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업로드 3
‘원래 한류 드라마의 참맛은 끝없는 고구마 뒤에 강력한 사이다 한 방이지.’
시청자들은 배우들과 스토리를 짠 작가를 욕하면서도 다음 화를 기다린다.
계속해서 암이 걸리는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다음 편을 기다리게 되는 건 작가의 내용 전개와 절단 실력에 달려있다.
드라마에서도 밀당이 필요한 것이다.
‘군대에서 참 많이 봤지.’
자대를 배치받고 전입했을 때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가 ‘살려줘’였다.
한국 아이돌이 주연이라는 말에 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해서 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선임들이 강제로 틀어놓으면 우리가 보지 않더라도 소리는 들어야만 했다.
물론 텔레비전으로 눈이 가는 순간 연병장에 집합해야 했지만.
‘내용도 꽤 흥미로웠는데...’
소꿉친구 부모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소꿉친구를 구해내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청춘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병 주고 약 주고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거지.’
고구마만 먹을 때 목 막혀 죽지 말라고 김치나 사이다를 아주 조금씩 줘야한다는 거다.
너무 답답함과 절망만 주면 시청자들이 떠날 수 있기에, 마치 조련하듯 시청자를 지치게 만든 다음 조금씩 단비를 뿌려주는 게 좋다는 것을 배웠다.
“진짜..... 질리도록 봤는데.”
봤다는 말보단 들었다라는 말이 맞지만, 그래도 그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가기 전에 한두 편만 더 올려볼까?”
-투두두둑!
손가락을 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으윽......’
숙취 때문인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여긴 어디지?’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벤자민은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방을 둘러봤다.
분명 칼리아의 방에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여긴 누구 방이지..?
‘그리고 왜 내가 침대에 있는 거야?’
자신의 방에 있던 침대와 다르게, 침대 크기가 무척이나 작고 낡아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자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방인 걸 알아챘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익숙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방.
벤자민은 이게 꿈인가 싶어 자신의 뺨을 때려봤다.
-쫘악!
‘.....아파.’
너무 세게 때려서 뺨이 붉어질 정도였지만, 벤자민은 이게 꿈이 아니라는 현실에 그저 멍하니 방을 바라봤다.
‘여긴 대체 어디지?’
아무리 봐도 익숙한 방이다.
‘마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살던 집 같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살았던 집 같았다.
‘고등학생 때는 이 방이 싫었었지.....’
낡고, 냄새나고, 시끄러웠다.
쥐도 돌아다니고, 벌레도 많았다보니 이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벤자민은 서둘러 시간을 확인해봤다.
8월 21일 오전 10시 32분 일요일.
‘.....!’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짜.
내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날이자, 변환점이 된 날이었다.
‘엄마.....!’
*****
“자아.... 여기서 어떻게 할까?”
벤자민은 과거로 돌아왔다.
이는 그 어느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크나큰 축복이었다.
“벤자민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 그리고 그 선택은.....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겠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독자들의 반응이다.
“쓰읍..... 그러면 너무 비극적인 선택이 되는데.....”
내용을 다시 수정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자. 댓글 반응을 보는 거야. 그 이후 내용을 전면 수정할지 아니면 계속 나아갈지 생각해보면 되겠지.”
그 부분까지만 쓰도록 하자.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들겼다.
*****
벤자민은 과거로 돌아왔음을 인지했다.
아니,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만 그리던, 항상 그 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늘에 있는 신한테 몇백 번을 빌던 그 상황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엄마가 총기사건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엄마!’
오늘은 일을 나가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일을 나간 것이다.
‘제발.... 제발 전화 좀 받아 엄마!’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서둘러 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뛰어가려던 그때.
-띠리리리리!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벤자민은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곳엔 ‘루시’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루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나 한 시간 뒤에 비행기 타고 떠나.
‘비, 비행기? 자,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그때까지 오지 않으면..... 정말 너랑 끝이야.
그 말만 하고 루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전화를 끊고 서둘러 엄마가 있는 가게로 가려던 벤자민이 걸음을 멈추었다.
‘맞다.....’
평소 말을 잘하지 못하고 몸이 왜소한 나한테 잘해주던 루시.
루시는 오늘 부모님과 함께 이란으로 떠난다.
‘나는..... 이날 루시를 만나러 갔어.’
이란으로 떠나려던 루시는 나와 공항에서 만나, 이란으로 가는 비행기를 하루 뒤로 미룬다.
이후 서로의 사랑을 탐닉하고, 이걸 계기로 칼리아가 태어난다.
당시 루시를 만나느라 엄마의 사망소식을 내일에서야 듣게 되었고, 나는 그 이후로 좌절에 빠진다.
‘......칼리아.’
총기사건을 막으려 엄마한테 갈 것인가.... 아니면 칼리아를 되찾기 위해 루시를 만나러 갈 것인가.
두 개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벤자민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않는 것.
마치 악마가 저울질처럼 벤자민은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
누구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1년 전, 10년 전, 어린 시절, 청년의 시절.
노인들은 삶의 경험에 의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그 누구도 미래에 뭐가 될지 모르기에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벤자민은 미래를 알고 있어. 후회스러운 시간과 행복했던 시간 둘 다를 말이야.”
벤자민이 원했던 건 고작해야 일주일 혹은 며칠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과거로는 왔지만, 이 과거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전이었고, 벤자민 인생의 첫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대였다.
엄마를 구하게 되면 칼리아가 태어나지 못한다. 루시를 선택하면 엄마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막상 과거로 왔지만 벤자민은 어느 비극을 막을 것인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나를 후회할지..... 아니면 후회할 일을 또 저지를지.... 그건 독자들의 선택이지.’
독자들이 과연 어느 것을 고를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내 예상대로 갔으면 좋겠네.”
나는 글을 수정하고 곧바로 샐러쉬에 올렸다.
*****
독자들은 벤자민의 행복을 원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너무 쉽게 끝이 난다.
독자들도 그걸 알고 있지만, 비극적이었던 벤자민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7화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장난해?”
노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화 올린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내용이 전혀 나아가지 않았다.
가뭄의 담비처럼 희망을 주려는 듯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상황을 적어놨기에, 다음 화부터는 그래도 희망이 보일 줄 알았다.
“엄마를 살리면..... 아이를 볼 수 없고, 아이를 보기 위해선 엄마를..... 후우.....”
댓글을 보니 노아처럼 답답하다는 심정들이 많이 적혀있었다.
-Fuxk..... 진짜 작가 놈아. 이렇게 진행할 거야?
-하아.... 젠장! 벤자민이 행복해지는 걸 보고 싶어서 하차할 수도 없고!
-진짜..... 글은 잘 썼다. 벤자민은 미래에서 과거로 왔기에 하나의 비극을 막을 수 있어. 하지만 그 비극을 막는 순간..... 자신한텐 또 하나의 비극이 생겨.
-루시한테 말로 양해 좀 구하면 안 될까? 아니 [email protected]@@! 딱 하루만 더 뒤로 회귀했으면 됐잖아! 왜 첫 비극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인 건데!
-시간이 지나 루시하고 이야기해서 화해한다고 해도..... 루시한테서 태어난 아이가 칼리아일까? 미래의 칼리아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선 미래에 했던 방식을 그대로 가야할 수밖에 없어.
-죽을 걸 알고 있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선..... 앞으로의 칼리아를 보지 못할 각오가 필요한 건가..... 작가 새끼 미쳤냐?
-아니 왜..... 행복회로를 굴려야 할 과거에서 저런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건데..... 벤자민이 불쌍하잖아.....
-아, 마음 같아선 하차하고 싶은데 나는 왜 다음 화를 기다리고 있냐. 제길.
-칼리아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건데..... 왜 과거로 갔는데 칼리아를 보지 못하는 건데..... Fuxk 작가 새꺄 진짜 글 이따구로 쓸 거야?
-아.... 현타오네..... 제길 작가 새끼 죽이고 싶다. 근데 죽이면 다음 내용을 못 봐.....
노아 또한 댓글을 읽으며 자신의 심정을 적었다.
-작가 위치만 말하면 총 들고 찾아갈 텐데.
ㄴ현실은 방구석 찐따.
ㄴ현실은 방구석 히틀러.
ㄴ현실은 방구석 돼지.
노아는 자신한테 달리는 댓글들을 무시하며 화면을 밑으로 내렸다.
-그나저나 어떻게 될 것 같아? 작가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희생할까?
ㄴ난 엄마를 살릴 것 같아. 칼리아는 이 세계에 없어 그러니 살아있는 엄마를 살릴 거야.
ㄴ나는 작가가 어떻게 해서든 둘 다 구해냈으면 좋겠어.
ㄴ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럼 이야기 전개가 재미없어질 거야......
누구를 살렸으면 하는 댓글들도 있었고, 작가의 생각을 캐치한 댓글들도 있었다.
-아직 많은 이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현재 칼리아의 엄마가 루시인 건 나왔지만, 그 루시가 이란으로 가서 어떻게 됐는지는 나오지 않았어.
ㄴ아......
ㄴ아......
ㄴ그러네..... 만일 루시한테 간다고 해도, 루시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 설마 루시도 죽은 거 아니야?
ㄴ아..... 제발 그러지 마..... 벤자민은 무슨 불운의 아이콘이냐. 그럼 이야기가 복잡해진다고.
-루시의 과거라도 나왔으면 조금 더 속이 후련했을 텐데..... 어째서 벤자민은 칼리아를 혼자 돌본 거지? 젠장! 설마 아이를 버린 건가?
ㄴ그럼 벤자민은 루시까지 포함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건가? 젠장..... 연참 좀 하지.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연참!
댓글을 쭈욱 내려보니 연참해 달라는 말들이 많았다.
“후우..... 짜증나네.”
노아는 짜증나는 마음에 목에 메고 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드래곤 원은 어떻게....., 만날 수 있겠어?”
그러자 부하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메디슨 변호사와 말해봤지만..... 생각이 많은 타입인지 생각을 정리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더군요.”
“쯧...... 원래 이름 높은 작가들은 전부 고지식하지. 그래도 끈질기게 권유해봐. 동양 속담 중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니까.”
“근데 대표님은 정말 [블랙 & 월드]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반대로 [블랙 & 월드]가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그건..... 없습니다.”
“[블랙 & 월드]가 최고의 효율을 내려면 우리와 계약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드래곤 원이라는 작가가 감정에 휘말리는 타입이면 블루스타게이트에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서두르는 것뿐이야.”
“설마 자신의 작품을 블루스타게이트에......”
“[사막의 전갈]이 흥행에 성공하면 블루스타게이트에 맡기지 않을 이유도 없지.”
노아는 책장 서랍에서 시가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어린이들의 꿈나라 대표가 시가를 무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안 좋습니다.”
“그 돼지 새끼가 망쳐 놓은 명성을 회복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이번만 필게.”
세계 문학의 중심이라 불리는 월드 미션 컴퍼니의 새로운 수장인 노아 올슨은 시가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