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64화 (63/216)

64화. 제시카

제시카와 제임스는 나이가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제임스와 운동을 좋아하는 제시카.

정반대되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둘이기에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치고받고 싸운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제임스가 항상 항복할 정도로 제시카의 운동신경은 뛰어났다.

이후 체육대학에 입학하여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 제시카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는 테니스 시합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제시카라 할지라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쉴 틈 없이 준비 중이었다.

미국대학 선수들이 석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졸업하는 건 유명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제임스 작가님이 네 동생이다?”

“응.”

제시카의 확고한 반응에 아리야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너 망상증 있어? 내가 계속 드래곤 원 작가님만 말해서 나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

“아니야! 확실해! 분명 제임스 이 자식이 분명해!”

“증거는?”

“제임스 사진을 보여주면 믿을 거야?”

“아니.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흠... 그래도 사진은 좀 봐볼까?”

“꺼져. 안 믿어도 돼. 안 그래도 지금 머리 아픈데 너한테 믿어달라고 애원하고 싶지도 않아.”

처음 보는 제시카의 얼빠진 얼굴에 아리야는 설마 진짜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그럼 작가님 [사막의 전갈] 집필 후에 어디 갔다 온 지 알아?”

“뭘 어디 갔다 와? 네가 항상 말했잖아. 군대 갔다 왔다고. 한국 Dae-gu라는 곳으로 군복무했었을걸.”

“D, Dae-gu? 처, 처음 듣는데?”

“나도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라. 아무튼 거기로 발령 났다고 하더라고.”

“그, 그럼 드래곤 원 작가님이 가장 처음에 본 영화가 뭐야?”

“한국에서는 영화를 본 적 없다고 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언니들이 [드래곤 블러드] 영화를 보여주고 난 뒤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지?”

“히이익!”

“그러고 보니까 드래곤 원도 이제야 생각나네. 한국 이름이 yong-il Kwon이었는데, 어렸을 적에는 이름에 드래곤이 들어가는 줄 알고 드래곤 원이라고 지었었지? 항상 제임스라고 불러서 한국 이름은 잊고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떠오르네.”

하다못해 이제는 팬들조차 모르고 있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제, 제시카! 아니 제시카 님!”

“......갑자기 왜 그래, 징그럽게.”

“지, 징그러워도 좋아! 그러니 제발! 제발 드래곤 원님을 만나게 해줘! 부탁이야!”

“......엉?”

“부탁할게! 제시카 님!”

아리야의 간절해 보이는 얼굴에 제시카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

그 시각 제임스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연락할까..... 말까.....’

다이애나한테 받았던 노래를 엘리나한테 주는 게 맞을까?

소파에 누운 상태로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팡이야.”

-냥?

“괜한 짓을 하는 걸까?”

-냐앙?

팡이는 그게 무슨 사람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팡이야. 만약에 네가 내 고민을 해결해주면 간식 줄게.”

-냐아아아아앙!

다른 말은 모르겠고 간식이라는 소리에 팡이가 격하게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볐다.

“털 들어가니까 그만 비벼.”

-냐앙!

그럼 간식을 내놓든가.

나는 그런 팡이의 간절한 시선을 무시하며 중얼거렸다.

“음악을 보내는 게 좋을까..... 아니면 보내지 않는 게 좋을까?”

-냐앙?

팡이는 간식을 주지 않자 얼른 달라는 듯 내가 들고 있던 핸드폰에 자신의 코를 비비기 시작했다.

-냐아아아앙~!

“아. 일단 SNS에 들어가 보라고?”

-냥!

“그때 확인해도 늦지 않다고?”

-......냥?

“......내가 뭘 하는 거냐.”

하지만 다이애나가 만들어 준 노래는 정말 엘리나의 목소리가 어울릴 것 같았다.

애초에 그 목소리를 생각하고 만들었으니까.

오지랖을 부려서 연락해볼지, 그냥 아쉬워도 가만히 있을지 엄청난 내적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살찐 아기 고양이랑 대화하고 있으려니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그래..... SNS라도 들어가 보자.”

한참 동안이나 SNS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들어가서 현재 엘리나 상황 정도만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엘리나의 SNS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게시물에 뜻밖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양.....장본?”

엘리나와 엘라가 활짝 웃으며 양장본을 들고 있었다.

물론 양장본은 한 권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둘은 행복한 듯 웃음 짓고 있었다.

“......보내자.”

아까까지 한참이나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괴롭혔던 답답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사진 속에 있는 맑은 미소가 진정으로 내 소설을 좋아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그녀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삼았기에, 그녀가 불러줬으면 했다.

나는 DM으로 mp3 파일과 함께 간단한 쪽지를 보냈다.

-저를 기억하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일 권입니다. 엘리나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가사를 적고 지인한테 부탁해 노래로 만들어 봤습니다. 물론 저작권은 저한테 있지만 뮤튜브에 cover song..... 올려보시겠습니까?

쪽지를 보내고 나니 왠지 모르게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질 것 같았다.

“으아.....으....아아아아아!”

-냐앙?

소파에 얼굴을 묻고 소리 지르는 나를 팡이는 ‘간식 안 주려고 별지랄을 다 하네’라는 얼굴로 바라봤다.

***

엘라와 엘리나는 산타모니카에서 월세 집 하나를 얻어 같이 지내고 있었다.

집안에 금전적인 문제를 부탁하지 못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뮤튜브와 연기 공부를 했다.

“확실히 시를 읽으니까 가사에 대한 게 얼추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해.”

“진짜?”

“응. 솔직히 아직 많이 모르겠지만...... 시집을 봐서 그런가, 가사를 볼 때마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부터 궁금해지더라고.”

엘라와 엘리나는 저번에 제임스가 주었던 책을 꾸준히 읽었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다시 한 번 읽었고, 글이 아닌 작가의 생각을 읽고자 하였다.

그 결과라고 해야 할까?

엘라는 가사를 조금이지만 더욱 디테일하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엘리나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조금이지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미미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큰 도약이나 다름없었다.

-띠링!

그렇게 비는 시간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들렸다.

“누가 DM 보낸 거야?”

“누구지? 캐스팅인가?”

가끔가다 DM으로 캐스팅 제의가 오기도 했다.

다만, 질이 나쁘거나, 중소형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한 곳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 보니 대부분 거절하는 편이었다.

“응?”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제임스?”

DM을 보낸 계정의 정체가 오늘 자신들한테 배달되었던 양장본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드래곤 원? 드래곤 원???!!!”

엘라도 서둘러 엘리나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어떤 파일과 함께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노래라고?”

“가사?”

엘리나는 떨리는 표정으로 제임스가 보낸 mp3 파일을 서둘러 재생시켰다.

-♩~ ♪~ ♬♪♩~

핸드폰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서글픈 가사가 흘러나왔다.

믿었던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한 여자의 한, 아니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배신일까?

초반 가사는 심장이 천천히 뛸 정도로 아련하고 서글펐지만, 서서히 음이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마치 절망과 희망이 뒤섞이는 듯한 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그곳은 또 다른 절망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희망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프지만, 힘들지만, 지치지만, 가사 안에는 작은 희망이 문득문득 느껴졌다.

“하아......”

노래를 다 듣고 나니 떨쳐낼 수 없는 기나긴 여운이 느껴졌다.

마치 악마가 영혼을 육신에서 뽑아내 여운이라는 늪에 봉인하는 것처럼, 노래가 끝났음에도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이걸...... cover 해보라고?”

그게 가능할까?

엘리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방금 들었던 노래를 회상했다.

가사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어느 ‘장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치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해답이 옆에서 들려왔다.

“이거 가사..... [블랙 & 월드]야.”

“......어?”

엘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시집을 읽으며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고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그런 게 없었다.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의 여자를 생각하며 지었던 곡이었기 때문이다.

“노래 좋다......”

엘리나는 다시 노래를 틀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온 집안에 퍼져 나갔다.

***

-반드시 해볼게요! 꼭! 해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부탁할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그곳이 어디든 달려갈게요!

엘리나한테서 온 DM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괜한 짓을 했나 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네. 뭐. 잘해 내겠지.”

마치 딱 맞는 옷을 찾아준 것처럼 뿌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프로듀싱을 하는 것도 아니니 이 노래를 어떻게 소화할지는 오로지 엘리나에게 달려 있었다.

나는 연예인도, 프로듀서도 아닌 그저 한 작가일 뿐이니.

“글이나 쓰자.”

답장이 와서 그런지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감정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컴퓨터에 앞에 앉았다.

“뭘 적을까?”

현재 집필이 필요한 작품은 두 개였다.

[블랙 & 월드]와 [리턴 패션 디자이너].

하나는 2부를 준비하는 것이고, 하나는 1권을 완결하는 것이다.

‘수정할 것도 있긴 하지.’

[드래곤 마스터] 2부 수정도 있었다.

무엇을 먼저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차례대로 진행하자.”

우선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 집필을 끝내도록 하자.

“어디까지 썼더라?”

파일을 열고 지금까지 썼던 내용을 확인했다.

요즘 글을 쓰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내용 마무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는 구했고, 루시와 부모님도 구했고..... 벤자민은 유치장으로 향하는 내용까지 적었네.”

우선 간단하게 내용을 확인하자면, 엄마를 구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경찰들이 총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곧바로 마트로 출동했다.

결국 당시 총기사건으로 수많은 사망자를 낸 범죄자는 마트 근처에서 붙잡혀 일을 벌이지 못했다.

벤자민은 루시와 부모님을 이란으로 떠나보내지 못하게 한 가지 꾀를 썼다.

그건 바로 장난 전화였다.

공항수색대에 연락하여, 전에 봤었던 루시 부모님의 얼굴 생김새를 알려주며 저 사람의 짐가방에 폭탄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결국 루시 가족은 예약했던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결국 그 죄로 유치장에 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란 출국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제 벤자민을 어떻게 빼낼까?”

-투두두둑!

나는 손가락을 풀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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