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업로드 2
웹소설이라고 무시한다기 보다는, 종이책이 지배하다시피하는 시장이다 보니 조금 만만하게 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곳은 열리지 않은 보물단지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건 최고의 장점인 것 같아.’
한 권 분량을 쓰고 퇴짜 맞는 것보다, 몇 화 만에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건 웹소설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또 무한히 발휘할 수 있었고, 그 때문인지 신기한 내용이나 스토리들이 많았다.
‘무리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
게임 세계로 들어간다던가, WW2시대로 가서 전쟁을 막는다던가, 왕으로 전생해 백성들을 다스린다던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래도...... 흠.’
다만, 신선하다고 해서 전부 재밌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도 드문 편이었고, 문단이나 오타가 뒤죽박죽인 소설도 상당했다.
내용도 무리수가 많았고, 장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르의 의미가 퇴색된 경우도 있었다.
“자유로운 공간이기에...... 장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점도 많구나.”
이런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랭킹시스템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자자.”
내 소설을 확인해 볼까 했지만 올린지 1시간 밖에 안된터라, 조금 더 독자가 쌓이면 확인해보고 싶었다.
제임스는 컴퓨터를 끄고 잠을 잤다.
*****
-쾅쾅!
-제임스 손님 왔다!
“끄응.....”
아침부터 문을 세게 두들기는 소리에 나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아침부터 누구야..... 하암.....”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새벽에 잠을 청한 제임스한텐 이른 아침이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방문을 열어 1층으로 내려갔다.
“캐서린?”
거실에는 캐서린이 흥분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서성이고 있었다.
“네가 아침부터 웬일이냐?”
어제 양장본을 받았다는 기쁜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고, 어딘가 심술이 난 듯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나한테 넘겼다.
“이것 봐봐.”
노트북에는 샐러쉬가 켜져 있었고, 캐서린이 가리킨 방향엔 랭킹을 표시하는 구간이 떠올라 있었다.
“랭킹? 아. 너 3위로 올랐네? 축하한다.”
“응! 고마워....가 아니라! 네 랭킹을 보라고!”
‘얘는 또 왜 이렇게 흥분했어?’
나는 캐서린이 보여준 랭킹에서 내 이름을 찾아봤다.
“다이벨.... 11위.”
“이거 너 맞지? 그렇지?”
“너 아까부터 반말한다?”
“맞잖아! 대답부터 하라고!”
“응. 맞아.”
아무래도 제목에서부터 내 글을 찾은 것 같았다.
그제야 캐서린은 똥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첫 글에 10위권......”
“너는 첫 글에 몇 위 였는데?”
“몇 위는 무슨. 10화까지 적었을 때 랭킹에 들지도 못했어. 누가 추천글을 써줘서 순위권에 들어가기 시작한 거고 20화 정도 적었을 때 탑10 안에 들어온 거야.”
“추천글?”
캐서린은 노트북으로 추천 게시판을 들어갔다.
“이것 봐봐! 전부 네 글 추천이잖아!”
“그러네?”
“와... 반응이 그러네가 끝이야? 재수없어...... 그보다! 얼른 다음 화 써야지! 지금 뭐하는 거야!”
캐서린이 화가 난 이유는 내가 랭킹에 올랐음에도 급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아니 나도 잠을 자야지.....”
“지금 편안히 잠잘 때가 아니잖아! 여기서 이렇게 끊으면 어쩌자는 건데!”
“그거 네가 그렇게 하라고.....”
“아무튼! 빨리 글 써! 빨리! 빨리!”
“네가 내 매니저냐?”
나는 캐서린의 재촉을 무시하고 내 글에 들어가 봤다.
0화부터 5화까지는 댓글이 많지 않았지만, 6화 댓글은 벌써 200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댓글의 대다수는 연재주기를 알려달라는 것과 다음 화를 얼른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독자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 뭐가?”
“이 소설은 K-드라마 소설이거든.”
“그게 뭔데?”
“아직 행복회로를 돌릴 때가 아니라는 거야.”
대부분의 댓글이 이 절망 속에서 벗어난 벤자민이 얼른 행복해지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거지만, 애석하게도 벤자민의 행복은 아직 멀었다.
“설마......”
“네 생각이 맞아. 애초에 내가 과거부터가 아니라 현재의 절망부터 글을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지.”
벤자민의 과거 역시 희망따윈 없었다. 다만, 거기서부터 쓰면 비극적인 장면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래의 벤자민 시점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거다.
“오빠는..... 잔인해.”
“아까는 반말하더니 지금은 오빠냐? 아무튼 웹소설은 글 하나하나에 이렇게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좋긴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전원을 껐다.
“글 안 써?”
“엉. 지금은 안 써.”
“아니 왜? 이렇게 사람들이 다음 편을 보여 달라고 재촉하는데? 댓글 중에 총 들고 찾아오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그 사람이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고 오겠냐? 그리고 어제도 말했잖아? 이 소설은 취미생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내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쓰긴 했지만, [블랙 & 월드]나 [사막의 제국]처럼 미친 듯이 쓰고 싶지 않아. 하루에 한 편. 그것도 시간이 없으면 휴재를 할 생각이고. 연재주기도 자유로 할 거야.”
그 말에 캐서린은 똥씹은 듯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래도..... 여기서 끊으면.....”
“오늘 쓰긴 할 거야. 그보다 넌 지금 일어난 사람한테 글 쓰라고 하고 싶냐?”
“......썩을 오빠.”
“뭐라 했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보다 밥은 먹었냐? 안 먹으면 먹고 가.”
“안 그래도 아주머니가 ‘Kimbab’ 한다고 먹고 가라고 했어.”
“응? 진짜 김밥 하신데?”
“응.”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식탁 의자에 앉아 김밥을 산더미처럼 쌓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진짜 김밥하네? 웬일이세요?”
“고모부하고 네 아빠가 먹고 싶어 해서 싸고 있어. 잘라줄 테니까 캐서린하고 같이 먹어.”
“네. 저 라면도 하나 먹을게요.”
김밥하면 라면이지.
김밥은 미국에서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였다.
김과 우엉 이 두 가지가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시안 마트나 한인 마트에서 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더 일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많이 하세요?”
“배달 주문을 잘못 시켰어.”
‘......요즘 배달에 빠져 사시더니만 결국 실수하셨네.’
보지 않고 택배 배달을 시키시다가 너무 과하게 시키신 것 같았다.
배달 특성 상 하나를 사는 것보단 많이 사야 가격이 저렴하기에 배달업체의 전략에 말려드신 거겠지.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할 거냐?”
“저야 늘 똑같죠. 좀 쉬다가 글이나 써야죠.”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
ABA 연예부 기자 제이든은 [블랙 & 월드] 구매에 실패했다.
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새벽부터 서점에 줄을 서봤지만 앞 사람들이 한 번에 몇 권씩 구매하는 바람에 결국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좌절하며 다시 출판되길 고대하던 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루이나한테 온 전화에 서둘러 그녀를 만나러 카페에 갔다.
“어? 벌써 왔네?”
“허억.... 허억.... 저, 정말이야?”
“응. 오늘 아침에 택배 왔더라고.”
제이든은 서둘러 루이나 앞에 앉았다.
“어, 얼른 줘봐! 얼른!”
“왜 이렇게 급해? 자.”
루이나는 제이든한테 오늘 아침에 택배로 받은 양장본을 건넸다.
제임스는 자신이 받은 10권의 양장본을 부모님, 월리, 고모부 그리고 메디슨 누나와 루이나 누나한테 보냈다.
지금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한테만 보낸 것이다.
“저, 정말이잖아?”
“이게 그렇게 좋은 거야?”
제임스가 선물해 준 양장본을 받고 기뻐한 사람은 정작 몇 명 없었다.
부모님도 심드렁했고, 월리는 캐서린한테 줬으며, 고모부는 이사벨한테 줬다.
루이나도 제임스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제이든처럼 좋아하진 않았기에, 양장본을 보자마자 저렇게 좋아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10권을 제외한 990권은 추첨으로 뽑는다고! 지금 [드래곤 투 내꼬야]님과 [사촌 오빠는 드래곤]님을 제외하면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
“.....그 둘은 대체 누구야?”
“[나인 드래곤]에서 드래곤 원님과 유일하게 친분 있는 둘인데?”
“......”
[드래곤 투 내꼬야]는 모르겠지만 [사촌 오빠는 드래곤]은 왠지 누구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났다.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왜 이사벨이 계속 생각나는 걸까?
“하으으..... 드래곤 원님의 양장본이 내 손에 있다니..... 이거 정말 나 주는 거 맞지?”
“나 때문에 여친하고 헤어졌으니까 주는 거야.”
얼마 전 제이든은 여자친구하고 헤어졌다.
제임스가 루이나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어떻게든 루이나를 통해 제임스와 연을 만들고자 루이나의 일을 몇 번 도와줬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흐윽! 그 루이나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제이든은 울컥한 얼굴로 사랑스러운 동물을 껴안는 것처럼 책을 품에 안았다.
“고마워서 주는 거야. 제임스한테도 허락은 맡아놨고.”
“흐윽..... 내가 너 오디션 보는 거 살신성인으로 도울게. 고마워 루이나.”
“뚝. 그만 울고 그러다 책에 눈물 스며들겠다.”
“그러면 안 되지!”
책을 얻었다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던 제이든은 가방에서 비닐 봉지를 여러장 꺼내더니, 양장본을 조심스럽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미친놈.”
루이나는 그런 제이든의 행동에 질린다는 눈빛을 보냈다.
*****
루이나와는 달리 메디슨은 양장본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살펴봤다.
아니, 정확히는 앞에 있는 한 인물이 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드래곤 원님의 [블랙 & 월드] 양장본이군요? 은인들한테 주었다고 하더니 Ms 메디슨도 받았군요.”
회사에 이른 아침에 출근했기에 새벽에 배송되었던 [블랙 & 월드] 양장본이나 읽을까 해서 책을 꺼내들었던 찰나,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리에 책상 한 켠으로 치워두었는데. 오히려 그 손님이 양장본을 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월드 미션 컴퍼니의..... 법무팀이 어째서 저를 찾아왔는지부터 알고 싶은데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션 컴퍼니 법무팀이 찾아오자 메디슨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긴장한 표정을 지우고 웃는 얼굴로 앞에 온 남자를 상대했다.
“대표님을 만나고 싶으신 거면 제가 따로 연락을......”
“아뇨. 저는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Ms. 메디슨 아이존스”
“.....드래곤 원 작기님 때문이겠군요.”
메디슨은 일부로 제임스라 말하지 않고 필명을 말했다.
최대한 자신이 제임스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대화의 이점을 끌기 위해서였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드래곤 원이 미션 컴퍼니의 저작권을 무단으로 사용했을 리는 없을 테고.....”
“하하하하. 드래곤 원님이 저희의 저작권을 무단으로 사용할 리가 없지요. 오히려 저희가 드래곤 원님의 저작권을 원하고 있으니 말이죠.”
“......호오.”
월드 미션 컴퍼니의 법무팀 실장으로 유명한 조니 A 데이즈의 말에 메디슨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출판사에 계속 연락을 취하곤 있지만, 드래곤 원님 사정상 나중에 연락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그러던 와중 Ms. 메디슨이 [사막의 전갈]과 [블랙 & 월드], [드래곤 마스터]등 드래곤 원님의 작품 계약을 대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막의 전갈]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알고 있다라.....’
[블랙 & 월드]와 [드래곤 마스터]는 영화화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았고, 계약서를 대신 검토해주는 정도였지만, 그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저한테 오셔도 제가 드래곤 원님께 직접 말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만?”
“드래곤 원 작가님은 이번에도 [블랙 & 월드]의 저작권 문제를 Ms 메디슨한테 맡기겠지요. 저는 저희 미션 컴퍼니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계약서를 작가님한테 보여드릴 수 있다는 마음만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조니는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메디슨한테 건넸다.
‘이건.....’
계약서를 읽은 메디슨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