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93화 (92/216)

93화. 미팅 (2)

머리를 다듬고, 새로 산 옷을 입은 다음 우리는 미션 컴퍼니로 향했다.

“그나저나 누나.”

“왜?”

“오디션 보러온다는 사람들 이름은 알아?”

“오디션 보러 온다고 연예인 중 몇 명이 SNS에 올리긴 했더라. 근데..... 흠.”

“왜?”

“으음..... 보통 미션 컴퍼니 정도 되는 수준의 제작사면 굳이 오디션을 볼 필요가 없어. 그냥 기획사에 ‘우리가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인데, 혹시 그 기획사에서 어떤 배우가 이 영화에 어울릴까?’라고 말하기만 해도 기획사에서 배우를 못 데려와서 안달이 나니까.”

“흐음..... 하긴, 기획사도 미션 컴퍼니 제작 영화라면 믿고 맡기겠지.”

“너도 알다시피 영화 제작은 제작사 or 영화감독 둘 중 하나의 입김에 따라서 배우들이 전부 달라져. [사막의 전갈] 같은 경우는 마그누스 감독님의 이름이 있기에 블루스타게이트에서 전권을 부여했지만.....”

“미션 컴퍼니는 다를 수 있다는 거지?”

“맞아. 총촬영 감독이 정해졌다고는 하는데 누가 맡았는지는 아직 알려주지 않더라. 다만..... 공개 오디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일단 너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거지. 거기에 에드워드 선생님이 있으니까 강하게 나오진 않을 거야.”

“이래서 명성이 중요하지 뭐.”

내로라하는 연예계 종사자들이어도 미션 컴퍼니에서 만드는 영화는 출연하고 싶을 것이다.

설사 감독의 이름이 약하고 제작사의 푸쉬가 강하게 들어가도 말이다.

“근데 제임스.”

“왜?”

“너 선물로 보낸 와인 다 마셨더라?”

“술은 남기는 거 아니야.”

“씨이..... 내 것 좀 남기지!”

“언제나 말하지만, 술은 남기는 거 아니야. 술 남기면 벌 받아.”

“누구한테?”

“엄마한테.”

“......”

누나도 납득했는지 그 이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튼 오디션 보러 오는 배우들은 모른다는 거지?”

“사람이 워낙 많이 와서.... 그래도 한 명은 알지.”

“한 명?”

“올리비아 콜린스.”

“뭐?”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잖아? 뉴스에도 나오더라 이번 오디션 보러 온다고.”

“아......”

“네 열렬한 팬이라던데?”

부담되네.

***

이미 사전 오디션을 마친 상태였고, 거기서 감독들의 눈에 띄는 배우들만 고르고 골라 이번 2차 오디션 자리에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선 감독님들과의 면담과 회의가 중요했다.

“하하하하!”

미션 컴퍼니에 도착하자 노아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저번 [드래곤 마스터] 계약 때 못 와서 죄송하네요.”

“뭘요. 집필하시는 데 방해하면 안 되지요. 아. [리턴 패션 디자이너] 발매 축하드립니다! 저도 아침에 가서 구매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아는 아침에 구매한 [리턴 패션 디자이너] 책을 내 앞에 스윽 내밀었다.

“혹시 사인.....”

“하하. 당연히 해드려야죠.”

나는 노아의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노아는 사인받은 책을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맞다. 감독님들은 전부 도착하셨습니다.”

“이런..... 제가 너무 늦게 왔네요.”

“아뇨아뇨. 감독님들은 미리 논의하실 게 있다 보니 1시간 전에 오셔서 회의 중입니다. 제임스 작가님은 나중에 온다는 걸 알고 계시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저와 같이 가시죠.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회장실에서 나가 우리는 감독님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이번 감독님들은 젊은 피를 가지신 분들이 많다 보니 작가님이 대하시기 편할 겁니다. 물론 음악감독님은 제임스 작가님이 아시는 그분이겠지만요. 하하.”

“아.....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전화 한 번 못 드렸네요. 건강하신가요?”

“힘이 펄펄 넘치십니다. 하하! 아. 도착했네요.”

***

회의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감독들의 앞에는 각본 감독이 적어 온 시나리오가 적혀있었다.

“이 장면 말입니다......”

“예.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서.... 예.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이 씬에서 입은 옷은.....”

“상황에 따라 바꾸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회의가 한창인 회의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들어오라고는 말했지만, 감독들의 눈은 여전히 시나리오 서류에 꽂혀있었다.

“하하. 모두들 바쁘시군요.”

그런 회의실에 노아와 제임스가 들어왔다.

메디슨 누나는 비밀 유지를 위해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했다.

“제임스 작가님이십니다.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노아가 나를 소개하자,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권입니다. 그냥 편하게 제임스라고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영화 모두 힘내서 재밌게 만들어봅시다.”

-짝짝짝짝!

형식적인 말임에도 박수가 쏟아졌다.

“그만 말하고 빨리 앉아라. 오늘까지 시나리오 완성 못 하면 배우들 캐스팅도 못 한다.”

“아. 넵!”

유일하게 나를 못마땅한 얼굴로 보던 에드워드 선생님은 인사를 생략하고 얼른 나를 자리에 앉혔다.

“자네는 그만 나가보게.”

“넵!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연륜과 경험 차이 때문인지 노아 회장은 에드워드 선생님을 어렵게 대했다.

노아 회장은 서둘러 회의실에서 나갔다.

“아 우선 소개부터.....”

“끝나고 하게. 시간 없네.”

“넵.”

보통 영화나 드라마의 캐스팅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체적인 내용에 어울리는 배우를 섭외한 뒤에 그 배우에 맞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시나리오 위주로 캐스팅하는 경우, 탄탄한 내용이 뒤받쳐줘야 하지만, 배우에 맞는 시나리오를 짜는 경우 그 배우의 팬덤을 안전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 시장에 배우의 팬덤을 끌고 온다고 해도 ‘대박’을 노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렇기에 시나리오를 정하고 그에 맞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군말 없이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어떠신가요?”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자 건너편에 있던 중년의 여성이 긴장된 얼굴로 내가 들고 있는 대본을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다만, 몇 군데 수정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아까 체크한 부분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뒤적이며 아까 체크했던 부분을 말했다.

“여기. 브레이셔가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 말인데요. 혹시 에나의 반응을 더 추가해도 될까요?”

“어떤 식으로요?”

“인간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디는 건 당연히 놀랍겠죠. 하지만 에나는 인간이 아닌 하프 몬스터잖아요? 소설책에서는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인데, 브레이셔로 들어가면서 몸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식으로 표현해 주셨으면 해요.”

“아. 그 부분을 놓쳤네요. 죄송해요.”

“디테일을 조금 포함시키는 정도인데, 이런 걸로 괜히 으스대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뇨아뇨. 오히려 이렇게 초장에 잡아주시는 게 훨씬 감사한걸요! 체크하신 부분 더 있으신가요?”

“잠시만요. 여기 이 부분도.....”

시나리오 수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

에드워드는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있는 과정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저 녀석..... 글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가?’

몇 페이지에 무슨 글이 있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인지, 제임스는 글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글에 자부심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완결된 지 꽤 된 작품도 저렇게 디테일하게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에드워드는 이번에 노아가 섭외했다던 젊은 감독을 힐끗 바라봤다.

제임스보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노장들이라 불리는 감독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실력 있는 자였다.

업계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 그런지, 그도 재밌다는 듯이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입니다만.... 혹시 제가 빠트린 부분이 있나요?”

“아, 아뇨! 전부 다 수정할게요.”

“영화 촬영에 문제가 있으면 과감하게 빼셔도 되는 부분들이에요. 다만, 살릴 수 있다면 살려주시면 좋고요.”

“물론이죠.”

그렇게 원작 작가의 시나리오 확인이 끝나고 총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임스한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블랙 & 월드] 촬영감독을 맡은 딜런이라고 합니다. 작가님에 대해서 에드워드 선생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딜런 근데 에드워드 선생님이 저를 뭐라고..... 하셨는지.”

“실력 있는 작가님이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 외에는 첫 만남부터 말씀드리면 상처받으실 것 같아서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하하.....”

“이번에 제임스 작가님의 작품을 맡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딜런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

시나리오 수정은 그 이후로 한 시간 정도 더 진행됐다.

어차피 영화 촬영 직전에 또 만나서 세부사항을 다시 조율해야 했기에 간단하게 시나리오만 완성시켰다.

비교적 빠르게 시나리오 검토가 끝나자 에드워드 선생님이 나한테 다가왔다.

“자네 요 한 달 동안 푹 쉬더니 감을 잃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피곤이 풀린 것 같아요. 당시에는 조금 무리한 감도 없잖아 있었으니까요.”

“쯧쯧. 그래도 연락은 하지 그랬나?”

“하하..... 죄송해요. 근데 오는 데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뉴욕에서 LA까지 오는데 선생님 나이대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말에 오히려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는데 뭐가 힘들겠나? 시끄럽고 자네 이사했다며?”

“네. 아무래도 LA에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아서 독립하게 됐어요.”

“부모님과 상의한 건가?”

“네. 부모님이 먼저 권유하셨어요.”

“에잉. 쯧쯧......”

선생님은 어디가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아까부터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셔서 어째서인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 설마.....’

처음 선생님과 대면했을 때 이제 은퇴했으니 농사나 짓고 살고 싶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말을 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야지. 다이애나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이애나도 오려고 했었나요...?”

“그래. 자네가 어떤 환경에서 글을 쓴 건지 궁금해했었네.”

하긴, 나도 어린 시절에 에드월 홈즈가 어떤 환경에서 글을 썼는지 궁금했었다.

어쨌거나 은퇴한 선생님이 귀농을 생각 중이라고 하시길래 몬태나를 추천했고, 언젠가 우리 집에 초대하려고 했었다.

싹 다 까먹고 있었지만...

“뭐. 어차피 이사했으니 끝난 게지. 암. 끝난 거야.”

에드워드 선생님은 오히려 만족하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셨다.

“다이애나한테는 제가 따로 미안하다고 연락할게요.”

“하지 말게.”

“할게요.”

“쓰읍! 하지 말게.”

“하하. 반드시 할게요.”

“자네 이러긴가?”

그렇게 선생님과 옥신각신 이야기하고 있을 때 딜런이 다가왔다.

“두 분 정말 친하신가 보네요. 하하하하!”

“친하기는! 쯧! 에잉! 손녀만 아니었으면 그냥......”

“그냥 뭐요?”

투닥거림이 길어질 것 같자 딜런은 서둘러 우리 사이를 중재했다.

“하하. 배우들 오디션 시간인데 얼른 가시죠. 감독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흥.”

“하하. 얼른 가시죠.”

딜런은 우리 둘의 어깨를 뒤에서 밀며 오디션장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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