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70화 (69/216)

70화. 북 페스티벌 (4)

일단 밥 먹을 때까지 시간이 비어서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응? 캐서린? 여깄었네?”

“어? 오빠도 왔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캐서린도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캐서린 옆에 앉았다.

“넌 여기서 뭐 하냐?”

“뭐 하냐니? 다른 사람들은 드래곤 원 작가의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축제는 즐겼어?”

“응. 확실히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더라고. 책은 택배로 집으로 보냈어.”

“.....아니 너 말고. 다이애나 말하는 건데..... 딱 봐도 기만 빨렸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다이애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책에 집중하느라 같이 다니던 다이애나의 기분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다이애나 미안해요. 나만 즐긴 것 같네요.”

“아, 아니에요, 작가님. 저도 즐겼어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다이애나의 표정이 여전히 밝아지지 않았다.

한창 이런 축제를 즐길 나이에 나만 신나 했으니 어쩐지 미안했다.

“미안해요. 제가 나중에 양장본 한 권 선물로 드릴게요.”

“양.....장본이요?”

“네.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이요. 한 달 후에 발매가 되거든요. 이번에도 10권 정도 받을 예정인데 한 권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집으로 포스터 액자를 보내주긴 했지만 공부하느라 바쁜 고등학생이 나를 위해서 노래로 만들어 줬는데 포스터 액자 하나로 퉁 치기 미안하기도 했다.

거기에 오늘 축제에서 아무 말도 없이 내 옆에서 계속 안내해줬는데 대가를 지불하고 싶었다.

“저, 정말요? 진짜죠?”

“네. 물론이죠. 아직 발매가 되지 않아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리암 씨의 실력이 뛰어나서 멋지게 나올 것 같아요.”

“헤헤헤헤.....”

기분이 풀어졌는지 다이애나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아. 시작하네요.”

앉아 있는 부스 앞으로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

내 책에 대한 강의라고 해서 내심 기대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강의는 생각만큼 유익하지 않았다.

“[드래곤 마스터]에 나오는 친구 베일의 드래곤은 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 흔하디흔한 드래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드래곤 원 작가가 ‘평범한 세계’를 주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 상황을 보면 ‘뛰어난’ ‘희귀한’ ‘희소 속성을 가진’ 드래곤을 가진 이들은 혈통이 좋은 가문이라고 묘사됩니다. 이는 지구에 있는 학교와 똑같습니다.”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는 자신이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을 말하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이에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원 작가님의 소설들은 현실 반영률이 높습니다. [블랙 & 월드]와 [사막의 전갈],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도 사회비판은 존재합니다.”

딱히 사회를 비판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런 세상이 있다면, 저런 세상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을 뿐이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글에 반영하다 보니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보통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간 책들을 볼 때 눈살을 찌푸리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닌 장르 소설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걸 싫어합니다. 하지만 드래곤 원 작가님은 그 경우를 재밌게 풍자시킵니다. 물론 재미라는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뭐가 되었든 간에 소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으니까요.”

뭐, 또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원래 현실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비참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현실을 바탕으로 풍자된 또 다른 현실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적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드래곤 원 작가님은 SNS를 자주 하지 않으시고, 인터뷰에 나온 적도, 언론에 노출된 적도 없습니다. 베일에 싸여 있죠. 그렇기에 전 드래곤 원 작가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째서..... 현실을 주제로 글을 쓰는가 말이죠. 상상 속의 주제들도 차고 넘칠 텐데 어째서 현실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가 말이죠.”

꿈보다 해몽이었다.

난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지!’라는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는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사막의 제국] 같은 경우는 현실 반영이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인가......’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보단 저렇게 주관적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 카페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알고 싶었던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비판인데......’

소설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2부에는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이 강의를 들어보려고 한 것이었다.

“어때? 원하는 정보는 들었어?”

“......내 예상이랑 다르네. 전에 갔던 강의도 이랬어?”

“아니. 이러지 않았지. 장단점에 대해서, 문단의 어색함, 글자의 선택, 내용 전개 같은 걸 다 말해주시더라고. 이렇게까지 칭찬하지 않았어.”

“......”

“나갈래?”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차피 강의를 보면서 나가는 것도 자유였기에 나가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는 부스 밖으로 나갔다.

***

축제 안에는 길거리 음식점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베이컨을 왕창 넣은 햄버거에 다이어트 콜라를 시킨 다음 버스킹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버스킹을 구경하고 있었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역시 바이올린, 첼로, 기타, 리코더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를 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은 안 만나도 괜찮아요?”

“알아서 하고 있겠죠. 그보다 축제는 재밌게 즐기고 계신가요?”

“네.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근데 솔직히 따분하기는 하네요.”

“헤헤. 원래 그래요.”

이 축제에 오락거리는 솔직히 그리 많지 않았다.

음악 축제처럼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신나는 축제가 아니었고, 문학적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그런 느낌이었기에 살짝 따분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책을 구매했다는 것에 기분 좋기는 했지만.

“저희도 여기서 공연을 해요. 마지막 날 저녁에 하죠.”

“오, 정말요? 근데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이번 주 일요일이네요.”

“이번 주 일요일이면..... 아쉽지만 못 보겠네요.”

“일정이 있으세요?”

“네.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LA로 가봐야 할 것 같거든요.”

내 말에 옆에서 셰이커를 마시고 있던 캐서린이 당황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사인회 끝나고 집 바로 가는 거 아니었어?”

“응.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3일이라고. 내일 사인회 한 다음에 곧바로 LA로 출발할 거야. LA에 도착한 다음 날에 미션 컴퍼니에 갈 거고.”

“그,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그리고! 뉴욕에 도착한 1일! 오늘 1일! 사인회 및 LA 도착 1일! 다음날 미션 컴퍼니 1일! 총 4일이잖아! 나 3일 옷밖에 안 가지고 왔다고!”

“하나 사줄게. 됐지? 아무튼 아쉽네요.”

줄리아드 스쿨에 다니는 학생들 실력을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오늘 온 친구들은 공연을 어디서 할 건지 살펴보려고 온 거예요. 아마 지금쯤 집으로 간 애도 있을 거예요.”

“헤에..... 그럼 다이애나는 괜찮으신가요?”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걸요? 음악가 집안이라서 이런 축제에서 악기를 연주한 적이 많아요. 그보다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혹시 이번에도 또 작사해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가사를요?”

“네! 아무 주제나 좋아요. 축제 마지막 날에 작가님이 적어주신 가사를 부를 수 있다면 정말 영광일 것 같아요!”

“하하......”

싫다.

내 몸이 하지 말라고 말리고 있었다.

정해놨던 계획을 생각하면 오늘 안에 가사를 적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나라도 그건 무리였다.

“가사? 오빠가 가사도 적었어?”

“어...... 아. 너한테 말 안 했나? 저번에 선생님 만나러 뉴욕에 왔을 때 그때 선생님하고 내기를 했거든. 그때 한번 가사를 적어봤어.”

“내기?”

“별거 아니야. 아무튼 내기에서 내가 졌고, 그 대가로 가지고 있던 양장본 하나를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어.”

“나도 볼 수 있어?”

“가사는 모르겠고, 노래는 있어...... 잠깐만.”

뮤튜브에 들어가 엘리나의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아직 내가 보낸 노래는 올라오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채널에 단 하나의 영상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를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들어봐도 돼?”

“마음대로 해.”

캐서린은 이어폰을 끼고 보내준 음악을 감상했다.

“......뭐야 이게?”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가사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희로애락의 감정에 캐서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 다이애나라는 학생이 제임스한테 가사를 써달라고 했는지 음악을 들으니 알 수 있었다.

“가사만 내가 적은 거야. 작곡은 다이애나가 했어.”

“.....,”

“아무튼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지금 호텔로 들어가 쓴다고 해도, 내일 있을 사인회를 위해 체력을 아껴두고 싶었다.

내 말에 다이애나의 얼굴이 시무룩해지는 듯했다.

“그러지 말고 한번 써주는 건 어때? 애가 저렇게 기대하는데.”

“아니, 써주는 건 상관없는데 하루 만에 쓰는 게 무리라는 거지.”

원래는 곡이 나오고 작사는 나중에 이루어진다.

곡이 현재 있는 상태일 수도 있으니 저번보다는 조금 쉽게 가사를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곡이 있다고 해도 노래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하다 보니, 축제 마지막 날까지 맞추려면 아무리 그래도 오늘 저녁 혹은 내일까지는 가사를 적어줘야 했는데 상식적으로 무리였다.

“히잉...... 작가님 어, 어떻게 안 될까요?”

애절해 보이는 다이애나의 얼굴에 마음이 흔들렸다.

“크, 크음.....”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일 아무런 일정이 없었더라면 조금 고민이라도 해봤을 테지만, 체력을 극심하게 소모하는 사인회 일정이 있는 이상 오늘 가사를 쓰는 건 무리였다.

“근데 원래 마지막 날에 부르려던 노래가 뭔데요?”

“학교에서 지정해주는 노래가 아니면, 저희가 만드는 노래 둘 중 하나예요. 저희는 저희가 직접 만들기로 했어요.”

“다이애나가 가사를 적는 건가요?”

다이애나는 부끄러운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네......”

“그럼 볼 수 있을까요? 작사를 하는 건 무리더라도 봐 드릴 순 있거든요. 물론..... 저도 초보라서 그냥 제 의견은 이렇다 정도로만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 부끄러운 가사라서......”

다이애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진으로 찍어놓은 게 있을 텐데.....”

이미지로 들어가 사진을 찾더니 슬쩍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다이애나의 핸드폰을 받고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엔 공책에 적어놓은 가사가 적혀있었다.

“......”

천천히 가사를 읽는 나를 보며 다이애나는 긴장한 듯 연신 침을 삼켰다.

사진을 넘기며 다음 가사도 읽은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뭔가 익숙한데.’

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느 한 장면이 생각났다.

무서운 존재로부터 처음으로 용기를 내는 작디작은 소년의 이야기.

버림받은 자와 미움받는 자의 따스했던 첫 만남이 떠올랐다.

“[드래곤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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