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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40화 (40/216)

40화 새로운 필명

-위이이이이이이잉-!!!!!

이른 아침부터 벽을 뚫는 것 같은 드릴 소리가 울러퍼졌다.

“아으.... 시끄러....”

베개로 귀를 막고, 이불 속에 머리를 숨겨봐도 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 거세질 뿐이었다.

“대체 뭔데 아침부터 시끄러운 거야.....”

결국 끝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사하시나?’

어제 공사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나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뒤적이며 1층으로 내려갔다.

-드르르르륵!

1층으로 내려가자 아빠가 드릴을 들고 천장을 뚫고 있었다.

“.....뭐하세요?”

“일어났냐? 할 거 없으면 와서 도와라.”

“뭐하시는 건지 알아야 도와드리죠.”

그러자 뒤쪽에서 나무판을 들고 오던 엄마가 말했다.

“캣타워 만든다.”

“......예?”

“캣타워 만든다고. 아무래도 공산품보다야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팡이한테 좋지 않겠니? 월슨네도 집안을 개조해서 캣타워를 만들었으니까 차라리 우리도 그러는 게 어떤가 해서 아버지한테 말해봤거든? 근데 어디선가 나무판하고 봉을 구하셔서 아침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거야.”

“그러니까..... 집을 또 개조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응. 왜? 싫어?”

“싫은 건 아니죠. 개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한 터라, 개조하는 것 자체는 어색하지 않았다만.

“근데 왜 아침부터 하시는 거예요?”

하필 아침부터 한다는 게 문제지.

“아침이 아니면 할 시간이 어딨니? 한두 시간 걸리는 일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 해야지.”

“그건 그렇지만..... 글쓰느라 어제 새벽에 잤는데 이해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임스, 엄마가 네가 방에서 몇 시에 자는지 어떻게 알겠니? 다 큰 놈이 그런 건 알아서 해야지. 아무튼 오늘은 하루 동안 공사할 예정이니 쉴 거면 나가서 쉬어라.”

“월리 집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긴 할 거예요. 근데 팡이는 어딨어요?”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고양이로선 지금 공사 현장이 무서워서 어딘가 숨어 있을 수 있었다.

“지금 팡이 잘 시간이라 공사도 할 겸 고모부 집에 맡겨놨다.”

“......”

“아직 자는 아이를 집에 둘 순 없으니까.”

“저는요?”

“징그럽게.... 다 큰 놈 잠자는 것까지 챙겨줘야 해? 시끄럽고 밥이나 먹고 얼른 나가있어. 공사 해야 하니까.”

팡이한테 집안 서열이 밀린 것 같아서 조금 서글펐다.

*****

아침을 대충 때운 뒤 나는 아빠한테 사드렸던 차를 타고 월리의 집으로 향했다.

벤츠를 선물받기는 했지만 아직 키만 있을 뿐, 차가 오는 건 일주일 뒤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차가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다.

“월리? 잔디 베냐?”

월리의 집에 도착하니, 월리가 마당 잔디를 깎고 있었다.

“제임스? 네가 우리 집엔 웬일이냐?”

“집 공사하고 있어서 너희 집으로 피신 왔지.”

“너랑 놀아줄 시간 없는데?”

“누가 놀아달래? 잠시 피신 온 거야. 집에 캐서린 있냐?”

“있지. 불러줘?”

“응.”

월리는 제초기를 창고에 가져다 놓으러 가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불러올게.”

“그냥 너희 집에 들어가 있으면 안 돼?”

“뭐 할 건데?”

“최근에 글 쓴 게 있어서 캐서린한테 한 번 보여주려고.”

“그럼 들어와 있어.”

월리의 집에 부모님들은 계시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처럼 두 분 다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신지라, 평일에는 두 분 다 집에 계시지 않았다.

“깨워올게. 그보다 밥은 먹었냐?”

“간단하게 먹기는 했는데 배가 고프긴 하네.”

“그럼 볼일 끝나면 밥이나 먹으러 가는 게 어때?”

“콜. 나야 좋지”

“조금만 기다려.”

나는 소파에 앉아 캐서린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야 이년아! 얼른 일어나지 못해!

2층에서 월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물 뿌리지마! 물은 뿌리지 말라고!

-얼른 일어나! 손님 왔다고 몇 번을 쳐말해야 일어나냐!

-꺄아아아악!

“......”

위에서 한 바탕 지옥이 펼쳐지고 있구나.

*****

“훌쩍......”

캐서린은 식당에서 내 소설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야.”

“왜?”

“쟤 지금 우는 거냐?”

“그럼 웃는 걸로 보이냐?”

그 말에 월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별 생지랄을 해도 눈물 한 방울 안흘리던 애가 소설을 보고 운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게 문화의 힘이지.”

“지랄 떨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으라 그래. 기껏 밥 사줬더니 먹지도 않고 뭐 하는 거야?”

월리는 캐서린이 보고 있던 노트북 화면을 접어버렸다.

소설이고, 감동이고 간에 기껏 자신이 사준 밥을 무시하는 행동에 약간 삐진 것 같았다.

“뭐, 뭐, 뭐, 뭐하는 거야? 지금 너 뭐하냐?”

“밥이나 먹어 이년아.”

월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립을 입에 가져가는 모습에 캐서린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드래곤 원님의 신작을 네가 뭔데 건드려!”

“푸읍!”

“커헙!”

캐서린의 외침에 음식을 먹고 있던 나와 월리는 입안에 있던 내용물을 내뿜을 뻔 했다.

제임스가 드래곤 원임을 알게 된 캐서린은 그 이후로 한동안 침울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드래곤 원과 제임스를 분리하기에 이르렀고, [나인 드래곤] 팬카페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캐서린은 제임스의 동의를 구하고, 드래곤 원의 소식을 카페에 몇 번 알린 적이 있어 우수회원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소식이라고 해도 별건 없었고, 제임스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아니면 제임스가 현재 뭘 하고 있는지 등 간단한 것들만 올렸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캐서린은 자기도 모르게 제임스를 ‘동경하는 작가’로 말한 것이다.

“드래곤 원님.....이라니, 너 언제 신 됐냐?”

“농담 그만하고. 어이 캐서린 그래서 어때?”

“흠흠!”

캐서린은 달아오른 얼굴로 헛기침을 연달아 한 뒤 입을 뗐다.

“재미는 있어. 다만, 전개가 너무 느리다는 것 정도?”

“전개가 느려?”

“서장에서 칼리아가 죽고, 벤자민의 독백이 6화까지 이어지잖아? 그 독백에 너무 감정이입이 돼서 엄청 비극적이고 우울했어. 지금까지처럼 이게 종이책이면 괜찮겠지만, 한 화씩 올리는 웹소설이 이렇게 고구마만 가득한 건 쉽지 않을 거야.”

“그걸 노린 거니까. 그래도 네 말처럼..... 내용을 축약시키는 게 좋으려나?”

“그게 좋겠지만, 꼭 유지해야 한다면 6화 전부를 한 번에 올리던가.”

“흐음.. 그래도 되려나?”

웹소설은 언제까지나 취미활동일 뿐이다.

하루에 한 번 연재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넉넉하게 6화쯤 적어 며칠은 우려먹으려 했었다.

“내가 3일 후에 캘리포니아를 가야한단 말이지.....”

“또가?”

“아. 맞다. 월리 너한테 줄 거 있는 거 깜빡했다.”

오늘 캐서린을 만나러 온 것도 있지만, 월리한테 줄 것이 있어서 온 것이기도 하다.나는 들고 온 가방에서 양장본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게 뭔데? 책?”

“[블랙 & 월드] 양장본이야.”

그 말에 캐서린의 눈이 희번득해졌다.

캐서린과 이사벨은 며칠 전부터 나한테 양장본을 가지고 싶다고 징징댈 정도로 양장본을 가지고 싶어 했었다.

월리와 고모부한테 책을 줄 예정이어서 그 둘한테까지 각각 줄 생각이 없었다.

“아. 이게 네가 갖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그거냐?”

월리가 책을 보여주자, 캐서린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응!”

캐서린의 모습에 월리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존경하는 오빠님! 제발 저한테 양장본을 주세요!’라고 10번 선창해봐.”

“......뭐?”

“왜? 못해? 그럼 이건 내가 이베이에 올려도 되는 거지?”

“자, 잠깐만! 이베이에 올릴 거면 차라리 나한테 팔아! 내가 살게!”

“싫어.”

월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캐서린 눈 앞에서 양장본을 흔들었다.

“어떻게 할래?”

“이익.....!”

캐서린이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존경하는! 오빠님! 제발! 저한테! 양장본을! 주세요!”

“야야! 앉아서 조용히 말해!”“존경하는! 오빠님! 제발! 저한테! 양장본을! 주세요-!!!”

“야! 이 미친년이 조용히 하지 못해!”

“존경하는! 오빠님.....!”

“이런 미친년이...!”

캐서린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한테 향했다.

이런 걸 원하지 않았던 월리는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캐서린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무리였다.

결국 월리는 저 입을 막기 위해 양장본을 넘겨줘야만 했다.

‘넌 항상 캐서린을 못 당해내는 구나.’

저 덤앤더머를 구경하며 난 조용히 팬케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

‘필명은 그대로 가져갈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캐서린의 말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양장본을 품에 안고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짓던 캐서린이 갑자기 필명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이다.

“필명이라.....”

어린 시절의 흑역사 그 자체인 드래곤 원이라는 필명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얼렁뚱땅 사인까지 드래곤 투가 되지 않았던가.

“내 실력을 확실히 판단할 기회기도 하지.”

SNS에 연재소식을 홍보할 수도 있었지만, 돈을 충분히 번 이 시점에서 굳이 홍보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웹소설 세계는 정정당당한 실력주의이려나?’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비주류인 장르로, 이름 없는 작가로, 내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필명을 바꾸자.’

그렇다면 필명을 뭐로 할까.

나는 운전을 하면서 한참이나 색다른 필명을 생각해봤다.

“.....할리 브레이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존경하는 작가의 필명을 자신의 필명에 섞는 경우는 많았기에 참고해볼까 했다.

“레이드....? 아니야. 이왕이면 사람 이름 같은 걸로 하자.”

한참 동안 생각해봤지만 결국 필명을 정하지 못했다.

*****

캐서린은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양장본 사진을 찍었다.

‘카페 회원들은 나랑 드래곤 원이 친한 사인 줄 알고 있단 말이야!’

드래곤 원이 양장본 1,000권 중 몇 권은 친한 사람들한텐 선물한다는 건 유명한 사실.

-찰칵!

팬카페에 올려도 상관없는데 사인 부분과 외전 부분은 절대 찍어 올리지 말라는 제임스의 말대로 캐서린은 자신의 작업실과 그곳에 놓인 양장본 표지만을 사진에 담았다.

“얼른 올리자!”

「<제목 : 드래곤 원의 친구 여동생! 양장본을 획득했습니다!>

작성자 : [드래곤 투 내꼬야]

【사진】

아직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양장본 입니다! 따끈하다 못해 뜨거울 지경! 물론 안에 친필 사인도 있지만 드래곤 원 작가님이 절대 사인은 올리지 말라고 해서 양장본만 올립니다!

아직 드래곤 원님이 말한 외전이라던가, 상세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어요!」

카페에 글을 올린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댓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 [드래곤 투 내꼬야]님 드래곤 원님과 친분있다는 거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네요......

-그러게요. 드래곤 원님이 1,000권 중 10권만 친분이 있는 사람한테 준다고 했으니까요. 정작 추첨하는 건 990권.....

-[드래곤 투 내꼬야]님 정말 부럽네요. 이분 드래곤 원님과 친분이 있어서 정보를 간간이 올리시거든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드래곤 투 내꼬야]님도 작가지망생이신데, 드래곤 원님이 글 쓰는 법도 알려주시고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저 양장본은 정말 부럽네요. 신청자가 그렇게 많은데 고작 1,000권 아니 990권이라니..... 이거 저희 들고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ㄴ[드래곤 마스터] 나올 때까진 일단 조금 참아보죠. 양장본 반응이 좋아서 [드래곤 마스터]도 양장본 추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ㄴ이분들은 대체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는 거예요? 전 처음 아는 소식인데.

ㄴ진짜 최우수회원분들 중에 대통령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ㄴ소문일 뿐이잖아요? 그런 걸 진지하게 믿으면 안 돼요.

“히히!”

캐서린은 부러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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