄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캘리 여자들은 어떠냐. 거긴 해변가가 많아서 그쪽으로 가면 아주 난리난다던데!”

“아.”

월리의 말에 엘라와 엘리나가 생각났다.

엘라는 오디션장에서 봤지만 엘리나가 자신이 추천해준 시집을 읽고 잘 하고 있을지 내심 궁금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와 노래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짧은 글씨 안에 자신의 감상을 모두 집어넣으니 말이다.

“야. 너 가사 볼 줄 아냐?”

“......아니.”

“아! 너 소포모어(10학년) 땐가? 래퍼하고 싶다고 도시에 있는 클럽으로 랩 배틀 하러 갔다가.... 극딜 먹었었지. 미안.”

“야! 그 이야기는 왜 꺼내고 지랄이야!”

“아니 그냥. 가수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월리는 소포모어 시절 갑자기 뮤튜브에 나오는 래퍼가 되고 싶다며 도시에 있는 클럽으로 향했다.

당시 랩 배틀 우승자한테는 1,000 달러라는 상금이 있었기에 나도 구경할겸 월리를 따라갔었다.

월리는 당연하게도 프리스타일 배틀에서 극딜을 먹고 질질 짜며 클럽에서 뛰쳐나온 후, 방에 틀어박혀 며칠간 나오지도 않았다.

당시가 흑역사로 남았는지 월리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걸 싫어했다.

“어디보자.....”

나는 씩씩거리는 월리를 내버려두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뭐야..... 최신기종이네. 핸드폰 바꿨냐?”

“선물 받았어.”

월리는 씩씩거리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부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이름이 분명.... 그냥 엘리나라고 치면 나오려나?’

방송용 이름이 따로 있나 궁금했지만, 엘리나라고 치자 바로 나왔다.

‘구독자가.... 1,000명은 달성했네.’

구독자 수에 비해 조회수는 좋지 않은 편이었다.

‘오? 몬스터 소년단 노래도 있네?’

KPOP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MTS cover 노래도 있었다.

확실히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 건 조회수가 조금 높았지만,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는 조회수가 처참했다.

“월리. 가수는 어떻게 되는 거냐?”

“나야 모르지?”

“하긴....”

“어. 애초에 내가 랩.... 배틀에 나간 건 상금도 있지만, 어느 소속사가 개최한 이벤트라서 나간거 거든. 뭐. 일단 소속사에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닐까?”

“소속사.....”

“연예계쪽은 소속사가 다라던데? 메긴인가? 그 래퍼는 소속사 잘못 만나서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들었으니까. 스캔들같은 거 막는 데도 소속사 힘이 세야된다더라.”

계약서를 잘못 작성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500만 달러라는 수익을 일으켰지만, 정작 가수한테는 5만 달러도 안 되는 수익이 들어갔다고 한다.

대형 소속사가 아니면 소속사가 소속 가수를 등쳐먹는 일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이름 있는, 규모있는 소속사에 들어가기 위해 뼈빠지게 노력하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 둘은 소속사도 없다고 했던 것 같기도...”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엘리나의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곡을 클릭했다.

-날 그곳에 가둘 순 없어~♪ 너의 마음이 나와 다르니까~♩

“오? 누구야? 음색 개쩌는데?”

“그래?”

월리가 슬쩍 내 핸드폰 속 영상을 바라봤다.

“와 씨! 뭐야 이 미인! 누구야? 이름이 뭐야? 뭐라고 치면 나오는데?”

“시끄러 검둥아 앞에 보고 운전이나 해.”

“와...... 이 여자는 노래가 아니라 그냥 여캠해도 돈 잘 벌겠는데? 왜 노래를 한데?”

“그러게나 말이다. 너 같이 생각하는 녀석이 있으니까 힘들어 하는 것 같더라.”

실패한 연예인이나 모델이 뮤튜브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월리도 나쁜 마음으로 말한 건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런 경우를 많이 보다보니 자연스레 나왔을 뿐.

“뭐?”

“아무튼 며칠 동안 캐서린은 어때?”

그러자 월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년 말도 꺼내지마.”

“왜? 또 무슨 사고 쳤어?”

“갑자기 공부는 다 때려치고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잖아. 에휴..... 진짜 무슨 글을 쓰겠다고. 아무 걱정이다 걱정이야.”

“내가 뭐라고 해서 그런가?”

“그렇겠지. 이왕 우리집 가는 거 캐서린한테 조언 좀 또 해줘라.”

“뭘 조언해. 그때 해줬으면 됐지.”

“아니 아니. 글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말 좀 해줘봐.”

“나도 내 건강 못 챙겨서 난린데 누굴 걱정하겠냐?”

“그래도 말 좀 해줘봐.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까. 아니, 애초에 네가 직접 보면 알겠지.”

-끼익!

월리의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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