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88화 (87/216)

88화. 응어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베란다 밖을 바라봤다.

“......외로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독립할 성격이 아닌 것 같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만끽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 허전하고 공허했다.

‘이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텔레비전을 트는 거구나.’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으니 점점 더 외로워지던 그때였다.

-띠리리리리리!

갑자기 정적을 깨는 벨소리에 서둘러 전화기를 확인했다.

“루시아? 아아.....”

대충 뭣 때문에 전화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반가움을 애써 숨기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루시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사는 무사히 하셨나요?

“네. 대표님한테 감동받았다고 전해주세요.”

-헤헤. 대표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아무튼, 오늘은 어쩐 일로 전화 주셨나요?”

-아. 저번에 보내주신 [드래곤 마스터 2부] 읽어봤거든요.

“아. 네.”

나는 누워있던 자세에서 일어나 자리에 정중하게 앉았다.

-저희 측에서는 너무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작가님께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음......”

루시아의 말대로다.

분명 재밌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완성을 시켜놓고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희 측에서 회의한 결과 이 글은 일단 작가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계속 기다리게만 해서 죄송하네요.”

-아뇨아뇨. 작가님이 만족하는 글을 쓸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저희의 역할인걸요?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네요.”

-아. 그래도 저희 측에서 정리한 의견이라도 전달해 드릴까요?

“네!”

그걸 원했다.

분명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글의 부족한 점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음. 우선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은데요. 드래곤들의 디테일이 너무 단순하다는 거예요.

“단순하다고요?”

드래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팡이의 움직임을 내가 얼마나 연구했던가?

의아해하는 내 귓가로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말한 건 하스가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의 움직임이에요. 도감까지 만들었는데 너무 표현 방식이 단순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스의 디테일만 높다 보니 다른 드래곤들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드래곤들마다 참고로 한 동물들이 다른데 전부 고양이 성격에 맞춘 게 문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과거에 블랙 드래곤을 만났다는 설정은 좋은데요. 교수한테 블랙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찾으러 가는 전개까지가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졌어요.

‘역시 그런가?’

가장 고민했던 문제였다.

어떤 식으로든 블랙 드래곤을 찾으러 가는 명분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리 진행하고 저리 진행해봐도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적기는 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뒀던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라스트 보스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풀어주시는 게 어떠실까요? 1부에는 아예 라스트 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럼 2부에서라도 많이 풀어주셔야 내용 진행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1부는 드래곤에게 선택받고, 드래곤의 정보를 하나씩 알아가며 교감하는 내용이었다면, 2부부터는 라스트 보스를 잡기 위한 진행으로 방향을 확실히 정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러 방향으로 수정하면서 조금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았다.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이 정도예요. 도움이 되셨을까요?

“네. 충분히요.”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에요!

물론 출판사의 말대로 내용을 수정한다고 해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게 뻔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작가님 말씀대로 2주 뒤에 LA 서점에서 사인회 일정을 잡을 예정인데요! 그래서 말인데요.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혹시 이제부터라도 Live 방송에서 얼굴을 보여주시는 게 어떤가요? 어제부터 SNS 활동도 다시 시작하셨고, 거기에 팬분들도 작가님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음..... 그건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넵!

루시아와 전화통화를 끝낸 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해야 할 건 정해졌네.’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도 적어야 하지만 일단 주어진 [드래곤 마스터 2부]를 먼저 해결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럼 지금 해야 할 건 하나인가.’

잠시 손가락을 까딱인 나는 뮤튜브로 들어갔다.

“동물들을 관찰해야지.”

다른 드래곤의 디테일이 더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드래곤만큼 디테일하다면 오히려 하스의 분위기가 죽을 수 있었다.

그러니 뮤튜브 영상만으로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건 충분했다.

“사자나 호랑이나..... 그냥 덩치만 큰 고양이네.”

태생적으로 게으른 드래곤은 하마나 악어의 움직임을, 높은 창공을 날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드래곤한테는 맹금류의 움직임을.

약간은 멍청한 생김새를 가진 드래곤은 닭, 크기가 작은 드래곤은 양서류의 움직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동물들의 영상을 보며 아까 루시아가 했던 말을 곱씹어봤다.

‘얼굴을 보여주는 Live 방송이라......’

솔직히 말해서 이제 상관없긴 했다.

사인회와 뉴스로 이미 얼굴은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말이다.

집안도 적적한데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상관없겠지.

그렇게 멍하니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리리리!

영상이 사라지며 이번엔 핸드폰에 에밀라의 이름이 떠올랐다.

“네. 에밀라. 오래간만이네요.”

-넵! 작가님! 이사는 무사히 끝내셨나요?

아까 전 루시아와 똑같은 말에 나는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사히 끝났어요.”

-집들이는 하실 건가요?

“집들이..... 하하. 글쎄요? 해도 상관은 없는데, 과연 오실 분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가실걸요? 블루스타게이트 관계자분들만 해도 몇 명인데요?

“집이 좁아서...... 이건 나중에 고민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어쩐 일로 전화 주셨나요?”

-아. 우선 [블랙 & 월드] 미팅 건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배우들 오디션도 확인하고, 감독님들과 미팅도 하고, 각색된 시나리오도 확인하고.

“언제인가요?”

-다음 주 월요일이에요! 시간 되시면 한번 보러 오세요!

‘다음 주..... 인가.’

어차피 할 게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누나한테 연락하면 되겠네.

“그게 전부인가요?”

-아뇨. [리턴 패션 디자이너] 출판에 관해서도 연락드렸어요. 아마 오늘 혹은 내일 중으로 책 배달이 갈 거예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책 출판을 시작할 예정이고..... 준비된 권 수는 30만 권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이면 미팅 날짜와 똑같네요. 하하..... 그나저나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이미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서 읽은 사람들이 많아서 충분할 수도 있어요.

“하긴 그렇죠.”

지금은 유료화를 시작하여 사람들이 무료로 볼 수 있는 건 딱 벤자민이 죽는 시점이었다.

과거로 회귀하기 직전인 상황까지만 무료로 해야 독자들의 유입을 더 끌 수 있다고 했다.

이미 1권이 완결된 시점에서 유료화를 진행했기에 솔직히 더 이상 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웬걸, 한 번 봤던 사람들이 다시 보는 경우도 있었고, 뒤늦게 내 소설에 빠져 인터넷 소설에까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아. 그리고 대표님이 이번 소설도 양장본......

“아뇨. 다른 건 몰라도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양장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역시 그렇죠? 그럼 [리턴 패션 디자이너] 이벤트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게요.

양장본이라고 하면 약간 고급스러우면서도, 판타지스러운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블랙 & 월드]는 몬스터의 가죽, [드래곤 마스터]는 드래곤의 가죽 같은 느낌으로 제작한다는 약속하에 양장본을 허락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사막의 제국]은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나긴 하지만, 아이들이 읽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보니 고급스러운 양장본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웅장한 판타지 요소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비극적인 내용이 많다 보니 양장본은 어울리지 않았다.

-실은 양장본도 양장본이지만 회의에서 이런 말도 나왔거든요.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서 벤자민이 디자인한 옷을 이벤트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요.

“오? 그건 재밌겠는데요?”

-그렇죠? 작가님이 허락만 하시면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 볼까 했거든요!

“음...... 디자이너라.....”

-혹시 원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건 아닌데.... 일단, 이 부분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벤자민의 모티브가 된 사람이 패션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죠? 그럼 그분한테 의뢰를 맡기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뢰를 맡길 마음은 없어요. 다만, 소설의 숨은 조력자이니 누구보다도 먼저 제시해보고는 싶네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이 출산예정일이 내년 1월이라..... 아무래도 이벤트를 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 맡겨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긴 하네요. 1권에서 나온 아동용 옷이라도 만들어볼까 했는데 역시 더 진행이 되고 벤자민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장면에서 나오는 옷이 더 임팩트가 있긴 할 것 같아요.

“이벤트도 너무 많이 하면 소장 가치가 없어지니까요.”

전화가 끊기고 다시 동물 영상이 재생되었지만, 그래도 대화의 상대가 없어지니 씁쓸함은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몬태나에 살 땐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글만 써도 이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는데.’

씁쓸함도 씁쓸함이지만, 독립을 했음에도 글이 몬태나에서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게 문제였다.

나는 결국 영상을 껐다.

“조금 돌아다녀 볼까?”

어차피 집에만 있으면 고독하니 바깥 공기나 마시고 들어오는 게 낫겠지.

***

외로움 때문에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아무도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길을 지나가다 산책을 하고 있는 개들을 보면 그 견주들이 조금 부럽기는 했다.

“에이 혼자 사는데 무슨 개야.”

그래도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물고기라도 키울까?”

며칠 혼자 있어도 잘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어떤 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진중한 분위기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풍기는 건물 앞에서 문득 발걸음이 멈추었다.

“보기 드문 서점이네...... 자료 조사도 할 겸 한번 들러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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