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웹소설 or 종이책
나는 방을 둘러보다가 거실 옆에 있는 베란다를 바라봤다.
베란다 밖으로는 거대한 빌딩이, 그리고 저 너머로는 낮은 건물들이 깔려 있었다.
“저긴.....”
빈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멕시코인 혹은 흑인들이 사는 공간으로, 이곳과는 다르게 저렴한 땅값을 가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상점가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사는 주거 구역도 있었다.
“저기는 치안이 여기보다 좋지 않으니까.”
“음......”
“그래도 총기사고 같은 건 안 일어나니까 안심해.”
‘내가 생각하는 건 걱정이 아닌데.’
이런 구역은 미국 내에 굉장히 많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경계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를 깨운 건 누나의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밥 먹었어?”
“......아니. 시켜 먹을까?”
“그냥 나가서 먹자.”
“그럴까? 내가 살게.”
이곳까지 데려다준 것도 고마웠기에 점심밥은 내가 사기로 했다.
***
나는 거리를 걸으며 이제는 ‘내 동네’가 되어버린 이곳을 유심히 구경했다.
핸드폰으로 길을 검색하면 금방 알게 될 거리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그냥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순두부찌개를 파는 곳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이사에 필요한 서류는 전부 신고해놨으니까 괜찮을 거야.”
첫 독립의 시작은 메디슨 누나의 도움이 9할 이상은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 시켜도 돼?”
“마음껏 시켜. 육전도 시키고.”
“아싸!”
나도 오랜만에 매콤한 순두부찌개를 먹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누나는 밥을 먹으며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활동 재개의 시작으로 집 사진을 SNS에 올리라고?”
“집 사진하고 시민권 인증 서류하고 같이 올려. 그러면 네가 지금까지 쉬었던 거에 대한 이유가 될 테니까.”
“집 내부만 올리면 괜찮겠지? 괜히 걱정돼서.”
“여긴 치안이 좋은 곳이니까 괜찮아. 시큐리티도 1층에 몇 명씩이나 있으니까. 그냥 베란다 커튼치고 일부분만 찍어서 올려.”
메디슨 누나는 한 달 동안 쉰 것에 대한 독자들의 원성을 잠재울 방법을 알려주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나는 고민하고 있던 것을 누나한테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추리 소설을 적을까 하는데...... 어떤 식으로 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응. 종이책으로 출판할지 아니면 웹소설로 적을지 고민이네.”
“둘이 달라?”
“조금 달라. 종이책은 한 권 분량을 적는 거고, 웹소설은 한 화씩 적는 거다 보니까 한 화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해.”
“음..... 솔직히 난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동그랑땡을 소스에 톡톡 찍어 입으로 가져가던 누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이번엔 어디랑 계약할 건데?”
“글쎄? 솔직히 SC라스틱하고 계약하기에는 조금 잔인한 부분이 있지?”
“잔인하게 쓸 거야?”
“어. 엄청. 잔인. 하게. 쓸. 거야.”
“예를 들면?”
“음..... 약간 스포가 될 수 있는데.”
“스포는 무슨. 어차피 난 네 글에 흥미도 없고, 여기 있는 사람들도 널 모를걸.”
“하긴.”
참고로 난 내 얼굴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리 얼굴을 가리고 다니진 않았다.
더 자세히 말하면 집 밖으로 자주 나가질 않았고, 지금도 그저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정도였다.
아마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얼굴 구분이 어렵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정말 [나인 드래곤]에까지 가입할 정도의 찐덕후들이 아니라면 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우리라.
“음..... 우선 살인이 일어난 장소를 조금 잔혹하게 적어보게.”
“어떻게?”
“그 아기 태어나는 곳을 분만실이라고 하나?”
“어. 분만실.”
“거기에 목을 매단 30명의 부모들이 발견된 거야.”
그 말에 누나는 순두부찌개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멈추었다.
“......뭐?”
“분만실에 30명의 부모들이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부모들의 발밑에는 신생아실에 있던 아기들이 울고 있는 거지.”
“자, 잠깐만......”
내 말을 들은 누나는 새파래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계속 말해봐.”
“그 광경을 본 목격자는 경찰에 신고했고, FBI 아니면 사설탐정에 속하는 주인공이 그 이유를 밝혀내는 거지.”
아직 주인공의 직업을 경찰로 할지 탐정으로 할지 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뭔데?”
“살인마가 부모들과 그 부모의 신생아를 납치해서 분만실에 데려다 놓은 거야. 거기서 선택권을 주는 거지.”
“......”
“부모들의 목에 줄을 매달아 놓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너희가 살면 아이가 죽고, 아이가 살려면 너희가 죽어야 한다’라고 말이야.”
이 부분은 상황묘사에 디테일을 추가해서 적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상황에서 목을 매달았는지 적어야 아이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에서 저울질할 것이 아닌가.
예컨대, 첫 부모는 살인마가 죽였지만, 목을 매달아 아이를 선택해 자살한 것처럼 꾸미고, 그다음 부모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만 말해.”
“신선할 것 같지 않아?”
“그냥 역겨워. 다른 때 들었다면 모를까 지금 밥 먹고 있는데 들으니까 토할 것 같아.”
“..... 그런가?”
“내용이 재밌는 건 둘째 치고, 너무 잔인해..... 항상 그런 것만 생각하고 다니는 거니?”
“그건 아니고. 추리 소설은 추리 소설답게 생각해야지. 주제도 그런 거고.”
“주제?”
“제목하고 주제를 똑같이 적을까 해.”
오래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요즘 머리가 잘 굴러갔다.
“제목은 뭐로 하게?”
“[일곱 개의 죄악] 시리즈 [질투].”
“[일곱 개의 죄악]? 그럼 총 7권을 적을 거라는 거야?”
“응. 범죄자의 특성에 따라 죄악의 특성을 뚜렷하게 표현해보려고.”
“그럼 결정 났네.”
“뭐가?”
“종이책으로 해.”
누나는 다시 순두부찌개를 향해 숟가락을 뻗었다.
“네가 말한 스토리 들어보니까 한 화씩 보면 답답해서 내가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아. 그리고 한두 권도 아니고 일곱 개 시리즈로 갈 거라며? 그러면 종이책이 더 좋지 않을까?”
“흐음.”
웹소설만의 매력도 있기 때문에 웹소설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와는 반대로 생각해야 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본래 취미로 적을까 하다가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 작품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 장점은 다른 것을 집필하면서 같이 써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책으로 출판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른 것들과 함께 2권 집필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추리 소설을 웹소설로 하면 어떻게 될까?
‘조사만 하다 하루가 끝날 것 같단 말이지.’
패션에 대한 공부는 에일리한테 물어보면 되지만, 내 지인 중에선 경찰이나 FBI로 활동하는 녀석들이 없다 보니 대부분은 조사에 의해 작품의 퀄리티가 정해질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 화씩 연재해야 하는 경우, 조사한 부분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연재하는 도중 계속 수정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종이책이 좋긴 하겠네.”
무엇보다 누나의 말대로 추리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완뽕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짓 중 하나가 빌린 추리 소설에서 사건의 범인 부분을 오려내는 짓인 만큼, 추리 소설은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그 재미가 증폭되는 책이었다.
웹소설에서 추리 소설이 가장 인기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계속 알려줄 듯 말 듯 감질나게 하다가 서서히 증거를 찾으며 범인의 실마리를 잡았을 때의 그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추리 소설은 초반에는 고구마라고 느낄 수 있는데, 웹소설 초반 부분에선 그런 식으로는 독자들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다 보니 확실히, ‘한 권을 다 읽으면 범인을 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종이책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종이책으로 해봐야겠네.”
“그럼 빌 에이든 미디어와 계약하게?”
“그럴 가능성이 좀 높지. 아동문학을 맡는 SC라스틱이 이런 범죄 추리 소설을 내면... 잘 어울리지도 않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집까지 싼값에 렌탈해 줬는데 너무 외면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지.”
누나 말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소설은 수위를 조절해서는 안 됐다.
내 작품 중 가장 날것 그대로의 내용을 포함할 테니까.
“아동 문학이라......”
이 부분도 생각해봐야 하나?
***
누나와 헤어지고 나는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허전하네.”
갑자기 집에 나 혼자만 있으려니 뭔가 공허했다.
“애완동물이라도 한 마리 키워야 하나?”
아직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외로움을 느끼다니.
AI와 대화를 해볼까 했지만 그건 진짜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소파에 앉았다.
“아니, 섣불리 키우지 말자.”
나 혼자 동물을 케어할 자신은 없었다.
팡이도 부모님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입양을 할 수 있던 거였다.
그렇다 해도 반려 친구 한 명쯤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동물이 포유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요즘 트렌드인 파충류나 어류도 있는데, 굳이 반려동물로 개와 고양이를 키워야 할까?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물고기는 키우고 싶었는데......”
수초들 사이로 작은 물고기, 달팽이, 새우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한번 키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집엔 커다란 어항을 놓을 곳도 없었고, 무엇보다 관리할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군대에 가기 전이라 여기저기 쏘다니고 싶은 시기라 금방 그 마음을 접었었고.
“이건 나중에 신중히 생각하고 일단 SNS에 게시글부터 올리자.”
나는 집안의 불을 다 켠 다음, 커튼으로 베란다를 가린 뒤, 거실 탁자에 시민권 서류를 놓고 거실의 일부분을 사진으로 담았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여러분! 드디어 제가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번 한 달 동안은 시민권 취득과 이사로 인해 바빴던 터라 SNS 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이제는 다시 종종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SNS에 업로드가 완료된 게시글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랫동안 활동을 안 했는데 오늘만 TMI 좀 해볼까.”
컴퓨터 파일에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라고 타이핑한 다음, 그 부분을 캡처해 SNS에 올렸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SNS를 하지 않던 시기에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미션 컴퍼니와 [드래곤 마스터] 판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실사화 or 애니화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습니다만 실사화가 우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대하시던 추리 소설의 윤곽이 잡히고 있습니다. 웹소설이 아닌 종이책으로 출판할까 생각 중이며 사진에 적혀 있는 대로 제목은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입니다.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게시글을 올린 지 몇 초 되지 않아 댓글들이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기 시작했다.
“댓글 확인은 나중에 하고..... 컴퓨터를 켠 김에 글이나 좀 써볼까?”
이사한 집에서 처음으로 쓰는 글이었다.
원래 식당이 신장개업하면 제사를 지낸다는데, 나는 나의 새로운 집에 첫 작품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우드드득!
손가락을 푼 나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이라 적힌 빈 문서에 조금씩 글자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