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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71화 (70/216)

71화. 글 생각

내 말에 다이애나는 부끄러운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드래곤 마스터] 맞죠?”

“네에..... 맞아요.”

“가사 잘 쓰셨네요.”

그 말에 더욱 부끄러운지 고개까지 숙이며 얼굴을 가렸다.

“괜찮게 적으셨는데, 굳이 저한테 부탁한 이유가 있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이애나는 뺏어가듯 내 핸드폰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날 째려봤다.

***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음악가를 보며 자랐다.

지금은 ‘과거의 영광’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래도 다이애나의 눈은 에드워드 때문에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을 배우며, 뛰어난 책들만 접한 다이애나는 웬만한 책이나 노래, 가사를 보아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노래를 못 부를 뿐이지 줄리아드 음대에서 천재라 불리는 소녀가 바로 다이애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애나가 충격을 받는 일이 생겨났다.

‘드래곤 원.’

변변찮은 출판사와 계약해서인지 대형 서점에서도 보이지 않던 작품이었다.

아무리 재밌는 소설이라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사람들 관심 속에서 멀어진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이 라울 데이비스라는 연예인으로부터 시작돼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선생님들과 학생들까지 웅성거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추천 때문에 다이애나도 어쩔 수 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뭐. 재미는 있겠지.’

높을 대로 높아진 다이애나의 눈을 만족시키는 작품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이게 뭐야......’

책에 한 번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아침이 되어 있었다.

악마가 영혼을 훔치는 책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유혹하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문단 하나, 글자 하나까지 숨어 있는 디테일이 있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대체 이 흡입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식은땀을 너무 흘려 잠옷이 푹 젖어 있었고, 눈물을 너무 흘려서 그런지 눈 부근이 너무 얼얼했다.

‘하, 한 번만 더......’

다이애나는 황금 같은 주말 동안 오직 책 하나에 빠져 살았다.

후회는 없었다.

그저 책을 미친 듯이 읽고 싶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다이애나는 드래곤 원이라는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책 좀 보세요!’

은퇴한 이후로 항상 기운이 없으셨던 할아버지한테도 이 책을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사막의 전갈]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제목부터가 삼류다’라며 혀를 찼지만, 그래도 손녀가 추천해주는 책이니 못이긴 척하며 한번 읽어보았다.

‘이건......’

‘어때요? 재밌죠?’

‘확실히 신인 작가 수준은 아니구나. 내용에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정말 재밌는 글이로구나. 그래 이 작가 이름이 드래곤 원이라고?’

‘네!’

‘이름 한 번 유치하구나...... 그래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군.’

다이애나는 드래곤 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어딘가 신비한 인물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가 곧바로 군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어, 보고 싶어, 듣고 싶어.’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글에 매료됐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드래곤 원 작가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사막의 전갈]이 뜬 게 운이 아닌 자신의 실력이었다는 듯, 발매하는 책들마다 연일 인기를 끌었다.

‘......만나고 싶어.’

얼굴도 모른다. 정체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그저 문학소녀는 ‘글’과 사랑에 빠졌다.

누군가는 다이애나가 첫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다이애나는 부정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사랑은 무슨..... 그냥 존경심이지.’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는 안다고 생각해도, 얼굴도, 성격도 모르는 사람이랑 사랑에 빠지겠는가.

그저 글에 심취한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얼굴을 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아......’

밤잠까지 설치며 새벽부터 기대했던 축제였다.

작가님이 무안하실까 봐 친구들한테 일찍 나오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친구들은 눈치를 채고 자리에서 비켜줬고, 심지어 작가님의 동행분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헤헤...... 나중에 꼭 은혜 갚을게 로지.’

무언가 진척될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작가님의 관심은 오직 책이었다.

책을 보자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시는 작가님도 귀엽긴 했지만, 이건 데이트라고 보기에는 매니저 같은 느낌이었다.

‘괘, 괜찮아! 응! 이건 기대도 안 했어!’

그래 여기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팬심이었으니까.

다이애나가 제일 기대한 건 작업이었다.

같이 글을 쓰고, 노래도 만들고, 가사도 작성하는 그런 꽁냥꽁냥한 작업을 기대했었다만...

“히잉......”

결국 거절당했다.

울상을 지은 얼굴을 보이기 싫어 서둘러 얼굴을 가렸다.

***

캐서린은 잠시 실례한다고 하며 나를 조금 멀찍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냥 한번 해주지 그랬어. 딱 보니까 너하고 작업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내일 사인회니까 체력은 아껴둬야지. 그리고 아까 적어놓은 가사도 훌륭하던데?”

“에휴.....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캐서린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알고 있었다.

“......네가 무슨 하고 싶은지 알고는 있는데..... 그거 알아? 다이애나 지금 고등학생이다?”

“그래서 뭐?”

“그냥 사춘기 시절에 지나가는 사랑 같은 거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 나가면 더 좋은 남자가 기다릴 텐데,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시골에 사는 날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겠냐?”

“그래도 그렇지 좀 친근하게 해주면 안 돼? 네 엄청난 팬이잖아. 거기에 사춘기일 때 사랑은 촛불 앞에 바람과 같다고도 하니까 좀 잘해줘.”

“그래서 너도 바람처럼 차였냐?”

“......죽을래?”

“미안.”

캐서린의 말도 일리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

“후우..... 캐서린의 마음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한 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그럼 조금이라도 조언해 주는 건 어때? [드래곤 마스터]를 배경으로 쓴 가사라며? 적어놓은 가사가 훌륭하다고 해도 오늘 하루 정도는 같이 해줘. 다이애나 보니까 오늘 많이 기대하고 있던데.”

“음......”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이 나오면 바로 준다고 했지만, 축제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던 다이애나였기에, 양장본만으론 부족하다 싶은 느낌이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으음..... 이런 건 어때? 가사를 자세히 봐준다고 하고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밥 먹자고 하는 건?”

“좀 뻔하지 않아?”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그냥 애라며? 그럼 이 정도면 충분하지.”

“흐음..... 하긴, 그 정도가 좋긴 하겠다.”

우리는 다시 다이애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헤헤 오셨어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하는 포커페이스는 뻔하게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아. 혹시 축제 다 보고 나서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이요? 아뇨. 오늘은 이제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럼 오늘......”

잔뜩 실망한 얼굴 때문인가.

저녁에 식사나 하자는 말을 뱉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제가...... 심부름이 하나 있거든요. 근데 뉴욕의 길을 잘 모르기도 하고, 저번에 왔을 때 바빠서 제대로 구경도 못 했는데...... 오늘 하루 뉴욕 관광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그에 대한 대가로 가사 수정과 저녁밥은 제가 살게요.”

“......네?”

다이애나는 멍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올 때 펫샵에서 팡이 간식을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이 있긴 했으니까.

몬태나주에선 고급 펫샵을 찾기 힘들었기에, 이곳에 온 김에 구매하려고 한 것이다.

“이쪽이에요! 이쪽으로 가면 있어요!”

지친다.

뭐가 저리 기운이 좋은지 모르겠다.

체력을 축제에서 산 책들 때문에 다 빼앗겼다고 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지칠 줄은 몰랐다.

활기 넘치는 다이애나의 모습과 정반대로 나는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뉴욕에서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고 있었다.

타임스퀘어, 트럼프 타워, 센트럴 파크, 현대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물론 미술관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뉴욕이 작은 땅덩어리도 아니고, 대중교통으로 계속 이동하다 보니 시간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휴우......’

캐서린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도착하자 어딘가 익숙한 식당이었다.

“여기 맛있어요.”

“여긴......”

“아세요?”

“네. 리암 씨가 쏜다고 해서 와본 적이 있거든요. 확실히 맛은 있었어요.”

양도 많았지만.

“먹고 싶은 거 드세요. 제가 살게요.”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킨 다음,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가사를 수정하기로 했다.

나는 수첩을 꺼내서 일단 다이애나가 지금까지 적어놨던 가사들을 옮겨 적었다.

“[그래도 난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할 수 없으니까 일말의 용기를 내볼게]라는 부분 말인데요. 이 부분이 주인공 로얀이 처음으로 용기를 낸 부분인가요?”

“네! 맞아요! 최상위 드래곤 하클라스한테 알을 돌려주기 위한 부분을 적어놨어요!”

“이 부분을 [지금까지 놓쳤던 용기를 내 일생 모두를 줘도 좋으니 붙잡게 해줘.]라는 식으로 수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으음..... 원래는 이 가사 다음이 후렴구라서요. 조금 더 극적인...... 아니, 이것도 괜찮긴 하네요.”

다이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노트에 내가 언급한 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제가 작사에 대해선 전문가가 아니니까 오히려 다이애나가 하는 방식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드래곤 마스터]가 배경이라서 원작자로서 도움을 주는 것뿐이니, 그냥 참고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넵!”

다이애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가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작품에 정답이 없다고, 가사에도 정답이 없어요. 그냥 내용을 듣고 ‘이게 더 좋다’ ‘이게 더 재밌다’ ‘이게 더 내용이 잘 이어진다.’ 정도로만 생각해도 곡 하나가 뚝딱 나오니까요. 거기에 디테일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항상 말하세요. 디테일의 차이가 명작과 망작을 구분한다고요.”

“흐음.”

“음과 가사. 그 두 가지 디테일만 잘 살려줘도 노래는 들을 만해진다고 항상 말하세요. 물론 할아버지니까 하시는 말씀이지만요.”

“그래도 재밌는 말이네요. 노래를 만들 때 고민해야 할 게 수십 가지일 텐데, 딱 두 가지만 강조하시니까요.”

“어차피 그 두 가지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네......”

확실히 에드워드 선생님의 머릿속은 비상했다.

장인들은 다 고유의 방법이 있다고 하더니 선생님도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신 것 같았다.

“작가님은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집필하세요? 아까 대학교수님이 궁금하다고 했던 게 저도 궁금했거든요!”

다이애나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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