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평론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은 최신형이라 그런지, 노래의 음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아쉬웠다.
노래에 담긴 음과 가사를 핸드폰이라는 작은 전자기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엘이 말했던 대로 다이애나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음악을 만드는 데 실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궁금해졌다.
‘누구지?’
대체 누군데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거지?
부드럽지만 때론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음색이었다.
하나 분명한 건 다이애나 목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맞지 않아.’
이 목소리에 가사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애초부터 이 가사는 엘리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를 듣고 굉장히 좋은 노래라고 느꼈을지 몰라도, 내 귀에는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좋네.”
목소리 선율 자체가 굉장히 고왔기에 충분히 좋은 노래였다.
‘감동인걸?’
조잡했던 가사를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 주다니 뜻밖의 감동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보내준 거지?’
그냥 한번 들어보라고 보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이애나?”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작가님?
“네. 여보세요.”
-자, 작가님! 호, 혹시 방금 노래 들으셨나요?
“네. 들었어요.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제가 들어도 굉장히 좋은 노래라는 걸 알 정도로 좋은 노래였어요.”
-휴우..... 다행이다.
다이애나는 뭔가 불안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노래에요?”
-그, 그게요. 가사를 적었는데 빛을 보지 못하면 아까울 것 같아서..... 해봤어요. 혹시 실례였을까요?
“아뇨.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저야 고맙죠.”
-헤헤.... 다행이다. 그 곡 선생님께 선물로 드릴게요! 어차피 작사는 선생님이 하셨으니까요!
“와!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애초부터 선생님 가사였는걸요? 저는 그냥 살짝 한 다리 걸친 것뿐이에요. 노래 부른 친구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네요.”
-그런데.... 제 느낌이지만 작가님이 가사를 누굴 생각하면서 쓰신 것 같은데... 호,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음......”
이 정도는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이런 목소리가 불러주면 어떨까 하고 참고한 분이 있어요. 예전에 샌타모니카에서 만났던 인연인데, 가수를 꿈꾸는 뮤튜버로 그분 목소리가 꽤 좋았거든요.”
-역시.....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엘리나라고 해요. 뮤튜브에 그 이름을 치면 나올 거예요. 아. 혹시 이 노래 엘리나한테 불러보라고 해도 괜찮나요?
-상관없어요! 그, 그럼 이만 끊을게요!
“네. 아! 잠깐만요!”
-네?
“저만 받으면 미안하니까요. 조엘한테 가서 제가 보낸 택배를 달라고 하면 줄 거예요. 원래는 조엘을 주려고 했는데 조엘은 나중에 주면 되니까요. 다이애나 선물로 먼저 드릴게요.”
-저, 정말요?
“네. 근데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네요.”
-작가님이 주시는 건데 당연히 받아야죠! 감사히 받을게요!
다이애나가 전화를 끊자 나는 다시 소파에 벌러덩 누운 다음 다시 노래를 재생시켰다.
‘일러스트 포스터인데..... 괜찮겠지?’
선물의 정체는 바로 리암이 보내준 포스터 액자였다.
[블랙 & 월드]의 포스터 액자는 꽤 많은 수량을 받은 터라, 조엘이나 지금껏 신세 진 사람한테 보내줬음에도 넉넉하게 남아 있는 편이었다.
다만, 리암이 만들어 준 [블랙 & 월드] 일러스트 북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기에 이사벨이 특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머지는 누구한테 나눠주지?”
***
출판된 기념으로 저녁에 맛있는 거나 먹을까 했지만, 부모님은 그냥 집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셨다.
그 기념으로 이웃들을 모아 소소하게 BBQ를 해 먹기로 했다.
“모두! 제임스의 세 번째 작품을 위하여!”
“위하여!”
-하하하하하하!
전역 파티 때 왔던 고모부 밭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월리와 캐서린, 그리고 주변 이웃들과 월슨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파티 장소로 속속 모여들었다.
파티라고 해봤자 고기나 구워 먹고 술이나 마시는 정도였지만.
“왜 이렇게 살이 쪘나?”
-냐앙?
도널드 월슨은 고모부네 집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팡이를 찾았다.
약간 주춤거린 엄마는 할 수 없이 집에서 팡이를 데리고 나왔다.
“호호..... 다, 다이어트 중이에요.”
“이렇게 어린 나이일 때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데..... 사랑으로 키우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음식을 자중해서 먹이게나. 고양이는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수명이 좌지우지되니까.”
“명심할게요.”
“팡이 다리를 보게. 저렇게 뒤뚱뒤뚱 걸으니 성장하지 않은 채로 다리가 휘면 어떻게 할 건가? 앞으로......”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닭가슴살을 계속 챙겨주었던 아빠와 엄마는 도널드한테 크게 혼이 났다.
귀여운 애교 때문에 가슴이 녹아내려 계속 주던 닭가슴살도, 이제는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월리.”
“고기 잘 먹을게.”
“많이 먹어. 그보다 공부는 잘 돼가?”
“12월쯤에 시험을 한번 볼 생각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그래서 합격 여부는?”
“쩝. 모르겠다. 일단 도전해보는 거지.”
월리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맥주병 하나를 나한테 내밀었다.
“넌 안 마셔?”
“응. 고기 먹고 들어가서 또 공부하게.”
이번엔 정말 이를 악물었는지 열심히 하고 있나 보다.
“너도 이제 바빠지겠네?”
“끄응..... 그렇지 뭐. 그래도 당장 바빠지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당분간은 그렇게 무리해서 글을 쓸 마음은 없었다.
기껏해야 [리턴 패션 디자이너]나 [드래곤 마스터 2부 : 블랙 드래곤의 진실] 수정 정도?
“캐서린한테 들어보니까 슬슬 얼굴 공개하려고 한다며?”
“개는 그걸 누구한테..... 아니다. 이사벨한테 들었겠지 뭐.”
“진짜 할 거야?”
“응. [사막의 전갈] 500만 부 달성하면..... 일단 해봐야지.”
“네가 한다고 하게?”
“어. 그래도 세 작품이나 100만 부 달성한 작가인데, 너무 비밀스럽게 다니는 느낌이 나서. 물론 Live 방송에서 얼굴 드러내는 건 자제하게.”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보다 에일리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한때 짝사랑했던 여자라서 전화를 못 거는 게 아니라,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모델이었기에 뭔가 전화하기가 그랬다.
에일리와 대화하면 벤자민이 생각날 것 같아서.
‘하지만 슬슬 물어봐야지.’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 분량이 거의 채워지고 있었다.
슬슬 에일리의 인터뷰가 필요할 때였다.
“나도 잘 몰라. 요즘에 뮤튜브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임신한 상태로?”
“응. 분만 예정일이 내년 1월 정도라고 했지? 그때까지 무슨 일도 하지 못하니 공부만 한다던데?”
“그 외에는?”
“.....그 외에 뭐?”
“남자친구 소식 같은 건 못 들었어?”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솔직히 나도 에일리하고 대화하는 게 조금 그래.”
아무리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해도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남들한테 잘해주던 에일리가 남자친구는 도망가고 임신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걱정이 되긴 해도 옛날의 막역한 친구처럼 다가가기도 애매했다.
“에일리하고 솔직히 엄청 친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에일리가 남들하고 전부 친하게 지냈지만 깊게 친하게 지낸 건 몇 되지 않잖아?”
“하긴, 솔직히 어중간한 위로보다는 그게 더 좋지. 괜히 호들갑 떨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짜증 날 수 있으니까.”
“아무튼 나도 소식은 거기까지밖에 몰라. 정 궁금하면 직접 방문해서 물어보든가.”
“.... 그래야지 뭐.”
나는 기름기로 가득 찬 입 안을 씻어내기 위해 맥주를 들이부었다.
깔끔하고 톡 쏘는 강한 탄산에 입안이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맥주를 음미하고 있는 사이 월리가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그리고 캐서린은 어때? 계약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이후로 말도 안 하더라.”
“왜? 여동생 일이라 궁금하냐?”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최근에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서 짜증 나.”
“뭐. 몇 달간 노력 끝에 글로 돈을 벌 수 있게 됐으니 좋은 거겠지. 걱정하지 마. 곧 사라질 테니까.”
“진짜?”
“응.”
무료일 때 ‘하차하겠습니다.’와, 유료일 때 ‘하차하겠습니다.’의 차이는 작가의 입장에서 그 부담이 180도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그 압박감 때문에 이제부터 멘탈이 서서히 무너지고, 글 쓰는 데 밤낮을 새우리라.
‘경험담은 아니지만.’
캐서린이라면 그냥 그럴 것 같다.
“아무튼 그때 되면 PTSD가 극에 달할 테니까 잘 해줘.”
“알아서 하겠지.”
월리는 다이어트 콜라를 입으로 가져갔다.
***
소소한 파티가 끝나고 저녁이 되자 나는 문득 책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이사벨한테 내 책 반응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자, 그냥 카페에 들어가면 캡쳐해 놓은 것이 있다고 했다.
[오늘 아침 뉴스에 참여하느라 [드래곤 마스터 1부 혼혈 드래곤]을 구매하지 못할 뻔했다. 구매하지 못했다면 나는 방송사에 소송을 걸었을 것이다. ‘소송의 나라’니까. 【트린 J 키엔디(소설 평론가)】]
[또 이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얼른 2부 내놔! 【ABA 저널리스트】]
[올해 최고의 장르 소설은 과연 [블랙 & 월드]일까? 아니면 [드래곤 마스터]일까.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헤리 로빈슨(SC라스틱 CEO)】]
[서양에서 드래곤이 몬스터라면 동양에서 드래곤은 신성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잔혹한 드래곤의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아기자기한 드래곤들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모리스 헤르난데스(유명 OTT CEO)】]
[드래곤 원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사막의 전갈]을 읽었을 때는 ‘고독’을 느꼈고, [블랙 & 월드]를 읽었을 때는 ‘차별’을 느꼈으며,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읽었을 때는 ‘삶’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세 개의 소설 다 재미있고 즐거운 요소도 많았지만, 이번 [드래곤 마스터]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사하네요. 【올리비아 콜린스(영화배우)】]
[[블랙 & 월드]를 품평할 때 나는 왜곡된 세계에서 작가가 우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라고 스스로한테 질문을 던져봤다. 그렇기에 [드래곤 마스터]에서 작가는 우리한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라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드래곤 마스터]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한테 부담을 주는 부모’ 정도만 보였을 뿐이다.【알렉스 화이트(대학 교수)】]
[책이 나오기 전까지 실사화 or 애니화라는 주제로 많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까? 두 개 다 하면 되는 것을. 【노아 올슨(월드 미션 컴퍼니의 새로운 주인)】]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고? 그건 우리가 이 소설을 미친 듯이 읽었다는 증거니까.【루니아 로페즈(가수)】]
“......”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평론이 있었다.
“노아 올슨...?”
세계의 문학을 지배하는 왕국의 주인이 의미심장한 내용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