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캐서린
캐서린은 제임스에게 받은 조언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직접 펜으로 쓰다보니, 애초에 수정 자체도 힘들었고 제임스의 말대로 쓰려면 역시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좋았다.
‘뭔가 아쉬워.’
제임스의 말대로 글을 써봤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스토리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캐서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스토리가 아닌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뭔가 아쉽단 말이지....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건데... 으아.’
아직 한 권 분량을 적은 것도 아닌데 너무 이른 걱정인 걸까?
그냥 이대로 글을 써야할까? 아니면 잠시 멈춰야 할까?
‘제임스 오빠한테 물어볼.....까?’
캐서린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이건 내 스스로 해결해야해.’
자존심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 부분까지 남의 힘으로 해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안 되겠어.....’
그렇게 다짐한 것도 고작 몇 분.
캐서린은 펜을 더 이상 들지 못하고 원고를 잡은 상태로 끙끙 거렸다.
‘슬쩍 물어볼까?’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고 있을 그 때였다.
-쾅쾅!
-이년아! 얼른 나오지 못해!
문 뒤쪽으로 가장 짜증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러니까.... 지금까지 방안에서 안 나오고 있었다고요?”
“그래. 저녁에 슬쩍 내려와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간단히 먹고 올라가는 것 같기는 한데..... 에휴. 네가 한 마디 좀 해줘라.”
캐서린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캐서린을 가리켰다.
“우리가 뭐라 해도 듣지도 않아. 네가 말 좀 해주렴.”
“노력해볼게요.”
캐서린은 핼쑥한 얼굴로 원고지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 모습에 캐서린의 어머니는 슬쩍 나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자리를 피해주셨다.
“여, 영화 이야기는 잘 끝내고 왔어?”
“잘 끝내고 왔기는 했는데..... 너 지금까지 글만 쓴 거야?”
“아니 뭐... 방에서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밥도 먹고, 목욕도 하고 할 건 다 했어.”
남 일 같지 않았다.
“너 막혔지.”
“으, 응?”
“막혔잖아. 안 그래?”
“아, 아닌데? 우리 집 변기 안 막혔는데?”
“아니. 글 말이야.”
어째서 그녀가 지금까지 방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는지 단 번에 이해됐다.
스토리가 중간에 막힌 것이다.
“월리. 잠시 둘이서 대화하게 해줘.”
“.....그래.”
제임스의 진지한 얼굴에 월리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원고지 줘봐.”
“그, 그게.... 그러니까.....”
“얼른!”
처음 보는 제임스의 단호한 모습에 캐서린은 찔끔하며 원고지를 넘겼다.
캐서린의 손에서 뺏어가듯 원고를 가져온 나는 곧바로 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확인했다.
지우개로 수십 번은 지웠는지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막힌 거 맞네.’
캐서린이 적은 분량은 한 권도 안 되는 분량이었지만, 며칠 만에 쓴 것 치곤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책의 분량은 전부 다르다보니 캐서린이 적은 분량 정도면 짧은 소설로 출판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캐서린이 글자 수에 대한 기준을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서린 여기가 너한테 어느 지점이야?”
“으, 응?”
“어느 정도 스토리를 진행한 것 같냐고.”
“절반... 정도?”
“확실해?”
“모르겠어...”
“네가 글을 빨리 쓰고 싶다면 글자 수에 대한 목표를 잡고 쓰는 게 좋아. 무턱대고 글만 쓰면 결국에 글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왔는지 모르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전체적인 스토리를 예상하고 글을 쓰는 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다만, 캐서린처럼 글이 어느 정도의 스토리까지 왔는지 모른다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완결과는 다른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막히기 때문이다.
막막해지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전개가 갑자기 바뀌면 또 다른 지루함이 생긴다.
“보통 책을 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막혀. 나도 막힐 때가 많아.”
누구는 초반에서, 누구는 중반에서 아니면 완결이 다 돼서 막히는 사람도 있다.
“너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 그 경우가 더욱 심하지. 그러니까 하루 목표 수인 글자 수를 고려하라는 거야.”
“그, 그러면 잘 안 써지는 날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럼 넌 매일 글이 잘 써질 거라 생각했어?”
“......어?”
‘작가가 괴물이냐?’
나는 [몬스터 세계]의 1권 분량을 3일 만에 완결시켰다. 당시 군대에 갔다 오느라 글을 쓰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스토리가 폭발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만 해도 나도 수많은 습작을 적으며 깨달은 게 있었다.
‘하루에 빨리 진도를 나가도, 그 다음이 생각나지 않으면 빨리 쓰는 의미가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빠르게 진도를 나가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꾸준히 쓰는 게 좋았다.
“쉬어.”
“.....그래도.”
“그럼 너 이 소설이 재밌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응?”
“나도 내 소설이 재밌을 거라곤 장담 못해. 그건 작가들 모두가 마찬가지일 거야. 그런데 넌 재밌는 소설이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그, 그건.....”
수입이 명확하지 않은 직업이다.
재밌는 소설이라면 천문학적인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지만, 재미없는 소설이라면 그냥 때려치고 알바나 하는 게 나았다.
“스스로가 재밌는 소설이라고 장담해도 그게 다른 사람한텐 재밌는 소설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 그런 소설 하나 적겠다고 네 건강까지 해치면서 쓰겠다고?”
“.....”
캐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캐서린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푹 쉬자. 고기나 먹으러 갈까?”
****
우리는 그저 소소하게 마당에서 BBQ파티를 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고모부와 부모님, 거기에 월리의 부모님까지 가세하니 전혀 소소하지가 않아졌다.
“오. 갈비!”
부모님은 집에서 직접 재운 갈비를 가지고 왔다.
월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것참. 너 데려와달라고 부탁했을 뿐인데 BBQ까지 할 줄은 몰랐네.”
“오늘은 술 조금만 마시세요.”
“나는 조금 마신다. 네 엄마나 말려라.”
아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월리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 인사를 나누셨다.
그렇게 BBQ파티가 시작되고, 커다란 바베큐 그릴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나 채소를 구웠다.
“아.”
나는 삼겹살을 먹다말고 가방을 주섬주섬 열었다.
“자. 이거 가져.”
“노트북?”
“난 새로 샀으니까 필요없거든.”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거라 솔직히 상태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캐서린은 노트북을 받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 컴퓨터 있는데?”
“.....응?”
“노트북도 있고 말이야. 오빠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줬어.”
“어..... 그래? 그럼 왜 계속 손으로 쓰는 거야?”
“그게 더 편하니까.”
“흠흠! 그래도 노트북이 있으면 그걸로 쓰는 습관을 좀 들여봐, 언제까지 지우개로 지웠다 썼다 할 거야.”
“그래도 이게 더 편한데.....”
나는 노트북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월리 저 자식 항상 캐서린 보고 이년저년해서 사이가 안 좋을 줄 알았는데.’
말은 싫다고 해도 캐서린의 꿈을 응원해주고 있었나보다.
가증스러운 자식.
“손으로 쓴 글은 소통할 방법도 없어.”
“소통?”
“네 소설을 읽어봐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뭐. 블로그나, SNS에 올라오는 소설들 많잖아?”
글에 자신이 없을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사벨이 없었더라면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러다가 계약하는 소설도 많다.’
베이지의 100가지 그림자 역시 프와일라잇의 팬픽으로 유명세를 타서 출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SF영화인 마숀 또한 자신의 블로그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소설로 영화화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으음......”
“아무튼 고민 좀 해봐.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나도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 더 이상 충고해줄 게 없었다.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로 구운 당근을 푸욱 찍으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뭐.”
“오빠는 SNS 활동 이제 안 해?”
“.....그러게. Q&A 뒤로 한 적이 없네. 지금 BBQ 사진이라도 찍어 올릴까?”
내 일상을 알고 싶어 하는 팬들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SNS를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BBQ 사진을 찍고 SNS를 열었다.
“근데 캐서린.”
“왜?”
“여기 쪽지에 대한 건 일일이 답해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무시하는 게 좋을까?”
“몇 명이나 쪽지가 왔는데?”
나는 조용히 캐서린한테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일일이 확인하다가 눈 돌아가겠는데?”
“팔로우하지 않은 사람은 쪽지 보내지 못하게 해줘.”
“이런 건 좀 스스로 해라.”
글 말고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지 않았던 터라, 처음 해보는 SNS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캐서린은 툴툴대면서도 내 말대로 설정을 바꿔줬다.
“왜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린 거야?”
“두 번째 작품 내놓으라는 말이 전부네.”
“내놓기는 했지.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테지만.”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두 번째 작품은 대체 뭐야? 히어로물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
“빌에이든미디어 홈페이지 들어가니까 ‘드래곤 원 작가의 어반 판타지! 히어로 몬스터를 주목하라!’라고 떡하니 적혀있던데?”
“아.... 그래서 사람들이 댓글을 이렇게나 올린 거구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니까.
“조금만 응? 조금만 알려주면 안 돼?”
“응. 안 돼.”
“에이~ 친구 동생 좋다는 게 뭐야?”
“그보다 아는 언니 소개시켜준다는 약속은 언제 지킬 거야?”
캐서린은 움찔하며 등을 돌리고 월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대머리! 내가 먹을 옥수수도 올려놔줘!”
“네년이 올려!”
“하하!”
나는 이 순간을 SNS에 올렸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캘리포니아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식 BBQ와 미국식 BBQ입니다. 맛있어요.』
*****
SNS 스타나, 유명인들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이슈가 된다.
하다못해 작은 선행도 부풀어지며 뉴스에 나오는데, 그들이 맛있다는 음식이나, 예쁘다는 옷은 어떻겠는가?
제임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차피 유명 연예인들 이야기고, 아직 언론에도 나간 적 없는 자신이 그 정도로 영향력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맛있겠다.
MTS(몬스터 소년단)과 K-OTT로 인해 한류 열풍이 불어오고 있는 미국이었다.
한국식 과자를 먹고, KPOP춤을 cover하여 뮤튜브에 올리고, 한식을 요리해 먹는다.
그런 현상 속에서 제임스가 올린 한국식 BBQ 사진은 그 흐름에 큰 폭으로 가세했다.
-고기는 다 맛있지.
ㄴ너 안먹어봤구나? 코리아 ‘galbi’라는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고 굉장히 부드럽다고!
ㄴ맞아. 저번에 LA갔을 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어. 젠장! 갑자기 사진 보니까 다시 먹고 싶어지네..
ㄴ내 근처에는 한식당이 없어. 중국식당은 있지만, 저 ‘galbi’나 ‘samgyupsal’ 같은 건 팔지 않아. 불행한 동네지.
-아. 그보다 고기 먹고 싶어졌어! 고기! 고기! 고기! 고기! :b
-내일은 고기 파티다! LA에 코리아 BBQ 판다고 했지? 진짜 간다!
-그나저나 오늘 작가님 opaenmu...?
ㄴlol
ㄴlolololololol
그날 제임스가 올린 SNS피드는 K-galbi와 K-samgyupsal 로 도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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