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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47화 (46/216)

47화 버스킹

어린 시절 엄마한테 혼나면 반성문으로 깜지를 적은 적이 있기에 천권 정도는 금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 앞에 잔뜩 쌓여있는 990권의 책들을 보자 몸에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포장은 이렇게 나갈 거예요.”

동양풍과 서양풍을 적절하게 섞은 패키지 안에 양장본이 놓여 있었다.

“작가님 사인이 끝나면 바로 포장할 거예요.”

“깔끔.....하네요.”

에밀라는 웃으며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책을 산더미처럼 들고 왔다.

“이제 사인 부탁드려요!”

“......”

사인은 여전히 드래곤 투다.

여전히 부끄러운 사인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한테 드래곤 투라고 사인을 해준 이상 바꾸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이벨 필명으로 한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만약에 출간된다면 그때는 다이벨에 어울리는 멋드러진 사인을 만들어야지.

“끄응....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요.”

“에이. 고작 천 권인데요? 전에 있던 회사에선 만 권 사인하신 분도 있었는데 그 분 손가락은 무사하셨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작가님!”

“......”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원천봉쇄해버리는 에밀라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속 사인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에밀라는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해본 적이 있는 건가?’

어차피 주변에 에밀라밖에 없어서,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에밀라. 혹시 해외진출한 작품들에 대해 아시나요?”

“물론이죠! 전에 있던 회사에서 몇 작품은 아시아 쪽으로 진출했으니까요! 물론 인기는 그닥 없었지만요.”

“없었어요?”

“네. 해외진출하면 성공하는 작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자국 소설들 중에서도 재밌는 게 많은데 굳이 번역이 이상하게 된 소설을 볼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그러네요.”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이라던가 그 사람이 쓴 소설은 팔리기도 하는데, 오로지 재미만으로 승부를 보려면 다른 문제가 필요하죠.”

“다른 문제요?”

“예를 들면.... 영화화?”

“아......”

“세계적으로 히트치게 되면 영화의 원작 작품이 궁금해지니까요! 자자! 그보다 얼른 손을 움직이셔야 저녁에 끝날 수 있을 걸요?”

에밀라는 그만 입닫고 사인이나 하라는 듯 책을 들이밀었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표지 뒤편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

“으으.... 손가락 아파.”

로건은 직원들과 다 함께 회식을 권유받았지만, 피곤해서 양해를 구하고 호텔에 왔다.

물론 직원들 전부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손목의 피로가 생각보다 심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손목 힘은 자신 있었는데..... 글 쓰면서 약해졌나보네.’

나는 호텔 침대에 누운 상태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해외진출이라...... 과연 먹힐까?’

로건의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불안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아까 에밀라한테 들었던 것처럼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다보니, 번역한 원고로 작가가 적었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글 버전이라도 내가 적어볼..... 아니야 이건 로건한테 맡기자.’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전적으로 로건한테 맡기자.’

해외진출에 관해서 나는 아직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어떤 식으로 광고되는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건 전문가한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로건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빌에이든 미디어의 작품 중에서 해외 진출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로건 또한 첫 시도였다.

‘믿고 맡겨야지.’

누구나 첫 도전을 한다.

실수한 것도 아닌데 첫 도전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외진출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계약조항 상 이제와서 파기할 수도 없었다.

“끄응..... 이제 뭐하지?”

저녁식사도 피곤해서 마다한 터라, 막상 호텔로 오니 배만 고프고 할 게 없었다.

‘뭘 먹지.....’

한식이 먹고 싶었지만 무언가 뚜렷하게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진 않았다.

‘고기, 전, 비빔밥......은 빼고.’

비빔밥은 집에 있는 음식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 그리 땡기지 않았다.

‘집에서 먹기 힘들 음식....하면 전이지.’

재료도 재료지만, 기름도 많이 써야 하고, 집에서도 기껏해야 명절에나 해먹을 정도로 만들기 귀찮은 음식이었다.

갈비나 다른 한식류는 쉽게 먹을 수 있는 편이지만, 전은 엄마가 만들기 가장 귀찮아하는 음식이었다.

‘전.... 전을 먹자!’

막걸리에 전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어디보자.... 이 근처에 전집이라 하면.....’

좋은 곳이 있었다.

골목길 할매 전집이라는 곳인데, 과거에 월리와 함께 같이 갔던 가게였다.

전은 평범하게 맛있는 곳이었지만, 막걸리를 직접 담가서 그런지 월리 또한 막걸리의 맛을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네.....’

줄은 서 있지 않았지만 막상 식당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차 있었다.

‘.....그냥 직원들과 회식이나 갈 걸 그랬나?’

혼자 혼술을 기울이는게 조금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됐다.

‘얼른 마시고 들어가자...... 작가는 원래 고독한 법이지.’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할 상대가 없다보니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SNS나 확인해볼까?”

로건의 당부에 SNS에 게시글은 올렸지만, 댓글은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뭔가 쓸쓸해서 뭐라도 하고 싶어졌기에 핸드폰을 켜고 SNS에 들어갔다.

‘확인해도..... 괜찮겠지?’

실력에 자신은 있었으나, 비교에는 자신이 없었다.

특히 비교 상대가 옆집 엄마친구아들도 아닌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에드월 홈즈인데 멘탈이 버티겠는가.

‘그래도 반응은 확인하고 싶어지네.’

막걸리 몇 잔으로 목을 축여서 그런지 기분이 묘하게 올라갔다.

술로 얻은 용기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지금, 평소에는 확인하지 않을 SNS 댓글을 확인하기로 했다.

“어디.....”

SNS 중 [블랙 & 월드] 양장본을 찍은 게시글 댓글을 확인했다.

-확실히 에드워드가 에드월의 향기를 느꼈다고 말한 이유는 알겠네. 잘 쓴 글이야.

ㄴ맞아. 글은 잘 썼어. 에드월의 글에서 필력이 조금 느껴지긴 했어.

-나는 에드월보다 드래곤 원 글이 더 흥미로운데? 에드월의 글은 조금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드래권 원이 쓴 글은 읽기가 수월하기는 해.

ㄴ에드월의 글은 청소년 추천 책으로 많이 쓰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렵기도 했지.

-아직 부족함이 보이는 글인 건 확실해. 에드워드의 말을 들어보니까 확실히 보여.

ㄴ디테일이라고 해야할까? 상황묘사가 조금 떨어지긴 하더라.

ㄴ생각해보면 아직 신인 작가나 다름없는 작가라고? 소설도 고작해야 2권뿐이고,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어. 아니, 이미 최정상급이긴 하지.

-젠장. 에드월의 향기고 뭐고 간에 2부는 언제 나오는 건데? 에드워드 선생님 말 듣자마자 이 작가의 팬이 됐다고! 얼른 다음 작품 가져와!

긍정적인 반응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있으면, 부정적인 반응도 있는 법.

특히 에드월 홈즈의 팬들은 전부 올드하다 보니, 에드월의 글보다 뛰어난 글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부정적인 의견도 의견이지만......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다행이네.”

물론 부정적인 댓글을 봐서 기분이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내가 동양인인 것을 알았는지 댓글 중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쯧.”

나는 막걸리를 다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진 것도 있지만, 이 이상 마시면 머리가 굳어질 것 같았다.

옛날에야 완전히 뻗을 정도로 자주 마셨더라도, 이제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돌아다녀볼까?”

계산을 하고 나온 나는 주변을 돌아다녔다.

술기운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정신을 차리려는 건 아니었고, 그저 싸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었다.

뜨거워진 폐 안에 서늘한 공기가 들어와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몸이 상쾌해졌다.

“후우..... 할 게 없네.”

아무도 함께 오지 않아서 혼자선 할 게 없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글을 써볼까?’

엄마는 항상 ‘술은 만병을 치료하는 보약이다’라고 말하셨는데, 지금에서야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됐다.

휴식 때문인지 아니면 막걸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손목이 조금 풀려서 글을 써도 무방할 정도였다.

‘글이나 쓰러가자. 이럴 때 쓰려고 웹소설을 시작한 거잖아?’

그렇게 다시 호텔로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 ♪♬~♪

어디선가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킹인가?’

일하러 미국 전역을 돌 때 월리하고 맥주 한 병씩 쥐고 버스킹하는 걸 구경한 적이 많았다.

위험지역도 있기는 했지만, 여기는 위험한 장소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정도로 음색이 아름다웠다.

‘어디.’

나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있는 여성과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두 명의 남성.

‘음색이 아깝네.’

여성의 음색은 아름다웠으나 뒤에 있는 두 명의 남자들의 연주 실력이 좋지 않았다.

무언가 툭툭 끊기는 느낌도 났고, 연주가 제대로 받쳐주질 못하니 여성의 목소리가 묻히는 느낌도 났다.

그걸 느낀 건 나뿐 만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여성의 음색이 여전히 좋았기에 나는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

여성의 노래가 끝나자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박수로 호응해주며, 지갑에 있던 $10 한 장을 꺼내 돈바구니 안에 넣었다.

‘슬슬 갈까?’

노래도 다 들었으니 다시 호텔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는 순간 여성이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마지막 노래는..... cover song이 아닌 저희가 만든 노래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드래곤 원 작가님이라고 아시나요?”

“쿨럭!”

갑작스럽게 들려온 내 필명에 헛기침이 나왔지만, 주위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예에에에에에에-!!!

터져나온 환호성에 마이크를 붙잡았던 여성도 놀랐는지 베시시 웃음 지었다.

“[사막의 전갈]과 [블랙 & 월드]를 집필하고, 에드워드 선생님이 직접 에드월 선생님의 향기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던 유명 작가죠! 그 분이 집필한 [리턴 패션 디자이너]라고 혹시 아시나요?”

-우우우우우우!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 야유에 여성이 웃으며 답했다.

“오늘 휴재한다고 해서 모두 마음이 아프신가 보네요. 저도 그래요. 그 소설을 보고 영감을 받은 노래인데..... 한 번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짝짝짝짝짝짝-!!!!!

그녀가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그 상황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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