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84화 (83/216)

84화. 블랙 드래곤의 진실 (2)

아레시아 대륙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었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내려져 오는 그런 이야깃거리가 아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교수들은 막 새내기가 된 드래곤의 주인들한테 그 역사를 가르쳤다.

‘블랙 드래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역사상 가장 최악이라 불린 사건을 가르치고 있었다.

‘돌연변이 드래곤 혹은 희소 속성을 가진 드래곤들이 검은색 비늘을 일부 가지고 있거나 혹은 검은색 비늘에 다른 색 비늘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존재합니다. 현재 저희 반에서도 몇 명 있고요.’

교수는 내 옆에서 자고 있는 하스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옮겼다.

‘비늘, 눈, 날개, 꼬리, 발톱까지 몸 전체가 칠흑 같은 색으로 뒤덮인 드래곤은 역사상 단 한 마리만 존재했습니다.’

‘한 마리요?’

‘네. 그 이름은 [월리 프레프드].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했던 드래곤이자, 최악의 드래곤이었습니다.’

***

“......미안했다 월리.”

진짜 별 이유는 없었다.

당시 이 글을 쓸 때가 월리가 나를 굉장히 귀찮게 하던 시기였다.

어릴 적이다 보니 월리는 나를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혔고, 이후 나는 월리를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글에 블랙 드래곤의 이름을 월리라고 지었다.

뭐. 이후엔 친해져서 상관없었다만, 친해진 이후부터 [드래곤 마스터]를 쓰는 것도 그만두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름은 그대로 가져가자.”

내가 조용히 있으면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테니까.

“음..... 블랙 드래곤을 찾으러 가는 걸 어떤 방식으로 할까?”

과거에 쓴 내용은 블랙 드래곤을 봤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주인공과 그 일행은 그 블랙 드래곤이 하스의 아빠인 줄 알고 소문의 근원지로 향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간다는 건 좀 진부하긴 하지.”

아무래도 내용을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신분제도를 이용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드래곤 마스터]에는 신분제도가 존재했다.

귀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 또한 죄를 지으면 평민들과 같은 죗값을 치른다.

쉽게 말해 드래곤한테 선택받는 혈통이 좋을 뿐, 그들도 똑같은 시민이라는 것이다.

‘대신 왕은 절대 권력이지.’

내용의 흐름에 따라 왕을 없애고 다른 직위를 넣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아직 적어놓지 않았다.

“주인공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망나니 귀족 녀석하고 내기를 하는 걸로 바꿔볼까?”

다만, 그러면 내용이 너무 단순해지지 않을까?

과거에 적어놨다고 스토리 설정을 굳이 가져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더 고민해보자.”

주인공이 어째서 블랙 드래곤을 찾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갑자기 소문이 들려왔다는 이유만으로 소심하던 주인공이 용감무쌍하게 블랙 드래곤을 찾으러 가는 건 굉장히 부실해 보였다.

“그래도 1부에는 언급되지 않는 라스트 보스의 등장을 2부에선 약간이라도 드러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 블랙 드래곤만큼 좋은 떡밥도 없었다.

“우선 블랙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를 더 추가하자.”

***

‘월리 프레프드라는 드래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연변이인지, 희소 속성인지 진화 속성인지까지도 말이죠. 다만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돌연변이입니다.’

교수의 말에 로얀이 손을 들었다.

‘어째서 돌연변이가 가장 가능성이 높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드래곤의 색은 기본적으로 붉은색, 하늘색, 푸른색, 갈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4대 속성 드래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희소 속성은 이 4대 속성과 더불어 무지개색에 속하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는 색을 띠고 있죠. 진화 속성을 가진 드래곤은 이 색을 가지고 비늘에서 광택 효과를 냅니다.’

교수는 칠판에 드래곤에 관한 정보를 적기 시작했다.`

‘돌연변이 드래곤들에겐 검은색 비늘이 많이 나타납니다. 세간에선 이를 [용의 합원색]이라고 표하죠. 쉽게 말해 드래곤이 가진 유전자가 모두 뒤섞여 비늘의 색이 검은색으로 되었다는 겁니다. 다만,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이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겨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다른 색이 또 나타납니다.’

그 말에 로얀은 곤히 자고 있는 하스의 몸을 쓰다듬었다.

검은색은 뒤섞인 유전자, 푸른색 비늘은 그 유전자들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 보니 그저 추측만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일 뿐이죠.’

교수의 말에 가장 중앙에 앉아있던 ‘엘리시아’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럼 블랙 드래곤을 발견하면 바로 사살해야 하는 건가요?’

평소 사사건건 로얀을 건드리던 엘리시아는 하스를 향해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소 엘리시아가 하스를 얼마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엘리시아 학도.’

‘네!’

‘어디서 시건방지게 학도 따위가 드래곤을 죽인다 살린다를 결정하려고 하는 겁니까?’

‘예, 예?’

‘우리 인간은 드래곤의 친구입니다. 자연에 사는 개체이든 돌연변이 개체이든 그들을 우리 수준에서 감히 비교해선 안 되며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드래곤의 생사를 고작 학생 나부랭이 따위가 결정한다는 말입니까?’

교수님은 정말 화가 나셨는지 엘리시아를 향해 소리쳤다.

‘엘리시아 학도는 드래곤과 친구가 될 자격이 없군요. 드래곤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아카데미 학생의 본분입니다.’

‘......네에.’

‘불만이 있으면 제 앞으로 나와서 말해보세요. 엘리시아 학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그런 개념 없는 말을 내뱉을 시에는 제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명심하세요.’

‘......예. 죄송합니다.’

교수는 엘리시아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 뒤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블랙 드래곤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 드래곤한테는 죄가 없습니다. 드래곤을 데리고 악독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죄입니다. 모두 명심하시길.’

‘예!’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친구 베일이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방금 엘리시아 모습 봤냐? 쟤 저러다 혼쭐날 줄 알았어.’

‘.......’

‘로얀? 왜 그래?’

‘베일.’

로얀은 아까 들었던 블랙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다시 곱씹어봤다.

‘블랙 드래곤은 돌연변이 드래곤 유전자가 그 드래곤의 몸에 완벽히 맞아야지만 나온다고 했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것도 그냥 추측이라고 교수님이 말했잖아.’

그 말에 로얀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나 예전에 블랙 드래곤을 본 적 있는 것 같아.’

‘......응?’

***

“독자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거의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은 신선한 반전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 갑자기?’라는 무리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주인공 로얀이 어째서 드래곤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하지만 왜 드래곤을 만나기만 하면 몸이 떨리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넣을 수 있기도 하지.”

그렇다고 이 내용이 최선인 건 아니었다.

늘 생각하지만, 작품에는 정답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

언제라도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으니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다.

“일단 자자.”

***

이사 가기 전날까지 [드래곤 마스터 2부]를 수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리 수정하고 수정해도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일단 주인공 로얀이 과거에 블랙 드래곤을 봤다는 이야기는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골머리를 썩이며 수정하다 보니, 새로운 결의 스토리로 구성할 순 있었다.

‘그래도 썩 마음에 들진 않는데......’

일단 수정한 내용을 저장한 다음 루시아한테 보냈다.

생각만 하다가는 오늘 이사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수정한 내용을 보내며 ‘일단 재검토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지만, 그래도 최종 수정은 내가 직접 해야 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오늘이 이사 날이라는 거다.

“되도록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올 수 있게 노력할게요.”

“한 달에 한 번 안 와도 되니까 가서 건강이나 제대로 챙기고 열심히 해.”

“네. 그렇게 할게요.”

대충 LA의 겨울 날씨에 맞는 옷들과 생필품 그리고 노트북 정도만 챙겼다.

자동차도 미리 보내놨기에 오늘 아니면 내일 저녁쯤이면 이사한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럼 저 갈게요.”

“그래. 팡이야, 네 형 간다 인사해.”

-냥!

팡이는 대충 팔을 휘저으며 진짜 사람이 인사하는 것 같이 인사를 했다.

날이 갈수록 요물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을 따라 하는 건지, 아무튼 우리 집 고양이는 참 똑똑한 것 같았다.

“여! 짐은 그게 끝이야?”

“응.”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오니 월리가 히죽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고맙다.”

차 뒷좌석에 캐리어를 싣고 앞좌석에 앉았다.

“이제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뭐가 심심해? 어차피 매일 만나서 놀았던 것도 아닌데.”

“하긴, 그것도 그런가? 그래도 친구 녀석이 떠나는데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네.”

“올 수 있으면 한 달에 한 번씩은 올 거야. 애초에 짐도 많이 안 가져가니까.”

“그냥 거기 있어. 이제 얼굴도 까발려졌는데 마을 시끄러워지면 안 좋으니까.”

“친구가 떠난다고 마음에 걸린다는 녀석이 하는 말이......”

“아무튼 캐서린이 슬퍼하더라.”

캐서린은 근 한 달 동안 다음에 올릴 내용을 나한테 먼저 검토받았다.

그 덕분인지 캐서린의 얼굴을 가득 채우던 다크서클이 연해지기 시작했고, 묘하게 생기있어 보였다.

매일같이 우리 집에 찾아와도 내가 도움을 주는 건 기껏해야 부실한 내용이나, 거슬리는 내용을 말해주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부담이 확실히 덜해지는지 캐서린은 여러 번 감사를 표했다.

“이제 스스로 해야겠지.”

“하긴, 그년 요즘 너무 나댔어. 집에서 먹고 퍼질러 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뭐. 요즘에는 살도 쪄가지고..... 에휴.”

“다이어트는 포기했대?”

“어차피 피곤해지면 자연스레 빠진다고 하더라.”

나랑 월리가 서로 섭섭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럼 가라. 다음에 집에 오면 맛있는 것 좀 사오고.”

“그때 되면 너 군대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냐?”

“그럼 군대로 면회 오든가.”

“아. 그건 싫어. 또 군대 가는 느낌일 것 같아. 네가 LA로 놀러와라. 너 올 때쯤엔 완벽한 LA시민이 돼서 내가 가이드해줄게.”

월리가 피식 웃으며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나는 월리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자. 가볼까?”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