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해외 진출 (2)
루시아는 어제 새벽에 온 [드래곤 마스터 2부 : 블랙 드래곤의 진실] 내용을 급하게 확인했다.
처음에는 받은 파일에 하나하나 틀린 게 없나 확인하는 간단한 작업일 뿐이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글을 탐독하고 있었다.
“루시아?”
“......”
“루시아? 밥 먹으러 안 가?”
“......”
“루시아? 내 말 안 들려?”
스티븐은 모니터에 들어갈 것 같은 루시아의 행동이 기괴해 보여서, 루시아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그제야 루시아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를 돌아봤다.
“티, 팀장님?”
“뭐 해? 아까부터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스티븐은 루시아가 읽고 있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드래곤 마스터 2부......? 블랙 드래곤의 진실?”
파일 제목을 읽은 스티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버, 벌써 드래곤 원 작가님이 2부를 수정하신 거야?”
“네. 그러신 것 같더라고요. 다만......”
“다만?”
“전 이렇게 재밌는데.....요. 작가님 마음엔 안 드시는 것 같아요.”
루시아는 파일과 함께 보내졌던 짧은 글을 스티븐한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일단 수정은 해놨지만, 완성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단 검토만 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즉, 작가로서는 확신이 있을 정도의 재미는 아니니 출판사가 볼 땐 어떤지 의견을 달라는 말과도 같았다.
“재밌어?”
“네! 무척 재밌어요! 전에 제가 읽었던 2부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그런데 별로라니......”
그 말에 루시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오..... 천재라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재밌는 글에도 아쉬움을 느끼다니요.”
“뭐.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니까 현재 드래곤 원 작가님의 팬덤이 그렇게 커진 거겠지. 한 달 전에 올라온 [리턴 패션 디자이너] 마지막 화 이후에 활동이 없으셔서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다시 활동을 시작하시려나 보네.”
“시민권 취득이랑 이사 준비 때문에 바쁘셨을 테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작가님은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그런 식으로 끝내놓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휴우..... 관련도 없는 우리 출판사 사이트까지 마비시켜버렸잖아.”
“헤헤......”
빌 에이든 미디어 사이트가 마비되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SC라스틱 사이트에까지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빌 에이든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드래곤 원 작가와 연락할 수 있는 출판사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SC라스틱 측에선 이 상황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대표님은 허허 웃으며 그냥 넘어가라고 하셨지만, 지금 그것 때문에 회사 보안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었다.
마카롱이라도 사줘야지.
“아무튼 밥은 안 먹어?”
“회사 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밥을 먹어요?”
스티븐은 아무 말 없이 시계를 가리켰다.
시간을 확인한 루시아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표정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좌절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시간이 빨리 가면 좋기는 한데, 해야 할 건 다 한 뒤에 시간이 빨리 가야 좋은 거지.”
정시퇴근은 물 건너갔음을 인지한 루시아는 좌절하며 스티븐을 따라 밥을 먹으러 갔다.
***
그 시각 LA 공항에 도착한 나는 공항을 돌아다니다 누나를 만났다.
누나는 정장이 아닌 비교적 편한 복장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휴가야?”
누나는 내가 들고 있는 캐리어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일까지 휴가야. 근데 너 짐은 그게 끝이야?”
“어차피 중요한 건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고, 필요한 건 근처 마트 가서 사면 되니까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더라고.”
“그래도 캐리어 하나는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 많이 가져오면 다시 이사 갈 때 귀찮아질 수도 있대.”
“누가?”
“인터넷에서.”
첫 독립이다 보니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조사해봤다.
“틀린 말은 아닌데...... 오히려 이사 와서 짐이 늘어도 그건 또 그거대로 골치 아플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떡하겠어. 이미 왔는데... 다시 집으로 갈 순 없잖아?”
“그래. 일단 집으로 갈까?”
“응.”
메디슨 누나가 가져온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누나의 차량은 한국 브랜드 차량이었지만, 산 지는 꽤 됐는지 여기저기가 낡아 있었다.
“누나는 차 안 사?”
“안 사. 이것도 중고로 산 거야.”
“차 한 대 사줄까?”
“나도 차 살 돈 있어. 요즘 네 덕분에 보너스도 많이 받았고, 근데 타던 차에 정이 들어서 그런지 바꾸기 쉽지 않더라고.”
“중고차에 무슨 정이야?”
“그래도 들더라. 시끄럽고 요즘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나 말해. 너 사인회에서는 SNS 소통 많이 하겠다고 하더니만, 요즘 한 달 동안 SNS 활동이 뜸하더라?”
“아..... 요즘 바빴으니까.”
그것도 있지만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후폭풍이 무서워서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있었다.
마지막 화를 올린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다음 화를 달라는 독자들의 원성 댓글을 보면 누구라도 SNS를 쉽게 확인할 생각은 못 할 것이다.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 사인회는 2주 정도 뒤에 할 생각이야. 웬만하면 LA에서 하려고.”
“잘 생각했어. 저번처럼 사람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차라리 지금처럼 추첨을 해서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엇보다 사인은 자주 하면 안 좋기도 하고.”
“사인을 자주 해주면 안 좋아?”
“어. 사인의 질이 떨어지니까.”
“질이 떨어진다니?”
“쉽게 생각하면 돼. 너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즈가 사인을 수천 만장 했었다면, 지금 그들의 사인이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수량이 많으면..... 비교적 저렴해 보이겠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사람들이 괜히 한정판, 희소성에 목을 매는 게 아니라고.”
“음..... 그래도 사인을 원하는 팬들을 무시하는 짓도 조금.....”
“해준다고 해도 몇 명만 수량을 딱 정해서 하도록 해.”
“생각해볼게.”
누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를 좋아하는 팬들을 무시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아, 제임스, 그리고 요 한 달 사이에 저작권 계약을 진행했어.”
“어디랑?”
“빌 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 두 곳 다.”
“두 곳 다? 왜?”
“해외 진출 때문이지. 저번에 들었잖아.”
“아......”
“빌 에이든 미디어는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 그래도 차근차근 진행해서 현재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브라질 등과 판권 계약을 마쳤어.”
“아시아 쪽은 아직이야?”
“아시아 쪽도 진행하고 있기는 한데, 번역가를 구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야. 다만, 한국, 중국, 일본 쪽은 금방 진행될 거야.”
“다행이네. SC라스틱 쪽은 뭐......”
“거긴 걱정할 게 없지.”
SC라스틱은 해외로 출판하는 것 이전에, 다른 나라의 책 판권을 맡고 출판한 경험도 많다 보니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빌 에이든 미디어는 일단 [사막의 전갈]만 진출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어. [블랙 & 월드]는 영화화한 후에 진행할지 아니면 [사막의 전갈] 인기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어.”
“잘했네. 무턱대고 뻗어 나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SC라스틱 측은?”
“이번에 [드래곤 마스터]가 미션 컴퍼니와 계약을 맺었잖아?”
지금으로부터 10일 전 나는 미션 컴퍼니와 [드래곤 마스터]의 판권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는 시민권을 취득하느라 바빴기에 누나한테 맡겨 계약을 진행했다.
“그 인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얼른 준비한다고 하더라고. SC라스틱 자회사가 있는 모든 나라에 출판 준비 중이야.”
“이야......”
누나는 운전을 하며 궁금했던 점을 나한테 말했다.
“근데 [드래곤 마스터] 판권 계약은 정말 나 혼자 해도 괜찮았던 거야? 노아 회장이 실사화 or 애니화에 대해서 궁금해하더라고.”
“이제 LA에 살게 됐으니까 그런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진행하자고 해.”
이번 한 달은 솔직히 시민권을 딴다는 핑계가 있어서 푹 쉬어버렸다.
작가가 되고 나서 쉰 적은 많았지만, 계속해서 몰려드는 작품 생각에 정신적 피로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특히, 취미로 시작했던 [리턴 패션 디자이너]마저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면서, 그 부담감에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휴식 기간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캐서린의 글을 품평해주는 게 꽤 휴식이 됐단 말이지.’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남을 평가하는 건 쉬워도 자신을 평가하는 건 어렵다]
캐서린도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크게 고마워했지만, 나 역시도 제 3자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글을 바라보며 부족한 점을 찾는 일이 나에게도 도움이 됐다.
캐서린의 글을 낱낱이 파헤쳐줄 때마다 그간의 스트레스가 몸에서 쭈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풀렸던 피로가 결국에는 [드래곤 마스터 2부] 수정에서 다시 쌓였지만 말이다.
“푹 쉬었으니 이제 다시 일을 진행해야지.”
“잘 생각했어. 이번에 미션 컴퍼니에 가면 배우들 오디션이다 뭐다 해서 또 바쁠 거야. 이번에도 같이 가줄게.”
“고마워.”
“네 덕분에 나도 보너스를 많이 받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기꺼이 해야지.”
누나의 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
지평선이 보이는 몬태나와 비교하면 빌딩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보면 그리 높은 편도 아니었다.
“어때?”
“확실히 사진으로 보던 것하고는 다르네.”
집은 굉장히 깔끔했다.
전에 있던 세입자가 집을 깔끔하게 쓴 것도 있겠지만, 헤리가 내가 들어온다고 가구부터 가전제품까지 집안 전체를 새로 인테리어했다고 들었다.
“집안 전체를 방음처리 해놨네?”
내가 여기서 락을 틀어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 정도로 방음이 튼실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잡음에 굉장히 예민하다며? 특히 신경 썼다고 하더라고.”
방바닥은 청소하기 편한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내 생활에 더욱 편리하라고 AI 텔레비전과 그와 연동되는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에어컨, 냉장고 등도 있었다.
“안마 의자도 있네?”
우리 집에도 내가 주문한 안마 의자가 있었다.
다만, 고모부네와 우리 집 두 개만 주문했다 보니 내가 쓰는 날보다는 팡이가 침대로 쓰는 날이 더 많았다.
팡이를 치우고 앉으면, 이 고양이 새끼가 비키라고 계속 다리를 깨물어서 이 안마 의자는 꼼짝없이 팡이 녀석의 차지였다.
그 아쉬움에 새로 이사하는 집에 하나 더 구매할까 고민했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이건 옵션이 아니라 헤리 대표가 선물해준 거야.”
“진짜 신경 많이 써주셨네.... 고맙다고 전해줘.”
“응. 그래서 마음에 들어?”
나는 쓰윽 방 전체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야, 방바닥이 따뜻하네?”
“보일러 설치하려고 바닥까지 다시 시공했대. 한국인들은 집에서 신발 신고 다니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맨발로 다닌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나 봐.”
“......대박이네.”
“그래서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헤리의 마음 씀씀이가 내 심장을 녹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