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75화 (74/216)

75화. 소통 (2)

뉴스 화면에는 오늘 있었던 북 페스티벌 아침 현장이 나오고 있었다.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의 이른 아침입니다. 입장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앞줄에 있는 사람들은 어제저녁부터 줄을 서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화면이 바뀌더니 리포터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헬로우.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에이든입니다!]

[Ms 에이든? 이 줄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네. 이 줄은 드래곤 원 작가님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입니다.]

[사인? 그럼 이 줄이 모두 사인회장 줄이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까지 베일에 감춰져 있던 드래곤 원 작가님과 얼굴을 대면하고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혹시 거주하시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 수 있나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와우..... 정말 먼 거리에서 오셨군요!]

[하하. 저는 먼 것도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온 사람도 있고,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드래곤 원 작가님 작품이 해외로 출판이 된 건가요?]

[그건 아니고 입소문이 타서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을 본 것일 겁니다. 물론 아마존에서 구매하는 방법은 그리 추천드리지 않지만요.]

[아니 왜죠?]

[수량이 부족하니까요! [사막의 전갈]은 그래도 수량이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블랙 & 월드]와 [드래곤 마스터]는 인쇄속도가 판매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사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Oh my god...... 그럼 에이든은 드래곤 작가의 작품 중에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에이든은 가방에서 [드래곤 마스터]를 꺼냈다.

[저하고 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오늘 반드시 사인받을 거예요!]

[저도 에이든이 사인을 받길 기도할게요.]

[고마워요!]

화면은 다시 바뀌어 뉴스 앵커의 모습을 찍었다.

[본래 아침 10시에 입장을 시작하는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은 이례적으로 이른 시간에 입장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오직 드래곤 원 작가의 팬분들을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이건 또 무슨 뜻이죠?]

[그걸 알려면 일단 새벽부터 찍힌 사진을 봐야 됩니다.]

흑인 여성 앵커가 화면에 SNS 사진을 띄웠다.

누군가 고층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줄이 한 시간마다 물밀 듯이 불어나고 있었다.

[경찰들까지 와서 줄을 정리시키려고 했다는데요. 그래도 몰려드는 인파에 어쩔 수 없이 뉴욕 주지사까지 나서야 했다고 합니다.]

[와우.... 정말인가요?]

[뉴욕 주지사는 SNS에 ‘전설 속에 등장하는 드래곤이 뉴욕에 강림했다. 드래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번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은 역대 최강일 것이라 자부한다’라고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라고도 올렸죠.]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늘 아침 8시경부터 짧은 사인회를 걱정한 드래곤 원 팬들 중 한 명이 새치기를 하는 바람에 한차례 싸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침까지 줄을 섰는데 3시간밖에 안 한다는 소식에 하룻밤 기다린 사람들도 사인을 못 받을 지경까지 이르렀죠.]

[이런..... 그럼 지금은 괜찮아졌나요?]

[예. 물론입니다. 우선 드래곤 원 작가님과 작가님이 소속된 출판사 빌 에이든 미디어는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사인회 시간을 최대한 늘렸습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기 시작하더니 내가 사인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마치 현상수배범처럼 내 사진이 뉴스에 널찍하게 펼쳐지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 쪽으로 쏠렸다.

[1시간 일찍 시작하고 사인회는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죠. 그래서 드래곤 원 작가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독자분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팬들한테 질문을 받고 소통하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드래곤 원 작가의 열혈 독자들은 지금까지 비밀리에 쌓여 있던 진실을 들을 수 있었죠. 뿐만 아니라 희소식도 있었습니다. 드래곤 원 작가의 차기작은 ‘추리 소설’이라고 말이죠.]

‘......뭐 인마?’

가장 쓰기 싫어서 말까지 돌려가며 ‘언젠가는’ 쓰겠다고 말해 놓은 것을 다음 차기작으로 말하다니..

이래서 기자를 통하면 풍선같이 부풀려진다는 건가.

[드래곤 원 작가의 인기 비결은 ‘악마도 울고 갈 필력’이라고 합니다. 악마조차도 무릎 꿇을 정도로 잔인한 필력에 사람들이 매료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드래곤 원 작가의 횡보가 기대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뉴스는 끝이 났다.

종료되면 뭐하겠는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드래곤 원 작가님?”

“......”

종업원이 가져다준 거대한 와인잔으로 조용히 얼굴을 가렸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통할 리가 없었다.

***

결국 피곤해진 손목을 핑계로 종업원을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의 사인은 거부했다.

단지 그냥 ‘내가 인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손목도 피로하다 보니 이젠 정말 손목에 휴식을 줘야 했다.

한바탕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곧장 LA로 출발했다.

“후아아암......”

내 옆 좌석에 앉은 캐서린은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해댔다.

참고로 그곳에 있던 빌 에이든 미디어 직원들은 캐서린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내 친구 동생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빌 에이든 미디어 내에서도 웹소설과 종이책 파트가 나눠져 있다 보니 캐서린이 그저 경험 삼아 따라온 건 줄 알고 있었다.

캐서린도 딱히 뭐라 말하지 않았고 그저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나를 도와주었다.

‘비싼 옷을 사준 것도 아닌데 열심히 했지.’

캐서린의 정체가 밝혀진 건 식사 자리에서였다.

캐서린이 빌 에이든 미디어의 소속 작가라는 소리에 식사를 하고 있던 모든 직원들의 벙찐 얼굴이 장관이었다.

“피곤해?”

“좀..... 으음. 그러네.”

“LA에도 spa가 있는데 그곳으로 예약을 잡을 걸 그랬나?”

“됐어. 어차피 하룻밤 자면 풀려. 거기에 오빠한테 부탁도 있고.”

“아아..... 네 소설?”

“응. 그래서 내가 뉴욕에서 열심히 도운 거라구.....”

“그래. 뭐..... 어차피 시간도 남으니까.”

“정말 도와줄 수 있어? 다음 차기작은 안 써도 돼?”

추리 소설을 말하는 건가?

생각할수록 한숨만 튀어나왔다.

“......진짜 자신 없는데.”

“응?”

“내가 제일 자신 없는 장르가 추리거든. 추리소설은 뭐랄까..... 하나의 세계 속에서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면 안 되잖아? 그런 게 조금 버거워.”

“유명한 추리 소설이 많아서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추리 소설 강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도 국가마다 추구하는 분위기가 달라.”

“그래?”

“어. 영미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영미권 국가들은 추리 소설이라도 매력적인 주인공을 원해. 약간 사이코 같으면서도, 미친 듯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런 주인공이랄까?”

“아...... 뭔지 알 것 같아. ‘셜록 옴즈’같은 걸 말하는 거지? 주인공이 매력적이었지.”

“추리 소설의 메커니즘을 일으킨 소설이지. 뭐. 그 다음 일본 쪽은 사회를 배경으로 글을 적는 경우가 많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현실 반영이 단단하게 이루어져 있지. 독일과 프랑스도 그와 비슷하지만 조금 전통적인 추리 소설을 쓰는 편이고.”

“다양하네..... 근데 말을 들어보니까 추리 소설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네?”

“현실 같은 소설이냐, 아니면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픽션이냐. 둘 중 하나지 뭐.”

“그래서 쓰기 싫어?”

“쓰기 싫은 건 아니야. 언젠가는 쓸 거야. 다만.....”

“영감을 받지 않아서 생각이 안 난다는 거지?”

“응. 맞아”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고 해도, 항상 실패했던 장르였기에 그 글이 재밌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만일 쓰게 되면 네가 한번 확인해볼래?”

“진짜? 봐도 돼?”

“이사벨한테 맡겨도 되긴 하는데, 걘 아직 학생이니까. 부탁 좀 할게.”

“아싸!”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 ‘언젠가’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

LA 공항에 도착하고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곧장 호텔로 갔다.

예약을 해놓았기에 금방 방 안으로 들어가 쉴 수 있었다.

‘피곤하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나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우드드득!

관절이 비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했다.

글을 쓰게 된 뒤 생긴 하나의 습관 같은 건데, 자기 전에 혹은 컴퓨터에 앉기 전에 충분한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는 느낌에, 이대로 자도 개운하고 컴퓨터에 앉아 있어도 몸에 오는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털썩

한바탕 스트레칭을 끝낸 뒤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나는 어두운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봤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간 것도 오래간만이네.’

체력적으로 지친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글을 쓰면 이상할 정도로 그날 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육체적으로 노동하면 왠지 모르게 하루가 보람차게 흘러간 느낌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 오늘 가장 큰 이슈는 드래곤 원의 차기작은 추리 소설이다 라는 말이 전파를 탄 것이었다.

“추리 소설이라......”

추리 소설의 근본은 살인 사건이다.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것.

‘요즘 인기 없는 것도 추리 소설이지.’

물론 아직 인기가 많은 곳도 있었고, 그 인기를 유지하는 나라도 있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추리 소설이 인기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는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는 ‘현실감’ 부족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추리 소설이 가장 인기 있었던 시기는 아마 ‘20세기까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뛰어난 과학기술이나 수사 정보 부족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런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추리 소설이 인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상할 정도로 미제 사건이 많은 일본 같은 경우는 그 때문인진 몰라도 아직까지도 추리 소설 강국이었다.

“요즘 미제 사건이 어딨어.”

지문을 찾고, CCTV를 확인하고, 주변 조사와 언론을 이용하면 금방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시대다.

‘애초에 미제라는 것도 대부분 초기 수사에 실수가 많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초기 수사 실패를 제외한 정말 말 그대로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추리 소설의 백미지만 말이다.

“일단 자자.”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날이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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