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89화 (88/216)

89화. 서점

제임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들어온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라 불리는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서점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와 더불어, 오래된 종이에서나 느껴질 법한 쿰쿰한 곰팡이 냄새도 느껴졌다.

‘중고책도 파는 건가?’

미국은 책이 비싸다 보니 중고책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다만, 중고책인 만큼 멀쩡한지 잘 확인해야 했고, 특히 마지막 페이지는 잘 살펴봐야 했다.

이 세상에 미친놈은 많다고, 마지막 페이지를 찢어놓는 변태 같은 녀석들이 있었다.

나는 모자를 뒤집어쓴 상태로 시선이 가는 중고책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대부분 집에 있는 것들이네.’

몬태나 집에 대부분 있는 책들이었다.

이사한 집에는 선물 받은 [사막의 제국]밖에 없었다.

‘남아 있는 것들도 내용이 그리 재밌지도 않고.’

대충 책을 훑어본 나는 책을 다시 내려놓고 서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중세 귀족 집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걸려있는 액자들과 책으로 만들어진 터널이나 골동품들을 보니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은근 많네..... 유명한 곳인가?’

대충 주위를 둘러본 나는 다시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규모가 있는 서점이라 그런지 책도 다양했다.

‘어? 한국인 작가가 쓴 책도 있네?’

내용을 확인해보니 개판이었다.

식물과 동물들의 이야기였는데, 동물과 곤충들은 번식에만 내용이 집중되어 있었고 식물들은 너무 개념 없게 표현되어 있었다.

현실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어반판타지 소설이었지만, 초기 설정을 잘못 잡았는지 뭔가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동식물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신선하네.’

동물과 식물의 본능만을 적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신선한 것 같았다.

어차피 집에 가면 할 것도 없다 보니 서점을 둘러보며 책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재미는 있는데..... 조금만 더 내용을 추가했다면 어떨까?’

‘너무 1인칭 시점만 말하네. 다른 사람들과 호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비현실적이네. 요즘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섞어야 하는데.....’

‘대화 내용이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책에 대한 품평을 하고 있었다.

책을 볼 때마다 내용보다는 모자란 부분이 먼저 보였다.

‘......왜지?’

한참이나 글을 읽다가 문득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깨닫자 황당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남의 책을 혹평하는 사람이었나?’

그러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장르 소설이 많지 않다 보니 책을 혹평하는 것보단, 책이 재미없더라도 그 작가가 하고 있는 생각이라도 읽으려고 했었다.

책이 별로 없었기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에 책이 주는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고자 했다.

‘.....변한 건가?’

내 책에 더욱 냉정해지기 위해서, 내 책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변한 건가?

‘......초심을 잃었다는 건 이럴 때를 말하는 건가?’

본격적으로 작가가 된 지 몇 달이나 되었다고 벌써 초심을 잃은 건가?

[블랙 & 월드] [드래곤 마스터] [사막의 제국]을 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초조함과 긴장감을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와 [드래곤 마스터 2부]를 생각할 때 느꼈다.

더욱 완벽해지기 위해 나 자신을 계속해서 채찍질했고, 그 결과 평소에는 놓치지 않았던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휴식을 취한 게 독이 된 건가?’

아니.

더 근본적인 이유다.

“......목표를 잃은 거야.”

서점의 책들은 전부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적은 노력이 보였다.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누군가는 영화화, 누군가는 금전적인 부분이 아닌 더 궁극적인 작가의 길을 위해 글을 적고자 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가.”

마그누스 감독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도전하지 않는 작가는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고.

추리소설을 도전한다고 해도 예전의 나였으면 이미 뭐라도 적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뭘 하고 있는가.

글을 써내려가기는커녕 고민만 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남의 글을 신나게 까내리기 바빴다.

나는 목표를 잃었다.

‘너무 안일했어.’

계속되는 피로와 승승장구하는 소설 그리고 휴식기.

이 세 가지로 인해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쓸 때 느껴졌던 쾌감과 짜릿함이 지금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임스..... 돈맛을 봤다는 거냐?’

나는 나도 모르게 책을 들고 있는 손을 움켜쥐었다.

-꽈아아아악!

책을 소중히 했던 제임스가 할 행동이 아니었지만, 최근에 느껴지는 책에 대한 감정변화를 알게 된 제임스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톡

그런 제임스의 어깨를 누군가 톡 하고 쳤다.

“응?”

“예끼. 젊은 사람이 이렇게 책을 함부로 하면 쓰나?”

“.....아.”

서점 직원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구매해야 할 새 책의 표지가 찌그러져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끌끌...... 사겠다면야 상관없지.”

할아버지는 먼지떨이로 먼지가 쌓이고 있는 책들을 톡톡 두드려 먼지를 털어냈다.

한두 번 하는 솜씨가 아닌 듯 그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잘 어울렸다.

“아까 자네가 한 말을 들었네. 목표를 잃었다고? 자네 작가인가?”

“하하......네.”

“쯧쯧. 자네도 무슨 안 좋은 일을 겪었나 보군.”

“예?”

“가끔 이름 없는 작가들이 이곳에 오네. 그리고 잘 팔리는 소설들을 보면 자네처럼 반응하지.”

“하하.....”

“최근 작가들은 조금 더 심해. 자네처럼 반응한 다음에 항상 저 책을 사가.”

할아버지는 먼지떨이로 한쪽 코너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세 종류의 책이 각각 탑을 쌓고 있었다.

“[사막의 전갈], [블랙 & 월드], [드래곤 마스터] 전부 드래곤 원 작가가 쓴 책이네.”

“......”

왜 내 책이 저렇게 전시되어 있는 거야?

“한 2주 전까지만 해도 전시가 되기도 전에 팔려나가서 꽤나 애를 먹었지. 지금은 저렇게 전시할 수 있어. 물론 아직도 잘 팔리긴 하지만.”

탑처럼 전시되어 있는 내 책을 보며 할아버지가 뿌듯하게 말했다.

“참고로 내가 쌓았지. 참 잘 쌓지 않았나?”

“.....잘 쌓긴 했네요.”

내가 품평하고 비판했던 작가들이 결국 선택하는 건 내 책이라는 말에 뭔가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인 좀 해주고 가게. 전시 좀 해놓게.”

“......예?”

이게 무슨 소리지?

“동양인들은 얼굴이 전부 똑같아서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확신이 서는군. 자네가 드래곤 원 맞지?”

“.....!”

“내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리지 않을 테니, 사인이나 해주게. 어떤가?”

“하하.....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이라니? 이래 봬도 내 손주가 [나인 드래곤] 우수 회원일세. 팬으로서 부탁하는 거지. 물론 사진도 찍어주면 좋고 말이야.”

“그 정도야 뭐..... 그래도 사인은.....”

“책값 안 받겠네.”

“해드릴게요.”

눈도 침침할 나이이신 것 같은데 모자까지 뒤집어쓴 날 알아보는 걸 보면, 괜히 서점주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 드래곤 원이 고민이 있을 줄은 몰랐군.”

“고민.....까지는 아니에요. 그냥 생각이 뒤죽박죽이어서 그래요.”

“고민이 뭔가?”

“......”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책을 쓸 때..... 그냥 정신없이 썼는데, 요즘에는 그러지 않네요. 돈맛을 알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의 돈을 벌어먹는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제 글에 더욱 날카로워진 것 같아요.”

“쯧쯧. 그냥 자기 소설에 만족을 못 하고 있군.”

“그런가요?”

“그래서 목표다 도전정신이다 중얼거린 거고..... 쯧쯧.”

할아버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라오게.”

“예?”

“따라오게. 좋은 걸 알려줄 테니.”

나는 할아버지를 뒤따랐고, 할아버지는 서점이 아닌 직원들이 휴식하는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책?”

소설책이 아닌, 그냥 평범한 공책이었다.

다만, 공책치고는 마치 소설책처럼 두께가 상당했다.

보관해놓은 지 오래된 것인지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예전에 내 친구 녀석이 쓰던 공책이네. 요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 이름을 날렸던 녀석이야. 이곳에 자주 왔지.”

“네에.....”

“직원들을 못 들어오게 해줄 테니 한번 읽어보게.”

“지금 여기서요?”

“그래.”

“그건 실례가 되는 게 아닌지.....”

“사진도 찍어주면 되지 않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더 찾아올 것 같으니까.”

“......예.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보고 가야죠.”

할아버지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 나는 낡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공책을 바라봤다.

제목, 이름, 내용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그저 두꺼운 공책.

나는 첫 장을 열었다.

***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그저 그런 평범하게 뻔하디뻔한. 소소한 로맨스 소설이다.

하지만 내용이 단순하기에 이어질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책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책에 잡혀 들어가는 것처럼, 내 눈은 오직 이 소설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문단, 문장 한 줄, 글자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에 생기가 넘쳤다.

‘이 소설......’

익숙하다.

과거에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이런 느낌의 책을 쓰는 작가가 있었다.

‘할리 브레이드.’

판타지 소설의 거장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필명’이다.

‘브레드 보른드.’

추리 소설의 대가라 불리며 당시 미국 전역을 들썩였던 ‘필명’이다.

‘아그럴 헨리’

공포 소설의 대가이며 미국 전역에 수만 개의 도시전설을 만들어낸 ‘필명’이다.

‘아르메 랜디’

로맨스 소설의 대가이며 아직까지도 이 소설을 참고하여 프러포즈하는 사람이 많았다.

‘스위벨리’

당시 모든 아이들이 이 작가가 쓴 소설을 읽었다.

“......에드월 홈즈.”

5개의 필명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이 다섯 개의 필명의 정체는 모두 에드월 홈즈였다.

새로운 장르를 끝없이 도전하기 위해 계속해서 필명을 바꾼 미국을 대표했던 천재 작가.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글이 재미없다고 느낀 순간 쓰던 필명을 버리고 새로운 필명으로 이름값 없이 맨바닥부터 글을 다시 시작했다.

“어땠나? 재밌었나?”

“......”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공책을 쓰다듬었다.

“이건 대체......”

“홈즈 그 녀석은 자신의 글이 어느 순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공책에 글을 적어 주변 친구들한테 읽어보라고 줬네.”

당시에는 컴퓨터 보급도 안 되었을 시기라, 직접 글자를 적어야 했다.

이 두꺼운 책을 꽉 채울 정도로 글을 쓰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다.

“아직도 ‘조급’한가?”

한 달의 휴식기 동안 나는 내내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사람들이 나를 잊는 게 아닐까? 아니면 새로운 신성이 나타나 내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겁쟁이처럼.

“자네는 소설을 다양하게 쓰더군. 그 방식이 편한 작가들도 있네..... 하지만, 그렇게 쓰면 팬들의 아우성이 더 심해지겠지. 한 작품만 일단 집중해서 쓰라고, 다음 권이 보고 싶은데 왜 다른 곳에 눈을 돌리냐고.”

할아버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팬들은 자네를 기다려 줄 걸세. 작가는 글로 보답하면 되지 않나.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게.”

나는 목표를, 도전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저 애타는 조급함이 내 자신을 좀먹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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