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SC라스틱
한국에서 먹었던 핫도그와 미국에서 먹는 한국식 콘도그의 크기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미국은 뭐든지 사이즈가 크던데 핫도그까지 이렇게 크게 나올 줄은 몰랐다.
“맛있어요!”
단짠 조합은 어느 나라든 통하는 것 같았다.
“어떠세요?”
“네. 맛있네요.”
그나저나 배 터지겠다. 왜 이리 크냐
***
SC라스틱은 빌 에이든 미디어와 같이 5층 정도 되는 빌딩이었지만,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빌 에이든 미디어가 전형적인 회사 분위기라면, SC라스틱의 빌딩은 뭐랄까..... 묘하게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흘렀다.
붉은색 벽으로 칠해진 SC라스틱 빌딩은 외관 자체만으로 그 역사가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출판사라는 게 그리 크지는 않구나?’
나는 루시아의 안내에 따라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
“대표님이 바로 뵙자고 하셔서요. 혹시 힘드시면 나중에 간다고 할까요?”
“아뇨, 괜찮은데 갑작스럽긴 하네요.”
빌 에이든 미디어 대표가 우리 집에 찾아온 적도 있다 보니, 큰 출판사 대표라고 해서 떨리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저 갑작스러울 뿐이었다.
“이쪽으로.”
대표실은 항상 꼭대기 층에 있는 것인지 나는 곧바로 5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부터 건물까지 굉장히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히트했던 작품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5층에 도착하고 루시아는 대표실 앞에 있는 비서한테 도착했다고 전했다.
‘비서가 있네?’
빌 에이든 미디어는 에밀라나 다른 직원들이 비서 역할을 조금씩 하는 것 같았지만 이곳에는 아예 비서라는 직책이 존재했다.
비서가 전화기를 들고 무어라 전달한 뒤 우리는 대표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는 가끔 뉴스나 신문에서 보던 그 헤리 로빈슨이 환영해주었다.
“환영합니다. 드래곤 작가님.”
“그냥 제임스라고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더 편하고요.”
“알겠습니다. 제임스 작가님. 저도 헤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음료하고 차가 있는데 어떤 게 좋으십니까?”
“음료로 부탁드립니다.”
“예.”
비서가 음료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회장실 같은 새로운 느낌에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아. 루시아 사원은 잠시 밖에 계세요.”
“넵!”
루시아가 밖으로 나가자 헤리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들었다.
“[드래곤 마스터]의 수정 버전 읽어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가 생각날 정도로 재밌는 글이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정말.....”
헤리는 말끝을 흐리며 천천히 차를 입에 가져갔다.
그렇게 한참 고요한 시간이 흘렀을까, 헤리는 차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가님..... [드래곤 마스터]는 저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나는 컵을 들려던 손을 잠깐 멈추었다.
‘말의 의도가 뭐지?’
SC라스틱과 [드래곤 마스터] 계약을 체결한 이상, 별다른 일이 없다면 적어놓았던 2부와 3부도 계약할 거고 그 후의 이야기도 계약할 예정이었다.
헤리가 말하는 ‘끝까지’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지 의아했다.
‘그렇다면.....’
내 머리에 경우의 수 하나가 떠올랐다.
“판권을 전부 맡겨달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판권이란 저작자와의 합의 또는 계약에 따라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 권리를 아예 달라는 건가?
“비슷합니다.”
“흐음.....”
계약서에 판권에 대한 문구가 적혀있기는 했다.
저작자(제임스 권)와의 협의를 통해 진행할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웬만하면 저작권 사용에 동의할 예정입니다만.....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라면 저한테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죠.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작가님은 [드래곤 마스터]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내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2차 저작물, 3차 저작물 등 작품의 궁극적인 성공을 말하는 겁니다.”
“글쎄요..... 기껏해야 영화화 아닐까요?”
사실 책을 원작으로 영화화까지 가는 것도 어려울 일일뿐더러, 영화가 성공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음료를 입에 머금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저는 테마파크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푸웁!”
음료를 뿜어버렸다.
“......에?”
음료가 사방에 튀었지만 그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나는 얼이 나가 있었다.
헤리는 더럽혀진 소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저희가 담당하고 있는 번개 흉터 마법사도 테마파크나 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마법에 필요한 지팡이나 마법사들이 먹는 음식, 마법사가 길들이는 동물 등이 전시되어 있지요. 거기에 테마파크는 컨셉에 맞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
“아직은 계획일 뿐이지만, 저희 SC라스틱이 먼저 판권을 선점해두고 싶습니다. 이 컨텐츠 시장은 ip를 뺏고 뺏기는 싸움이니까요. 저희는 작가님의 작품이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잠시만요..... 너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헤리의 눈을 바라봤다.
헤리의 눈빛엔 거짓 한 톨도 보이지 않는 진정성이 가득했다.
‘내 소설이?’
칭찬받는 건 좋았다. 성공을 무조건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니 당연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소설이 번개 흉터 마법사처럼 테마파크를 구성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번개 흉터 마법사의 재미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기 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마스터]가 그런 류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나간 것 같았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은......”
“완결이 돼도 이 작품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는 말이지요. [드래곤 마스터]를 주제로 피규어가 나오든, 인형이 나오든, 테마파크가 생기든 저희 SC라스틱이 주최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가요?”
“처음입니다.”
“예?”
“양장본 추첨을 진행할 사이트를 만들고, 서버를 [블랙 & 월드]보다 3배 이상 키웠습니다. 하지만 서버가 다운되더군요. 저는 거기서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벌써 양장본 추첨을 했나요?”
“예. 추첨이 끝났습니다. 당첨자는 아직 비밀이지만요.”
양장본을 만든다고 했으니 SC라스틱에서 추첨을 진행한 건 상관없었다.
다만 그 속도가 내 상상을 넘어섰다.
“예. 양장본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만 권 정도 인쇄할 생각입니다.”
“마, 만 권이요? 그럼 만 권이나 사인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그보다 천 권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천 권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늘렸습니다. 그리고 굳이 사인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사인해주신다면 저희야 좋지만, 그보단 사인회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일단 나중에 얘기해보고, 벌써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됐나요?”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헤리는 핸드폰을 꺼내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무언가를 들고 헤리한테 건넸다.
“작가님 이걸.....”
“이건..... 벌써 나온 건가요?”
양장본이 아닌 [드래곤 마스터]라 적혀있는 책이었다.
표지에는 주인공이 길들인 드래곤 하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 뒤에 출판을 시작한다고 했으니까..... 나와도 이상할 건 없지만.’
확실히 빌 에이든 미디어에 비하면 진행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현재 저희 협력 업체인 공장 다섯 곳을 돌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뒤 모든 서점에 배포할 예정이며 그때까지 예상되는 수량은 대략 120만 부 정도입니다.”
“......”
로건이 20만 부를 찍어낸다고 했을 때도 난 기겁하며 너무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6배인 120만 부를 한 번에 출판한다는 헤리의 배포에 나는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안 팔리면 그대로 SC라스틱이 감당해야 할 빚일 텐데 말이다.
“너무..... 무리하시는 건..”
“무리가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100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 불릴 텐데요.”
“이건 제가 SC라스틱을 운영하면서 얻는 경험과 노하우입니다. 저는 작가님을 믿습니다. [드래곤 마스터]를 믿습니다.”
“.....후우.”
헤리는 확신한 것이다.
역사상 전례 없던 인기와 서버 다운으로 인해 내 소설에 확신이 생긴 것 같았다.
불안한 나와 달리 이 업계의 프로인 헤리는 너무도 느긋했다.
“......어차피 출판한 업체와 계약한 작품은 끝까지 해당 출판사에 맡길 예정이었습니다. 상관없겠죠.”
어차피 실패해도 나한테 책임을 전가할 순 없으리라.
“저희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소설이지만 좋게 봐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헤리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
SC라스틱에 온 목적은 총 두 가지다.
하나는 [사막의 제국] 계약, 또 하나는 [드래곤 마스터]의 도감 일러스트 제작.
어차피 [사막의 제국]은 메디슨 누나가 확인한 계약서에 내 이름을 적을 뿐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도감 제작이 남아있었다.
“양장본과 함께 나갈 생각입니다. 도감의 표지는 이렇습니다.”
전에 양장본 표지를 정할 때 마치 드래곤의 가죽을 벗겨 책으로 만든 듯한 표지로 하였다. 하지만 양장본과 반대로, 도감의 표지는 마치 짐승의 가죽 같은 느낌이었다.
“도감의 표지는 저희가 임의로 정한 거긴 한데, 혹시 따로 원하시는 표지가 있으실까요?”
“예시를 볼 수 있을까요?”
스티븐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나한테 내밀었다.
태블릿에는 수많은 표지 디자인이 떠올라 있었지만, 슥슥 밑으로 내리며 확인해보니 방금 스티븐이 보여준 표지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짐승의 가죽이 확실히..... [드래곤 마스터] 세계관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이대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분은 이미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일러스트라..... 오래 걸릴 것 같네요.”
내가 상상한 드래곤들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설명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집으로 가는 건 무리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드래곤 도감이라고 해도, 아직 세계관이 전부 펼쳐진 게 아니라 드래곤 전부를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부에만 나온 드래곤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1부여도.. 거기서 나온 드래곤만 20종이 넘는데요?”
“하하! 그래도 적은 편 아닙니까? 2부하고 3부 내용을 조금 아는 저로선 나올 드래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20종은 마을하고 학교 내에서만 있는 드래곤들이고, 주인공이 성장할수록 더 많은 드래곤을 만나게 되기에 아직 나올 드래곤들이 많았다.
“드래곤 도감......을 양장본 말고 아예 출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물론 나중에요.”
“저희도 도감이 전부 완료되면 평범하게 출판할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아. 참고로 도감 내용은 출판사 사이트에 올릴 예정입니다만.....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아무래도 글로 드래곤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려울 테니까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드래곤의 모습을 상상한다고 하더라도 전부 각양각색의 드래곤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일러스트를 사이트에 올려 독자들의 이해를 더욱 올려주는 것이 좋으리라.
스티븐은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데려갔다.
“리암 톰슨 씨인데 미국에서 알아주는 일러스트레이터분이세요.”
스티븐이 내 앞에서 회의실 문을 열었고, 난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문신?’
그 안에는 수염을 자르륵 기른 백인 아저씨가 앉아있었는데, 눈에 띌 정도로 전신에 문신을 한 아저씨였다.
“혹시...... 드래곤 원 작가님?”
리암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티븐과 함께 온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제임스라고 합니다.”
내가 드래곤 원임을 밝히자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마치 곰 한 마리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
“마이 갓.....! 바, 반갑습니다. 리암 톰슨이라고 합니다. 그, 그리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어디에 해드릴까요?”
그가 갑자기 웃통을 벗고 문신이 되어 있지 않은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다 사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부담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