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87화 (86/216)

87화. 일곱 개의 죄악

우선 주인공의 직업을 결정해야 했다.

계속해서 생각은 하고 있지만 경찰과 탐정. 각 직업 당 장단점이 확실하기에 명확하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우선 FBI 소속 뛰어난 수사관이라면, 정부에서 밀어주는 형식으로 구성할 수 있기에 사건의 수사가 수월해진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거기에 각종 설비를 활용하여 증거 등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믿어주는 동료들이 많기에 인력을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수사관으로 직업을 정하면 현실고증에서 부실함이 생기겠지. 난 FBI나 CIA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어차피 각 기관에 따라 조사는 필수였기에 상관없었지만, 단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 쪽으로 직업을 정하면 조현병에 걸린 주인공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도 없어.”

말했듯이 이 소설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할 것이다.

범인을 찾기 위해서라면 윤리적, 도덕적 사고를 가진 주인공의 모습도 쉽게 무너트릴 것이다.

“역시 탐정으로 해야 하나?”

어딘가 진중한 분위기를 가진 이 바닥에서 유명한 탐정.

하지만 조현병이라는 비밀이 있는 주인공.

경찰과 협력하여 범인을 찾아나선다.

예로부터 가장 꿀잼인 장르는 다크히어로 vs 빌런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저지르기 때문이다.

“써볼까?”

***

경찰 당국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서든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FBI 국장 아론은 경찰 쪽에서 넘겨준 사건 서류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이걸 왜 우리 쪽으로 넘긴 거야? 그냥 집단 자살 아니야?’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합니다.’

‘이상하다니?’

비서는 가지고 왔던 서류 한 장을 아론한테 내밀었다.

‘......자살한 시체들 밑으로 신생아가 있었다고?’

‘네. DNA 분석을 해본 결과 신생아 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신생아의 부모들이라고 합니다.’

‘그럼 여기에 적힌 30명 전부가......’

‘그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라고 합니다.’

‘허어......’

아론은 스트레스 때문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긁으며 서류를 검토했다.

서류에는 시신들의 사진이 있었지만, 알 수 있는 건 단지 그뿐이었다.

‘지문이나 CCTV는 확인해봤어?’

‘범인이라고 유추 가능한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고, CCTV도 확인해봤는데 10분 정도 에러가 났다고 하네요.’

‘에러? 10분이나 에러가 난 거면 그쪽 보안업체에서 나섰을 거 아니야?’

‘네. CCTV 에러가 나자마자 보안업체는 곧바로 출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CCTV를 수리하고 확인해보니...... 갑자기 목을 맨 사람들이 화면에 나타났다고 하네요.’

‘잠깐만...... 그럼, 10분 훨씬 전에 목을 맸다는 거야?’

목을 매달자마자 사람이 죽는 건 아니다.

목을 매달면 뇌로 가는 공기가 차단되어 죽지 않고 기껏해야 기절하는 정도였고. 죽으려면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럼 교수형이라도 했다는 거야?’

교수형의 경우 바닥이 훅 꺼지면서 목뼈가 부서져 단번에 죽을 수 있기에 5분 훨씬 내로 죽을 수 있었다.

다만.

‘어떻게 한 건데?’

사진으로 보면 작은 분만실에 사람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30명의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혹시 그 죽은 사람들끼리 연관성이 있나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학교, 고향, 직장 전부 다른 남남입니다.’

‘종교는?’

‘기독교인 사람이 13명, 그 외에는 전무 무교입니다.’

가끔 사이비종교에서 집단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만일 종교였다면 사건이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에는 이 사건을 은폐하고 조용히 조사하라고 합니다.’

‘하아......’

모방 범죄가 이슈가 되면 오히려 범인을 유추하는 게 힘들 수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자식한테 연락해.’

‘그 자식? 또 콜린 탐정한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뒤끝 없이 깨끗하니까. 거기에 능력도 좋고, 여기에 집중하다가 다른 사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긴 하지만......’

‘됐어. 차라리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이런 사건은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아. 무려 30명 집단 자살이야. 바로 그 자식한테 연락해서 해결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음......”

내용을 적긴 했지만, 솔직히 이 내용이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사건 현장에 콜린 탐정이 나타났다고 적을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개연성이 없네. 차라리 이렇게 적고 수정작업을 반복해서 상황 연출을 높이는 방향으로 하자.’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크! 얼른 자자!”

나는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종료한 다음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아. 새 이불 냄새.....’

뽀송뽀송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

-철컥!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열쇠를 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자고 있냐!”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로 실눈을 뜨고 보니 메디슨 누나가 있었다.

“으윽...... 어제 새벽까지 글 썼단 말이야..... 조금만 더 자게 해줘......”

“얼른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후아암......”

내가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이불 안으로 더 파고들려고 하자 메디슨은 제임스가 베고 누운 베개를 빼앗았다.

“으에..... 갑자기 왜 그래.....”

“얼른 일어나! 선물 왔어!”

“.....선물?”

두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소리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데? 어딨어?”

“거실에 있어.”

헐레벌떡 거실로 나가보니 여러 개의 스티로폼 상자가 보였다.

“이거 다 식재료야?”

“그래. 이사 선물로 SC라스틱하고 빌 에이든 미디어가 보냈더라. 식재료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하고, 와인도 몇 개 왔어.”

“이야.....”

나는 서둘러 택배 상자를 뜯으려 하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왜 안 뜯어?”

“SNS에 고맙다고 올려야지!”

일단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다음에서야 택배 상자를 뜯었다.

“누나 좀 도와줘.”

“천천히 해. 어차피 시간 많아.”

그렇게 보내온 음식들을 텅 빈 냉장고에 저장하고, 생필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상자만 남아 있었다.

“이건..... 상자가 좀 작네?”

다른 것들과 달리 상자의 사이즈가 작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뽁뽁이들에 둘러싸인 갈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책?”

메디슨은 궁금증 어린 표정으로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봤다.

“아. 이거..... 깜빡하고 있었네.”

“이게 뭔데?”

“[사막의 제국] 출판용 책인데. 홍보해달라고 하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 배송이 된 듯싶었다.

“깔끔하게 나왔네. 표지 일러스트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갈색 표지의 책에 메디슨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네가 말한 아이들이 읽기 좋게 만들었다는 그 책이야?”

“응. 읽어볼래?”

“아니 됐어.”

내 사촌들은 왜 책을 읽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걸까?

루이나 누나는 조금 관심이 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이사벨 빼고는 전부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찰칵!

나는 [사막의 제국]도 사진을 찍었다.

“밥 먹으러 가자. 정리하느라 체력 쏟아서 허기지네.”

“어제는 내가 샀으니까 이번에는 누나가.....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살 테니까.”

이삿짐을 옮겨준 친구한테는 하다못해 차량 기름이라도 만땅으로 채우라는 말이 있다.

가져온 짐을 정리해 줬는데 음식 정도는 내가 당연히 사야지.

“SNS에만 올리고 나가자.”

컴퓨터를 켜고 SNS에 게시글을 올린 다음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

제임스는 어제 그리고 오늘까지 총 4개의 게시물을 올렸다.

일주일에 하나도 올리지 않던 그 제임스가 하룻밤 사이에 4개의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은 즉, 이제는 정말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는 거라고 팬들은 생각했다.

-[사막의 제국]..... 이게 소문만 무성하던 그건가?

ㄴ소문?

ㄴ응. 어린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준비 중에 있다고 브루클린 페스티벌에서 그랬잖아.

ㄴ아. 그게 그건가? 근데 이건 무슨 내용이래?

ㄴ나야 모르지.

-표지 일러스트가 고급지면서도 예쁘네? 몽구스? 아니 미어캣인가?

-아이들이 읽기 편한 소설이라...... [드래곤 마스터]도 아이들이 읽기 편한 소설인데 그보다 더 편한 소설이면 아동용 소설인가?

-재밌겠는데..... 젠장! 그나저나 왜 아무도 제임스 작가가 컴백한 걸 말하지 않는 거지?

ㄴ맞아!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 팬들과 이제부터라도 소통하겠다고 하면서 생까고 있었잖아!

ㄴ딱히 상관없지 않나?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시민권 따느라 바빴다는데 우리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자.

ㄴfuck!

ㄴ그건 그렇긴 한데..... 뭐. 새로운 신작도 준비 중이라 바쁘다는 건 그렇다 쳐! 그래도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그딴 식으로 완결 내놓고 잠수타는 건 아니지 않아?

-빌 에이든 미디어하고 SC라스틱을 괴롭힌 보람이 있네. 괴롭히니까 다음 차기작을 준비하는 것 봐봐

ㄴ다음 차기작보다는 지금 쓰고 있는 소설들에 집중해 줬으면......

댓글들 대부분은 일단 휴식기를 가진 제임스 작가를 용서해주는 한편, 신간보다는 지금 쓰고 있는 소설들의 다음 권을 원하는 눈치였다.

메디슨은 그런 댓글들을 읽으며 입안으로 햄버거를 집어넣고 있던 제임스한테 말했다.

“그렇다는데?”

“우물우물.....”

“삼키고 말해.”

“꿀꺽.”

햄버거를 삼킨 나는 메디슨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긴, 연재할 게 너무 많긴 하지?”

“판을 너무 키워놓은 거 아니야? 너 머릿속은 괜찮아? 보통 작가들은 여러 개 쓰면 머리 아프다고 하던데.”

“난 이 방식이 맞는 것 같아. 한 작품만 생각하면 더 생각이 안 나더라고. 다른 작품을 생각하면 머리가 한 번 리프레쉬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한 권 끝내고 다음 권을 쓰는 식으로 하는 거니까 상관은 없어. 그래도 판이 좀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그대로 계속 진행할 거야?”

“응. 글 쓰는 도중에 연중한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써나가야지. 어차피 집도 옮겼으니까 당분간은 계속 글만 쓸 거고.”

나는 감자튀김을 밀크쉐이크에 찍었다.

‘맛있네.’

누나는 그런 내 모습에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또 잠 안 자고 글만 쓰게?”

“그럼 안 되지..... 적절하게 운동도 하면서 쓸 거야. 보니까 빌딩 안에 운동 시설도 있더만? 몸 관리도 하면서 일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알아서 하겠다만은.....”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누나의 얼굴에는 아직도 걱정이 서려 있었다.

“가끔 네 집으로 찾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아니 안 와도 된다니까? 누나도 피곤할 텐데 안 와도 돼.”

“쓰읍! 네 꼴을 아는데 내가 안 가겠다고 하겠어? 시끄럽고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리고 이건 삼촌 부탁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

내 프라이버시가 날아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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