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조현병 (3)
다시 어두워지자 소리는 또다시 찾아왔다.
언제 어디서 다가오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어느 순간 다가와 귓가에 다시 속삭일 뿐.
계속해서 죽음을 권유하는 소리에 콜린은 처음으로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하하......”
-......
콜린의 웃음소리에 소리의 주인이 목소리를 멈추었다.
-뭐가 우습지?
처음으로 자신을 비웃는 소리에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냥 웃겨서.”
어차피 숨겨봤자 소리의 주인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웃긴가?
“웃겨.”
-왜 웃기지?
“아까는 말도 못 하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더니, 그 사람이 없어지니까 다시 활개를 치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어둠 속에서 홀로 남은 콜린은 소리의 주인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소리는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콜린은 끝까지 소리의 주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내가 뭐가 마찬가지라는 거지?”
-총을 들고, 부모한테 소리치고, 모든 것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듯이 행동하면서 정작 그 녀석이 왔을 때 너는 뭘 했지?
“그건.......”
-너도 겁먹었잖아? 안 그래?
“......아니야.”
-너는 날 모르지만 나는 널 알아. 너만의 세계에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들이는 그 녀석을 넌 분명히 무서워했어.
“아니야! 아니라고! 난 무서워하지 않았어!”
퍽퍽!
콜린은 다시 침대를 치며 소리의 말을 부정했다.
-너 지금 네 상태가 생각보다 ‘편하다’라고 느끼고 있지 않아?
“......뭐?”
침대를 때리던 상태 그대로 콜린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편하잖아? 안 그래? 네 나이 먹고 일도 하지 않아도 되잖아? 필요한 게 있을 때 소리만 꽥꽥 지르면 부모님이 구해주잖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되잖아?
“그,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닌데?
“이건 전부 너 때문에..... 그래 너 때문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 않......”
-않았다고? 그걸 확신할 수 있어?
“당연하잖아? 나는.....!”
처음이었다.
소리의 주인과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에는 소름 끼친다고만 생각했던 소리가 서서히 평범한 인간의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걸.
“.......”
-너도 알잖아? 그 자식이 말한 의미를 말이야.
[신이시여, 아무도, 쓰지 않은, 인간의 머리를, 사겠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을 콜린은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알고 있어. 그 말을 누가 했을지.”
콜린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말했을 거라고 단정 지었었다.
하지만 콜린은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정적인 시선에서 살고 있는 그들도, 현실에 순응하여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너잖아?
“너잖아?”
둘은 동시에 말했다.
“네가 내 몸을 차지하기 위해 신한테 빌었잖아?”
-남들의 노력은 알지 못하고 오직 결과만 얻고 싶은 네가, 한 말이잖아?
서로 비슷하면서 똑같은 답을 말했다.
또 다른 자신의 말에 콜린은 또다시 침묵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린 머리카락 사이로 콜린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부모님한테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들려오는 소리는 황당한 웃음소리였어. 당연하겠지.....”
-......
“언젠가는 나도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어. 너무 어렸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으니 노인이 될 줄도, 그리고 노인이 되는 과정도 알지 못했지.”
그저 사랑하는 이와 사이좋게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콜린은 그저 그게 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게,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게 무서웠어. 근데..... 이제 알겠어.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다는걸.”
-.......
소리의 주인은 콜린의 진심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한참이 지나자 소리의 주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징징거리지 말고 꺼져.
목소리가 달라졌다.
소름 끼쳤던 바람과도 같은 소리가 조금은 온화하게 들렸다.
-병신. 징징거리는 새끼는 내가 지겨워. 이것저것 핑계나 댈 생각하지 말고 그럼 잘 살아보든가. 이제 귀 좀 그만 처닫고.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야.”
콜린은 나지막하게 소리의 주인을 다시 불러봤다.
-뭐.
“뭐야 떠난 거 아니었어?”
-내가 왜 떠나? 네가 조금이라도 예전으로 돌아오는 기미가 보이면 나도 다시 돌아와야지. 네 몸은 내 거니까.
“하하......”
그 녀석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죽여서 몸을 빼앗겠다는 협박은 하지 않았다.
“.....아직 있을까?”
콜린은 지저분해진 방을 스윽 둘러보았다.
어둠에 적응된 눈으로 봐도 이 방은 지저분하다 못해 도저히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컹......
몇 년간, 방 밖으로는 나간 적이 없어 발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윽......”
눈 부신 빛이 콜린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냄새......’
집안 전체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베이컨.....인가?’
방에 박혀 있을 때도 느꼈던 냄새였지만, 방 밖으로 나오니 그 냄새가 더욱 잘 느껴졌다.
-꼬르륵.....
계단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려갈 때마다 콜린은 몇 년간 쌓았던 벽을 스스로 허물어트리고 있었다.
용기가 아슬아슬한 그의 몸을 지탱했다.
‘아직 있을까?’
천천히 1층으로 내려온 콜린은 아무도 없는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없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거실 탁자에는 아까 본 [블랙 & 월드] 양장본이 놓여있었다.
-쨍그랑~!
뒤쪽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그곳을 바라봤다.
깨진 접시와 그 접시를 떨어트린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가족’이 보였다.
“.....오랜만이야.”
“으, 응?”
“배고프다. 나 밥 좀 줘.”
콜린은 오랜만에 허기짐을 느꼈다.
***
몬태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캐서린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뭔가 드라마틱하게 그러진 않네.”
“조현병이라는 게 드라마틱하게 치료될 수 있는 병이었다면 사회적 인식이 이렇게 심각하진 않겠지.”
“그래도 오빠 소설을 좋아하니까 무슨 대단한 반응이라도 있을지 알았지.”
“반응은..... 애초에 그거 알아? 콜린이 나하고 짧은 대화를 나눌 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그래?”
“헨리한테 들었는데, 가족이 아닌 남하고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정신병원 갔을 때는 의사를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어서 남한테 피해를 주기보단, 가족들 스스로 콜린을 케어하겠다고 입원을 안 시켰던 모양이야. ”
“그래도 입원시키는 게 낫지 않나? 전문병원일 텐데.”
“콜린이 가족하고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나 봐.”
“가족이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했으면서?”
“응. 무의식적으로 가족들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
나는 의자에 편안히 기대며 아까 정리했던 수첩을 꺼내 들었다.
“조현병 환자를 주인공으로 하게?”
“아까 들었잖아?”
“괜찮겠어?”
“콜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조현병 걸린 사람 전부가 가능한 건지, 아니면 콜린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굉장히 재밌는 소재야.”
“셜록 옴즈 같은 느낌이 나겠네.”
“맞아.”
셜록 옴즈한테도 믿음직한 조수가 있듯, 주인공의 조수는 환각 또는 환청으로 할 생각이었다.
“빨리 쓰고 싶어지네.”
그간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손이 근질근질했다.
***
캐서린을 집에 내려주고 돌아온 집엔 고모부 가족과 아빠가 포커로 저녁 내기를 하고 있었다.
저녁 내기는 그냥 피자 5판 정도만 쏘는 것이었고, 승자는 아빠였다.
저번에 이사벨이 시켰던 김치 피자와 더불어 페페로니 피자와 콤비네이션, 플레인 피자 등을 시켰다.
식탁에 앉아 두런두런 피자를 먹으며 고모부네와 부모님은 나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제임스 팡이 간식 사왔니?”
“네. 뜨끈뜨끈한 뉴욕산으로 사왔어요.”
나는 주섬주섬 사온 팡이 간식을 꺼내 엄마한테 내밀었다.
엄마가 그냥 정면을 바라보며 ‘간식 줄까?’ 한마디 했을 뿐인데 애니 배 위에서 자고 있던 팡이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빠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뉴스에서 네 얼굴 나오더라?”
“사인회를 해서요. 슬슬 얼굴을 드러내야죠.”
“에구. 우리 조카가 유명한 건 좋다만 그럼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거 아니야?”
조용히 살고 싶은 고모는 걱정이 앞섰다.
시골 사람들이라 조용히 살고 싶은 게 아닌, 애초에 조용히 살고 싶어서 이 동네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동네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에요. SNS에 올리는 사진도 최대한 조심하고 있고요.”
내 직업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얼굴과 배경을 드러낸 Live 방송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는 내 말에 피자를 접시에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지 말고 독립하는 건 어떻겠냐.”
“......독립이요?”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네 엄마하고도 계속 말했던 이야기다.”
아빠는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계속 글을 써야 하는 녀석이 뉴욕이다, LA다 돌아다니는데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너도 혼자 있는 편이 글이 더 잘 쓰이지 않겠냐? 이 시골 촌구석에 계속 왔다 갔다 하느라 체력만 축날까 봐 그게 걱정이다.”
그리고 아빠는 갑자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나이 먹도록 여자친구 한 명 인사시키러도 안 오는 걸 보니 슬슬 걱정이 돼서 그런다. 인기 많다며? 혼자 살면 여자친구도 생기지 않겠냐?”
“...... 아빠, 그게 저 독립하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죠?”
“몰라 이놈아! 클럽에 가든가, 아니면 술집에라도 가든가! 하다못해 노력이라도 해라! 돈도 많은 녀석이..... 쯧.”
“......”
이런 건 추석이나 설날에 들을 수 있다는 전설의 잔소리가 아니던가?
사실 나도 생각해본 적 있는 일이었다.
여자친구 말고 그냥 ‘독립’ 말이다.
‘혼자 있는 삶이라......’
솔직히 말해 걱정스럽긴 했다.
정신없이 글을 쓰다 보면 이것저것 깜빡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집에 부모님이 계셔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만일 혼자일 때 글을 쓰다 내가 몸져눕기라도 하면 누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줄까?
‘그래도 피곤함이 줄어드는 건 확실하지.’
[드래곤 마스터] 영화화 계약과 그리고 [사막의 제국] 양장본 등으로 SC라스틱에 갈 일이 많았다.
거기에 [사막의 전갈]이 완성되면 시사회 때문에 LA로 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몬태나에선 전부 너무 멀었다.
“고민해볼게요.”
동네가 시끄럽지 않으려면 내가 떠나야 한다는 말도 맞았다.
거기에 얼굴을 드러낸 이상 굳이 Live 방송이 아니라도 이곳을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동창 녀석들이 말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이번 작가와 소통을 통해 내 과거사가 어느 정도 까발려진 상태였다.
동창들 중에서 책을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을 테니 내 신상이 비밀에 부쳐지란 확신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엄마하고 아빠도 같이 가시는 게 어떠세요?”
내 권유에 아빠는 딱 잘라 말했다.
“됐다. 이 나이 먹고 도시에 살고 싶지도 않아. 요즘은 필요한 것도 인터넷에서 시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매형하고 잘 지내고 있는데 거길 왜 가냐?”
“근데 저 가면 팡이는......”
“쓰읍!”
“......놓고 갈게요.”
어느 도시에 집을 구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피자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