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블랙 드래곤의 진실
SC라스틱의 수장인 헤리는 빌 에이든 미디어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SC라스틱과 비교하면 빌 에이든 미디어는 드래곤 원이라는 작가를 얻지 못했다면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였을 것이다.
정정당당하고 작가들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좋았으나, 별들만큼이나 많은 작가들과 험난한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고작 그것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이 생존한 이유는 오직 드래곤 원 덕이라고 생각했다.
“선물을 뭐로 하면 좋을까.....”
스티븐한테 알아 오라고 했지만 가지고 온 리스트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판사와 작가는 서로 신뢰로 이어진 관계였다.
서로가 신뢰를 깨트리지 않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면, 그 노력은 다음 작품까지 이어진다.
그렇기에 헤리는 그 신뢰를 이어나가기 위해, 정성이 담긴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빌 에이든 미디어가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차를 선물하는 건 따라 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대표실 안에서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
-삐리리리!
비서가 전화를 연결했다.
“무슨 일인가?”
-스티븐 팀장과 루시아 사원이 찾아왔습니다.
“아. 들여보내게.”
자신이 불렀지만 잠시 생각에 빠지느라 그 두 명을 깜빡하고 있었다.
헤리가 전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스티븐과 루시아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둘이 소파에 앉자 헤리는 손수 차를 타서 가져왔다.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현재 드래곤 원 작가님 작품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예요.”
“어느 부분부터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양장본부터 말씀해 주세요.”
“우선 양장본 출판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리암 씨가 며칠 전에 도감 일러스트를 보내주어서 곧 준비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흐음. 어차피 만 권을 출판해도 작가님이 원하시는 일정에 해야 하기에 이 부분은 늦어도 상관없지요..... 하지만. [사막의 제국]은 다릅니다. 그렇지요?”
“네, 넵!”
루시아는 몇 번을 와도 적응되지 않는 대표실에 긴장한 듯 앉아있다가 헤리가 바라보자 당황한 듯 몸을 움찔 떨었다.
“[사막의 제국]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요?”
“수, 수정은 전부 완료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메디슨 변호사님과 전화해서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럼 이제 출판만 남긴 상황인가요?”
“네. 다만 공장이 현재 풀가동 중이라서요. [드래곤 마스터]도 아직 인기를 끌고 있고..... 공장을 하나 더 계약할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냥 바로 공장을 하나 더 계약해서 [사막의 제국]도 빠르게 출판을 시작하는 방향으로 하죠.”
“이, 이렇게 빨리요? 아직 [드래곤 마스터] 인기도 식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들어보니까 제임스 작가님이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추리 소설이니 저희 측에도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없더라도 상관없지요. 미션 컴퍼니가 [드래곤 마스터]와 판권계약을 맺었으니 어차피 이 인기는 한동안 계속 지속될 겁니다. 그러니 [사막의 제국]도 이 열기에 탑승시키는 게 좋을 듯합니다.”
“네에.....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헤리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스티븐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스티븐. 제임스 작가님한테 어떤 선물이 좋을지 정하셨나요?”
“.....죄송합니다.”
“역시..... 후우. 어렵군요.”
액세서리나 차량을 주려니 빌 에이든 미디어를 따라 하는 느낌이 날 것 같아서 싫었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선물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빌 에이든 미디어보다 더 비싸고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루시아 사원. 혹시 제임스 작가님이 어떤 걸 필요로 하시는지 아나요?”
갑자기 시선이 두 쌍의 눈동자가 자신한테 쏠리자 루시아는 어깨를 흠칫 떨며 헤리가 말한 선물의 의미를 생각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루시아는 조심스럽게 메디슨과 이야기했던 내용을 꺼냈다.
“그으..... 얼마 전에 메디슨 변호사님과 전화를 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변호사님과요?”
“네.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내용인데요. 뉴욕 쪽에 괜찮은 동네가 어딘지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구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제임스 작가님이 슬슬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동네가 시끄러워지는 것도 싫고 이사를 하는 편이 업무적으로 좋을 거라고 판단하셨나 봐요.”
그냥 서로 안부나 묻고 있던 찰나에 제임스가 뉴욕에 있는 spa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서 더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긴, 제임스 작가님이 사시는 곳이 평화롭긴 하지만 안전한 곳은 아니죠. 동네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하면 제임스 작가님과 부모님의 신변이 위험할 수도 있고.”
유명인 혹은 갑작스럽게 돈을 벌게 된 사람들의 집에 도둑이나 강도들이 침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명인들이 돈을 붓더라도 치안이 완벽한 장소에 사는 것이다.
“집이라...... 뉴욕에 사실 생각이라고 들으셨나요?”
“아, 아뇨. 뉴욕이나 LA 둘 중 한 곳을 고민 중이라고 들었어요. 두 곳 다 알아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LA에 일이 더 많다 보니.......”
“LA라.....”
헤리는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 좋겠군요.”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분 다 들어가 보세요.”
“네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스티븐과 루시아가 나가자 헤리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그렇게 돼서요. 대표님이 메디슨 변호사님께 전화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이 있는데 그곳에 머무시는 게 어떤가 여쭤보셨다고 해요. 원래 무상으로 쓰라고 하셨는데, 메디슨 변호사님이 작가님께서 그건 원치 않으실 것 같다고 해서 어느 정도 렌트비를 내는 거로 합의하셨고요!
“아......”
그러고 보니 메디슨 누나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시민권을 준비하는 중이라 정신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내용이 지금에서야 기억났다.
-본래는 스튜디오(원룸)를 렌탈해주시려고 했는데 글 쓰는 공간이 따로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1베드(방 하나, 거실, 주방, 화장실)로 잡아주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넵!
왠지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치고는 월세가 너무 싸다고 했다.
그것도 스튜디오가 아닌 1베드가 말이다.
물론 유틸리티(관리비)는 그대로 내야 하겠지만.
“그럼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요?”
-아. [사막의 제국]도 말씀드리려고요! 대표님이 양장본 발매일에 맞춰 출판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양장본을 가지지 못한 팬분들의 마음을 달래는 겸 해서요!
“좋네요.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혹시 [사막의 제국]도 양장본을 만드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쭤보셨어요.
“양장본이라.....”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사막의 제국] 양장본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보통 양장본이라고 하면 뭔가 역사나, 진중한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끌렸다.
하지만 [사막의 제국]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쓴 작품이다 보니 그런 분위기하고 조금 멀어지게 하고 싶었다.
“[사막의 제국] 양장본은 조금 나중에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예?
당연히 승낙할 줄 알았던 루시아는 당황하며 재차 물었다.
-양장본을 안 하시게요?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언젠가 하고 싶긴 한데..... 뭐랄까.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사막의 제국] 양장본은 조금 색다르고 천천히 진행했으면 해요.”
-천천히요....?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만들고 싶으신가요?
“음..... 영화화가 진행된다면 영화화 이후에 양장본을 생각해보고 싶네요. 양장본으로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이벤트로 할지.... 말이죠.”
-음..... 넵! 그럼 그렇게 대표님께 전달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2주 뒤로 양장본 사인회를 잡아놓을게요! 장소는 따로 원하시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없어요. SC라스틱 측에서 알아서 해주세요.”
-넵! 아. 그리고 이삿날에 이사하신 집으로 [사막의 제국]을 보내드릴게요. SNS에 올려서 홍보 좀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루시아하고 전화통화가 끝나고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뭘 해야 하지?”
***
LA에는 필요한 것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보니, 짐도 많지 않아 정리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새로운 글은 쓰지 않았다.
‘수정 먼저 하자.’
글을 쓰는 건 이사 간 뒤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드래곤 마스터 2부 : 블랙 드래곤의 진실]을 수정하기로 했다.
“쓰읍......”
컴퓨터에 앉아 [드래곤 마스터] 2부를 열어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에휴..... 이것도 닭대가리로 되어 있네.”
그 시절의 나는 어째서 주인공의 드래곤을 닭에 비유한 것인가.
아무리 내가 병아리를 키웠고, [드래곤 마스터]가 책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고는 하지만 개연성 따위는 전부 무시해 버리는 닭대가리 드래곤은 좋지 않았다.
“팡이의 행동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수정하는 데는 무리가 없긴 하지.”
쉬는 기간 동안 앞으로 잘 보지 못하게 될 팡이랑 계속 놀아줬기에, 디테일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연출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이 [블랙 드래곤의 진실] 부분이 너무 개판이란 말이지.”
[드래곤 마스터]에는 속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속성에 맞게 비늘에는 색이 존재했다.
주인공의 드래곤 하스 같은 경우 돌연변이다 보니, 검은색 비늘에 푸른색 비늘이 흐르는 ‘두 가지 색의 조합’이 특징이었다.
돌연변이다 보니 어미와 아비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색으로 표현했다.
기본 속성은 기본적으로 붉은색, 하늘색, 푸른색, 갈색으로 비늘 색을 표시했고,
희소 속성은 그보다 조금은 희귀한 남색, 하얀색 등으로, 진화 속성은 기존의 속성에서 조금 더 반짝이는 색으로 적어놨다.
“하스의 몸 전체가 일단은 검은색이다 보니 희귀한 편이지.”
1부에는 돌연변이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색이라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있었다.
2부에는 그런 개연성을 싹 다 무시하고, 이 세상에 검은색의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럼 그건 하스의 아빠가 아닐까 생각하며 탐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싹 다 수정해야겠네.”
본격적인 수정 전에 내용의 방향성을 정해야 했다.
“슬슬 라스트 보스에 관한 내용을 푸는 게 좋겠지?”
원래 [드래곤 마스터]에는 라스트 보스 같은 빌런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존재한다면 주인공의 드래곤을 무시하는 망나니 귀족 정도였다.
“우선 ‘드래곤의 색은 검은색일 수 없다’는 설정은 가져가자.”
돌연변이처럼 블랙이 섞이는 비늘이 있기는 하지만, 몸 전체가 검은색 비늘이 덮여있는 드래곤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그 전설에서 나오는 드래곤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내용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드래곤이 라스트 보스와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수정하는 게 좋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손가락을 풀었다.
-투두두둑!
오랜만의 스트레칭에 관절 부분이 살짝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써볼까?”
나는 키보드 위로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