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업로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입을 쩌억 벌리며 개조된 집을 바라봤다.
물론 월슨내 할아버지 댁처럼 집 전체가 고양이를 위해 개조된 건 아니었지만, 거실에 떡하니 기둥 하나가 생겨나 있으니 미관상 보기 안 좋았다.
“정말 이렇게 놓으시게요?”
“그래. 여기에 놔야지 팡이가 올라가서 거실 구경도 하지.”
“아니, 그래도 여기는.....”
“내 집을 내가 개조하겠다는데 뭐 어때? 아무튼 할 것 없으면 팡이나 데려와.”
“......정확히는 고모부네 창고지만요.”
“팡이 안 데려올 거냐?”
“데려올게요.”
나는 집에 오자마자 양장본을 들고 고모부 집으로 향했다.
고모부 집 문을 노크하자 이사벨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쩐 일이야?”
“고모부 계셔?”
“응. 애니랑 놀고 계셔. 불러올까?”
“아냐. 내가 들어갈게.”
고모부 집으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애니와 팡이가 놀고 있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있는 고모부가 있었다.
“고모부.”
“응? 제임스? 팡이 데려가게?”
“네. 그리고 이거 선물이에요.”
나는 들고 있던 양장본을 고모부한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양장본인데 선물이에요.”
양장본이라는 말에 이사벨의 얼굴이 옆에서 쑤욱 하고 나타났다.
그에 반면 고모부는 심드렁한 얼굴로 내가 건넨 양장본을 이리저리 바라봤다.
“이거 이베이에 올리면 팔리려나?”
“이야..... 어떻게 월리랑 똑같은 말을 하세요?”
“내가 책을 읽냐? 아니면 영화를 보냐? 이런 거 받아도 영.....”
“그럼 고모 주세요.”
“그보다는.....”
고모부는 양장본을 이사벨한테 내밀었다.
“이사벨 이거 가져라.”
“저, 정말? 정말이야 아빠?”
“응. 최근에 애니하고 놀아주고, 공부도 열심히 하니까 선물로 주는 거야.”
“고모부, 제가 드린 선물을 돌려막기 하시는 거예요?”
“커험.....!”
“꺄아아악! 아빠 최고!”
고모부 손에 있던 책을 순식간에 뺏어간 이사벨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들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책을 품에 끌어안았다.
“이거 SNS에 올려도 돼?”
“올리는 건 상관없는데, 사인하고 외전 부분은 올리지 말고 표지만 올려.”
“응! 당연하지! 그런 건 독자의 기본이라고!”
외전 부분은 큰 내용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주인공과 몬스터들의 삽화와 설명 정도였다.
주인공 일러스트는 내가 알려준 대로 그려주셨고, 몬스터들 그림 또한 약간 동양풍 느낌으로 그려주셨는데 내 예상보다 잘 나와서 만족했다.
‘[드래곤 마스터] 일러스트는 내가 직접 해야 하지만..’
상상 속에 있는 드래곤들로 이루어진 일러스트였기에 내가 직접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팡이 데려갈게요.”
“공사는 끝났어?”
“네. 애니야. 팡이 이제 데려갈게.”
“웅..... 아쉬운데.. 팡아 잘 가! 내일 바!”
-냐앙!
애니는 팡이랑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보였다.
엄마가 고모부 집에 팡이를 자주 데려왔기 때문인지 금세 정이 든 것 같았다.
애니와 인사하는 팡이를 안아들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
팡이는 새로 생긴 캣타워를 보자마자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경계하며 무서워했다.
‘당연히 무서워하지.’
나중에 적응하면 괜찮아지겠지만, 자신의 영역에 새로운 게 생겨났으니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부모님들이 팡이를 캣타워에 올려놨지만, 결국 팡이는 오래 있지 못하고 내려왔다.
“이것 참.....”
기껏 힘들게 만들었는데 팡이 반응이 좋지 않자 부모님은 약간 섭섭하신 것 같았다.
“자신보다 큰 물건이니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 간섭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하네요.”
“하긴, 아직 어린 아이인데 우리가 너무 성급하긴 했나봐요.”
아빠는 웅크린 자세로 캣타워를 경계하고 있는 팡이를 들어올렸다.
-냐앙.....
“어이구.... 무서웠쪄요? 에구구....”
“......”
팡이는 올라가기 싫다는 듯 아빠 품 안으로 더욱 들어가려고 했다.
“적응할 때까지 내버려 둬야지 뭐.”
거실 한복판에 봉이 생겨 미관상 좋지 않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품에 안겨있는 팡이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는 이만 방으로 들어갈게요.”
“그래라.”
부모님의 관심사는 이제 내가 아니었다.
살짝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항상 분위기가 삭막했으니까.’
아들은 다 커서 이제 재미없고, 두 분 다 취미가 없어 따분했던 찰나에 팡이가 등장했으니 집에 활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글을 올리자.’
웹소설을 올릴 때가 되었다.
*****
웹소설은 가볍게 손을 풀어보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실력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시간을 떼우기 위함이다보니, 드래곤 원이라는 필명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필명을 뭐로하지.....’
아까부터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신경써서 지어보려고 하니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둡고 비극적인 스토리로 시작하니까..... 필명도 웬만하면 어두운 느낌이 좋겠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문득 내가 과거에 적었던 습작들이 담겨있는 파일이 보였다.
“다이.....벨?”
[사망의 종.]
과거에 적었던 좀비가 나오는 소설 이름이었다.
“다이벨 좋은데? 뭔가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어두우면서도 비극적인 스토리에 어울리는 필명이었다.
“그럼 다이벨을 필명으로 지정하고 시작해볼까?”
캐서린이 알려준 인터넷 소설 사이트의 이름은 [샐러쉬]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글을 올리기 쉽게 되어있었다.
‘자유소설.... 이었지?’
등급에 따라 소설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바뀌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유소설에 소설을 올리면 된다고 하였다.
‘제목은..... [리턴 패션 디자이너]. 처음에 지었던 그대로 가자. 내용 줄거리 설명은..... 흠. 대충 하자.’
조금 성의 없어 보이지만 어차피 이 글로 돈을 벌 목적은 없었고, 그저 취미생활이었기에 대충 설명을 적고 글을 올렸다.
‘에이 6화까지 전부 올리자.’
캐서린 말대로 내 글은 비극적인 장면부터 시작하다보니 초반에 답답함을 단번에 풀어내려면 많이 올리는 게 답이었다.
‘그냥 복사해서 올리면 되나?’
나는 글을 복사해서 올린 뒤, 전체적으로 한 번 살펴보고 1시간 뒤로 예약을 설정했다.
“캐서린 거나 찾아볼까? 이 녀석 필명이 뭐지?”
제목을 찾아보려 했지만, [장미 가꾸기]에서 제목을 바꿨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랭킹에 있는 이름들 중 가장 캐서린에 가까워 보이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계약 제의까지 받았다고 하니 랭킹은 꽤 높겠지?’
캐서린이 쓴 글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랭킹 10위 권 안에 머물러 있었고, [장미 길들이기]라는 과거와 비슷해 보이는 제목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에 대한 설명 칸에 내가 참고하라고 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흐음.... 확실히 로맨스가 인기긴 하네.”
랭킹 탑 10위 안에 5개가 로맨스 장르였고, 나머지 5개는 SF, 판타지, 스릴러 종류로 분산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신선한 내용들이 많은데?”
나는 생각보다 재밌는 내용들에 흥미를 느끼며 하나씩 클릭해보기 시작했다.
*****
제임스가 소설에 심취해 있던 사이, 한 시간이 지나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사이트에 업로드되었다.
표지도, 설명도 보잘 것 없는, 그냥 흔한 신인작가들이 올린 것 같은 평범한 소설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읽는 사람들이 있는 법.
노아도 그런 독자들 중 한 명이었다.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한 작품을 발굴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신인 작가들은 많이 올라오는데..... 다 재미가 없네. 글을 쓰는 법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인터넷 웹소설을 접하고 난 뒤, 노아는 항상 핸드폰으로 웹소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책의 절반 정도 되는 분량을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경우가 있었기에, 시간 보내기엔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을 보낼 걸 찾다가 문득 [리턴 패션 디자이너]라는 소설이 흥미를 끌었다.
“이름이 이게 뭐야..... 과거로 돌아간 패션 디자이너라는 건가?”
신인작가답게 초반에 의욕을 냈는지 서장까지 합하여 6화 분량이 올라와 있었다.
“잠깐만.... 이거 조회수가 왜 이래?”
조회수는 한 화당 10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다만, 1~2화도 아니고 6화 정도 되는 내용이면 중간에 질려서 빠져나가는 독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게 없었다.
6화까지 가는데 단 한 사람도 하차하지 않고 조회수가 끝까지 일정했다.
“신인 작가가 아닌가?”
가끔 기성 작가들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를 짜서 자유연재 공간에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노아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설을 확인해봤다.
‘회귀물인가.’
제목에 들어가는 ‘리턴’이라는 말대로 글 소개란에는 주인공 벤자민이 과거로 돌아간다고 적혀있었다.
‘어디....’
내용 자체는 비교적 흔한 전개였다.
아니 오히려 불친절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내가 어째서 없는지, 아이가 왜 혼자인지, 어째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초반에 보여주지 않았다.
내용전개상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런 궁금증을 상쇄시켜주는 필력 때문인지 노아는 정신없이 글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기성 작가 수준이 아니야.”
읽는 순간부터 온몸의 신경이 글에 쏠렸다.
한 글자, 한 문단, 한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뒷목에 소름이 돋으며 자신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 다음 화를 클릭하고 있었다.
6화까지 읽고 정신을 차린 순간 노아는 그제서야 볼 위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알아차렸다.
‘눈물......?’
비극적인 연출 때문인가?
아니면 벤자민에 온전히 이입된 걸까?
벤자민이 딸과 함께했던 장면부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까지 뇌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으아.....”
기나긴 여운이 몸을 조여 왔다.
입속에 고구마를 가득 넣은 것처럼 답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을 포기할 순 없었다. 몰입감과 흡입력있는 스토리가 끈적하게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망할 작가 새끼가.....’
절망만 가득하다 드디어 희망이 느껴지는 건가? 하는 타이밍에 6화가 끝났다.
머릿속에서 다음 장면을 수없이 많이 생각해봤지만, 자신이 다이벨이라는 작가가 아닌 이상 다음에 나올 내용에 대한 답을 정할 순 없었다.
K-절단신공인걸 모르는 노아는 답답함에 몸부림치며, 처음으로 글에 댓글을 남겼다.
댓글창엔 이미 노아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가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미친 작가 새끼가..... 하아. 진짜 다음 편 언제 올라옴?
-끊어도 왜 여기서 끊고 지랄인데! Fuxk! Fuxk! Fuxk! Fuxk!
-벤자민 어떻게 돼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 맞죠? 그렇죠?설명에는 과거로 돌아간다라고 적혀있는데 왜 여기서 끊은 거예요? 왜요? 왜 그런 거죠?
-얼른 다음 화! 아니 Fuxk! 이런 소설은 연재 주기를 제대로 적어놔야죠! 대체 뭐하는 거예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그러니 얼른 다음 화 내놔! 작가 새끼야!
댓글을 보니 전부 6화의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고 있었다.
마치 벤자민이 된 것 마냥 기나긴 여운에 빠져나가지 못한 독자들의 아우성이었다.
노아도 그런 댓글들을 보며 자신도 댓글을 등록했다.
-작가 어디 사냐? 총 들고 간다.
노아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