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49화 (48/216)

49화 에드워드 잭슨

뉴욕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편안했다.

본래는 이코노미나 비즈니스를 타고 대도시 뉴욕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로건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미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해 놨다.

“후아아아암~”

짙은 커피를 마셨지만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스튜어디스가 깨워주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잠깐 잔 것 같은데....’

LA에서 뉴욕은 같은 미국임에도 다섯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이미 비행기는 착륙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서둘러 들고 온 짐을 챙겨 공항 밖으로 나갔다.

“택시!”

뉴욕에는 와본 적이 없기에 곧장 구글맵을 보고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손을 흔들자 중앙등 불이 반짝이고 있는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멈춰섰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아. 우선 짐 좀 실을게요. 트렁크 좀 열어주세요.”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실은 다음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기사는 아는 곳인지 내가 말한 위치를 듣자마자 곧바로 차를 움직였다.

‘Sojo Spa라.....’

인터넷을 쳐보니 Korea SPA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좋은지 별점이 높았고, 여러 방송에서 나온 적도 있었다.

‘줄리어드 스쿨하고 차타고 30분 정도 걸리네.’

마치 호텔처럼 사우나를 즐길 수 있어서 최근 가장 핫한 사우나라고는 하지만,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평도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네.’

60불 정도로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는데, 내부 이미지를 보니 웬만한 호텔보다 안전하고 좋아서 그 가격이 납득이 될 정도였다.

특히 서서히 선선해지는 뉴욕 날씨 때문인지 SPA에서 피로를 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사우나..... 오랜만에 가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사우나 아니면 모텔이었다.

다만, 군대에서는 웬만하면 사우나는 가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첫 휴가 당시에는 그냥 모텔에서 지냈다.

‘사우나에 가면 돈뜯길 수도 있다고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선임이 말했다면 그냥 무시하고 사우나에 갔을 테지만, 놀랍게도 소대장이 말한 말이었다.

전역했던 선임 중 한 명이 사우나에서 잠을 자는 와중에 잠꼬대를 해서 몸을 살짝 틀었는데, 그 옆에 아줌마가 있었다고 한다.

아줌마의 몸을 살짝 건드렸는데 그게 결국 군인 성추행 사건으로 몰려서 돈을 뜯겼다는 헤프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그렇게 한참이나 추억에 빠져있는 사이, 택시는 도로를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잔돈은 팁이에요.”

팁 치고는 많은 돈에 택시기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수 트렁크를 열어 짐을 내려주었다.

탑클래스 자본주의의 나라답게 돈이 들어가는 순간 친절해진다.

“여긴가.....”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곧 Sojo Spa라는 빌딩이 보였다.

‘조엘한테 전화해야겠지?’

건물 앞에서 조엘한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가지 않아 조엘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도착했어?

“네. 지금 건물 앞이에요.”

-우리도 지금 가고 있어. 2~30분 정도 걸릴 것 같으니까 먼저 들어가 있을래?

“아. 네. 그럴게요.”

-참. 양장본은 가져왔어?

“.....혹시 몰라서 가져오긴 했죠.”

내가 받았던 양장본 10권 중 남은 것들을 전부 가져오긴 했다.

그래봤자 4권뿐이지만, 일단 다른 6권과는 달리 이 4권은 포장까지 빌에이든 미디어에서 한 다음에 가져왔다.

-흐흐흐흐. 잘했어.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점수 따봤자 나쁠 건 없으니까. 아무튼 얼른 갈게.

‘점수따려고 가져온 건 아니었고.’

점수보다는 동경심 때문이었다.

팬들이 연예인한테 선물을 하듯, 나도 우상 중 한 분이신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내 작품을 재밌게 읽는다고 하시니, 쉽게 구할 수 없는 양장본이라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가져온 것이다.

“들어갈까?”

나는 SPA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

“와아...”

이곳은 찜질방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리석으로 인테리어된 내부가 거의 호텔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어차피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하기에 피로도 풀 겸 3일 동안 머물기로 했다.

찜질방 복장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선 안쪽에 대여한 수영복을 입은 뒤 옷을 입고, 그 위에 가운을 두르고 돌아다닌다.

“뭐랄까..... 한국하고는 완전 다른 느낌이긴 하네.”

한국에서 사우나라고 하면 ‘피로를 풀며 하룻밤 잔다.’ 같은 느낌이지만.

여기는 마치 ‘여행을 오는 것과 동시에 피로를 풀고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같은 느낌이었다.

“오! 안마의자!”

찜질방 하면 역시 안마의자지.

릴렉스 룸에 있는 안마의자에 누운 뒤 키패드를 찍어 계산했다.

-지이이잉.

서서히 작동을 시작하더니 천천히 내 몸을 압박하고 풀어주기를 반복했다.

“흐아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집하고 고모부내하고 안마의자 하나씩 시킬까?’

고모부와 내 안마의자까지 주문시키고 싶을 정도로, 안마의자에 누워있으니 하늘에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몸에 있는 피로를 해소하고 있던 사이, 누군가 내 옆 안마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원한가?”

“네..... 으아아.... 집에 하나 사 놓고 싶을 정도로 시원하네요.”

“쯧쯧. 마그누스 말대로 몸을 아끼질 않는구만? 운동을 얼마나 안 했길래 이거 가지고 시원할만큼 몸에 피로가 그리 쌓이나?”

“.....예?”

“젊은 놈이.... 쯧쯧.”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혼자만 수건으로 양머리 모자를 만들어 쓴 백인 할아버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Korea Sikhye 한 잔 하겠나?”

“에, 에드워드 선생님?”

“릴렉스 룸의 기본 예의는 조용함일세. 한국인이 그것도 모르나?”

재밌다는 듯 허허 웃는 에드워드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한참이나 굳어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역시 이곳에 계셨네요?”

그런 내 곁으로 조엘이 웃으며 다가왔다.

“어? 제임스? 너도 여깄었어? 전화 걸려고 했는데 여깄었네?”

조엘이 등장했음에도 나는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 조엘 삶은 달걀은 사왔나?”

“네. 릴렉스 룸에 계속 있으실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나? SAUNA로 가서 먹어야지.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가, 가야죠!”

“쉬잇. 릴렉스 룸에서 조용히 하라고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당황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

미국의 대중음악은 에드워드로부터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대중음악을 시작한 건 에드워드가 아니지만, 미국의 음악시장을 키우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 건 확실했다.

가수로서도 훌륭했지만, 그가 프로듀싱한 음악들은 전부 성공했고 무엇보다 미션월드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미션 월드의 성공작 대부분은 에드워드가 프로듀싱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정하라고 하면 나는 가족이 아닌 에드워드 잭슨을 고를 것이다. 그의 노래는 나를 평생 동안 동심의 상태로 유지하게 해줄 테니까. - 딜런 윌리엄스]

어느 대기업 대표는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내가 상상한 에드워드 선생님은 위엄 넘치고 음악가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던 베토벤처럼 멀리서 봐도 난 ‘음악가’다 라고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양머리라니.....’

이곳에서 그 누구도, 정확히는 한국인인 나조차 하지 않는 양머리를 만들어 머리에 쓴 채 삶은 계란을 일일이 손으로 까서 먹고 있는 사람이 에드워드 선생님일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런 에드워드 선생님과 똑같이 양머리를 쓰고 있는 조엘은 훈연한 달걀을 욤욤 먹으며 말했다.

“여기 얼마 전까지 삶은 달걀은 팔지 않았다? 근데 유명 OTT에 나온 갑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삶은 달걀이 나온 뒤로 이렇게 팔더라고.”

“갑오징어 게임..... 그러고 보니 지인한테 들었네요. 그게 그렇게 유명한가요?”

“세상을 투영한 듯한 드라마니까. 무엇보다 한류 드라마기도 하고.”

“예?”

“안 봤어? 전문가들이 갑오징어 게임을 현 세상을 투영한 듯한 드라마라고 극찬하던데?”

“어..... 제가 드라마를 안 보고 다녀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오징어 게임을 몰라? 매점에 가면 dalgona candy라던가, bibimbap lunch box라던가 드라마에서 나온 음식들도 많이 판다고?”

“......달고나를 판다고요?”

“응. 제한시간 뽑기에 성공하면 음료를 서비스로 주기도 해.”

“달고나를 미국에서 할 줄은 몰랐네요.”

“하하하하. 한국처럼 달고나에 실패해도 죽이진 않지만!”

“......예? 달고나에 실패했다고 사람을 왜 죽여요?”

“드라마에서 그렇다고. 드라마 안 본 사람이랑 대화하려니 답답하네.”

“.....봐야겠네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궁금해졌다.

나는 달걀 껍질을 까서 소금에 콕콕 찍어 입으로 연신 가져가는 에드워드 선생님을 살폈다.

맥주를 마시며 달걀을 안주삼아 먹는 에드워드 선생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신기했다.

“크으..... 근데 자네 최근에 또 무슨 글을 쓰나?”

“현재..... [사막의 제국] 수정이 끝나서 계약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라고 인터넷에서 소설을 쓰고 있기도 해요.”

“아.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조엘의 권유로 읽어봤네. 자네 글을 좀 잔혹하게 쓰더군?”

“하하.....”

“그보다 [사막의 제국]은 또 뭔가?”

“그게 말이죠.....”

나는 간략하게 [사막의 제국] 스토리를 선생님한테 말해주었다.

“호오..... 아이들을 위한 소설이라.”

“팬들이 어린아이들이 읽어도 될 만한 소설을 적어달라고 해서요. 재미삼아 적어봤는데.... 하하. 역시 동심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동화책과 소설이 다르듯, 일반 문학과 아동 문학 또한 다른 법이지. 그래도 어차피 넓게 보면 같은 글인데 뭐가 그리 어려운지..... 쯧쯧. 그래서 [사막의 제국]은 SC라스틱과 계약하려는 건가?”

“네. 거기에 수정실력이 뛰어난 직원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아동 문학은 디테일한 수정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조엘의 머리에 달걀을 깨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시도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애초에 수정이라는 영역은 글을 더욱 디테일하게 만들어주는 단계일세. 실력 있는 사람한테 맡기는 건 당연하지만 다음부터는 늦더라도 천천히 해보게나.”

“네..... 근데 조엘 머리는 괜찮을까요? 달걀 안 깨졌던데.”

달걀은 한 번에 깨지면 아프지 않지만, 안 깨지면 그 고통이 배로 되는 걸 알기에 약간 걱정스러웠다.

“이 녀석은 멍청한 녀석이라 달걀 깨는 용도밖에 안 돼.”

“선생님! 그건 아니죠!”

“시끄러 이 녀석아. 내가 준 숙제는 언제 다 할 건데?”

“헤헤. 제가 한 돌머리하죠. 제 머리 더 이용하세요 선생님.”

두 사제의 티키타카 케미에 뉴욕으로 오는 길에 쌓인 피로가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