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20화 (20/216)

20화 드래곤 마스터

‘이, 이게 뭐야!’

함정에 빠진 동료들과 툰툰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을 데리고 온 링링은 좌절감에 빠졌다.

‘이런 건 적혀있지 않았어!’

보물지도에는 그저 제물이 필요하다고만 적혀 있었다.

함정까지 고려하여 충분한 동료를 데려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보물이 있는 방에 들어가자 턱없이 부족했다.

[살아있는 생명들이여 제단 위에 올라라. 그 수만큼 보물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현재 링링의 옆에 있는 건 고슴도치 하나와 쥐 하나뿐.

자신을 포함해 봤자 기껏해야 3명이고, 3명 만으로는 좋은 보물을 얻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

“제물이라곤 말했지만 아이들이 읽는 책인데 살아있는 생명을 바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고..... 무게에 따라 열리는 자동문처럼 ‘생명의 무게’에 따라 보물의 질이 바뀌는 걸로 하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링링이 동료를 구하러 다시 가는 걸로 할지..... 좌절한 링링의 곁으로 동료를 구한 툰툰이 오는 것으로 할지.....”

두 개 다 장단점이 있었다.

‘링링이 동료를 구하러 간다는 상황으로 가면, 함정에 빠진 동료들이 더 이상 링링을 믿지 않게 되는 스토리로 가야 돼.’

아무리 순진하더라도 함정에 빠진 상황에서 가차없이 등을 돌린 링링이 나쁘다는 건 알 것이다.

‘다만, 링링의 직업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황이기도 하지.’

필요하면 구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구하지 않는다.

도굴꾼에 가까운 성격을 충분히 보여주는 장면이 될 수도 있었다.

‘툰툰이 동료들을 구하고 오는 장면에서도..... 더 이상 동료들은 링링을 믿지 않겠지.’

-톡.... 톡.....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던 제임스는 다시 스토리를 확인했다.

‘링링이 좌절하는 장면을 끝으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 링링의 심리가 변해야 할 타이밍을 주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게 좋겠어.’

****

툰툰은 링링이 버리고 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상을 입은 동료도 있었고, 멀쩡한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툰툰은 부상의 경중에 따라 구할 생명을 고르지 않았다.

낙타를 구할 때도, 겁 많은 하이에나를 구할 때도, 단단한 아르마딜로를 구할 때도 툰툰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는.....’

툰툰은 그들의 답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중얼거리듯 선언했다.

‘왕이 되어야 하니까.’

툰툰의 중얼거림을 들은 동료들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

제임스는 그 이후로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키보드와 제임스의 손이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것처럼, 제임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써내려 갔다.

“....메디슨 언니?”

제임스가 며칠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시피 하자 이사벨은 조용히 전화기를 들었다.

이사벨은 제임스가 방에 틀어박힌 후 갑자기 온 연락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편한 상태였다.

제임스가 전역한 날부터 말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응. 이사벨 무슨 일이야?

“그게..... 오빠가 또 방 안에서 안 나오는 것 같아서.”

-마그누스 감독님이랑 잘 이야기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습관이라는 건 쉽사리 변하지 않나보네.

“그래도 밥 때가 되면 내려오긴 하더라고. 밖으로 나가진 않지만.”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차차 나아지겠지. 아무튼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실은 말이야.....”

[사막의 전갈]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이사벨은 제임스의 다른 습작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분명 그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재밌는 작품이 있었다.

제임스의 보물창고에 계속 썩혀두고 있자니 마치 제 작품인양 아까워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저질렀다.

-.....미쳤어?

“히잉..... 오, 오빠 소설이 잘 되길래 전역하기 일주일 전에 다른 작품도 투고해봤는데..... 이틀 전에 연락이 왔어.....”

제임스가 전역하기 일주일 전에 투고한 출판사에서 계약하자고 전화가 온 것이다.

-너! 그 이상으론 없다고 했잖아!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어서 그냥 씹힌 줄 알았어.”

-이사벨! 그래도 제임스한테 말을 했어야지! 왜그렇게 앞뒤 생각없이 행동하는 거야! 제임스한테 뭐라고 설명할 건데!

“오, 오빠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집필하고 있을 때 신경쓰이게 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언니한테 먼저 털어놓는 거야.”

-하아.....

메디슨의 한숨에서 ‘얠 어째야 하나’ 라는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사벨은 항상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라 가족 내에서도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뒤처리는 항상 메디슨의 몫이었다.

-이것도 [사막의 전갈]처럼 여러 곳에 투고한 거야?

“아, 아니야! 그냥.... 그게.....

-똑바로 말 안 해!

“하, 한 곳에만 투고했어! 한 곳에만!

-한 곳? 거기가 어딘데?

“SC라스틱.....”

-......야! 너.....! 거긴.....!

번개흉터 마법사와 시간을 달리는 마술사 등.

세계에서 유명한 아동문학의 출판을 담당하는 곳이자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 출판사였다.

-너! 대체 무슨 책을 투고한 건데! 요즘 제임스가 쓰고 있는 것도 아동문학인 거 몰라!?

“나, 나도 최근에 알았다고.... 그리고 출판사에선 한참동안 연락이 없었단 말이야..... 당연히 씹힌 줄 알았지.

-하아.... 보통 [사막의 전갈]처럼 빨리 연락오는 소설이 드문 거야. 반년 후에 연락이 올 때도 있다고!

메디슨은 제임스 일을 다방면으로 도와줬던 터라 출판업계에 대해 빠삭한 편이었다.

-아동문학 출판사면..... 제임스가 어릴 때 썼던 책이겠네? 대체 뭘 보낸 건데?

제임스가 가장 싫어하는 습작은 중학생 그 이전인 초등학생 때 쓴 소설이다.

맞춤법부터 내용의 스토리까지 모든 것이 중구난방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라, 이사벨한테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은 소설이었다.

입대 전에 혹시 몰라 암호화까지 걸어놨는데 그걸 이사벨이 확인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드래곤 마스터].....”

-언제 적은 건데?

“..... 초등학교 시절에 적은 걸.....껄?”

-하아.... 난 모르겠다. 끊어.

“어, 언니! 제발! 부탁할게! 같이 혼나줘.....!”

-뚝!

“.....”

메디슨은 매몰차게 이사벨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 어떡하지 오빠가 알면 화낼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냐.”

“.....!”

뒤에서 들려오는 제임스 목소리에 이사벨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감자칩을 먹고있는 제임스가 있었다.

“오, 오빠가 여긴 어떻게......?”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냉장고 좀 뒤지러 왔지. 감자칩 밖에 없었지만.”

“오, 오빠 글은 다 썼어?”

“응. 다 썼어. 근데 내가 글에 너무 집중했나? 귀가 이상해졌나봐. 우리 착하고 귀여운 이사벨이 분명 더 투고한 게 없다고 했는데 말이야. 내 귀가 잘못된 거 맞지?”

“......진짜 미안해 오빠.”

“널 어째야 좋을지 일단 어떻게 된 건지부터 듣고 나서 판단할게.”

“봐, 봐줄 수도 있다는 거야?”

“응. 대신 고모부한테 용돈 한 달 정도 끊으라고 말해둬야겠다.”

“안 돼.....”

“나니까 이 정도로 봐주는 거지. 남이었어봐. 바로 재판행이야.”

바삭!

오늘 따라 입안에 들어오는 감자칩이 유난히 짭짤했다.

****

[드래곤 마스터]

무얼 숨기랴 [드래곤 블러드]를 보고 감동받아 적은 내 인생 첫 글이다.

첫 글이다 보니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아냈고, 막히더라도 계속해서 적어서인지 총 3부작으로 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3부작까지만 적고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 이 이상으로 적진 않았다는 것이다.

“......씹힌 줄 알고 나한테 말 안했다고?”

“응.....”

“후우.....”

나는 이사벨한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사벨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내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핸드폰 달라고.”

“응? 아.... 응.”

“그쪽에 전화 걸어서 줘.”

“아, 알았어.”

-띠리리리~♪

연결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아! 작가님!

핸드폰 너머로 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여보세요.”

-.....어? 누구시죠?

“제가 [드래곤 마스터] 작가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 사촌동생이 제 글을 멋대로 투고한 상황입니다.”

-어머! 그러시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요. 제 소설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신 걸까요? 뭣도 모를 나이에 썼던 글이라 그냥 어중간하면 출판하지 않을 생각이거든요.”

-아뇨아뇨!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두고 출판하지 않는다뇨! 이런 글을 출판하지 않으면 저희가 욕먹어요!

무려 SC라스틱이다. 아동문학의 성지.

판권만 사두거나 뼈대만 남기고 A부터 Z까지 수정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답변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원래 보내주신 투고소설을 읽자마자 바로 연락드릴 생각이었어요! 근데 이게 사정이 있어서 내부 회의를 거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거든요. 혹시.... 벌써 다른 곳하고 계약하셨나요?

“아뇨.... 아직.”

-다행이네요! 회사 사정 때문에 너무 늦게 전화드리는 건 아닌지 고민했거든요. 이틀 전에 전화 받으셨을 때도 뭔가 탐탁지 않아 하셔서요.

“아...”

-혹시 어디신가요? 제가 한 번 찾아 뵙고 계약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아! 혹시 다른 소설도 출간하신 적 있으실까요? 필명은 기재해두지 않으셔서 혹시 신인 작가님이신가 해서요.

“드래곤 원입니다.”

-......네?

“필명이 드래곤 원입니다.”

-어..... 혹시 [사막의 전갈]을 집필하.....신?

“네. 맞습니다.”

-자, 잠시만요! 잠깐만 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작가님! 꼭 기다려주세요! 팀장님! 팀장니이임!

-뚜우... 뚜우.... 뚜우.....

반대편 여자는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횡설수설하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나는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사벨.”

“으, 응?”

“이제 일어나.”

“진짜?”

“응. 고모부한테 가야지. 두 달은 끊어야겠다.”

이사벨의 얼굴이 나라를 잃은 마냥 시무룩해졌다.

****

SC라스틱은 [드래곤 마스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무심했다.

철자가 많이 틀려있는 작품이라 SC라스틱 관계자들은 초반 몇 장을 읽어보다 기본이 안돼있다며 무시해버렸다.

게다가 1권의 성적을 모른 채로 3권까지 출판계약을 해야 하는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SC라스틱은 [드래곤 마스터]를 방치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인 루시아는 초반부터 설정에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 철자가 틀렸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게 아까운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수정했다.

‘이게 뭐야......’

루시아는 글을 수정하면 수정할수록 흥미가 가득해지는 세계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는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살릴 수 있다.....고?’

루시아는 야근까지 자초하며 [드래곤 마스터]라는 책을 끝까지 수정했다.

이 책은 무시당하면 안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팀장님! 제가 수정을 조금 해놨는데 한 번만 봐주시겠어요?”

루시아는 1부 수정을 끝마치고 팀장한테 서둘러 작품을 보냈다.

“[드래곤 마스터]? 이름만 봐도 유치해보이는걸..... 지금 시장은 [사막의 전갈] 영화화로 그쪽에 관심이 몰려있으니까 나중에 사그라들고 수정하지, 시간 아깝게.”

최근 팀장이라는 작자는 [사막의 전갈]에 빠져 있어서인지 투고된 원고들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열정적인 루시아의 부탁에 속는 셈치고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루시아 혼자 한 수정작업이었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장르소설 출판사 팀장이라는 직함은 괜히 오른 게 아니었다.

수정이 안 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드래곤이 있는 세계, 그 드래곤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년..... 무엇보다 이 드래곤들의 행동들은 동물의 행동에서 가져온 건가?’

드래곤을 지키고자 하는 소년과 드래곤을 죽이고자 반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을 위협하는 제 3의 존재까지.

“루시아! 얼른 연락해! 얼른! 다른 출판사가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 돼!”

“앗 넵!”

“나도 도와줄 테니까! 아니, 지금 바로 대표님 만나고 올 테니까 이 건은 루시아 네가 주도 해서 꼭 계약 따내!”

신입사원 루시아, 초심자의 행운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