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계약
우물우물
어린 시절부터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어 먹는 걸 좋아했다.
군대에서도 목요일과 토요일 아침마다 나오는 햄버거 빵에 딸기잼과 패티만 넣고 먹을 정도였다.
‘언제까지 보시려나?’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와중에도 스티븐과 루시아의 시선은 여전히 노트북에 머물러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다 식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 둘은 내 글에 온전히 집중했다.
‘어떠려나.....’
어른으로서 찾기 어려운 동심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 어떤 소설보다도 심혈을 기울였다.
‘재미없다면 여기서 끝. 더이상 동물이 나오는 아동문학은 적지 않겠어.’
소설이 평가를 앞두고 있지만, 딱히 마음졸이진 않았다.
재밌을 거라고 자신만만한 건 아니었고 그저 [사막의 제국] 집필을 끝냈을 때 느꼈던 후련함만이 지금 마음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티븐과 루시아는 미묘하다는 표정으로 노트북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다음 화는요?”
“그게 완결인데요?”
“......에이 설마요.”
“완결 맞아요.”
내 말에 그 둘은 급격하게 침울해졌다.
“작가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 끊는다니요? 독자들의 원성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흥행에 따라서 몇 부작 정도는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끄응..... 다음 권이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끊는다니요.”
“독자들이 좋아해주시면 더 써야죠. 아무튼 어땠나요?”
“정말 재밌었어요!”
“으음.....”
재밌었다고 눈을 빛내는 루시아하고는 다르게 스티븐은 약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스티븐?”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어서 두 분께 보여드린 겁니다.”
스티븐은 노트북을 돌려 어느 부분을 찾은 뒤 나에게 내밀었다.
[사막의 모래결이 흘러내리는 계곡 안에서 툰툰은 자신의 타오르는 심장이 세상의 어둠에 잠식당하는 것 같았다.]
[남들은 어둠에 갇혀진 세상을 한 줄기의 빛으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하지만, 눈앞에 타오르는 장작이 그 소문을 증명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만일 이게 [드래곤 마스터] 혹은 [사막의 전갈]이었으면 의미심장한 문구로 인해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른들의 사정입니다. 아이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용을 조금 더 간략하게 하던가 아니면 삭제하시는 게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적었는데... 아동문학에선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독까지는 아닙니다만, 아이들이 읽는데 흐름이 끊기는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글마다 성향이 다르니 아이들이 그냥 재밌게 읽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무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도 되네요.”
“그렇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원하는 솔직한 답변이었는데 죄송하다니요.”
“[드래곤 마스터]는 작가님이 어린 시절에 적으신 거라 그런 ‘스킬’이나 ‘기교’가 없다고 할까요. 직관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기 편할 거라 생각됩니다. 주인공도 소년이니까요.”
“후우..... 아동 문학..... 만만히 봤는데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내 말을 들은 스티븐은 그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설은 ‘성인’ 혹은 ‘청소년’을 잡기 위해 써집니다. 그렇기에 잔혹한 묘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작가님 그거 아십니까?”
“뭘요?”
“대다수의 소설들은 ‘아동문학’을 기준으로 잡지 않고 쓴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백설공주가 있습니다.”
“백설공주?”
“18세기에 만들어진 ‘어른들의 문화’가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백설공주입니다. 원작 내용 중에는 계모가 공주를 괴롭힌다고 나오는데 이는 거짓이며 본래는 친엄마입니다.”
“어.....?”
“뿐만 아닙니다. 백설 공주의 심장을 요리해 먹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물론 돼지의 심장을 공주의 심장으로 숨긴 거지만요. 이 외에도 달구어진 쇠로 만든 구두를 신는다는 등 잔인한 내용이 많습니다.”
“처음 듣는 내용이네요. 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알겠어요.”
세계에 유명한 동화들조차 본래의 목적은 아동이 아닌 성인들을 위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여러 번 각색되고 아이들이 읽기 쉽게 다시 재조명되어 만들어졌지만, 그 전에는 어른들도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묘사가 많았다.
최근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번개 흉터 마법사였다.
평범한 장르 소설 출판사에 맡기려 했지만 밀리고 밀려 결국 아동문학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너무 아이들만 생각해서 집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 지금의 [사막의 제국]처럼 글을 쓰신 뒤 천천히 수정하며 아이들이 읽기 좋은 글로 만드셔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군요...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한 방 맞은 기분입니다.”
“이 부분은 저희가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스티븐은 기회를 포착한 사자처럼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런 부분은 작가님이 힘들어 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SC라스틱은 작가님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사막의 제국]을 저희한테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차피 [사막의 제국]은 SC라스틱에 맡길 생각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수락하려는 순간 내 눈에 노트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가 보였다.
“어떠세요?”
“네, 네?”
“방금 팀장님이 말하신 내용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그건..... 그러니까....”
스티븐은 씽긋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이 식당 흡연구역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밥을 먹었더니 피고 싶어지는군요. 하하하!”
“식당에서 나가기만 하면 상관없습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밥을 한 숟가락도 들지 않은 스티븐은 루시아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줬다.
“어땠나요?”
“저는.....”
*****
스티븐은 10년 동안 금연을 성공한터라 밖에 나가서도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었다.
근처 자판기에서 콜라 한 잔을 사마시며 핸드폰을 하다가 1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식당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제임스와 루시아가 앉아있는 식탁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설마 루시아가 무슨 실수를 한 걸까?
스티븐이 서둘러 식탁으로 향하니, 노트북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제임스와 그런 제임스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루시아가 있었다.
“루시아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려는 순간 스티븐의 귓가에 제임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티븐 [사막의 제국] 수정은 루시아 씨한테 맡겨 봐도 되나요?”
“예, 예?”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서에 사인할게요.”
딸꾹!
루시아는 새파래진 얼굴로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
스티븐과 루시아를 공항까지 데려다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일하러 갈 준비를,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이야기는 잘 끝냈냐?”
“네. 잘 마무리 됐어요. 일가시게요?”
“그래. 너도 갈래?”
“당신은.... 애 글 쓰는데 피로하게 왜 데려가려고 그러세요?”
“아니에요. 운동도 하고 좋죠. 저는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먼저 가 계세요.”
요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글만 쓰다보니 온몸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몸도 움직일 겸 농사일을 도와드리는게 좋겠지.
나는 방으로 돌아가 농사일에 걸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공기 좋네.’
몬태나주에는 한국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고모부는 이민 온 한국사람들한테 땅을 빌려준 뒤 자릿세를 받기도 한다.
고모부가 갖고있는 땅 면적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220만 개의 농장이 있고 총 면적은 3백7십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미국이 가진 힘이 군사력도 있지만 농업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소도시만 하지.’
고모부가 가지고 있는 땅의 면적은 대략 60만평 정도.
미국에서 가장 큰 농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관리하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니까.’
몬태나 주는 날씨가 금방 추워지기 때문에 농사일을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다.
농사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기껏해야 6~8월정도, 9월이 넘어가면 눈이 올 때도 있었기에 그 안에 밀이나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그리고는 가축을 기르기도 하는데 역시 가장 인기 있는 건 소였다.
“여어! 제임스!”
“응? 월리? 공부 안 해?”
평소 일하기 전에 모이는 곳으로 가자 월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돈이 떨어져서 말이야. 일당 준다고 하셔서 며칠만 일하려고.”
“뭘 하길래 돈이 떨어졌는데?”
“차 사고, 컴퓨터 사고, 문제지 몇 권 사니까 다 썼어. 어차피 집에만 있느라 몸이 굳었는데 잘 됐지 뭐.”
역시 괜히 절친은 아닌가보다. 똑같은 이유로 나온 걸 보면.
“응? 제임스도 왔네?”
마침 고모부가 오셨다.
“돈은 많이 못 준다?”
“상관없어요. 몸이나 풀려고 나온 건데요 뭘.”
“그래? 노예... 아니 일꾼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서 좋네.”
저렇게 말하셔도 농부들은 수입이 나쁘지 않다.
고모부는 1년에 한화로 2억 정도 되는 수입을 벌어들이고, 농부들도 억은 안되지만 한화로 6 천만원 정도 되는 수입을 가져간다.
“오늘 할 거 설명해 줄 테니까 모두 모여!”
****
“후우.....”
“오랜만에 하니 힘드네.”
“그래도 몸을 움직이면 머릿속에 생각이 적어져서 좋단 말이야.”
“예전에 네가 그런 말 할 때마다 무슨 개소린가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월리와 나는 일을 끝내고 마을 길거리에 앉아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기고 있었다.
“정말 미친 동네야. 이렇게 더우면서 9~10월이 되면 눈이 내리잖아.”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 왔었네?”
“누군데?”
“블루스타게이트”
“그럼 영화 관련해서 전화온 거 아니야?”
“그러게. 일단 전화 해봐야겠지? 그 전에 SNS 좀 하고.”
“그러고 보니 너 요즘 또 SNS 활동 안 하더라?”
“바빴으니까. 뭐 올릴 것도 없는데 이 광활한 동네 사진이나 하나 찍어서 올릴까?”
“동네 사진 찍었다고 너 찾으러 오는 거 아니냐?”
“에이. 비슷한 동네가 한두 개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냐? 그리고 관광객들 오면 마을에도 좋지 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거리를 찍어 SNS에 올렸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일하느라 SNS 활동을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을 계약했습니다.
[드래곤 마스터]
귀여운 드래곤들과 함께하는 소년의 성장 스토리입니다.』
월리는 내가 올린 SNS를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성의없다. 이런 녀석이 스타작가라니.....”
“시끄러. 그리고 스타 아니야. 고작 한 작품 성공했는데 무슨 스타작가야.”
나도 너무 딱딱한 게시물이 찔리긴 했지만, 그래도 더 이상 적을 말이 없었다.
“나 전화 좀 하고 온다.”
“그냥 전화하면서 집에 가. 나도 이제 집에 가게.”
“그래. 아. 근데 캐서린은 아직도 하루종일 글 쓰는 중이냐?”
“아니, 이제는 하루에 5시간 정도만 글 쓰는데 집중하더라고. 그래도 막히는지 끙끙거리고 있어.”
“뭐. 그런 건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해야지. 아무튼 수고해라.”
“그래.”
월리가 떠나고 나는 블루스타게이트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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