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웹소설 2
웹소설의 힘은 ‘무명’이라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작가들 혹은 작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재능 있는 자들이 발을 디디기 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터넷 소설의 힘이었다.
단점이라면 아직 시장 자체의 확립이 완벽하지 않다보니, 그저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올려 독자들이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권을 기준으로 판매하는 전자책 시장의 규모는 크지만, 한 화당 결제하는 시스템의 웹소설 시장은 드물었다.
“인터넷 소설의 최고의 장점은 ‘독자의 확립’이지.....”
“맞아. 오빠가 말한대로 독자들 반응을 바로 알 수 있어. 그리고 독자들의 연독률을 예상할 수도 있지.”
한 화당 읽는 조회수와 추천수로 인해 독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보니, 책으로 출판됐을 때 독자들이 따라오는 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독자들을 미리 확립한다는 의미지?”
“응. 맞아. 독자들은 유료화를 하든 책으로 출판을 하든 따라올 테니까.”
다만, 웹소설에 대한 확립이 아직 덜 됐기 때문에 미국의 유료화는 종류가 다양했다.
어느 곳은 1mb(영어로 백 만 글자 정도)를 기준으로 적은 뒤 한 권당 자신이 원하는 금액으로 파는 곳도 있고, 어느 곳은 한국의 웹소설처럼 10kb(영어로 만 글자 정도)를 정해진 가격에 파는 곳도 있었다.
간혹 전자책과 함께 종이책을 함께 출판하기도 하다 보니, 유료화 과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넌?”
“난 화 별로 읽을 수 있는 곳에서 연재 중이야.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유료연재를 시작해서 책으로 출판해보게.”
“그러고 보니 예전 군대에 있을 때 웹소설 작가가 있었는데...”
“진짜?”
“응. 그때 한국식 웹소설 시장에 대해서 조금 들었거든? 그거랑 비슷한가?”
“아. 내가 연재하고 있는 곳이 한국식 웹소설 시장을 바탕으로 이뤄져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난 이런 곳이 맞는 것 같아서 여기서 연재를 시작한 거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원고를 적어나가고 싶었기에 캐서린은 한 화씩 올리는 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어느 장르가 가장 인기가 많은 것 같아?”
“로맨스가 확실히 인기가 많더라고, 그리고 SF와 판타지? 일반 문학도 있기는 한데 인기는 별로 없어.”
“거기 사이트 좀 알려줘봐.”
“진짜 해보게?”
“어떤지 일단 좀 보고. [드래곤 마스터]를 수정한 뒤에는 할 게 없으니까, 손이나 풀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좋겠지.”
“알았어! 핸드폰으로 링크 보내줄게!”
“그래.”
어딘지 모르게 캐서린은 기분 좋아보였다.
****
다음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호텔 방을 나섰다.
호텔 서비스 중 짐을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었기에, 비행기 탑승 시간 전까지 짐을 보관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관광이다!”
캐서린은 관광할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렸다.
“관광은 무슨, 쇼핑만 하고 갈 거야.”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 몬태나에서 벗어난 적 없다고!”
몬태나 주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캐서린한테는 모든 게 신기한 듯 보였다.
우리는 우버(승차 공유 시스템)를 타고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내렸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선물해드릴 거 뭐 생각한 거 있어?”
“아빠는 정장, 엄마는 구두나 핸드백?”
“정장? 아저씨도 악세서리가 더 좋지 않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집에 있는 정장이 낡으셨더라고.”
“근데 시골에서 정장입을 일도 없는데......”
“그것도 그렇긴 하지.”
아빠 정장이 낡은 이유는 세월 탓도 있겠지만 관리를 안해서다.
시골이다 보니 정장을 입을 일도 없었고, 굳이 입은 적이 있다면 과거에 시민권을 취득하러 갔을 때 정도였다.
“그럼 아저씨는 정장 말고 차라리 시계는 어때? 오빠 돈 많잖아. 헤헤.”
“시계라.....”
“오빠는 선물 받은 롤렉스가 있지만, 아저씨는 없지 않아? 시계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그런 쪽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일단 받은 거라 쓰는 것 뿐이야.”
“아무튼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백화점 좀 돌아다니다 생각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드레스와 정장을 렌탈했던 백화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번에 한 번 와봤기 때문인지, 브랜드 매장을 찾는 건 어려움이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
구두도 후보긴 했지만, 엄마는 핸드백을 좋아하신다.
아직까지도 결혼 전에 아빠한테 선물받은 핸드백을 들고 다니실 정도였으니, 핸드백을 얼마나 애지중지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명품이었지만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했다고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빠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대다수의 자식들이 그럴 것이다.
엄마의 선물은 비교적 고르기 쉽지만, 아빠가 뭘 좋아하나를 생각해보면 별 다를 게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어릴 때부터 부담감을 느껴셨는지 자신한테 절대 돈을 쓰지 않으셨다.
캐서린의 말을 들어보니 시계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 더 어울리는 것을 사다 드리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며 걷던 중 나는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자동차 매장이 있네?”
백화점 1층에 자동차 매장이 있었다.
미국은 전시장이 마치 주차장처럼 있다 보니, 이렇게 매장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매장보다는 그냥 전시장인가?’
미국에선 새차를 살 때 딜러와 협의하면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었기에, 전시장일 확률이 높았다.
“차 사게?”
“흐음.....”
우리도 일단 자차가 있기는 했다.
픽업트럭으로 고모부가 사용하던 차를 우리가 쓰고 있었다.
달릴 때마다 차가 심하게 흔들리며, 어쩔 때는 차가 뒤집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말이다.
“가족이 탈 차나 하나 살까?”
“아우디인데?”
“누가 저기서 산데? 몬태나 주에서도 차를 파는 곳이 있으니까, 거기서 SUV나 픽업트럭 한 대 사는 게 아빠가 일할 때도 편하실 것 같아서 그래.”
“아저씨 선물로 사드리는 거야?”
“응. 정장이나 악세서리보다는 가족을 위한 선물을 더 좋아하실 것 같으셔서..... 그렇다 해도 악세서리 하나쯤은 사드려야지.”
“잘 생각했어.”
나는 루이비통 매장에서 핸드백과 남성용 벨트 하나를 구매했다.
“이제 뭐하게?”
“밥이나 먹고 공항으로 가자. 너는 살 거 있어?”
“있어도 돈이 없어. 나중에 돈 벌면 다시 와야지.”
“글이 잘 팔려야 돈이 벌리지.”
“반드시 팔릴 거야! 지금도 인기는 있으니까!”
“그래그래. 열심히 써봐.”
“그나저나 뭐 먹을 거야?”
“해산물로 시작했으니까 해산물로 끝을 봐야지.”
“그럼 여기로 가자!”
캐서린은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비닐봉지에 각종 해산물과 조미료를 넣고 섞어 먹는 음식점이 있었다.
맛집 어플로 유명한 Yelp 내 평가도 좋은 곳이었다.
“걸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네. 가자.”
“응!”
*****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몬태나 주로 돌아왔다.
몬태나 공항에 도착하니 저번과 마찬가지로 월리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어? 너 머리카락 많이 자랐다?”
“이제 대머리라고 못 부르겠지?”
“어. 확실히 많이 자랐네? 저번에는 흔적도 안 보이더니만 이제는 가까이서 보면 머리카락이 있는게 보여.”
“군대에 가면 머리카락이 있는 편이 좋다니까 열심히 길러봤지.”
우리는 월리의 픽업트럭에 탑승했다.
월리의 차는 그렇게까지 비싼 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낡은 차는 아니었다.
“너 차 샀던 곳이 어디냐?”
“왜? 차 사게?”
“응. 가족이 탈 만한 거 하나 사게.”
“그럼 가기 전에 구매하고 가자. 캐서린 너는 어떻게 할래?”
“나도 같이 갈래.”
미국에서 차를 구매하는 과정은 한국보다는 간단했다.
다만, 미국에서 차를 사보는 게 처음이다보니 차를 구매했던 적이 있는 월리를 대동한 것이다.
나는 미국 차 브랜드인 포드에서 SUV 한 대를 구매했다.
“완전 금방이네?”
“차사는 게 어려울 줄 알았냐? 주문제작해야 되는 차 아닌 이상 물량 있으면 바로 받을 수 있지. 그리고 가격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해놓으면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까.”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니 내 앞에 매끈하게 빠진 SUV한 대가 서 있었다.
“오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비였다. 기분이 묘했다.
“가자.”
*****
“이, 이게 뭐냐?”
뜬금없이 내가 명품 쇼핑백을 내밀자 부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별건 아니고, 원래 첫 월급은 부모님한테 쓴다고 하잖아요? 많이 벌었으니까 그만큼 쓴 것 뿐이에요.”
“아... 아니. 이런 걸 살 돈으로 적금이나 들 것이지.....”
“왜 이런 쓸데없는 걸 사가지고.... 쓰잘데기 없는 게 비싸기는 더럽게 비싸네.”
“캘리포니아에서 산 거라 환불 못해요. 그러니 그냥 쓰세요.”
가격표를 보신 부모님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시선은 선물에서 떼지 못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것도요.”
나는 아빠 손에 차 키를 들려주었다.
“이.. 이건 뭐냐?”
아빠가 차 키와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셨다.
“밖에 나가보세요.”
아빠가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엔 새끈하게 빠진 하얀색 SUV 한 대가 위엄을 뿜으며 자리해 있었다.
“.....차?”
“저희 집 차가 20년은 지났잖아요? 애초에 저희 차도 아니었고. 그래서 저희가 타고 다닐 만한 거 하나 샀어요.”
“크, 크흠! 너무 많이 쓴 거 아니냐?”
“영화가 나오면 또 돈이 들어올 건데요 뭘.”
“뭘 이런 걸..... 비싸게시리....”
아빠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내심 좋은지 차 본넷을 쓰다듬으셨다.
‘정답이었네.’
한국에 있던 시절부터 우리는 차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아빠는 유독 차를 사고 싶어 하셨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사셔도 될 텐데.....’
고모부가 빌려준 창고도 무상이 아니었고, 거기에 세금이다 뭐다해서 돈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차 한 대 살 돈은 있었다.
하지만 그 돈까지 아끼느라 아빠는 그토록 원했던 차를 사지 않았다.
“기름도 만땅 채워놨으니 한 번 시원하게 달리고 오세요.”
내 말에 아빠의 입꼬리가 긴 곡선을 그렸다.
*****
며칠 동안 빡세게 달려서인지 조용한 집이 약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선물 때문인지 엄마는 온화한 얼굴로 그냥 방에서 푹 쉬라고 하셨고, 난 짐 정리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글을.... 수정해야지.”
쉴 땐 쉬더라도 지금 맡은 일들은 전부 해결한 뒤에 해야지.
나는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여기서 끝났나.....’
주눅이 들었던 로얀은 방안으로 알을 가져가 한참이나 고민했다.
“흐음.... 선택의 기로에서 글이 끝났었네.”
톡.... 톡....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앞으로의 전개를 생각해봤다.
“로얀은 아버지한테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많지 않아. 하지만..... 유독 정이 많지.”
드래곤을 좋아하기에 로얀은 지금 하고 있는 짓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무엇보다 로얀도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알에서 깨어날 아기드래곤이 어미드래곤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게 더욱 몸에 와닿을 것이다.
“로얀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는 걸로 하자. 드래곤이 날뛰고 있는 숲에 그 어떤 무기도 챙기지 않고 오로지 알만 들고 가는 거야.”
로얀은 드래곤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드래곤을 자세히 안다.
로얀은 맨몸으로 알 하나만 들고 불타오르는 숲으로 들어간다.
-뚜두둑!
나는 손을 풀었다.
‘자.... 써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