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드래곤 마스터 2
[드래곤 블러드]는 드래곤의 피를 우연찮게 먹게 되어, 드래곤의 육신과 인간의 육신을 가지게 된 청년이 인간사회 속에서의 차별을 이겨내는 이야기였다.
‘드래곤은 왜 나쁘게 그려지는 거지?’
당시 드래곤을 주축으로 내세우던 작품들은 그들을 사나운 짐승으로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용은 나쁘지 않은데.’
어렸을 때 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이름에 들어간 용(얼굴 용[容])이 드래곤과 똑같은 뜻인 줄 알았다.
그렇기에 드래곤이라는 신수를 나쁘게만 표현하는 서양의 용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동양의 용은 신성하지만, 서양의 용은 어딘가 사악하고 포악한 존재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난 나쁘지 않아!’
이름에 용이 들어간다는 착각 때문에 용이 나쁘게만 그려지는 스토리에 반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용의 상(像)을 작품에 투영했다.
‘길을 돌아다니는 고양이, 먹이를 노리는 강아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둘기, 쓰레기를 파먹는 까마귀,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 모든 동물들의 특징을 드래곤에 입히자!’
나약했던 소년의 이야기.
당시의 나를 생각하면서 적었었다.
학교에선 다른 언어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하고, 계속되는 차별과 힘들어진 미국 생활을 각색하여 이야기로 풀어냈다.
‘버림받은 돌연변이 용과 외면 받은 왜소한 몸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
그 둘이 만나며 이루어진 ‘학교’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다.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던 때라 철자가 맞지 않아 거슬리긴 했지만, 과거에 적었던 [드래곤 마스터]를 보자 어딘가 뭉클해졌다.
“허술한 부분이나 철자는 최대한 수정해봐야겠는데? 후아암~”
수정할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많았지만 지금까지 [사막의 제국]을 집필하느라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자.’
나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
SC라스틱 장르소설부의 편집장 스티븐은 신입사원 루시아와 함께 긴장되는 얼굴로 대표실로 향했다.
-똑똑.
“스티븐입니다. 말씀하신 신입사원 루시아와 함께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루시아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스티븐과 함께 대표실로 발을 들였다.
정면으로 보이는 대표실 책상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환갑 정도의 노인이 흥미롭다는 듯이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아, 안녕하세요......”
그제야 노인은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으세요.”
SC라스틱의 대표 헤리 로빈슨이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자, 그 둘은 긴장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대표와 이야기하는데 긴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고 읽어봤어요. 솔직히 내용이 매끄럽지 않아서 중간중간 가독성이 좋진 않았지만요.”
루시아가 뜨끔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대표를 바라보려다 말았다.
수정작업을 하긴 했지만 이대로 출판할 수준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이 글이 대표님까지 넘어갔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감안하더라도..... 무척 재밌는 이야기더군요. ‘드래곤’이라는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 무척 신선했습니다. 몬스터가 아닌 파트너라..... 무척 ‘소년’스러운 스토리에요.”
헤리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읽을 때 저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이 나이에 동심이라니... 60이 다 돼서 이렇게 동심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스토리만으로 무려 50년 전 감성을 끄집어 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드래곤 마스터]의 작가가 [사막의 전갈]을 집필했다던 드래곤 원이라고 했습니까?”
“네.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SC라스틱이 귀인을 모시게 됐군요. 필명도 드래곤이어서 그런지 [드래곤 마스터]에 나오는 드래곤들을 아주 정성스럽고 귀엽게 묘사하셨더군요. 정말 재밌었습니다.”
헤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계약해 오세요. 선인세를 많이 주어도 괜찮습니다. 회사경비는 신경쓰지 마시고 어떻게 해서든 드래곤 원 작가님과 계약하세요.”
파격적인 대표의 말에 루시아와 스티븐이 서로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봤다.
선인세를 주지 않아도 SC라스틱에 오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차고 넘치는데.. 경비를 신경쓰지 말라니...
분명 재미있고 매력적인 소설이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루시아라고 하셨죠?”
“네, 넵!”
“아주 잘 했어요. 계약이 진행된다면 이번 월말 보너스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앗... 감사합니다!”
“물론 계약한 후에 말이죠.”
루시아는 은근히 압박을 주는 대표의 모습에 꿀꺽 침을 삼켰다.
한때 세계 아동문학을 지배했던 SC라스틱의 주인이 이 작품이 계약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
그 이후로 내가 완전히 일어난 건 다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수면패턴이 일관되지 않아 몸이 무거울 법도 한데,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상쾌했다.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책상 위에서 충전중이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가 뭐 이리 많이 왔어?”
30번이나 부재중 전화로 찍힌 번호가 있었다.
“아.....”
그제야 SC라스틱 관계자가 급하게 전화를 끊으며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빨리 전화할 줄은 몰랐는데. 지금 전화해도 되려나?”
새벽은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이었기에 출근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전화한 건 역시 급하다는 의미겠지. 전화 해보자.’
전화를 걸려던 그때였다.
-똑똑.
-일어났니?
“응. 일어났어. 왜?”
-손님 오셨다.
“손님? 누군데?”
-루시아라고 하시던데? SC라스틱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하더라고.
“.....이곳에 왔다고?”
-응. 스티븐이라는 남자하고 같이 왔어. 씻고 얼른 나와.
“알겠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작품을 좋게 봐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동문학 전문이니 [사막의 제국]에 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
[몬스터 세계]는 에밀라와 로건으로부터 재밌다는 말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막의 제국]은 오히려 혹평 속에서 집필을 시작했기에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나저나 [드래곤 마스터]가 그렇게 재밌었나? 이른 아침부터 집까지 찾아오는 걸 보면.’
사실 열 번의 메일을 주고 받는 것보다, 한 번의 대면만남이 계약으로 성사되기 쉽기 때문에 SC라스틱의 방문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크, 얼른 나가자.’
간단하게 세안을 한 뒤 뜬 머리를 모자로 누른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
****
“제 친구 중에 한국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할 땐 선물을 가지고 가면 좋다고 들었습니다. 별 것 아닙니다만.....”
금색 머리의 중년 남성이 부모님한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네고 있었다.
“어머. 이런 걸 다....”
“아닙니다. 드래곤 원 작가님의 부모님이신데 당연한 선물입니다. 하하하하.”
처세술이 능숙한 사람인지, 아니면 이런 경우가 익숙한지 중년 남성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빠와 엄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한 에이전트인가?’
그 옆에 이런 경우가 처음인 듯 우물쭈물하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금색 머리에 푸른색 눈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서양 미인이 아마 나하고 전화로 얘기했었던 사람인 것 같았다.
“아. 왔네요.”
“그럼 저 분이 드래곤 원 작가님...이십니까?”
“네. 계속 글만 쓰다가 내리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안색이 그리 좋지는 않네요.”
부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엄마는 집에 계세요. 저희가 밖으로 나갈게요. 그래도 되나요?”
“예. 물론입니다. 하하. 계약을 진행하려고 온 입장으로서 민폐가 되면 안 되지요.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희가 시골사람들이라 아침에 부지런하거든요. [용일아 이분들 아침이 아직인 것 같으니 식당으로 가거라].”
“네.”
아빠는 뒷부분을 한국말로 하셨다.
이른 아침이라 여기서 식사를 할 곳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듣는다면 한사코 사양할 테니 따로 말씀하신 거였다.
“그럼 나갈까요? 제가 조용한 곳을 압니다.”
“네. 작가님.”
“네, 넵!”
나는 노트북을 챙겨서 그들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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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은 마을하고 조금 떨어져 있기에 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그래도 음식 맛이 뛰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찾는 곳이었다.
거기에 24시간 운영하고 카페까지 같이하다 보니 아침밥을 먹기에 제격인 식당이었다.
“제가 살게요. 두 분 다 아침 안 드셨죠?”
“아뇨아뇨. 당연 저희가 사야....”
“얼마나 한다고요. [사막의 전갈] 집필하면서 꽤 벌었으니 이 정도는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직접 와주시기도 했고요. 그냥 편안하게 드세요.”
“그럼.... 하하. 맛있게 먹겠습니다.”
자신을 스티븐이라 소개한 남성은 옆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의 어깨를 툭 쳤다.
“네, 넵! 감사히 먹을게요.”
“별말씀을.”
미국음식이 입에 썩 맞는 건 아니었지만, 아침만큼은 미국식으로 먹는 걸 좋아했다.
베이컨과 스크램블, 거기에 딸기잼이 발라져 있는 식빵과 커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자 스티븐과 루시아도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분위기가 좋은 곳이군요.”
스티븐은 바삐 돌아가는 식당이 마음에 드는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이 많아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나올 때까지 일 이야기나 할까요?”
“저희야 환영입니다. 아. 주무시느라 못 들으셨을 것 같지만 메디슨 변호사님께 이미 계약서를 보냈습니다.”
“일처리가 빠르시네요.”
“물론이지요. 드래곤 원 작가님과 함께하기 위함인데요. 안그래도 바쁘실텐데 최대한 신경쓰시지 않게끔 처리해야지요. 하하하하!”
스티븐은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인세 비율 15%입니다.”
“.....15%요? 저야 좋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요즘 출판시장이 EBOOK에 밀려서 힘들다고 들었는데.....”
“대표님한테 허락받은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와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출판시장 또한 ebook에 밀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보통 5~10%의 인세율을 받는 종이책 시장이다 보니 15%는 정말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이건 종이책 한정입니다. 저희도 EBOOK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전자책 인세율은 20~30% 수준이지만 저희는 작가님한테 51%를 드리겠습니다.”
“.....!”
미국에서 전자책은 아직 종이책보단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러더라도 51%는 상당한 유혹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전자책 비율을 40% 정도 가지고 간다고 들었는데...
SC라스틱이 얼마나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지 절실히 느껴지는 제안이었다.
스티븐이 건넨 서류는 메디슨 누나가 이미 확인했다는 계약서였기에 안심하고 중요한 부분만 읽을 수 있었다.
“깔끔하네요.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 사촌동생이 보낸 원고는 보셨다시피 오타가 심하고 내용에 허술한 점이 있습니다. 그걸 그대로 출판하는 건 작가로서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원고를 수정한 후에 출판해도 될까요?”
“그야 물론입니다.”
“그럼 계약하겠습니다.”
나는 펜을 꺼내서 계약서에 내 이름을 적었다.
“저희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래곤 원 작가님을 모실 수 있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좋은 조건을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스티븐과 악수한 뒤 동경어린 표정으로 계약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한테도 손을 내밀었다.
“제 소설을 알아봐주신 분이시죠? 부족한 소설이었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뇨! 그렇게 재밌는 소설인데 제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알아챘을 거예요.....”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죠.”
루시아는 마치 유명 연예인을 만나 떨려하는 소녀팬처럼 제임스의 손을 붙잡았다.
“패, 팬이에요! 제가 이런 계약자리에는 처음 와봐서 그런데.....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 손을 놓자마자 가방에서 [사막의 전갈] 책을 꺼내서 내밀었다.
“루시아! 치사하게 선수치냐! 저도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둘 다 몇 번이나 읽었는지 책 표지가 너덜거릴 정도였다.
같은 작품을 재탕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저도 부탁이 있는데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저희한테 부탁이요...?”
“제 세 번째 작품 [사막의 제국]을 좀 봐주셨으면 해요.”
“.....!”
“.....!”
현재 소설책 시장에서 가장 핫한 드래곤 원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그 글을 출판 전에 먼저 읽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들의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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