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에드워드 잭슨 2
내가 관찰한 에드워드 선생님은 뭐랄까.... 굉장히 소탈하신 분이셨다.
“얼추 마셨으니 이제 밥을 먹자꾸나.”
“.....그렇게 많이 드시고 또요?”
“원래 이 나이대엔 많이 먹어야 건강한 법이야.”
훈제계란과 맥주를 그렇게나 드시고도 피자를 사오라고 조엘한테 시켰다.
조엘은 투덜거리면서 식당으로 향했고, 에드워드 선생님은 다시 맥주잔을 기울였다.
“자네는 왜 안 먹나?”
“먹고는.... 있습니다.”
긴장해서 많이 먹고 있지 않을 뿐이지.
“쯧쯧. 그 나이대에는 돌도 씹어 먹어야지 뭘 그리 깨작깨작 먹나? 자네 설마 긴장한 건가?”
“.....선생님 앞인데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죠.....”
“끌끌..... 것참 에드월과 다르게 굉장히 소심한 녀석이군.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소심한 게 아니라, 옆에 에드워드 선생님이 있다면 누구나 이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피자를 가지러 간 조엘을 기다리며 나는 에드워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나?”
“남들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그냥 어린시절부터 취미삼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대박난 것뿐이죠.”
“어린시절부터?”
“초등학생 때부터일 겁니다.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에 한 시간씩 컴퓨터로 글을 썼죠.”
“허어..... 하루에 한 시간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365일 중 362일은 적었을 겁니다.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자 선생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많이 쓰나?”
“네? 보통 작가들은 이 정도 적지 않나요?”
“그건 어른이 돼서 직업으로 삼은 작자들이나 가능한 거지. 어릴 때부터 꾸준히 글을 한 시간씩 적는 게 쉬운 줄 아나?”
“요즘 애들은 몇 시간이나 학교 의자에 앉아서 머리 쓰던데 쉽지 않을까요?”
“그건 ‘익히’는 거지 ‘창조’가 아니지 않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글을 공부하는 것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게 같은 일이라 보는가?”
“그건.....”
“쯧쯧..... 어째서 자네의 글에서 에드월의 냄새가 났나 했는데, 그 때문이었군.”
“예?”
“아무것도 아닐세. 그나저나 조엘 이 녀석은 피자를 반죽해서 가져오나.... 왜 아직도 안 오는 건지 원.”
에드워드 선생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쟁반을 두 개나 들고 오는 조엘이 보였다.
*****
한국식 불고기 김치 피자.
나를 배려해서 이걸 시킨 건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맛은 괜찮았다.
저번에 이사벨하고 같이 먹은 피자집보다 괜찮은 맛이었지만, 현지인들 입맛에 맞추려 했기 때문인지 김치 맛은 약했고, 고기 맛은 강했다.
“근데 제임스.”
“네. 말씀하세요.”
“미션 컴퍼니에서 연락 왔다는데 정말이야?”
조엘의 말에 피자를 입으로 가져가던 선생님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연락 오긴 했어요. 계약서도 이미 만들어 놨더라고요.”
“그래? 그럼 계약할 거야?”
“솔직히 아직 모르겠어요. 근래에 CEO가 바뀌었다고는 들었는데..... 그 전까지는 미션 컴퍼니가 조금 말이 많았잖아요?”
“말은 많았어도 돈은 잘 벌었지. 히어로 물을 인수했으니까.”
그 말에 에드워드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돈 따윈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명예를 되찾는 건 어렵다는 걸 그 돼지 녀석은 몰랐겠지.”
월드 머니 컴퍼니라 불릴 정도로 현재의 미션 컴퍼니는 그 명성을 너무도 잃어버렸다.
아직까지도 세계의 문화 컨텐츠를 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사람들의 조롱은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쯧쯧. 멍청한 것들..... 아무튼 어떻게 할 거냐?”
“그걸 여쭤보고 싶어서 선생님을 뵙고 싶었던 거기도 해요.”
“뭘? 미션 컴퍼니?”
“네. 거기가 [블랙 & 월드] 영화화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제작사인 건 알고 있는데.... 어째 불안감이 있어서요.”
“그럼 그냥 네 뜻대로 해.”
“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중요한 순간을 내가 정하지 않았다는 거다. 남에게 선택을 미룬 게 두고두고 후회되더구나. 그러니 계속 고민하고, 고민해서 네가 직접 가장 원하는 선택지를 정해.”
“그러다 실패하면요?”
“하다못해 남 탓은 안 하지 않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나에겐 무척 시원스러운 해답이었다.
“뭐. 내가 그만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자부하는 곳이긴 하지. 그리고 그 녀석들은 법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편이라, 표절이나 저작권에 관해서도 맡기기 좋지.”
무인도에서 쥐얼굴 캐릭터를 그린 순간, 월드 미션 컴퍼니가 범인을 찾을 때까지 쫓아다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작권 하나만큼은 세계 최강 수준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으신 거예요?”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조엘의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제 늙었어. 그 돼지 새끼 밑에서 일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이제 그만 쉬고 싶어. 간간이 일하는 것 정도는 괜찮아서 교수일을 겸직하고 있는 거지, 이것도 이제 그만 둘 거야.”
“그럼 그 다음엔 뭐 하실 건데요?”
“푹 쉬다가..... 쉬다가..... 음..... 농사나 지을까?”
“농사..... 진짜 농사일에 흥미 있으신거면 저희 마을로 오세요. 도시 생활에 지쳐서 농촌 생활하러 오신 분이 상당히 많으시거든요.”
“그러고 보니 몬태나에서 살고 있다고 했나?”
“네. 자연환경은 끝내주는 곳이죠.”
“뭐. 고민은 해보겠네.”
선생님은 피자를 삼키며 상념에 잠기신 듯 했다.
*****
나는 이곳에 며칠 묵을 생각이었지만, 에드워드 선생님과 조엘은 피로를 풀기 위해 왔을 뿐, 곧 나가야 했다.
‘한국인 교수분과 자주 오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신가 보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외울 정도로 익숙해 보이셔서 나는 그냥 조용히 선생님을 따라다닐 뿐이었다.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나온 다음에는 아이스 룸에 들어가야 노폐물이 쫘악 빠지는 법이지.”
“그럼요 선생님.”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웠다.
아이스 룸에 들어간 선생님은 춥지도 않은지 팔자 좋게 누운 채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를 만나서 할 말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있었군.”
“말씀하세요.”
“자네 [블랙 & 월드] 영화화를 할 생각은 있는 건가?”
“물론이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그럼 자네 나와 내기 하나 할 텐가?”
“.....내기? 무슨 내기요? 저녁밥 내기?”
“그런 시시한 내기 말고 자네가 이기면, 자네 작품에 내가 음악 프로듀싱을 맡아주는 걸로 말일세.”
“......!”
그 말에 놀란 건 나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조엘도 마찬가지였다.
“서, 선생님 정말요? 정말 음악을 만들어 주시겠다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물론 이 작가가 내기에 이겼을 때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누워있는 상태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셨다.
“어때? 구미가 당기냐?”
“종목이 뭔데요? 스포츠? 술 빨리 마시기?”
“다 늙은 노인한테 그런 종목을 말하다니 자네는 양아치인가? 쯧쯧. 다 필요 없고 곡이나 한 편 적어보게.”
“.....곡을요? 제가요? 저 작가인데요?”
“에드월 그 녀석도 작가였는데 곡에 참여한 적이 꽤 있네. 정확히는 자기가 적은 글을 곡이나 시로 적었다고 해야 할까?”
“자기가 적은 글.....?”
“어제 SNS에 올린 것 보니까, 자네도 어느 정도 생각있던 걸로 보였는데..... 아니었나?”
어제 버스킹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SNS에 올린 걸 선생님도 보신 것 같았다.
“분명 글에 가사는 아쉬웠다고 적었지?”
“그렇긴.... 하죠.”
“그러니 네가 적어봐. 가사를.”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요?”
“아니, [블랙 & 월드].”
“......!”
“한 장면이어도 좋고, 한 스토리여도 좋고, 전체적인 내용이어도 좋아. 뭐가 되었든 적어봐.”
“자, 잠깐만요...... 그 말 진심이세요? 저보고 가사를 적어보라고요?”
그러자 선생님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누가 너보고 음을 만들라고 했냐? 그냥 가사 몇 줄 적어보면 되는걸. 어디보자..... 조엘 네가 판단해서 나한테 가져와.”
“예, 예? 선생님 저보고 하라고요? 저 [사막의 전갈] BGM 만드느라 지금 바쁜......”
“까짓거 내가 도와주마.”
“그럼 또 제가 열심히 해야죠 선생님. 근데 선생님이 만약 제임스를 이기시면......”
“양장본 하나 내놔. 손녀가 좋아해.”
어차피 양장본은 선물로 드릴 예정이었기에 나한텐 잃을 게 없는 장사였다.
‘이건 기회야.’
선생님이 프로듀싱한 곡이라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이전에 선생님한테 내 글 솜씨를 평가받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기한은요?”
“자네 여기에 언제까지 머무나?”
“며칠 후에 SC라스틱에 가야 해서요. 그 외에는.... 없죠? 혹시 몰라서 호텔은 3일로 잡긴 했어요.”
“그럼 이렇게 하지. SC라스틱 녀석들은 [드래곤 마스터]도 양장본으로 만들 게 분명해. 인기몰이를 잘하는 녀석들이니까 분명하지.”
“그렇긴.... 하죠.”
양장본 표지를 얼마 전에 내가 정해줬으니까.
“3일 동안 내가 만족할 만한 가사를 못 적으면 [블랙 & 월드]양장본만 주게, 5일 동안 못 적으면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까지 내놓게. 참고로 중간에 포기해도 [블랙 & 월드] 양장본은 줘야하네. 어떤가?”
“......양장본 받으시면 SNS에 꼭 올려주세요.”
그 말에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권 내놔.”
*****
선생님은 이후 숯가마 방, 소금결정 방, 황토 방등을 연달아 들어가신 다음에 릴렉스 룸에서 한숨 푹 쉬고 돌아가셨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전원을 켰다.
“근데 시나 가사는 어떻게 쓰는 거지?”
인터넷에 쳐보니 다양하게 나왔다.
“음을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시처럼 써볼까?”
시가 노래가 된 경우도 많았고, 어느 가수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나저나 어느 부분을 써야되는 거야...’
스토리 전체를 짧은 가사에 압축시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 장면을 가지고 가사를 쓰자니, 과연 어디에서부터 써야할지 막막했다.
나는 원고를 펼친 다음 한 장면, 한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에나가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 케이가 에나를 구해주는 장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장면, 몬스터들과 마주한 첫 장면 등 생각보다 음악에 어울릴 것 같은 부분이 많았다.
“어렵네.....”
장면을 정해놔도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할지, 어떤 느낌으로 가사를 이어야할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가사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어제 SNS에 가사가 별로라고 올렸던 글을 삭제하고 싶을 정도로, 가사 작성에 대한 고충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흐음..... 일단 현실에서 벗어나자.”
나는 가사를 적으려던 파일을 닫은 다음,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적힌 파일을 열었다.
“많이 적어놨으니 오늘은 2연참 정도 해볼까?”
설 사이트에 2화 분량을 올려놓은 다음 노트북 전원을 끄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도 가사에 대한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고...
“내 주위에 음악하는 사람이 있나.....?”
랩퍼들한테 멘탈이 털린 월리한테 물어봤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내 주위에 곡을 직접 적어본 사람이 있을 리가..... 아!’
나는 서둘러 노트북을 다시 켜서 뮤튜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