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해외진출
빌에이든 미디어는 캘리포니아 LA에 위치해있다.
LA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중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LA에 가면 몬테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동양인들을 자주 만나기도 했다.
‘오랜만이네.’
비행기에서 나온 나는 곧장 입국장으로 향했다.
과거에는 이코노미를 타고 왔었는데 이제는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제일 첫 번째로 내리는 특혜를 누리자 뭔가 기분이 묘했다.
“작가니이이이임!”
저 멀리서 종이 팻말을 들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밀라.”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에밀라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일 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하하..... 넵. 그동안 뭐.... 음. 넵.”
잘 지냈냐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에밀라의 얼굴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니에요. 그보다 얼른 가죠!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저 초췌한 얼굴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고 에밀라가 가져온 차에 탑승했다.
*****
나는 먼저 호텔에 가서 짐을 내린 다음 빌에이든 미디어로 향했다.
호텔에서 빌에이든 미디어까지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가니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네.....’
빌에이든 미디어는 작은 빌딩이었다.
애초에 책을 출판하고 관리하는데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빌에이든 미디어가 담당하는 작가들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책을 출판하는 건 협력 업체의 몫이다 보니 직원들이 많이 필요하진 않으리라.
빌에이든 미디어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깨끗하게 정돈된 실내가 보였다.
‘깨끗하네..... 어제 청소라도 한 건가?’
비교적 낡은 건물이었음에도 내부는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선 광이 날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에밀라의 다크서클이 이 청결함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5층에서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5층이라면 이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다.
에밀라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띵!
5층에 도착했다는 소리와 함께 로건이 있는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임스 작가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로건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미소 띤 얼굴로 로건이 내민 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꽈악!
“오시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하하하하! 좋은 차를 구해놨습니다!”
로건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나를 테이블로 데려갔다.
‘냄새 좋네.’
로건이 타준 차를 음미하며 실내를 살펴봤다.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답게 대표실에도 책이 많이 있었고,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꿉꿉하면서도 낡은 냄새가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로건이 타준 차도 향기로웠지만, 묘하게 과거의 향수를 일으키는 책의 향기에 차 냄새는 잊은지 오래였다.
“아. 혹시 차는 도착했습니까? 빨리 도착하면 어제쯤에 도착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뇨.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쉽군요..... 작가님한테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로건과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아. 참! 이 소식 들으셨나 모르겠네요.”
“소식이요?”
“작가님 [블랙 & 월드]가 어제까지 총 72만부를 달성했습니다.”
“72만.....”
“일주일 내에 100만 부를 찍었다면 미국 신기록에 도달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저희의 능력 부족이 발을 잡더군요.”
[사막의 전갈] 투고 당시 이사벨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투고를 했었다.
그 중에는 유명한 출판사도 있었지만, 메디슨은 빌에이든 미디어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의 비전이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어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주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솔직한 로건의 태도와 남들보다 높은 대우를 약속했기에 빌에이든 미디어를 선택한 것이다.
알고 있는 협력업체도 몇 곳 되지 않았고, 공장을 풀로 돌리고는 있지만 한 공장만 돌리다보니 생산량이 부족했다는 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로건의 태도가 믿음직스러웠다.
“동양 속담 중에 물 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사막의 전갈] 영화화로 한창 이슈인 이때 노를 저어야 할 텐데 말이죠.”
나는 그 말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대로만 해주세요.”
“네?”
물 들어 올 때 노 젓는다. 확실히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블랙 & 월드]의 인기가 [사막의 전갈] 영화화로 인해 생겼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찍어내는 속도가 따라주지 못한다고 잘 팔리지 않는다면 거기까지가 제 실력인 거겠죠.”
“작가님.....”
“그냥 지금처럼 해주세요. 제 실력에 이제 확신이 생기고 있어서, 전작 인기에 힘입어 잘 팔리고 있다는 말은 제가 듣고 싶지 않더라고요.”
내 실력은 다이벨이라는 필명으로 이미 확인한 뒤였다.
[블랙 & 월드]를 읽고 재밌어하는 사람들도 확인했기 때문에, 자만은 금물이지만 어느 정도 작품에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작 작품 하나만 성공했던 과거에는 항상 내 실력을 의심하고 불안해 했지만, 지금은 이미 두 작품을 연속으로 성공하고 웹소설에서까지 내 실력을 인정받지 않았던가.
“그렇군요..... 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로건은 내 생각을 듣자마자 곧장 잘못을 시인했다.
“대표님도 저를 위해서 열심히 해주셨는데 잘못이라니요. 그냥 제 생각이 조금 변했다는 정도로만 알아주세요.”
어쩌면 작가의 자존심을 건들 수 있는 발언이었음에도 제임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처음 로건이 우리 집에 왔을 때만 해도 나는 내 능력에 자신없어하는 한낱 초짜 작가였다.
그래서 로건이 이렇게 서두른 것일 수도 있다고 이해가 될 뿐이었다.
“참. 작가님. 혹시 해외진출은 고려하고 계십니까?”
“해외진출이요?”
“예. 현재 많은 나라에서 책을 유통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중국, 일본이 공식적으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흐음.....”
“한국에서도 왔습니다만..... 그 나라는 저희 쪽하고 사정이 다르더군요. 종이책 시장의 몰락?이라고 해야할까요? 전자책으로 발매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종이책 시장의 몰락....이라....”
웹소설을 연재하는 군대 선임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원래는 일반 문학 소설 작가를 꿈꿔왔지만, 그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돈을 벌기 위해 웹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웹소설 시장 규모가 컸고,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았다.
스마트폰을 보는 횟수가 많아서인지 웹소설을 광고하기도 했으며, 손쉽게 볼 수 있기에 시장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도 전자책 발매를 일단 목전에 두고는 있습니다. 요즘 미국도 수요가 제법 괜찮으니까요. 그 부분에 관해선 다시 계약서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대우는 맡겨주십시오. 최고를 약속합니다.”
“계약서에 관한 부분은 메디슨 누나와 합의 부탁드릴게요.”
“물론입니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해외진출은 바로 진행해주세요. 저도 제 소설이 해외에 통하는지 궁금하네요.”
“통할 겁니다. 아니, 통하게 할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작가님의 실력은 세계에 통합니다!”
로건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까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말하더니.
나보다 내 작품을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 같았다.
“그리고 웹소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작가님이 올리신 SNS를 봤습니다. 웹소설을 연재하고 계시다고요.”
“네. 오늘은 휴재할 거지만요.”
그 말에 로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읽었네.’
이사벨도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 알고 있었다.
하긴, 궁금한 부분에서 끝났는데 휴재까지 한다고 하니 독자입장에서는 섭섭할 것이다.
“혹시 오늘 일 때문에.....?”
“네. 사인하면 손이 아프다고 해서요.”
어제 글을 쓰지 않았고, 오늘도 글을 쓰지 못하니 이틀을 휴재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삼일 동안 휴재할 수도 있겠지.
“아쉽군요..... 정말 아쉬워요.....”
“하하하하. 연중할 수도 있는 작품이니까 그냥 재미삼아 보세요!”
“.....!”
그 말에 로건은 충격에 빠졌다.
“여, 연중이라니요? 이 소설을요?”
“네. 아시다시피 제가 적고 있는 소설이 많아서요. [사막의 전갈]도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를 달성하면 2부 연재에 돌입해야 하고, [블랙 & 월드]도 당연히 2부를 준비해야 할 것 같고요. 거기에 [드래곤 마스터]나 [사막의 제국]까지 2부를 적을 생각만 하면..... 어휴. 말도 마세요.”
거기에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다른 작품들처럼 한 권으로 끝날 내용이 아니었다.
못해도 2~3권은 집필해야 할 텐데 현재처럼 시간이 있을 때라면 모를까 매일 쓰기는 힘들었다.
“......”
로건은 집에서 이사벨이 보여줬던 충격 받은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쉽....군요. 아쉬워요.... 정말.... 너무 아쉽네요.”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나, 마음속에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 로건은 연신 아쉽다는 말만 내뱉었다.
“실은 웹소설을 계속 적으신다면..... 케어를 저희 측에 맡겨달라고 요청하려 했습니다.”
“케어를요? 빌에이든 미디어도 웹소설에 대해서 아시나요?”
“예. 물론입니다. 얼마 전에 시장을 조사해보니 어떤 방식으로 유통이 되는지도 알겠더군요. 현재 웹소설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드는 일을 추진 중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적는 웹소설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인 것 같았다.
“만일 연중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실 생각이시라면 저희 측에 맡겨보시는 것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딘가 간절해 보이는 로건의 얼굴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로건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회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안내는 로건이 직접 해준다고 했다.
회사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둘러보는 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앞으로 직원들이 몰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제발 사인 좀 해주세요! 오늘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팬과 종이를 들고 일렬로 서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자 로건이 히죽 웃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작가님이 오시는 줄 알고 모두 이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직원들이다보니 다들 책을 좋아하니까요.”
“하하.....”
“물론 안 해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사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다 사인을 해주고 통증이 느껴질 무렵, 로건이 다시 한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양장본 988권에 사인 해주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깜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