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Q&A 2
블루스타게이트로부터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우 선정이 끝이 났으니, 장소를 찾고 예산을 확보하고 스태프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대한 답을 받았다.
-작가님, 한 번 더 제작사로 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필요하다면 그래야죠. 언제까지 가면 되나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어차피 집필도 끝났으니까 내일 바로 출발할게요.”
-아! 저도 봤습니다! [드래곤 마스터]라고 하셨지요? 크으.... 드래곤 원 작가님의 판타지 소설 얼른 보고 싶습니다! 근데 아쉽네요.... 저희 제작사는 판타지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데요....
아직 계약만 했을 뿐인 작품에 벌써 영화화 얘기를 꺼내다니.
백인한테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한스의 침울한 음색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그럼 오전에 출발하겠습니다.”
-넵! 비행기표는 저희가 예약해드리겠습니다!
“아. 혹시 한 명 더 가능할까요?”
-누구와 함께 오실 생각이신가요? 혹시 부모님.....
“아뇨. 동생인데 경험 삼아 데려갈까 하고요. 괜찮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비행기 표 2매 예약해 놓겠습니다!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하여튼 감사합니다.”
-이 정도는 부담도 안 됩니다! 전세기라도 빌려서 보내드려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비행기표 감사합니다.”
-하하하! 언제든지 말씀하시면 전세기도 고려해보겠습니다! 계약한 입장이 아닌 한 사람의 팬으로서 작가님을 정말 최선을 다해 모시고 싶으니까요!
한스는 진심으로 말했다.
난다긴다하는 제작사들을 제쳐두고 블루스타게이트가 선택받은 데엔 원작자 제임스의 힘이 컸다.
소중한 작품을 맡겨준 만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넵!
한스와 전화를 마치자 저물어가는 해가 보였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띠리리리링♪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의 주인공은 에밀라였다.
“에밀라?”
혹시 [드래곤 마스터]를 다른 곳이랑 계약한 걸 보고 전화한 건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일단 전화를 받았다.
“네. 에밀라 오랜만이에요.”
-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어쩐 일로 전화주셨는지......”
-아! 우선 [드래곤 마스터] 작품 계약 축하드려요! 함께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요. 그래도 작가님이 저희 출판사에 [드래곤 마스터]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게 이해가 되네요.
에밀라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라도 아동문학에 있어선 SC라스틱을 택했을 것이다.
드래곤원 작가님과 함께 할 기회가 이번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몬스터 세계]부터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진행 상황 업데이트 해드리려구요! 책 출판을 시작할까 하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8월 12일부터 각지에 있는 서점에서 판매를 시작할 거예요.
“슬슬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8월 12일이면.... 네. 알겠습니다.”
15일 뒤인 8월 12일이면 내 생일이었다.
굳이 생일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에밀라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이날이 작가님 탄생일이시잖아요?
“탄생일이라고 하니 조금 부끄럽네요. 하하.”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저희가 작가님 탄생일 겸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거든요.
“이벤트요?”
-네! 우선 메시지 보내드릴 텐데 지금 바로 확인 부탁드릴게요!
-띠링!
나는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메시지함으로 들어가 에밀라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건..... 양장본?”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가진 양장본 시안들이 도착해 있었다.
-네! 맞아요! 저희가 작가님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 출판 시작일에 맞춰 양장본을 100권 정도 만들까 해요!
“100권이나.....”
-가족분들이나 친구분들한테 감사의 의미로 선물로 드릴 수 있게요!
나는 에밀라의 말에 다시 메시지를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10개 가까이 되는 양장본 시안엔 하나도 겹치는 디자인이 없었다.
에밀라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정판 하드커버 책이라니..
“제목은 [몬스터 세계]그대로 가실 건가요?”
-아뇨. 그것도 여쭤보려고 했어요! 작가님이 저희한테 제목을 맡겨주신 후 몇 가지 생각한 게 있는데 이 중에서 골라주셨으면 해요.
“네. 말씀해 주세요.”
-[몬스터 뒷세계], [블랙 & 월드], [몬스터 히어로], [블랙 히어로].......
에밀라가 말해주는 제목 중에서 나는 가장 어울리는 제목을 골랐다.
“[블랙 & 월드]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계의 어두운 면에 있는 몬스터 세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아! 참고로 양장본 안에 일러스트도 추가할 생각이에요! 물론 출판될 책들도 일러스트는 있지만, 양장본에는 조금 더 특별하고 색채감 있는 일러스트를 추가할 생각이에요!
“마음에 드는데.... 혹시 이걸 팬들한테도 추첨으로 나눠주는 건 어떨까요?”
-네?
“양장본에 사인해서 선물하면 팬분들도 좋아해주실 것 같아서요.
-어쩜.....!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팬분들한테도 드릴 거면 조금 더 찍어내는 게 좋겠네요! 이건 대표님 컨펌이 필요해서 회의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양장판 수량은 작가님 손목 사정도 생각해야 하는데..... 보통 베스트셀러 작가의 사인회 같은 건 1,000권을 기준으로 하거든요?
“1,000권..... 이라.....”
사인을 해본 적이 없어서 1,000권이 많은 건지 아니면 적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네. 괜찮겠....네요.”
-아. 근데 이렇게 되면 작가님 탄생일까지 맞출 수는 없을 거예요.... 괜찮으실까요?
“상관없어요.”
-그럼! 대표님한테 말씀드려볼게요! 아마 반려하진 않으실 거예요!
에밀라는 다시 전화를 준다는 약속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후우.... 이제 집에 갈ㄲ.....”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찰나.
-띠리리리링♪
“.....왜이렇게 전화가 연달아 오는 거야.”
오늘따라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응? 루이나 누나?”
드라마 배우로서 최근 배역을 따내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이사벨한테 들었다.
‘왜 갑자기 연락한 거지?’
나는 뜬금없는 연락에 영문을 모르는 상태로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여보세.....”
-야! 제임스!
“으, 응?”
갑작스러운 누나의 호통에 당황했다.
-너, 너, 너 언제 책 출판했어?
“아..... 이사벨한테 못 들었어?”
-당연히 못 들었지! 루니아가 태어났을 때가 내가 집에 갔던 마지막이야! 이사벨도 SNS로만 생사확인 정도 하는 거고!
“루니아가 태어났을 때도 내 책은 출판돼 있었을 텐데......”
-뭐? 진짜?
“응. 이사벨이 내가 군대 갔을 때 투고한 거라서..... 하긴, 고모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메디슨 누나뿐이었다.
-하아..... 식겁했네,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처음이야.
“그래?”
-네가 어릴 적부터 글 써온 건 알았는데, 글을 투고할 생각은 없다고 노래 부르듯이 말했잖아? 그래서 출판할 생각은 없는 줄 알았지.
“나도 출판할 생각은 없었어. 이사벨이 투고한 거지.”
그나저나 이사벨도 아니라면 누나는 내가 책을 출판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근데 어떻게 안 거야?”
-기자인 친구가 나한테 팬인 작가가 있는데 곧 있으면 재밌는 책이 나온다고 SNS를 보여주더라? 근데 거기에 네 실명이 적혀있는 거 보고 까무러쳤다 야. 네 필명이.... 왜 이리 유치하냐.
“시끄러. 한국이름을 영어로 한 것뿐이야. 그리고 이것도 이사벨 때문이고.”
-아무튼 그 친구가 내가 네 사촌누나라고 하니까 인터뷰 좀 꼭 하게 해달라고 싹싹 빌던데 괜찮을까?
“싫어.”
-알았어. 그렇게 전해줄게.
“뭐야..... 그걸로 끝?”
-응. 끝. 인터뷰하면 기자들이 진상으로 굴 때가 많거든? 거기서 말 잘못하면 사자처럼 물어뜯을 거야, 인터뷰는 조금 더 유명해져서 하던가 아니면 아예 하지 마. 너 이야기 들어보니까 Q&A도 했다며? 차라리 인터뷰 말고 그거나 자주 해. 그건 기자들의 의견이 아닌 팬들과 소통하는 거니까.
“SNS 하다가 인생 망가진 연예인들도 많잖아?”
-네가 올린 게시물 봤는데, 주의만 하면 상관없을 것 같고. 거기에 네가 한 Q&A도 질문을 정한 뒤에 하는 게 아니라 채팅창에 올라오는 걸 무작위로 골라서 하는 거더만? 이 경우는 네가 질문만 잘 고르면 될 거야.
아직 유명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예계 생활에 몸을 담그고 있는 루이나다보니, 기자들이 얼마나 극성인지 알고 있었다.
-아. 그래도 그 기자가 네 열렬한 팬이라서 책도 5권이나 구매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줘.
“내가 기자를 싫어할 이유라도 있어? 그리고 내 팬이면 기사를 나쁘게 쓰진 않겠지, 언제 한 번 뵙자고 해줘. 근데 예뻐?”
-남잔데?
“퉷!”
-아하하하! 너는 여전하네? 아무튼 알았어!
뚝.
누나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SNS를 확인했다.
“으아..... 방금 올렸는데 댓글 뭐야.”
SNS에서는 방금 내가 올린 게시물 [드래곤 마스터]에 관한 댓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누나 말대로 씻고 나서 Q&A를 다시 한 번 해야겠다.”
댓글에 질문이 쏟아지고 있는데 하나씩 대답해 주기엔 너무 많았다.
내일 산타모니카에 가는 김에 Q&A를 하고 가는 게 좋을 듯 싶었다.
****
루이나는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뭐래? 뭐라는데?”
“팬이라서 고맙고, 나중에 한 번 뵙자고 하더라.”
“야후-!!!”
옆에 있던 남성은 하늘이라도 날고 싶은 기분인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뻐했다.
“내 동생이 작가 그것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막의 전갈] 작가라는 것부터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꼭 지금 당장 전화를 시켜야 했냐?”
“나도 네가 드래곤 원님의 누나일지 알았겠냐? 그리고 너! 나 때문에 배역 땄으니까 이렇게라도 은혜 갚아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만..... 에휴.”
루이나 앞에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남자는 ABA 연예계 기자 제이든이었다.
[사막의 전갈] 영화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남자이자, 드래곤 원의 열렬한 팬.
-띠링!
그렇게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제이든의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응? 뭐지? 알람 설정 해놓은 건 드래곤 원 작가님밖에 없는데... 드래곤 원 작가님이 또 게시물을 올렸나?”
『지금으로부터 2시간 뒤인 8시 30분에 10가지 질문을 선정하여 가벼운 Q&A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저번과는 다르게 10가지 질문밖에 없었지만, 이거라도 어디냐!
“뭔데뭔데.... 어? 이걸 바로 하네?”
“서, 설마 네가 시켰어?”
“정식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으면 Q&A라도 자주 하라고 했거든. 그런데 바로 할 줄은 몰랐네?”
제이든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루이나를 바라봤다.
“루이나.....”
“왜?”
“그 선머슴 같던 루이나가..... 이렇게 똑똑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고마워! 내가 오늘 밥 살게!”
“이게 뒤질라고..... 양갈비로 사.”
“응!”
“술도 사고.”
“.....봐줘. 지갑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유전인지 고모부와 마찬가지로 술고래인 루이나였다.
****
Q&A를 하기 전 제임스는 목욕을 한 뒤 월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헤이 브로. 무슨 일이야?
“아. 혹시 캐서린 지금 뭐해?”
-게임하는데?
“바빠보여?”
-바쁘긴.... 조금만 기다려봐.
이후 핸드폰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삼억제기인데에에에에! 어떤 새끼야!
-시끄럽고 전화왔다.
-이 망할 대머리가! 그럼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 되잖아! 승급전이었다고!
-시끄러. 지고 있었으면서 말이 많네 아이언 주제에.
‘삼억제기를 부순 게 아니라, 부서진 거구나.’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심각한 일이겠지만, 다이아를 달성한 월리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였다.
얼마간의 투닥거림 끝에 드디어 캐서린이 전화를 받았다.
-......조금 이따 전화하지, 꼭 지금 전화했어야 했어?
“네가 글 안쓰고 게임하고 있을지 알았겠냐?
-용건만 빨리 말해. 오늘 브론즈 가야한단 말이야.
“내일 캘리포니아 갈 건데 너도 너도 갈래?”
-거길 왜 가?
“제작사하고 만나서 시나리오 수정도 하고, 배우들하고 인사도 나눌 겸.”
-헐 진짜? 나도?
“응. 갈 거야?”
-당연하지! 내일 간다고 했지? 지금 바로 짐 쌀게! 근데 날 왜 데려가는 거야?
“데려가준다는데 말이 많아. 싫으면 말고.”
실은 캐서린 말고 이사벨을 데려가려고 했으나 고모부의 반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캐서린을 데려가기로 했다.
거기에 작가 지망생이다보니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막힌 벽이 뚫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 선물을 사오려고 했는데 마침 캐서린의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갈 거야! 갈 거라고! 배우들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구경?”
-응! 흐흐. 잘생긴 남자를 보면 내 영감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나 꼭 갈 거야!
“부모님한테 허락이나 맡어.”
-응! 제임스 오빠, 우리 대머리보다 훨씬 내 오빠 같다!
“다시 월리 좀 바꿔줘.”
-야! 대머리!
-대머리 아니라고! 다시 머리 기르고 있잖아!
월리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어 왜?
“내일 캘리포니아 갈 건데 캐서린하고 같이 가려고. 너도 갈래?”
-됐어. 난 돈이나 벌어야지. 내가 작가될 것도 아닌데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럼 내일 캐서린하고 갈 테니까 부모님 설득 좀 해줘.”
-굳이 그럴 필욘 없어. 허락해 줄 거야.
“그럼 다행이고. 근데 승급 전에 전원 끈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아이언은 사람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아이언 무시 발언 좀 거슬리네.”
-넌 어딘데?
“다이아.....랑 똑같은 색인 실버.”
-풉! 동지였냐?
“시발... 끊어!”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뭐야 벌써 8시 30분이 다 돼가네.”
저번에 했던 방식 그대로 Q&A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 번 해봤기 때문인지 두 번째로 하는 Q&A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리 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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