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39화 (39/216)

39화 WMC(월드 미션 컴퍼니)

월드 미션 컴퍼니에 대한 동경은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악독하게 돈을 버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자식 이길 수 있는 부모 없다고, 아이의 동심을 이용하여 어른들의 지갑을 열게 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싹싹 긁어모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월드 미션 컴퍼니는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아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거래가 깔끔하고, 진행이 빠르며, 돈이 될 법한 일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최근 전 세계를 들썩인 히어로 영화마저 인수하여 월드 미션 OTT를 설립해 미국 전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사막의 전갈]때와는 다릅니다. 그때는 될 대로 돼라라는 느낌으로 슬쩍 찔러본 것이 전부였지만, 이번에는 아예 다릅니다.”

“어느 정도인데요?”

“우선 에드워드 선생님이 올리신 SNS는 확인하셨습니까?”

“아뇨. 정신 없어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로건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에드워드 선생님이 최근에 올린 SNS 캡처본을 나한테 보여주었다.

『Edward Jackson

【사진】

올해 최고의 장르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곤 말할 수 없지만, 곧 만날 수 있으니 그때 말해도 되겠지.

기대된다.

스무 살 중반밖에 안 된 청년의 머릿속에 대체 어떤 것들이 들어있길래 이 정도 수준의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에드월 홈즈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 작가의 글을 보며 젊었을 때의 열정이 돌아온 것 같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이해해라.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사진에는 [블랙 & 월드]가 업로드되어 있었지만, 그 사진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에드월 홈즈’라는 이름이었다.

“에드월.....?”

에드월 홈즈는 과거 미국의 자랑이라 불리었던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최초로 2번이나 수상한 천재 작가였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미국 전역을 울음바다에 빠뜨렸던 에드월의 별명은 제 2의 셰익스피어로, 천재성이 세계에 널리 퍼져있었다.

나도 이분의 소설을 즐겨 읽었기에 에드월 홈즈라는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에드워드 선생님은 과거 에드월 작가님과 작업을 여러 번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마그누스 감독님까지 함께 작업한 적이 있으시지요. 세 분 다 친하게 지냈던 만큼 그분들보다 에드월 작가님을 자세히 아시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약간 황송하네요. 저를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감사하지만..... 저는 그분의 소설에 발끝도 따라가지 못해요.”

물론 에드월 작가님의 작품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향기라는 말이었지만,

과거 천재 작가와 함께 제작했던 감독님이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

“에드워드님의 SNS 덕분에 ‘과연 얼마나 잘 쓴 작품인가 보자!’라는 에드월 작가님 팬덤분들이 [블랙 & 월드]를 구매하려고 난리입니다. 저희한테는 이득이지만 혹시 모르니 열기가 식기 전까지는 SNS는 자제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네. 제 멘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까요.”

아마 에드월 작가님의 책과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내 책을 깎아 내리려 하겠지.

그분들한테 에드월 작가님의 작품은 인생의 역작이나 다름없으니까.

“솔직히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요. 간간이 게시글만 올리시고 댓글은 보지 마세요.”

에밀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올려야지.’

받은 양장본 사진으로 홍보는 해야 하니까.

“아무튼 그 때문인지 월드 미션 컴퍼니에서 계속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월드 미션 컴퍼니는 에드워드 선생님과 에드월 작가님. 그 두 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과거 찬란한 영광의 시대를 이루었던 월드 미션 컴퍼니의 주축이 되었던 그 둘이다.

에드워드마저 은퇴한 지금 월드 미션 컴퍼니는 작품의 실적은 그대로였으나, 부실한 내용과 잘못된 투자처, 남녀차별과 인종차별까지 합쳐지며 이래저래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현재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을 포섭하면 에드워드 선생님을 다시 컴퍼니로 복귀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뇨. 충분히 가능한 이야깁니다.”

“예?”

“에드워드 선생님이 미션 컴퍼니를 떠난 이유 중 가장 큰 건 잘못된 투자처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작품에 컴플을 거니 작품이 망가진다고 생각해서 떠난 것이죠.”

투자처를 잘못 구해 작품의 빛을 내지 못한 경우가 영화계에서 허다했다.

감독의 발언이 강하면 이러한 문제는 없지만, 3년 전에 바뀐 미션 컴퍼니 CEO가 감독보다는 투자자의 말을 더 들어줘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다시 CEO가 바뀌었다고 들으셨을 겁니다.”

“예. 뉴스에 계속 떴죠.”

얼마 전 뉴스에 나왔었다.월드 미션 컴퍼니 CEO가 그 자리에서 단 3년 만에 내려왔다고 말이다.

“그가 내려간 가장 큰 이유는 ‘비용절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공략을 사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투자자들이 날뛰었죠.”

영화는 저렴하게 만들고, 수익은 최대한 올리자.

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니 삐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돈은 많이 벌었지만 명성을 잃었다.

“아무튼 이번 CEO는 돈의 망령이라는 말에 벗어나고, 과거의 찬란했던 미션 월드의 명성을 찾기 위해 에드워드 선생님을 다시 불러들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제 작품을 원한다...?”

“그들은 간절한 겁니다. 에드워드 선생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작가님을 놓치기 싫어하는 거기도 하고요.”

“저도요?”

“작가님의 소설은 동양의 몬스터와 서양의 몬스터 모두가 섞여 있습니다. 월드 미션 컴퍼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전세계가 좋아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영화화는..... 염두에 두곤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쪽과 대화를 한 번 해본 다음에 결정해야겠네요.”

“작가님이 어느 제작사를 고르시던 저희는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양장본에 사인해 드릴까요?”

그 말에 로건이 씨익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양장본 한 권을 꺼냈다.

“저, 저도요 작가님!”

에밀라 또한 서둘러 가방에서 양장본을 꺼내자, 진짜 바랄 줄 몰랐던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이거 천 권 중에 하나 아니죠?”

*****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양장본이 나왔습니다.

[블랙 & 월드]의 일그러짐에 어울리는 블랙 & 화이트 표지입니다.』

SNS에 양장본 사진을 올렸다.

물론 사인이 그려져 있는 안쪽은 찍지 않았다.

양장본에 본격적인 사인을 하기 전엔 꼭 사인을 바꾸리라.

“월드 미션 컴퍼니라......”

아무리 명성이 떨어졌다고 해도 작가 한 명 때문에 좌지우지할 정도로 어리숙한 곳이 아니다.

에드워드 선생님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떨어진 명성을 다시 되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막의 전갈]도 미션 컴퍼니에 어울리지 않았지.’

그냥 돈이 될 법하니까 찔러본 것일 뿐, CEO가 바뀐 지금이라면 아예 찔러보지도 않았을 테지.

‘어차피 곧 있으면 만나게 될 테니, 그때 여쭤보는 게 좋겠지.’

나는 생각을 털어내며 어제 적은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확인했다.

‘오늘 아예 마무리 해놓자.’

지금까지 4화 정도 되는 분량을 적었지만 아직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쓰지 않았다.

“한 화 정도만 적으면 될 것 같고..... 인터넷에 올리는 건 캐서린한테 보여준 뒤에 하자.”

남한테 한 번 보여준 뒤 반응을 보고 싶었다.

“자. 시작해볼까?”

-뚜두둑!

나는 평소 루틴대로 손가락을 풀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

-속보입니다! 얼마 전 테러로 인해 폭발이 일어난 아이빌 초등학교의 범인이 잡혔습니다. 범인은 정부에 대립하는 테러조직의 일원으로.....

며칠 째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죽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던 벤자민은 조용하게 채널을 돌려 다른 뉴스들도 확인했다.

내 세상은 무너진지 고작 5일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만 빼고 세상은 비극이 언제 일어났다는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벤자민은 여러 뉴스들을 살펴보다 이내 텔레비전을 종료했다.

‘그게..... 무슨 소용인데?’

테러 조직원을 잡았다. 무슨 죄를 지었다. 300년 종신형을 내린다.

그런 게 전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작 내 소중한 딸이 옆에 없는데.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법을 개정하고 경계를 강화해봤자 대체 뭘 한단 말인가?

‘다 부질없는 짓이야.’

벤자민이 핸드폰을 바라봤다.

걱정하는 직장 동료들이 전화나 문자를 보내고 있지만, 벤자민은 핸드폰을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 놓았다.

‘부질없어.....’

걱정도, 위로도, 불행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벤자민은 술병을 주워들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며칠 째 속에 계속 술만 집어넣으니 온몸이 떨렸다.

몇 번째로 계단에 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몸은 칼리아의 방으로 가길 원할 뿐이었다.

‘칼리아....’

지저분한 거실과 다르게 칼리아의 방은 항상 깨끗했다.

벤자민은 칼리아가 누워 있어야 했을 침대를 바라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전날밤 새벽 내내 만들었던 옷을 입고, 졸린 얼굴로 밥을 먹으며 사랑스러운 인사를 나누고 학교에 가는 칼리아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어..... 많은 걸 원하지 않았어..... 그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는데......’

벌컥.....

벤자민은 전부 잊고 싶은 마음에 독한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칼리아가 좋아했던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풍갈 때 입기 위해 화사한 색상으로 만들어준 옷.

친구 생일 파티에 놀러가기 위해 단정하게 만들어준 드레스.

쉬는 날 편안한 옷을 입기 위해 만들어둔 츄리닝.

만들어준 옷을 불평불만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입었던 칼리아의 얼굴이 벤자민 앞에 아른거렸다.

‘칼리아...... 내 딸... 아빠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살아갈 의지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벤자민은 남아있는 술을 입안에 탈탈 털어 넣고 서서히 바닥에 무너졌다.

‘칼....리..아....’

항상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던 내 아이.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주던 내 아이.

내 모든 생명을 악마한테 주어도 좋으니..... 단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아이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

‘보....고....싶어.....’

쓰러진 벤자민의 손에 칼리아가 가장 좋아하던 드레스가 잡혔다.

처음으로 만들어준 드레스이자 칼리아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보물.

벤자민은 누운 상태로 칼리아의 드레스를 품에 안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아 놔.”

내가 적긴 했는데 너무 비극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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