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48화 (47/216)

48화 버스킹 2

고즈넉한 밤하늘에 아름다운 음색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제임스는 조용히 여성이 노래하는 영상을 찍으며 아름다운 음색에 어울리지 않는 가사를 곱씹었다.

「인생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닌 인연을 배우는 것인데

아무리 슬프고, 분노하고, 눈물이 흘러도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인연을 믿었고.

믿음은 한때 배신으로 다가와 내 가슴에 총을 겨누어도

나는 다시 한 번 더 일어나 인연을 찾으러 갈 거야

절망, 사랑, 고통, 희망 모두 상관없어.

나는 나한테 주어진 비극을 피하고 인연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일어날 거야.

좌절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더욱 앞으로

내 몸이 망가져도, 내 마음이 휘어져도 나는 절대 부서지지 않아.」

“.....”

가사가 왜 이러지?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내용 자체는 벤자민의 고통을 잘 나타내는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가사가 아쉽긴 하네.’

내가 적어도 저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소설에 영감을 받아 노래까지 만들어줬다고 하니 진짜 고맙네...’

기분이 묘했다.

어린시절, 아직 영화각본가를 꿈꾸기 훨씬 전에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시나 노래로 나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영화화도 좋지만, 영화보다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전달되는 아름다운 음악과 시로 다시 태어나면 어떨까?

‘음유시인을 꿈꿨었지?’

나는 그 시절을 생각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존재들은, 세상을 여행하며 각종 영웅담과 전설, 설화, 이야기들을 노래로 만들어 세계에 ‘소문’을 전하는 존재들이었다.

어린시절 순수한 동경의 마음으로 음유시인이라는 존재들을 부러워했었다.

‘재밌네.’

꿈을 위해 달리는 이들이 내 소설에 영감을 받아 노래로 전해주자 갑갑했던 마음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소설을 보고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소설을 잘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드래곤 블러드]를 보고 꿈을 키워왔듯, 내 작품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꿈이, 희망이, 우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 돌아다니고 글 쓰자.’

비록 가사는 아쉬웠을지라도,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밴드 앞에 있는 바구니 안에 돈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까 돈을 넣긴 했지만 다시 지갑에서 $10 한 장을 더 꺼냈다.

‘이렇게만 넣으면 재미없지....?’

나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종이 한 장을 찢은 다음, 감상평을 적고 돈과 함께 바구니 안에 넣었다.

“잘 듣고 갑니다.”

*****

SHG 밴드는 남녀혼성 그룹으로 솔직히 인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의 꿈은 가수였지만 먹고 살 걱정에 꿈을 접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버스킹을 하는 정도로 자신의 꿈을 채우고 있었다.

다만,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두 남자와 달리 엠버는 노래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아직까지 꿈을 완전히 접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작곡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음색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 음색을 살려주는 작곡이 불가능했다.

프로듀싱을 맡기기에는 돈이 없었고, 남이 만들어준 노래를 부르자니 무엇보다 느낌이 살지 않았다.

엠버는 자신이 만든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게 가장 좋았다.

하지만 음색이라는 장점 하나로 가수로 성공할 수는 없었다.

“엠버. 바구니에 뭔가 있는데?”

“응?”

받은 돈을 정산하던 동료가 갑자기 바구니 안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꺼냈다.

“쪽지인가? 요즘도 이런 게 있네?”

과거에는 응원한다는 말과 더불어 스카웃하고 싶다는 쪽지를 바구니 안에 넣기도 했다.

물론 그건 아주 옛날 이야기일뿐, 지금은 SNS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있었다.

“줘봐.”

엠버는 동료의 손에 있던 쪽지를 펼쳤다.

「잘 듣고 갑니다. Dragon two」

“.....Dragon two? 이게 뭐지?”

아직 드래곤 원의 사인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유치한 사인을 한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띵동!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 알림소리가 울렸다.

“누가 SNS에 게시물을 올렸나?”

동료 중 한 명이 별생각 없이 SNS로 들어가 알림의 정체를 확인했다.

“......!”

그런데 그 동료가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떨어트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데?”

엠버는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화면을 확인했다.

『제임스 권(Dragon one)

【동영상】

LA에서 만난 인연. 불안했던 마음을 가시게 해주는 음색이네요.

가사가 아쉽긴 했지만,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 영감 받은 노래답게 슬픈 음색이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힘내서 [리턴 패션 디자이너] 연재할게요!

그래도 오늘은 휴재!』

“.......!”

동영상에는 방금 자신들이 한 공연이 나오고 있었다.

“서, 설마.....!”

엠버는 들고 있던 쪽지를 다시 확인했다.

[Dragon two]

“드래곤 원.....이 거기 있었다고?”

엠버의 추측에 동료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

호텔로 돌아온 나는 SNS에 방금 보았던 공연 영상을 올린 뒤 파일을 열었다.

공항으로 가는 부분에서 벤자민의 시간은 이틀 동안 멈춰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바뀌었지.....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노잼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하고...’

이 부분이 넘어가야 벤자민이 자신의 꿈이었던 패션 디자이너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일단 ‘시작’인 이 부분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우선 생각했었던 루시 이야기를 더 적어볼까? 아니면..... 벤자민의 이야기를 더 적을까?’

뭐가 되었든 간에 벤자민은 자신한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해서든 활용해야 한다.

“음... 잘 안떠오르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어떻게 적어볼까 생각을 거듭했다.

‘우선 벤자민은 루시를 한 시간 내에 만나러 가는 데에는 성공할 거야..... 다만, 불안하겠지. 경찰이 도와주지 못하면 엄마가 죽는다는 걸 아니까.’

미국이 총기 사고에 얼마나 예민한지 알기 때문에 경찰들한테 맡겨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할 것이다.

죽는다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그 불안감은 평소보다 클 거고.

“루시의 이야기도 비극으로 만들어보자. 루시 또한 비극을 맞이하기에 벤자민이 구하려고 하는 걸로.”

-투두두둑!

생각이 끝나자 나는 손가락을 풀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

벤자민은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는 내내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택시 운전사는 그 모습을 힐끗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벤자민을 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불안해.....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그 누구도 이 상황이 되면 100%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인지, 지금이라도 택시를 돌려야 하는 것인지.

벤자민은 계속해서 불안감에 떨었다.

‘칼리아.....’

과연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미안해 칼리아..... 난..... 미안해.’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하고, 다짐하고, 결심했다.

아직은 울 때가 아니다.

오늘 비극은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으니까.

‘루시의 부모님을 구해야 해.’

루시의 부모님은 일 때문에 이란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다만, 이란에 도착한 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결국 그 다음날 루시는 어떻게 해서든 이란으로 향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부상이 심해도 살아계셨지만, 아버지는 결국 운명을 다하셨다.

*****

“쓰읍.... 더 이상 안 써지네.”

루시 부모님의 이야기를 다시 수정하는 게 좋을까?

“아니 애초에 벤자민은 어떻게 이란으로 가는 루시의 부모님을 막을 건데?”

이 부분은 수정이 필요할 듯싶었다.

“루시의 부모님이 죽지 않을 걸로 할까? 아니면..... 하아. 머리 아프네.”

시놉시스를 적지 않고 글을 쓰는 단점이 이것이었다.

진행방향이 막혔을 때 더 이상 글을 앞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리수를 두게 될 수밖에 없고, 작품의 퀄리티는 떨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앞으로의 시놉시스를 적어놓자.’

글을 쓰던 파일 창을 닫고, 다른 파일 창을 띄웠다.

“내용의 끝은 당연히 벤자민의 성공...... 줄거리는 자신한테 일어나는 비극을 하나하나 막는 스토리.”

시놉시스를 적으며 나는 루시의 이야기를 재탄생 시켰다.

‘루시의 부모님은 죽지 않는 걸로 바꾸고, 대신 루시가 죽는 걸로 바꾸자.’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에일리의 이야기다.

벤자민이 에일리고, 루시가 에일리의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며 글을 적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루시가 벤자민한테 칼리아를 버리고 떠났다는 식의 글이 되기에, 벤자민의 비극은 더욱 심해질 뿐 그 어느 사이다도 만들 수 없었다.

‘루시가 죽은 뒤 루시한테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딸이 자신과 루시 사이에서 나왔다는 걸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거지..... 벤자민은 그 이후로 자신의 꿈을 접고 딸을 키우기로 한 거야.’

전형적인 뻔한 K-드라마 전개지만, 확실한 전개이기도 하다.

‘벤자민은 어떻게 해서든 루시의 출국을 막아야 해.’

다만, 그렇게 해도 칼리아는 태어나지 않을 테지만.

“다시 글을 쓰자.”

-투두두둑!

나는 손가락을 풀었다.

*****

다음날, 호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잔뜩 맞으며 찌뿌둥한 몸을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또다.

또 정신을 차려보니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 습관 진짜 안 좋네......’

웹소설만큼은 미친 듯이 적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또 이렇게 정신놓고 적게 될 줄이야.

“끄응.....”

-우두두두둑!

스트레칭을 하자 굳어졌던 관절이 펴지는 소리가 들리며, 눈앞이 흔들렸다.

새벽부터 계속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인지 현기증이 온 것이다.

“후우. 배고프네..... 오늘은 그냥 얌전하게 호텔에서 조식이나 먹자.”

오늘은 빌에이든 미디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가야한다.

-띠리리링!

조식을 주문하려는데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조엘? 어쩐 일이세요?”

-하하! 어디까지 왔나 해서 말이야.

“뉴욕에는 오후에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국 땅덩이가 작은 것도 아니잖아요.”

-아. 그럼 바로 korea spa로 올 수 있어? 오늘 선생님이 spa가시는 날인데 코리안들이 스파에서 친목을 쌓는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으셨나봐. spa에서 만나자고 하셔.

“.....가자마자 바로요?”

-응.

오늘 하루 종일 못 잤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하긴 spa면 오히려 피로가 풀리려나?’

잠은 비행기에서 보충하면 되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주소 보내줄 테니까 그 쪽으로 와!

어딘가 신나보이는 조엘의 목소리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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