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자취
피자를 다 먹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곧장 침대 위로 누웠다.
“내일이 [리턴 패션 디자이너] 마지막 화가 올라가는 날인데......”
반응이 어떨지 궁금한 한편, 빌 에이든 미디어가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어떤 식으로 책으로 출판할지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보다 출판할 수는 있으려나?’
보통 책을 출판하는 데 빨라야 한 달 정도 걸린다.
빌 에이든 미디어와 계약한 공장 하나는 [블랙 & 월드]를 아직도 찍어내고 있다 보니,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늦어질 수도 있었다.
‘그 건은 알아서 하겠지.’
부족하면 공장 하나를 더 계약해서 출판시키면 될 일이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고, 큰 손해를 입을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집을 떠나서라.....”
집을 떠난 적은 많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군대에 갔을 때는 21개월 동안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다.
‘그래도 혼자 산다는 것 자체가 영 불안한데......’
집을 떠나 일을 했을 때는 옆에 월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뚜렷한 직업이라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책임질 직업이 생겼고 무엇보다 글을 정신없이 쓰는 습관이 있기에 살짝 걱정됐다.
“그래도 동네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되지.”
이곳이 관광으로 유명한 장소라면 모를까,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은퇴해서 몰려오는 곳인데 나 때문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천천히 생각하고..... 우선 콜린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살인자를 잡는 직업은 두 개다.
경찰 or 탐정
미국은 사설탐정 면허제도가 있긴 했지만, 그 절대적인 숫자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탐정 및 경호, 경비업을 미국에서는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으로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인 탐정과 일반 탐정이 있으며, 공인 탐정 같은 경우는 최소 3년 이상 공인탐정소에서 일을 하든가, 아니면 6천 시간 이상 경찰 수사과에 근무를 해야지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일반 탐정은 공인 탐정과 달리 단독으로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시간당 봉급은 높은 편이지만 경력이 없는 자는 취업이 불가능하여 대부분 일반 탐정들은 전직 수사관들이 은퇴한 뒤 하는 경우가 많다.
“탐정이 좋을까..... 경찰이 좋을까.....”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그에 대한 자세한 자료 조사가 필요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이내 잠에 들었다.
***
다음 날 아침이 밟고,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후아암.....”
너무 푹 자버리면 머리가 너무 깨끗해져서 괜히 더 생각이 나지 않는 기분이라, 살짝 잠을 덜 잔 상태였다.
그래도 몸에 있는 피로는 상당히 없어졌고, 지금 살짝 졸린 것도 커피 한 잔만 마시면 오히려 깔끔하게 사라질 정도였다.
거실로 내려가자 부모님 없이 팡이 혼자 소파에서 배를 드러낸 채 자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배를 보여주는 걸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너는 배를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네? 너 고양이 맞냐?”
-냥아?
나는 팡이 옆에 앉아 통통한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몰아냈다.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냐앙.....
팡이는 누워있는 상태로 등을 소파에 비비적거리며, 시끄럽고 얼른 더 쓰다듬으라는 눈치를 주었다.
-덜컥.
그렇게 잠깐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잠시 나가셨던 부모님이 들어오셨거니 생각하며 현관으로 나가니 예상대로 아빠가 계셨다.
“.....그건 뭐예요?”
다만, 아빠의 손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들려 있었다.
“캣휠이라고 하던데?”
원목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양이 챗바퀴였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캣휠과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왜 이렇게 작아요? 어디서 구매하신 거예요?”
“비싸게 뭐 이런 걸 돈 주고 사? 어제 네 엄마가 고양이 운동에 좋을 것 같다고 사진을 보여주더라. 마침 집에 재료도 다 있어서 이참에 한 번 만들어 봤다.”
“이야......”
나는 아빠가 만들어온 캣휠을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밀어봤다.
-스르륵.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마치 아이스 스케이트처럼 스르륵 미끄러졌다.
“정말 잘 만드셨네요? 소음도 없고......”
“소음이 있으면 팡이가 무서워할 수 있으니까.”
예전에 목공 사업을 하셨던 아빠다 보니 손재주가 굉장히 좋으셨다.
“아빠, 차라리 이런 걸로 사업을 하시는 건 어떠세요?”
“됐다. 사업은 이제 징글징글해.”
사업 실패가 트라우마로 남으셨는지, 사업 이야기만 들으시면 일단 미간부터 찌푸리셨다.
“그래도 그때 경험이 있어서 좋긴 하다. 소소하게 이런 걸 만드는 것도 재밌고 말이야.”
집에 있는 캣타워 개조도 직접 하실 정도로 손재주 좋은 아빠가 실력을 썩히는 게 매번 아쉬웠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냐?”
“뭘요? 독립이요?”
“그래.”
“네. 아무래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위치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LA 아니면 뉴욕 두 곳을 자주 가서, 두 곳 중 하나로 갈 것 같아요. LA가 더 끌리긴 하지만요.”
빌 에이든 미디어와 메디슨 누나 회사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해 있었고, 블루스타게이트와 미션 컴퍼니도 캘리포니아주에 있었다.
뉴욕이라고 해봤자 에드워드 선생님 댁과 SC라스틱 정도이니, 효율을 생각하면 LA가 최선의 선택이리라.
“이 부분은 누나한테 맡기려고요.”
“메디슨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냐?”
“대가 없이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거기에 전 아직 영주권만 가지고 있고요.”
“그러고 보니 시민권은 언제 따냐?”
“글쎄요? Reentry Permit(재입국허가서) 신청을 한 후에 군대를 갔다 와서 이상 없을 거라고 듣긴 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나 봐요.”
“나 때는 영주권만 있으면 금방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네가 개인적으로 한번 알아봐라.”
“네. 그렇게 할게요. 시민권 공부도 해야겠네요. 어렵나요?”
“별거 없어. 방심만 안 하고, 질문 내용만 잘 들으면 돼.”
아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캣휠을 가지고 거실로 갔다.
-샤아아아....!
빈둥빈둥 누워있던 팡이는 자신보다 큰 캣휠을 보자마자 무서운지 하악질을 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아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거실 한구석에 캣휠을 놔야 했다.
“익숙해지면 사용할 거예요. 아기 때는 캣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그나저나 엄마는요?”
“곧 올 거다.”
마찬가지로 집에 온 엄마도 캣휠을 무서워하는 팡이의 모습에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
대충 밥을 먹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컴퓨터를 켠 후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확인하려던 그때였다.
-띠리리리!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에 핸드폰을 바라보니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메디슨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누나.”
-제임스. 집에는 잘 돌아갔어?
“응.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야?”
-그것도 그런데, 시민권에 관해서 알려주려고 전화 좀 했어.
“나도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잘됐네.”
-원래라면 바로바로 진행됐을 텐데, 대통령이 바뀌고 난 후부터 시간이 좀 많이 소요되더라고. 원래 너희 집으로 진작 우편이 보내져야 하는데 담당 변호사인 나한테 우편이 왔어. 인터뷰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어렵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아. 미국에 대한 상식만 있으면 되니까. 그리고 너는 Selective Service(의무징병등록)도 안 해도 돼.
메디슨 누나한테 들어보니 원래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는 5년 동안 어차피 난 계속 미국에 얌전히 있었고, 한국군 입대도 재입국허가서를 작성한 상태로 가서 상관없다고 했다.
거기에 18~26세 사이에 미국에 온 것도 아니라서 의무징병등록도 굳이 할 필요가 없고.
대통령이 바뀌면서 기본 5개월 길면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 있었고 그에 대한 서류도 많다 보니 금방 통과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누나는 나한테 시민권을 어떤 식으로 취득해야 하는지부터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아. 맞다 누나.”
-어 왜?
“나 집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집? 갑자기?
“응. 아무래도 자취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어. 너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힘들어 보이더라.
“맞아. 되도록이면 LA로 생각 중인데, 치안이 좋은 곳으로 알아봐 줘.”
-알았어. 어차피 네 통장에 얼마 들어있는지는 아니까, 렌트비 걱정 없이 괜찮은 곳으로 구해볼게.
“고마워.”
-그렇다고 해도, 몬태나에서 시민권 선서는 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인터뷰 보고 2~3주 안에 선서하라고 올 거니까.
“더 빨리는 안 돼?”
-상관은 없는데 심사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걸릴 수 있어. 그리고 집을 알아보는 것도 금방 되는 게 아니니까 그냥 기다려.
“쩝..... 그럼 그렇게 해야지. 고마워.”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확인 안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됐으려나.”
본래는 저녁 6시로 예약을 잡아놓지만, 마지막 화는 아침 9시로 예약을 해놨기에 지금쯤이면 꽤 많은 독자들이 읽어 봤을 시간이었다.
내심 설레는 기분으로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야......”
안 본 사이에 더 입소문을 탔는지 조회 수가 더 껑충 뛰어있었다.
나는 오늘 올라간 마지막 화의 댓글 창을 열었고, 댓글은 실시간으로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첫 댓글은 욕이었다.
-Fuck-!!!!!!!!
진짜 욕이었다.
-Fuck! 이게 K-drama식 막장이라는 건가?
-젠장! 작가가 한국인이라서 K-drama식 운영을 한다고 들었을 때부터 뭔가 기분이 요상하더니만! 결국에 이렇게 끝내버리네?
-이거 안 본 눈 팔아주실 분. 아니, 기억하지 않은 뇌 팔아주실 분.
-하..... sibal!!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이제 행복해야지! 평화로워야지! 엄마하고 같이 오순도순 같이 살아야지!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데!
-칼리아..... 널 창조한 작가 새끼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벤자민. 넌 내가 기억하는 소설 속 주인공 중 가장 비참한 주인공일 거야. 제발 작가님아..... 이런 식으로 끝내지 말아줘.
-다른 건 다..... 후우. 그래 넘어가자고 치자고, 어차피 언젠가는 희망찬 미래를 살아갈 벤자민이 나올 테니까. 근데..... 작가 새끼야 이러는 건 아니지..... 2권 연재일 미정? 다른 소설에 밀려서 미정이라고? 이런 Dog baby......
작가와의 소통에서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K-드라마식 소설이라고 말했기에 독자들은 ‘막장’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확실히 K-컨텐츠가 인기가 있는 모양이네.’
본래 미국에선 드라마를 TV show라고 부르는데, 한국 드라마를 K-drama로 부르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의 컨텐츠가 영향력이 있는 듯싶었다.
그렇다고 욕까지 따라 할 줄이야.
-근데 작가의 말에 실화를 바탕으로 적었다는데?
-쩝..... 솔직히 말해서 벤자민 상황이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야. 매년 총기사고로 인해서 아이를 잃는 부모들도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드래곤 원 작가가 각색한 대상한테 행운이 있기를 빌어.
-내 사촌도 마약에 취한 운전자 차량에 아이가 치여서 죽었어. 뭐든 아이가 대상이 된 범죄를 일으키는 인간들은 다 죽여야 해. 테러, 총기사고, 마약 이것들은 전부 사라져야 할 미국 사회의 독이야.
내 예상보다도 에일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