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2차 인터뷰
에일리의 이야기는 내 예상보다도 현실에서 흔한 이야기였다.
에일리보다도 더욱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소설 속 주인공인 벤자민보다도 더 비참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많았다.
항상 미국 내 이슈 중 하나였다.
마약, 총기, 테러.
그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고,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미국 정부는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소중한 이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어떤 보상이 그들의 넋을 달래주겠는가.
벤자민의 이야기를 본 이들 중에는 비슷한 이유로 상처 입은 이들도 많았다.
-내가 5살이 되던 해에, 눈앞에서 오빠가 죽는 걸 봤어. 당시 LA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눈먼 총알에 맞았지..... 그 이후로 부모님들은 슬픔에 빠지셨어. 지금은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보니까 다시 생각나네.
-눈먼 총알이 무섭기는 해. 내 친구도 그것 때문에 죽었으니까.
-총기나 마약 사건은 아니지만, 내 딸은 소아암에 걸렸어요. 없는 형편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칼리아 이야기를 들으니 죽은 딸이 생각나네요. 미안해.....
댓글을 하나하나 읽은 나는 착잡한 얼굴로 컴퓨터 전원을 껐다.
“......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경험에 기반한 고통스러운 반응은 원하지 않았다.
“현실이 드라마나 영화보다 잔혹하다고 하더니..... 정말 현실이 더 비참하네.”
아직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래도 2권은..... 무리지.”
지금 당장 2권은 무리였다.
다만, 에일리의 인터뷰는 미리 해놓는 게 좋겠지.
“콜린 이야기는 저녁에 쓰고, 오늘은 에일리하고 대화해보자.”
나는 핸드폰에서 에일리의 연락처를 찾았다.
***
에일리는 내가 대화하자는 말에 쿨하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집?”
-응. 우리 집으로 와.
“그냥 카페 같은 곳은?”
-요즘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해져서 말이야. 거기에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며? 그럼 차라리 집에서 말해.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에일리는 집에 있으면 뭔가 보호받는 느낌이 나서 좋다고 했다.
결국 나는 차를 운전해 에일리의 집으로 향했고, 친구인 브레드와 헤리가 사는 옆 동네였기에 이동시간이 꽤 걸렸다.
‘그냥 집에 가면 조금 그렇지.’
그래도 처음 집에 가는 건데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라 생각하며, 근처 마트에 들러 소고기를 잔뜩 샀다.
아이 용품을 사갈까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영양가 있는 음식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어서 와!”
집에 가니 에일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차는 거기에 주차해도 돼. 안쪽으로 들어와.”
“응. 실례할게.”
에일리의 집은 여느 집과 똑같은 2층집으로, 크지도 그렇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는 에일리의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뉴스를 시청하고 계셨다.
우리가 거실로 들어오니 에일리의 아버지는 소파에서 일어나 나한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제임스라고 합니다.”
“에일리 아빠인 루카스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아. 이건 선물입니다. 질 좋은 소고기입니다. 아이를 임신하면 영양가가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들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기독교 집안이라 그런지 몰라도 루카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중했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포장된 소고기를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저희 집에는 무슨 일로......?”
“아빠. 얘가 작가인데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나를 모티브로 해서 글을 쓰고 있대.”
“글? 호오.....? 혹시 필명을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틀어놓았던 뉴스에서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드래곤 원 작가의 [블랙 & 월드]가 미션 컴퍼니와 영화 판권 계약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저기 나오네요.”
뉴스에 나오는 내 모습에 부끄러워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나보다 더욱 놀란 건 에일리와 루카스였다.
한참이나 굳어진 얼굴로 있던 에일리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왜?”
“네가 뉴스에 나온다?”
“응. 그러네.”
“......그러네? 가 아니잖아-!!!!!”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라 내 어깨가 들썩였다.
***
에일리는 나한테 받은 책이 있어서 내가 드래곤 원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거나 하진 않았다.
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거니와 태교하랴, 일하랴, 공부하랴 바삐 살았기 때문에 조사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한 내용을 참고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에일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네가 뉴스에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 제임스가 뉴스에..... 음.”
“뭐. 나도 조금 당황스럽긴 해. 내가 쓴 글이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긴..... 생각해보면 뜬금없는 건 아니네. 너 어릴 때부터 글 많이 썼잖아? 그 노력이 지금 빛을 본 거겠지.”
에일리는 놀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나한테 사인해준 책 이름이 [블랙 & 월드]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읽어볼 걸 그랬네.”
“안 읽어 봤어?”
“태교에 좋지 않은 책이라며? 그래서 안 읽어 봤지.”
“잘했어. 절대 읽지 마. 아. 그래도 [드래곤 마스터] 같은 경우는 네가 읽어도 괜찮을 거야. 순한 맛이거든.”
“에휴.”
에일리는 장난기 가득한 내 얼굴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루카스가 커피와 맹물을 우리가 앉아있는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거 마시세요. 드래곤 원 작가님.”
“그냥 편하게 제임스라고 불러주세요. 친구 아버지가 저를 이렇게 대해주시면 제가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제가 낮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서요. 그럼 두 사람 다 편안히 이야기 나누세요.”
“아빠는 어디 가게?”
“친구 집에 가 있을게. 이야기 끝나면 불러.”
루카스는 내가 뉴스에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나를 꽤나 딱딱하게 대했다.
조금 편하게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갑작스럽게 다가가는 것도 내 이기심임을 알기에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루카스가 사라지고 에일리는 맹물을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인터뷰를 하고 싶은 건데? 아니, 그보다 내 인터뷰를 듣고 쓴 책의 이름은 뭔데?”
“[리턴 패션 디자이너]인데..... 이것도 읽지 마. 이건 좀 매운맛이니까.”
내 책들 중 태교에 가장 안 좋은 책일 것이다.
“뭐가 알고 싶은 건데?”
“우선 음.....”
나는 말하기 전에 에일리의 눈치를 살폈다.
“뭔데?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말해. 네가 걱정할 정도로 내 정신상태는 나약하지 않으니까.”
“그럼..... 에일리. 혹시 기억상실이든 뭐든 아이가 갑자기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아?”
에일리는 물컵을 든 상태로 동작을 멈추었다.
“뭐랄까..... 너 참 뜬금없는 소리를 하네?”
“그러니까 머뭇거린 거야. 네가 혹시라도 충격 받을까 봐.”
“겨우 이런 걸로 충격받지는 않아. 네가 글을 쓰는 걸 알고 있고,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물어보는 건데 충격받을 리가 없잖아?”
에일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말한 질문에 답변은..... 솔직히 몰라.”
에일리는 부풀어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애가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솔직히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뮤튜브나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에일리의 인터뷰가 필요한 건 딱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각 잡힌 프로그램의 인터뷰가 아닌, 지인으로서 옆에서 편하게 얘기를 하고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조금 더 디테일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걸 생각 못 했네.’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아이가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능할지라도,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는 상태로 아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입이 되지 않는 상상은 감정의 디테일이 살지 않는데....’
나는 수첩을 꺼낸 상태로 한참을 고민했다.
“이 부분은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겠네.”
“뭘 어떻게 하게?”
“아쉽기는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들 인터뷰를 조금 참고해봐야지.”
루카스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다음 인터뷰를 생각했다.
“지금 기분은 어때? 월리한테 들어보니까 내년 1월이 분만예정일이라며?”
“응.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 그리고 불안감도 있고.”
“불안감?”
“아이를 낳을 때 엄청 아프다고 하잖아? 그래도 자연분만이 좋지, 만일 문제가 있어서 제왕절개를 한다든가, 아니면 아이가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든가..... 그런 걱정이 많지 뭐. 그렇다고 걱정이 쉽사리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현재 상태는 굉장히 불안하다는 거네?”
“그렇지.”
톡.... 톡....
나는 수첩에 볼펜을 콕콕 찍으며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아이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내 식대로 표현하고, 이 불안감을 벤자민한테 입혀볼까?’
아이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불안감과 아이가 태어나는 불안감이 상반되는 일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감정 하나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그 불안함을 글에 녹여보면 어떻게 될까?
“그 불안감에 대해서 자세히 좀 설명해줘.”
나는 수첩을 집어넣고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
벤자민은 계속해서 칼리아를 기억해내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칼리아의 얼굴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노이즈라도 낀 것처럼 칼리아의 얼굴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칼리아가 다니던 초등학교 이름이 뭐였지?’
아까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기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벤자민은 머리를 부여잡은 상태로 집으로 뛰어갔다.
‘벤자민? 벤자민 어디 가니? 얘! 벤자민!’
엄마가 부르고 있었지만 벤자민은 멈추지 않았다.
‘안 돼..... 안 돼에에에에에에!’
「제발..... 신이시여.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기억을 가져가지 마시옵소서.
신이시여.
과거로 돌아온 대가를 진정 받으시겠다면,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시옵소서.
그러니 부디 내 행복의 결정체를
내가 과거로 오고자 했던 이유를
내가 원했던 꿈을
가져가지 말아 주시옵소서.」
벤자민은 빌고 빌고 계속 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들은 사라져갔고 벤자민의 불안함은 증폭됐다.
집에 돌아온 벤자민은 서둘러 방 안으로 뛰어갔다.
‘제발..... 제발.....!’
사라져 가는 기억의 퍼즐들을 하나씩 모아 벤자민은 빈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의 모습을 부디..... 그릴 수 있게.
-사각..... 사각......
그 아이가 입었던 옷을, 그 아이가 좋아했던 장난감을,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을
점점 사라지는 기억들을 부여잡으며 벤자민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다.
눈물이 그림 위로 떨어져 잉크가 번졌지만 벤자민은 계속해서 펜을 움직였다.
‘제발..... 제발 내 몸아..... 내 기억아..... 멈추지 말아줘!’
하다못해 아이의 이름만이라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기를......
***
“......”
에일리는 짧게 써진 내 글을 읽은 뒤 말했다.
“내가 왜 남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