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꿈
월리는 술을 궤짝으로 마실 것 같은 다부진 생김새와는 다르게 약한 주량을 가지고 있었다.
기껏해야 맥주 3병 정도 마시면 머리가 어지럽다고 더이상 마시지 않던 월리였지만, 군대를 갔다 오고 나니 월리의 주량이 상당히 늘은 듯 했다.
‘아니, 그래도 조금 무리하게 마시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와 맥주 한 병을 가지고 월리 옆에 털썩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궁상맞게 혼자 뭐하냐?”
“......후우.”
월리는 들고 있던 맥주병을 잠시 옆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던 월리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어이 제임스.”
“왜?”
“넌 원래 꿈이 영화각본가라고 했었지?”
“어.”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처음 가본 영화관, 처음으로 느끼는 설렘, 불안감을 잊게 해준 영화.
[드래곤 블러드]에 푹 빠져있을 때 꿈은 본래 영화감독이었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감독보다는 영화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네 누나들도 그래..... 전부 꿈을 위해 집을 떠났잖아?”
평상시 보여주지 않는 월리의 진지한 모습에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캐서린도 틱틱 거리고는 있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서 노력하고 있어.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거겠지.”
월리는 소중한 친구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친구였지만, 내가 영어를 배우고 대판 싸우고 난 뒤 그 누구보다도 친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슬픔, 기쁨, 행복, 분노를 모두 함께한 소중한 친구의 말을 나는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너라면.... 아니, 애초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글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녀석이 작가가 되지 않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월리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 너희를 보니까 난 이 나이까지 뭘 하고 있나 싶다... 후우.”
영원히 어린아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각자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보며 ‘그래, 쟨 저럴 만 한 애니까.’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그냥 미련하고 게으른 자의 합리화일 뿐이었다. 월리는 이제야 자신의 꿈을, 직업을 찾고 싶었다.
‘제임스는 항상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책을 저렇게나 좋아하는 녀석이 꿈을 이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연습하듯 글을 쓰던 녀석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때론 부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었다.
“나 군대가려고.”
“.....뭐?”
“입대한다고.”
모병제인 미국의 입대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 중 필수인게 고등학교 졸업장이었다.
“너 고등학교..... 졸업 못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함께 미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느라 월리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GED 출신도 가능하다고 하더라. 지금부터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겠지.”ASVAB 즉 군입대평가도 있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군대에 입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계속해서 공부 중이다. 웬만하면 해병대에 갈 생각이고.”
“부사관으로?”
“그래.”
“한국으로 발령나면 면회는 가줄게.”
“너 미국 시민권 과정 중에 한국 나가도 되냐?”
“.....그런가?”
본래 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취득한 뒤 5년 뒤에 민권을 딸 기회가 주어지지만, 아직 시민권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뒤 메디슨 누나가 시민권을 받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하긴.. 뭐 시민권 따려면 미국역사도 공부해야 되고 선서도 해야되고 꽤나 복잡한 것 같더라.”
“뭐야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
“누나가 자기한테 맡기면 알아서 해주겠다고 했거든.”
“하긴 변호사니까 알아서 해주겠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월리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맥주병을 입가에 가져가며 씨익 웃었다.
“수류탄 던지는 것부터 가르쳐줄까?”
“꺼져.”
****
월리가 제 꿈을 찾아 나선다고 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글을 쓰자.”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집필했던 [사막의 제국]이 적혀있는 파일을 열었다.
“우선 이 4대 유물은 계속해서 가져가는게 좋겠다.”
유물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왕국을 다시 되찾는 스토리로 진행하자.
다만,
“비가 내리는 유물을 찾는다고 해도, 왕국은 어떤 방식으로 되찾을지가 중요한 건데...”
상대는 제 1왕자로서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고, 그 뒤로 하이에나라는 강력한 우군이 존재했다.
그에 반해 동료도 없고 무일푼인 툰툰. 만일 유물을 찾는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지킬 지가 문제였다.
‘빼앗길 수도 있단 말이지.’
툰툰은 유물을 지킬 힘이 없었다.
“흐음..... 역시 머리좋은 동료를 얻는 게 필수인 것 같은데.”
그런 조력자라면 해답을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툰툰에게 동료는 만들어줘야겠다.”
-뿌드득!
나는 손을 풀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
툰툰은 왕실에서 읽었던 문헌을 토대로 유물을 찾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이 가라앉을 때 푸른색 모래가 지상에 솟구치니, 빛과 어둠이 서로 공존하는 기일에 붉은색 괴수가 검을 지키고 있으리라.]’
문헌에 적혀 있는 ‘비를 내리게 하는 칼’이 있는 장소였다.
‘대체 어딜까?’
이 넓은 사막에 대체 이런 곳이 어디 있다는 걸까?
툰툰은 지도를 펼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런 툰툰의 곁으로 여우 한 마리가 다가왔다.
‘너도 유물사냥꾼이야?’
*****
“.....음.”
키보드에서 손을 뗀 상태로 짧게 적힌 스토리를 지그시 노려봤다.
“여우가 너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려나.”
작중 툰툰은 미어캣으로 서열이 가장 낮은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런 미어캣에게 먼저 다가갔다는 것 자체가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사막 여우한테 직업을 부여하자. 도둑, 도굴꾼, 사기꾼 뭐 이런 걸로.”
통칭 주인공 호구 만들기.
‘툰툰은 왕자였기에 너무 정직하지. 정직한 만큼 속이기 쉽기도 하고.’
그리고 그 점을 이용해서 권선징악이나 링링이 ‘선’의 모습으로 바뀌는 걸 보여주면 아이들 동화에 얼추 맞는 글이 될 것이다.
“시작해볼까?”
*****
자신을 링링이라 소개한 사막 여우는 유물 찾기에 동행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외로움에 지쳐있던 툰툰은 그저 동료가 생겼다는 것에 좋아했다.
‘순진하게 생긴 미어캣이니까 이 녀석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거야.’
링링의 곁에 툰툰 말고도 동료들이 있었다.
보물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링링과 팀을 이룬 동료들이었다.
‘보물을 갖는 건 미안하지만 나야.’
링링은 자신이 찾은 보물 지도에 관해 중요한 건 알려주지 않은 채 그들에게 설명했다.
‘함정이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을 잘 따라와야 해. 알겠지?’
‘응!’
링링은 함정의 위치를 교묘하게 숨기며 동료들을 하나하나 희생양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래. 툰툰이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 작전은 완벽히 성공했을 것이다.
‘왜 구하려는 거야! 우리는 보물을 ’찾으러’ 온 거라고!’
‘우린 보물을 ’가지러‘ 온 거야. 던전을 만든 사람도 혼자가 아닌 여러 동료들과 함께하길 원했을 거야. 그러니 한 명의 동료라도 버릴 수는 없어.’
동료가 함정에 빠질 때마다 구하려는 툰툰의 행동 때문에 계속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그러다 전부 죽을 수 있다고!’
‘그렇다고 동료를 죽게 둘 순 없어.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유물을 찾아야지!’
‘그러다 죽어!’
‘그럼 너 혼자가. 나는 동료를 구할 테니까.’
동료들이 희생되지 않자 보물을 혼자 독차지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링링은 마음을 다시 바꿨다.
‘헹! 여기서 전부 죽으라지!’
어차피 툰툰과 일행들은 함정을 찾는 방법도 모른다.
보물이 있는 방까지 거의 다 온 상태였기 때문에 링링은 동료를 구하고 있는 툰툰을 함정으로 밀어버렸다.
****
“아무리 동화라도 주인공이 너무 정직한가? 하아. 머리 아프네.”
스토리를 다시 적어야 하나?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끄응.....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자. 아동문학에 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보는 게 좋겠어.”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잠이나 자자.”
****
다음 날이 밝고 나는 컴퓨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생각나는게 아무것도 없네.’
머리가 텅 비었기에 무엇이든 내용이 생각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군가 생각하는 회로를 휴지조각으로 쑤셔 막아놓은 듯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바람을 쐬면 좀 낫겠지.”
하품을 하며 우선 집 밖으로 나왔다.
‘아직 새벽인가?’
저녁 늦게 잤으니 잔 시간이 5시간도 채 안된 것 같았다.
‘글만 생각해서 그런가? 깊게 자질 못하겠네.’
[몬스터 세계]를 집필했을 때는 마음에 무거운 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후우.... 전에는 그냥 글을 포기하면 됐었는데.”
습작 중에는 완결내지 않은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 스토리와 시놉시스를 짜 놓았음에도 중간에 막히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포기하는 건 아니야. 도망가지 말고 현실을 마주하자. 어제 캐서린한테 충고했는데 내가 포기하면 어쩌자고.”
어렸을 때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만 일삼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새로운 장르.... 그렇다면 역시 공부지.’
내가 아동 문학을 쉽게 집필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동심이 사라지고, 어린 시절 읽었던 그 시절 감성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처음부터 차근히 하나하나 책을 읽으며 서서히 아이들의 동심에 가까워져 보자.
그렇다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지.
“고모부는 일어나셨으려나?”
고모부는 밭을 관리하기 때문에 가족 중에서도 기상시간이 상당히 이른 편이었다.
‘가서 고모부 일 좀 도와드려볼까. 전역한 이후로 집엔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네.’
오늘 하루만큼은 글 생각보다는 몸을 움직여서 잡생각을 떨치고 싶었다.
고모부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터라 오래 걷지 않았음에도 금세 고모부 집에 도착했다.
-똑똑.
아침이라 초인종보다는 조용히 문을 두들겼다.
-다다다다다다!
그러자 문 안쪽에서부터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그야?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린데?
“아! 혹시 애니야?”
고모부의 다섯 번째 딸이다.
군대 가기 전만 해도 말하는 게 완벽하지 않았는데, 이제 뛰어다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들었다. 내 전역파티에 애니는 너무 어려서 오지 못했었다.
-우웅? 누그야? 나 애니 맞는데?
발음이 잘 되지도 않으면서 당차게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귀여웠다.
웅얼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나 제임스야. 혹시 문 좀 열어줄 수 있니?”
-아빠한테 무러볼게! 기다려!
“으, 응?”
-기다려!
-다다다다다다!
아빠 라고 외치며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발걸음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찾았다.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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