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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78화 (77/216)

78화. 조현병 (2)

콜린한테는 이 모든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방이 열린 뒤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 방에 들어온 인간, 멈춰버린 소리.

모든 것이 오랜만이었고, 그 때문인지 오히려 이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소리가 다시 자신을 해치려 드는 게 아닐지, 아니 소리에 몸이 지배돼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게 아닐지 무섭기만 했다.

그런 콜린의 귓가로 드래곤 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드래곤 원의 손에는 수첩이 들려 있었다.

“.....말해.”

“네 머리에 들리는 소리가 누군지 알아?”

“너는..... 믿는 거야?”

“믿어.”

“......”

콜린은 한참을 뜸들이더니 말했다.

“나도 몰라. 계속 네가 누구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아. 알고 싶은 생각도 하지 말래.”

“그래서?”

“......계속 물어보면 협박해. 네 소중한 사람한테 들러붙겠다고.”

“들러붙겠다고라..... 무슨 기생충이야?”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만 말해.”

“흐음.”

“근데 뭘 적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수첩에 콜린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조현병 환자의 인터뷰는 뮤튜브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현실감과 영감을 중시하는 나로선 ‘디테일한 묘사가 필요한 캐릭터’는 직접적으로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럼, 그 목소리는 어때?”

“......처음에는 바람 같은 소리였어. 근데 시간이 흘러서..... 소름 끼치게 변했어. 폐가나 나무를 스쳐 지나가는 그런 바람 소리처럼 말이야.”

극도로 경계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콜린은 의외로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것을 풀어헤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덥수룩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콜린의 표정은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아?”

“.....많아.”

“뭐가? 소리가?”

“응. 전부 목소리가 달라. 남자일 때도 여자일 때도 있어, 어떤 때는 아이, 노인, 청소년 연령대도 달라.”

“그런데 그 목소리가 전부 ‘그 녀석’ 목소리라는 걸 어떻게 아는데?”

“전부 나한테 죽으라고 강요하니까.”

“음......”

“말을 하다가 단어 하나하나마다 목소리가 다를 때도 있어. 그 녀석의 짓이야.”

‘모든 목소리가 한 녀석의 목소리라는 건 개인적인 생각인가?’

목소리 톤은 무서운 바람 소리, 목소리 성별과 연령은 알 수 없음인가.

“그 녀석이 도움이 될 때도 있어?”

“.....없어. 있을 리가 없잖아?”

“하긴.”

“......”

콜린은 잠시 생각하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 있을 때도 있어. 아주 가끔..... 내 생각에 동조해준다는 거?”

“동조라.....”

“그리고..... 선악 구분이 확실하다는 거?”

“선악 구분?”

“별거 아니야. 뮤튜브에 나오는 뉴스를 보면, 그 소름 끼치는 소리가 누군 나쁘다, 누군 착하다를 바로 결정지어. 그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호오.”

쉽게 말해 내면이 결정한 일이기에,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건가?

“콜린. 너는 어릴 적에 꿈이 뭐였어?”

“.......”

그 말을 듣고 콜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응? 누구?”

“그냥.....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할아버지라......”

이건 또 신선한 대답인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별거 아니야......”

어린 시절 콜린은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한 광경을 목격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순도순 손을 잡고, 편안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광경이었다.

남들은 큰 표정이 없다고 느꼈을 테지만, 오직 콜린에게만큼은 두 분 다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생을 즐기는 것 같았어..... 학교도 가지 않고, 잔소리도 듣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시는 것 같았어.”

‘이것 참 신기하네......’

콜린의 꿈은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랐다.

어린 시절이라면 누구나 영웅, 공주가 되고 싶은 ‘동심’이 있다.

고모부 집에 있는 애니 또한 공주를 꿈꾸며 살아간다.

하지만 콜린의 꿈은 특이했다.

‘부담감 같은 건가?’

어린 시절 누구나 쉽게 듣는 잔소리를, 누구나 다 가는 학교를 콜린은 부담감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저 편안히 있는 할아버지가 목표일 정도로, 콜린은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직업을 가진다면?”

“소설작가.”

“아니 왜?”

“......집에서 나가지 않고 빈둥빈둥 글 쓰면 하루가 끝나니까.”

“......그건 나에 대한 모욕 아니야?”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모든 일이든 힘이 들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하지만 콜린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집에서 나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작가의 삶이 더 좋은 것 같았다.

하루하루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쉽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후우...... 콜린. 내가 너한테 몇 마디만 할게.”

이제 성인이 된 콜린한테 조언 아닌 조언을 주고자 했다.

“신이시여, 아무도, 쓰지 않은, 인간의 머리를, 사겠습니다.”

“......응?”

“이 말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콜린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장애인?”

“아니야. 신체적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머리’가 아닌 ‘쓰지 않는 인간의 신체 부위’를 달라고 했겠지.”

“그럼 누군데?”

“계속 고민하고 계속 생각해봐. 너도 이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성인이야.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오로지 너의 힘만으로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 내가 누구를 말한 건지, 그 사람이 어째서 이런 말을 했는지 계속 생각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콜린에게 주려고 가져왔던 양장본을 다시 들어 올렸다.

“난 의사가 아니야. 너보다 조금이나마 더 산 인간으로서 너한테 충고를 해준 것뿐이야.”

“자, 잠깐......!”

“앞으로 한 시간. 그 안에 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나는 이걸 들고 집으로 갈 거야.”

-쿵!

문이 닫히고 또다시 콜린의 방 안에 어둠이 찾아왔다.

***

내가 나온 문 옆에는 콜린의 아버지와 아리야 그리고 캐서린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콜린한테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거실로 내려왔다.

거실 소파에 앉은 캐서린은 지금까지의 대화를 듣고 궁금한 점을 말했다.

“신이시여 아무도 쓰지 않은 인간의 머리를 사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그럴 듯하게 내뱉은 말이야.”

“그래도 돼?”

“정답이 있는 건 콜린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스스로 집중해서 생각하고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한 거지.”

나는 양장본을 거실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리야는 양장본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나올까요?”

“글쎄요? 나오지 않을 수도 있죠. 나오지 않는다면 자기 욕망이 거기까지라는 거겠죠.”

할아버지를 꿈꿔왔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목적이 편안한 생활인 콜린이다.

뚜렷한 욕망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결국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과거와 다르게 증상이 적어졌을 뿐, 병을 완전히 이겨낸 건 아니었다.

조현병 환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 병은 완치가 없고, 현실을 자꾸 이겨내는 것을 치료라고 말한다.

소리의 주인과 진솔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겨내야 한다.

버티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었다. 진짜 용기는 소리의 주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어차피 1시간 있다가 가야 하니 그때까진 기다려 보죠.”

헨리와 아리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혹시 모를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고 있었다.

콜린이 방 밖으로 언제 나올지 모르다 보니 나는 아까 적었던 수첩을 꺼내 들었다.

“거기엔 뭘 적었는데?”

“대화 내용을 적은 거야.”

“대화 내용?”

나는 수첩에 적은 내용을 살펴보다가 헨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헨리, 혹시 콜린이 괜찮아진다면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적어도 되나요?”

***

과거 라울하고 마티니를 마시며 내기한 적이 있다.

[블랙 & 월드] 500만 부 달성에 관한 내기.

본래 사인회도 500만 부를 달성하면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는 [사막의 전갈] 500만 부와 [블랙 & 월드] 200만 부 달성 기념으로 이미 진행했다.

라울과의 내기는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외면받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지.‘

장르 소설을 쓰는 나로선 신선한 소재임과 동시에 그 어느 것보다 어렵게 다가왔다.

세상엔 외면받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콜린도 그중 한 명이지.’

정신병 중 하나인 조현병이지만, 사회에선 정신병자라고 조롱받는 대상 중 하나였다.

심지어 사이코패스라고까지 부르며,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현상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라울이 적어달라는 건 이쪽은 아니었겠지만.’

즉, 지금 내가 적으려는 건 라울이 말했던 소설이 아닌 어제 만났던 소년과의 약속이었다.

“추리 소설 말입니까?”

“네. 현재 추리 소설을 고민 중입니다. 콜린과 또 다른 콜린의 이야기를 추리 소설의 주인공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콜린과 가족분들이 괜찮다면요.”

“으음..... 고민할 것도 없군요.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정말인가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즉각 나오는 헨리의 대답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예. 작가님 작품의 파급력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헨리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조현병이라는 병명 자체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 조금 알려지긴 했죠. 조현병이라는 병은 어느 범죄 드라마나 스릴러 영화에 악역, 혹은 살인자로 종종 나오고 있으니까요. 조현병은 예비 범죄자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물론 다른 일반인보다 위험성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정할 생각도 없고요. 다만, 조현병 환자를 아들로 두고 있는 아비의 입장으로선 그런 일반화의 오류가 참 착잡했습니다.”

조현병 환자가 일으키는 사고는 매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총기로 인한 사건 중에서 조현병 환자도 많았기 때문에 다른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조현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저 작가님의 소설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이 1%라도 변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조현병 환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대놓고 면전에 대고 이사 가라고 소리치는 자들도 있을 정도로, 조현병은 모든 면에서 무섭고, 불편하고, 꺼려지는 신세였다.

“......제 글로 과연 조현병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뀔지 모르겠습니다만, 믿고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만들어보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헨리의 말에 나는 굳건한 마음으로 수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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